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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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4년 중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한 지린성 지안시(국내성)와 랴오닝성 환런만족자치현(졸본)에 위치하는 고구려의 도성(都城)과 고분군. 지안시의 경우 경주시, 부여군, 개성시처럼 도시 하나가 사실상 유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안시에 소재하는 고구려의 고분군을 총칭하여 통구 고분군이라고 한다.
2. 북한의 세계문화유산 고구려 고분군과의 동반등재
고구려를 중국사로 알음알음 편입하려 하던 중국은 고구려와 관련된 유적들을 중국 단독으로 등재하고자 하였으나 북한에서 고구려 고분군을 동시에 슬쩍 끼워넣어서 동시에 등재가 확정되는 바람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고구려 자체를 오롯이 중국의 역사로 서술할 수는 없었고 그 결과 유네스코는 고구려사 자체를 한반도 북부와 중국 동북지역의 역사로써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하간 함께 등재되면서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닌 중국에 있었던 지방권력이라는 완화된 표현으로 공식서술 내용을 바꾸었다. 그래서 동북지역 및 한반도 북부지역에 소재하였던 고대 왕국 정도로 서술하여 그 정도를 낮추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등재해서 우리 입맛대로 써야지 했던 것이 거의 무용지물이 된 셈으로 공식적으로 서술에서도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말은 직접적으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6]
As one of '''the ethnic groups and local power''' with the most distinctive characteristics and influence in ancient Northeast China, Koguryo once created a splendid history. A great deal of its main historical remains have existed in China's Jilin and Liaoning provinces. The serve as irreplaceable evidence of this period of history, thus bearing significant historical and cultural value. The sites of the capital cities, imperial tombs and nobles' tombs of Koguryo are all the more precious
고대 중국 동북지방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과 영향력을 지닌 '''민족집단과 지방권력'''중 하나로서, 고구려는 한때 훌륭한 역사를 창조했다. 중국의 지린과 랴오닝 성에는 고구려의 주요 역사적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유적들은 고구려의 시기에 대한 대체할 수 없는 증거로서, 이는 상당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고 있다. 수도, 왕릉, 귀족의 무덤이 있는 이 유적들은 더욱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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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묘지"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The state Administration of Cultural Heritage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Capital Cities, Imperial Tombs an Nobles' Tombs of Koguryo''
3. 도굴과 훼손
지안시 통구 고분군의 우산하 고분군 구역에 소재하는 삼실총(三室塚)의 경우, 방 3칸이 "ㄱ"자 형으로 배치된 독특한 형태에 벽화까지 확인된 특수한 경우로 등재 목록에 오르는 것이 당연했으나 1990년대 말 2000년에 도굴에 의해서 벽화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중국 측에서 원활한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미리 목록에서 제외하였다.
여담으로 삼실총을 털었던 조선족 범죄자들은 통구 고분군의 범주에 소속된 장천 고분군[7] 의 1, 2호도 도굴하여 이로 인해서 벽화가 훼손된 바 있다. 벽화 조각은 한국으로 팔려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도굴을 실행한 조선족은 나중에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관련기사 나중에는 직접적으로 한국인이 관여되어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관련기사 그래도 장천 1, 2호는 등재목록에 포함되었는데 훼손의 정도 차이에 의한 결정으로 추정된다.
백제 왕릉들 보다는 나은게 백제 왕릉의 경우 백제 멸망 후 통일신라•고려시대 때부터 도굴의 대상이되었지만 고구려 왕릉의 경우 그래도 자신들의 영역인 한반도 북부(고려)와 요동지방(발해)을 후손국들인 발해와 고려가 통치했기 때문에 이들 나라가 고구려의 계승을 천명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선조들의 무덤으로 간주해 국가차원에서 관리를 했다.
4. 등재 목록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묘지에 포함된 유적은 성곽으로는 국내성, 환도산성, 오녀산성 3개소의 유적과 함께 광개토대왕비가 포함되었으며, 무덤으로는 왕릉 12+2기, 벽화분 17기를 포함한 중요고분 26기, 도합 40기가 해당한다.[8]
4.1. 성곽
4.2. 왕릉
장군총의 1호 배총[9] , 광개토대왕비가 왕릉에 포함되어 등재되었기 때문에 12+2가 된다.
4.3. 주요 고분 26기(■ : 벽화분)
- 우산하 3319호 ■
- 산연화총 ■
- 마조총(통구 12호) ■
- 오회분 1호
- 오회분 2호
- 오회분 3호
- 오회분 4호 ■
- 오회분 5호 ■
- 사회분 1호
- 사회분 2호
- 사회분 3호
- 사회분 4호
- 우산하 2112호
- 사신총 ■
- 각저총 ■
- 무용총 ■
- 절천정총 ■
- 귀갑총 ■
- 형총
- 제총
- 왕자묘 ■
- 장천 1호 ■
- 장천 2호 ■
- 장천 4호 ■
- 환문총 ■
- 모두루총(중국명 염모묘) ■
5. 기타
- 통구 고분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아니며, 몇몇 고분에만 해당하여 선별적으로 등재하였다. 직접 가서 보면 일반적인 통구 고분군 구역에는 "통구 고분군 - 산성하 고분군"이런 식으로 표기만 되어 있지만 유네스코로 등재된 무덤의 경우에는 철제 펜스를 둘러놓고 CCTV를 설치하여 두었다. 이런 곳에서는 더 가까이서 유적을 보는 것은 금지되며 실제로 유적을 볼 수 있게한 태왕릉만 올라가거나 묘실을 직접 볼 수 있다.
- 중국은 특히 유네스코 등재를 즈음하여 지안시에 소재하는 왕릉에 대해 일제적으로 조사를 실시하였다. 아래의 목록에 있는 왕릉들을 포함하여 추가적으로 마선구 2378호, 산성하 전창 36호를 곁들여 조사하였고 이 왕릉들에 대한 조사를 공식적으로 보고서로 간행하였다. 이 보고서는 한국 학자를 비롯하여 고구려 왕릉 연구에 주요한 자료가 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고구려 왕릉에 대한 보고서는 유적의 관리와 고구려 왕릉의 묘주 비정이라는 목적 하에 충실히 작성된 편이다. 중국의 고구려에 대한 인식은 중국 정부의 차원에서 정치전략적인 목적 하에 동북공정을 실시한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종료되었지만 잔잔하게나마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보는 인식은 남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고 중국에서도 연구자나 일반인 개개인마다 고구려에 대한 인식은 제각각인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고구려 관련 보고서 및 간보(間報)의 서두에서는 "중국의 지방정권인…"이라는 문구로 시작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그와 상관없는 고구려 자체에 대한 순수한 연구인 경우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