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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舞踊塚
1. 개요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위치하고 있다. 광개토왕릉비의 북서쪽 약 1km 지점에 있으며 각저총(角抵塚)과 나란히 있으며 관리차원의 편호 상으로는 우산하 458호(JYM 0458)으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그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졌으며 벽화의 내용으로 인해서 무용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6]
2. 고분의 구조
무용총의 한변의 길이는 15m로 방추형(方錐形)의 평면형태를 이며 높이는 4m 내외이다.
널방[墓室]은 약 3m 사방의 널방[玄室]과 가로로 긴 앞방[前室], 이것들을 연결하는 통로 및 널길[羡道]로 되어 있는데 널길의 좌우로 이실(耳室)이라고 부르는 별도의 부장칸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붙어 있다. 널방[玄室]의 바닥면에는 오른쪽 벽에 치우쳐서 4장의 판석(板石)을 배열한 널받침[棺臺]시설이 있다. 널방[墓室]은 괴석(塊石)을 쌓았고, 모줄임천장[抹角藻井天障]이다.
회반죽을 두껍게 칠한 벽면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주실 정벽(正壁)의 접객도(接客圖)는 이 무덤의 주인공인 듯한 인물이 상궤(床几)에 앉아 있고 그와 대화하듯 두 사람의 삭발한 승려가 역시 상궤에 앉아 있으며, 이밖에 시동(侍童) 세 사람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벽은 수렵도(狩獵圖)가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의 국사책 가장 앞의 그림이 바로 이 무용총의 수렵도이다. 꼭 이 뿐만이 아니더라도 이 벽화의 기마궁수가 보여주는 파르티안 궁법과 명적은 국사와 관련된 관련 참고서적들에는 자주 쓰이는 심볼마냥 상징적으로 채용되곤 했다. 거의 고구려를 상징하는 벽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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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현실(玄室) 동벽 벽화 모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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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 복원 모습.)
왼쪽 벽에는 주인을 표현한 인물의 기마도(騎馬圖)와 주방 등의 가옥 2동 외에 5명의 남녀 군무상(群舞像)[7] , 9명의 합창대상(合唱隊像)이 그려져 있다. 이 장면의 특이함에서 무용총이라고 명명되었는데, 천장에는 연화문 등의 장식문, 사신도(四神圖)·일월상도(日月象圖)를 포함한 그림이 있다. 앞방의 벽화는 박락(剝落)되어 가고 있다.
3. 무덤의 연대
무용총은 벽화의 제재가 생활풍속도인점, 불교적 요소인 연꽃무늬가 나타나는 점 등을 통해 5세기 경으로 판단되고 있다. 또 묘실의 구조적인 특징 상으로도 5세기 전반에서 중엽 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4. 같이보기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6] 무용총을 대표하는 벽화가 바로 현실(玄室)서벽에 그려진 수렵도이다. 하지만 무용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현실 동벽에 그려진 무용도 때문이다. 무용(舞踊)을 무용(武勇)과 혼동하지 말자. 이들은 다른 것이니.[7] 저렇게 팔을 뒤로 하는 동작을 한 번 따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