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립
文立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촉나라와 서진의 인물. 자는 광휴(廣休).
파군 임강현 사람으로 태학에 유학해 모시, 주례, 예기, 의례 등을 전공하고 초주에게 사사받았으며, 문재들은 문립은 안회와 같다는 이야기를 했고 진수, 이밀은 자유, 자하와 같다고 했다. 나헌은 자공과 같다고 했으며, 임관해서 상서까지 이르렀다가 촉이 평정되고 진에서 수재로 천거되어 낭중이 되었다.
태시 초년[1] 에는 제음태수에 임명되었다가 중앙에 부름을 받아 태자중서자가 되었으며, 제갈량, 장완, 비의의 자손이 중원을 방황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관위를 주어 등용하면서 파촉의 민중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오의 백성들의 기대를 이 곳으로 돌리는 것이 좋다고 상표했고 이 일은 모두 시행되었다.
조칙에서 문립이 충실하고 마음이 바르면서 청렴하며, 사려가 깊고 재능이 깊다고 칭찬하면서 이전의 치적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문립을 산기상시에 임명했다. 사마염이 이름높은 정경에 대해 추천하지 않는 것을 묻자 늙은데다가 명예를 바라지 않기에 추천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서역으로부터 말이 헌상될 때 사마염이 이 말을 어찌하냐고 묻자 태복에게 물으라고 했고 사마염은 이를 옳게 여겼다.
위위에 승진해 함녕 연간[2] 에 사망했고 저술한 상주문, 시, 부를 모아 수십 편이 세상에 전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