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밀(촉한)

 



1. 개요
2. 생애
3. 창작물에서


1. 개요


李密 (224년 ~ 287년)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이자 서진의 인물. 자는 영백(令伯). 진정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속한서에는 이건(李虔), 화양국지에는 이밀(李密) 또는 이려(李虑), 진서 이밀전에서는 이밀(李密) 또는 이건(李虔)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생애


건위 무양 사람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하씨가 개가하자 할머니 유씨의 손에서 자랐으며, 할머니를 모시면서 효심이 매우 두터워 명성이 자자했다. 초주에게 학문을 배워 오경에 정통했으며, 촉나라에서 유선 대에 상서랑, 대장군 주부, 태자선마 등을 역임했다. 오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손권이 신하들과 함께 형제의 우열에 대해 논할 때 동생이 되는게 낫다는 말이 나오자 이밀은 형이 되고 싶다면서 형이 되면 부모님을 봉양할 날이 많다고 했으며, 손권과 신하들은 그를 훌륭하다고 칭찬했고 이 이야기는 세설신어에도 기록되어 있다.
촉한이 멸망했을 땐 명성을 듣고 만나보고 싶다는 등애의 초청을 받았으나 할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1] 이후에도 조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계속 새로이 들어선 서진 정권으로의 출사를 거부했다. 267년에 서진에서 다시 태자선마에 임명되었으나 이때 그 유명한 진정표를 올려 할머니를 봉양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사양했으며, 이에 감동한 사마염이 노비 두 사람을 하사하면서 군현의 관리에게 명령해 이밀의 조모에게 의식을 제공하도록 했다. 할머니가 죽고 상을 치룬 후에 출사해 태자선마, 상서랑 등이 되었다가 하내 온현의 현령이 되었다.
하내 온현의 현령이 되어 엄격하고 공정한 정치로 백성들을 교화했으며, 중산왕이 온현을 지날 때마다 트집을 잡아 재물을 요구해 관리들이 근심으로 여겨 걱정했다. 중산왕이 온현에 와서 말먹이풀, 땔나무 등을 요구하자 한고제가 패현을 지나 늙은이, 어린 아이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접하면서 고향의 공물에 어떠한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 받지 않은 옛 고사를 인용해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가 올라간 후에는 중산왕이 온현을 지나가도 어떠한 추태를 부리지 않게 되었고 사마태와 친구로 사귀면서 공경했지만 그 집안의 권세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으며, 익주대중정이 되었고 성품이 강직해 권력이 있는 자에게 굽히지 않아 순욱, 장화 등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출사한 이후 같이 초주에게 학문을 배운 진수[2] 나 다른 서진에 출사한 사람들과도 사이가 틀어졌고 오로지 성정이 너그럽고 후하며 온화하고 순한 왕숭[3]정도와만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에 한중 태수로 좌천되었다가 한중 태수로 재직하던 도중에 사마염의 노여움을 사서 면직되어 64세에 집에서 죽었다.
장화가 사공일 때 유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제 환공에 버금간다고 하면서 제 환공은 관중을 얻어 패자가 되었다가 수초를 기용해 죽은 후에 벌레가 새어나올 정도였으며, 유선은 제갈량을 얻어 위에 저항했지만 황호를 임용해 나라가 망해 그 성패가 같음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호웅, 황보밀과 친했고 저술한 것은 10편에 달하지만 그가 지은 작품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진정표, 사전동당조령부시 등만 남아있다. 특히 진정표제갈량출사표와 표문의 양대 바이블로 일컬어질 만큼 더불어 유명한데, 중국에서는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며,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문으로 꼽는다.
그의 아들 이흥은 서진에서 태부연을 지냈다.

3. 창작물에서


[image]
삼국지 14 일러스트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14, 무력 6, 지력 65, 정치 71, 매력 58이며 일러스트는 붓을 든 채 죽간에다가 글씨를 쓰고 있다. 개성은 문화, 능리, 주의는 예교, 정책은 태학 Lv 3, 진형은 학익, 전법은 고무, 친애무장은 사마염, 혐오무장은 없다. 생년은 224년, 몰년은 287년까지 되어있다.
[1] 사실 촉한에서 벼슬하면서 할머니를 두고 손오에 사신으로도 다녀온 사람이 바로 지척에 있던 등애의 요청은 단칼에 거절했다는거 자체가 당시 촉한 사대부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묘한 부분이다.[2] 장화가 진수의 후견인 역할이었으니 사이가 틀어지지 않는 게 사실 이상하긴 하다. 진수도 성격이 온화한 사람은 아니었고. 재밌는점은 이밀이 천거한 수량이 진수와는 다른 의도로 역사를 편찬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서진에 출사한 초주의 제자들이나 촉한 출신 인물들이 서로 같은 이해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는 일화들이다. 어쨌거나 그래서인지 진수는 정사 삼국지에 이밀에 대한 얘기는 넣지도 않았고 이에 배송지는 주석으로 진수가 '전이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들의 기록을 적는다'며 인용한 양희의 계한보신찬 '''앞에다가''' 화양국지를 주석으로 달아 이를 보충하였다. [3] 화양국지에 기록된 '강유가 종회고 등애가 이길 수 있었다'며 한탄한 그 사람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