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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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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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
영어
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
중국어
高句丽王城、王陵及贵族墓葬
프랑스어
Capitales et tombes
de l’ancien royaume de Koguryo
국가·위치
중국 지린성 지안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4년
등재기준
(i)[1], (ii)[2], (iii)[3], (iv)[4], (v)[5]
지정번호
1135
舞踊塚
1. 개요
2. 고분의 구조
3. 무덤의 연대
4. 같이보기


1. 개요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위치하고 있다. 광개토왕릉비의 북서쪽 약 1km 지점에 있으며 각저총(角抵塚)과 나란히 있으며 관리차원의 편호 상으로는 우산하 458호(JYM 0458)으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그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졌으며 벽화의 내용으로 인해서 무용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6]

2. 고분의 구조


무용총의 한변의 길이는 15m로 방추형(方錐形)의 평면형태를 이며 높이는 4m 내외이다.
널방[墓室]은 약 3m 사방의 널방[玄室]과 가로로 긴 앞방[前室], 이것들을 연결하는 통로 및 널길[羡道]로 되어 있는데 널길의 좌우로 이실(耳室)이라고 부르는 별도의 부장칸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붙어 있다. 널방[玄室]의 바닥면에는 오른쪽 벽에 치우쳐서 4장의 판석(板石)을 배열한 널받침[棺臺]시설이 있다. 널방[墓室]은 괴석(塊石)을 쌓았고, 모줄임천장[抹角藻井天障]이다.
회반죽을 두껍게 칠한 벽면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주실 정벽(正壁)의 접객도(接客圖)는 이 무덤의 주인공인 듯한 인물이 상궤(床几)에 앉아 있고 그와 대화하듯 두 사람의 삭발한 승려가 역시 상궤에 앉아 있으며, 이밖에 시동(侍童) 세 사람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벽은 수렵도(狩獵圖)가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의 국사책 가장 앞의 그림이 바로 이 무용총의 수렵도이다. 꼭 이 뿐만이 아니더라도 이 벽화의 기마궁수가 보여주는 파르티안 궁법명적은 국사와 관련된 관련 참고서적들에는 자주 쓰이는 심볼마냥 상징적으로 채용되곤 했다. 거의 고구려를 상징하는 벽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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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현실(玄室) 동벽 벽화 모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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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 복원 모습.)
왼쪽 벽에는 주인을 표현한 인물의 기마도(騎馬圖)와 주방 등의 가옥 2동 외에 5명의 남녀 군무상(群舞像)[7], 9명의 합창대상(合唱隊像)이 그려져 있다. 이 장면의 특이함에서 무용총이라고 명명되었는데, 천장에는 연화문 등의 장식문, 사신도(四神圖)·일월상도(日月象圖)를 포함한 그림이 있다. 앞방의 벽화는 박락(剝落)되어 가고 있다.

3. 무덤의 연대


무용총은 벽화의 제재가 생활풍속도인점, 불교적 요소인 연꽃무늬가 나타나는 점 등을 통해 5세기 경으로 판단되고 있다. 또 묘실의 구조적인 특징 상으로도 5세기 전반에서 중엽 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4. 같이보기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6] 무용총을 대표하는 벽화가 바로 현실(玄室)서벽에 그려진 수렵도이다. 하지만 무용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현실 동벽에 그려진 무용도 때문이다. 무용(舞踊)을 무용(武勇)과 혼동하지 말자. 이들은 다른 것이니.[7] 저렇게 팔을 뒤로 하는 동작을 한 번 따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