처서

 



1. 개요
2. 상세


1. 개요


처서(處暑)는 24절기의 하나로 입추백로의 사이에 있다. 양력으로 8월 23일 내지 8월 24일경이다[1].

2. 상세


이 시기부터 여름과 더위가 수그러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도 대서입추 전후로만 하더라도 더위의 절정이었지만 처서에 접어들면 '''폭염열대야가 사라지고'''[2], 푹푹 찌는 더위의 주 원흉인 습도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매미소리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3] 그리고 여름 내내 계속되던 우중충한 먹구름이 걷히면서 맑은 날씨가 다시 찾아온다.[4] "처서가 지나면 참외맛이 없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삐뚤어진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실질적인 체감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가을 기후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처서 시기가 즉 처서임과 동시에 진정한 입추라고 할 만 하겠다. 당연하지만 전력 소비량도 이때부터 급격하게 내려간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이 있다. 이 시기에는 눈두렁의 풀을 깎아베고 산소에서 벌초를 하며 이날은 대추가 맺힌다. 또 처서에는 호미씻기도 끝나 농사철 중에 비교적 한가한 때이다.
"처서에 비가 오면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처서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시기가 곡식이 여물어갈 무렵인 만큼 비가 오면 그만큼 치명타로 작용하기 때문인듯 하다. 태풍이 불어닥치는 시기이기도 해서 그럴 것이다.
다만 연도마다 간혹 예외가 있어서, 폭염이 심하거나 뒤늦게 찾아온 경우는 처서 시기에도 입추 못지 않게 매우 무더울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1943년 여름 당시 서울 등 수도권에선 입추 이후에도 기온이 상승해서, 처서날에 '''38.2도'''를 기록하고, 또 그 다음날에는 최고기온 36.5도, 최저기온이 25.4도로 열대야가 찾아왔으며, 나흘 뒤에도 '''37.9도'''를 기록했다. 즉, 이 해에는 입추보다 처서가 더 더웠던 시기였다. 결국 이 폭염은 9월 1일 33도를 찍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3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끝나는 듯 보였으나 쉽게 물러가지 않는 폭염으로 인해 결국 9월 19일이 되어서야 폭염이 끝났다. 1945년 8월에도 입추만 해도 그다지 폭염이라 할 말한 날씨는 없었지만, 광복절인 15일부터 폭염이 찾아와 처서인 23일에 37도로 폭염이 절정에 달했으며, 처서가 한참 지난 30일에야 폭염이 진정되었다.
2011년에는 6~8월엔 큰 폭염 및 열대야가 없었으나,[5] 8월 말에 폭염이 찾아와 9월까지 30도가 넘는 늦더위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2016년 폭염 당시에는 7월 하순부터 처서 이후인 8월 24일까지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 최고 기온이 35도를 찍는 폭염 및 열대야가 이어졌으나, 25일 후 해소되었고, 26~31일엔 이상 저온 현상이 찾아왔다.[6] 2020년에는 대서 무렵에 이상 저온 현상이 찾아올 정도로 기록적인 장마가 왔으며 장마가 끝난 8월 16일부터 전국적으로 늦은 폭염이 찾아와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9월 3일에 해소되었다.
[1] 이 날은 점성술에서 처녀자리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2] 실질적으로는 8월 15~20일 사이에 극심한 폭염이나 열대야가 이미 해소되는 경우가 많다. 즉, 광복절, 말복 전후로 큰 더위가 해소된다는 것. [3] 다만 이때를 전후로 확 시원해지는 건 아니고, 대낮의 더위는 추분때까지 한동안 남게 된다. 그래봐야 습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 5월 중하순 내지 6월 초중순 느낌이다.[4] 처서 직전까지 '''구름많음-흐림-소나기'''의 연속이다가 처서가 되고나서 '''맑음-구름조금'''이 나타난다.[5] 물론 남부지방은 예외. 이쪽은 장마가 일찍 끝나서 7~8월에 폭염과 열대야 현상 자체는 있었다.[6] 8월 27일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16.9도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