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마와리구미

 


1. 개요
2. 미디어에서


1. 개요


에도 시대 말기 교토치안을 담당하던 집단. 교토 미마와리구미(京都見廻組)라고 한다. 1864년 에도 막부에 의해 교토 슈고쇼쿠이자 아이즈 번주였던 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의 밑에 교토 견회역(京都見廻役)을 만들어 마이다 히로타카(蒔田広孝)와 마츠다이라 야스마사(松平康正)를 여기에 임명하고, 이들 밑으로 200여명을 조직함으로서 형성되었다.
이들은 지키산(直參(じきさん, 직참)(쇼군의 직속 신하)으로, 대장은 하타모토[1], 대원은 고케닌[2]에서 임명되었다. 소속 멤버들 출신이 신센구미와는 달리 무사 집안의 자제들이었다는 것이 차이점. 이 점 때문에 두 집단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3]
미마와리구미는 니조 성 등의 중심지를 맡아본 데 반해 신센구미는 기온(祗園) 등 서민들이 많은 주변 거리들을 순찰하였다.
1868년 1월 28일 잠시 신유격대(新遊撃隊)로 개칭하였으나, 이름을 미마와리구미로 되돌리고 보신전쟁에 막부측으로 참전하였다. 대장인 사사키 마타사부로는 전쟁중 중상을 입어 군함인 후지산마루에서 치료중 사망해, 시신은 수장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이루어진 취조에서 이들이 사카모토 료마가 암살당한 오미야 사건에 관여했다는 자백이 나왔다.

2. 미디어에서


은혼의 경찰조직 견회조의 모티브가 된 집단이다.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에서는 신센구미와 통합되어 일본 국가헌병대로 변하고 프랑스와 영국에서 군사고문단 지원을 받아 일본 육군 그 자체가 되는데, 그 원인은 무진전쟁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폐번치현도 제대로 안 하고[4] 현상유지에만 주력한 데다 대한제국과 대영제국의 압박으로 억지로 군국주의 국가가 되면서 해군'만' 국가가 버틸 수가 없을 정도로 증강해서 대한제국 2중대 노릇만 했기 때문에 해군육전대 빼면 막부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지상전력이라고...
물론 대한제국에서 총기(프랑스에서 사들인 샤스포 소총에 엔필드 소총의 기술을 조금 첨가한 짝퉁, 복제에 성공한 장인의 이름을 따 최지용 보총이라고 한다)를 사들여 나름 중무장해 지번사들의 사병 조지는 능력은 충분하고 무진전쟁의 졸전에 관련해 요시노부가 군권은 다 회수한 상태라지만 지번사들의 사병 전체랑 붙여 보면 쪽수가 딸려서 어렵다고, 덕분에 일본의 대외전쟁 원칙은 해상장악 뒤 해군육전대가 교두보 마련한 뒤 한국군 지원 및 지휘를 받는다...가 기본이 되었다고 한다.

[1] 주군을 직접 면회할 수 있는 무사[2] 주군을 직접 면회할 수 없는 무사.[3] 이 점에서 대하드라마를 통해 묘사되는 그 갈등이 제각각인데 2002년에 나온 신센구미!에선 아무래도 주인공이 신선조이다보니 동등한 선에서 대화를 하는 장면도 나오고 미마와리구미의 대장인 사사키가 어느정도 신선조를 깔보긴 하나 노골적으로 하대하는 장면은 안나온다. 즉 존개는 하는 정도의 존중은 하나 약간 깔보긴 한다. 후에 나오는 에피소드에선 은근히 이러한 갈등을 봉합하는 뉘앙스의 결말이 나오나 역사에서도 실제로 그랬을진... 다른 대하드라마에선 신선조의 개성에 비해 좀 옅은 감이 있다보니 아예 미마와리구미가 비중있게 나오지 않는 것도 있고 설령 나온다해도 잘난체 하는 로얄패밀리격으로 나온다.[4] 딱 하나 한 게 다이묘를 지번사라고 이름만 바꾼 것, 굳이 더 하자면 다이묘들의 회의기구로 의회를 상설화한 것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