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모토

 

1. 개요
2. 각종 매체에서의 하타모토


1. 개요


旗本
본래는 다이묘의 진영인 본진의 깃발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센고쿠 시대는 어원 그대로 주군의 본진을 수비하는 친위대의 대장 역할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치하에서 임진왜란사나다 노부시게가 하타모토의 벼슬로 히젠 나고야 성의 산노마루를 지키는 친위대 역할을 했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 쇼군을 만날 수 있으며, 영지(지행지) 규모가 1만 석 아래[1][2]사무라이를 의미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고쿠다카 200석 정도에서 하타모토와 더 아래 신분인 고케닌을 나누지만 공식적으로는 고쿠다카의 하한선이 아니라 쇼군 알현 가능 여부로 신분을 나눴다. 실제로 석고가 수십석에 불과한 하타모토들 또한 존재한 바 있다. 엄연히 쇼군이 임명한 (명목상에 가까운 경우가 많지만)독립 영주인 하타모토와 달리 코케닌은 개별 영주라기 보다는 대대로 쇼군가에서 자잘한 일을 하는 개념에 가깝다.
에도 시대 쇼군의 영지는 700만석인데 이중에서 400만석을 하타모토 영지로 하였는데 하타모토와 코케닌을 합쳐 1만7천명이었으며, 그들이 거느린 부하들이 5만이다. 이를 합쳐서 이른바 '쇼군 직속무사 8만기'라고 한다. 그러나 다이묘의 경우 지행지에서 세금 걷으며 왕처럼 살지만, 대부분의 하타모토들은 고쿠다카에 해당하는 현물을 받을 뿐이지 실제로 지행지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거주지도 에도에서 사는 것이 원칙이지만, 참근교대 하는 유력 가문은 지행지를 받아 그곳에서 산다.
에도 말기 하타모토 중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가쓰 가이슈도 관직 녹봉을 뺀 지행지 규모는 41석에 불과했지만 쇼군 알현이 가능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하타모토이다. 하타모토가 되면 쇼군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도노사마(殿樣)'라는 칭호로 불렸다. 칭호에서도 볼 수 있듯이 1000석 이상인 하타모토는 다이묘와 동급으로 보았다. 대신 에도 시대에 약 5천 석을 받는 하타모토 집안에서 유력 하타모토가(33가)는 다이묘처럼 참근교대를 했다.
하타모토로 5000석 이상자는 참근교대자를 포함하여 약 100 명, 3000석 이상은 약 300명이고, 하타모토의 90%는 500석 이하였다.
개별 다이묘의 가신들 중에서도 간혹 석고가 1만 석이 넘는 사무라이들이 존재하긴 했으나 하타모토가 아무리 이들보다 석고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하더라도 쇼군으로부터 직접 영지의 통치권을 받은 직속 신하였기 때문에 개별 다이묘의 가신들보다 높은 신분이었다.
가이에키(개역改易: 영지 및 재산몰수)를 당한 다이묘들이 하타모토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아들.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유력 다이묘였지만, 그 아들은 영지 몰수를 당한 후 3천 석 하타모토가 되었는데, 마사노리의 증손자인 타다마사(忠正)가 쇼군의 친위대가 되어 가문을 재흥하였다. 하타모토로서 5천 석을 하사받았는데, 어마어마한 자리이다. 현재 가치로 연봉 5억 엔에 해당된다.
평민이 갑자기 직참 하타모토 벼슬을 받은 경우도 있는데, 에도 막부 말기 존 만지로는 일개 농민 겸 어부였던 촌뜨기가 벼락 출세한 경우다. 하지만 이유없이 하타모토가 된 것은 아니고, 능통한 영어 구사 능력과 서양 문물에 대한 풍부한 지식 등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같은 농민 출신이었던 신선조의 국장 콘도 이사미도 그 활약을 인정받아 쇼군의 직참(직속 신하) 하타모토의 벼슬을 받았다. 에도 막부 초기에 영국인인 윌리엄 애덤스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미우라 안진이라는 이름과 영지를 하사받고 하타모토가 되었다.
직참은 크게 하타모토와 고케닌으로 나누며, 하타모토의 아래 계급인 고케닌(御家人)은 실무직으로 쇼군을 알현할 수는 없었다. 일본 경찰의 전신(前身)으로 에도의 치안을 담당했던 마와리가타 도우신(廻り方同心)은 고케닌 신분이었다.
다이묘보단 아래이지만[3] 평민보다는 높은 신분이라는 점, 평민도 간혹 하타모토가 될 수 있었단 점에서 서유럽의 기사와 꽤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 출범에 공헌을 한 일부 하타모토들은 화족이 되기도 했다.[4] 나머지는 사족이 되어 국공채 방식의 연금만 받고 끝.

2. 각종 매체에서의 하타모토


  • 삼국지 시리즈 - 한수기본팔기(旗本八騎). 주군의 옆을 지키는 무사 8명이라는 뜻으로 중국식 표현이 아닌 일본식 표현이다. 원본 연의에서는 여포 휘하에 있던 여덟 장수(장료, 장패, 학맹, 조성, 성렴, 위속, 송헌, 후성)와 한수 휘하의 이들(양흥, 후선, 정은, 이감, 장횡, 성의, 마완, 양추)을 모두 팔건장(八健將)이라고 불렀는데, 한수의 여덟 부장들은 따로 '수하팔부(手下八部)'라고도 불렀다.
  • 료마전카츠 카이슈가 말하길, 하타모토는 다이묘와 동급으로 쇼군을 알현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 위저드리 시리즈에서는 전사 계열의 최상위 몬스터로 등장. 전사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크리티컬 히트를 터트릴 수 있다.[5]
  •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주인공 하오마루무사시국(에도와 그 근교)의 하타모토 출신이다.
  • 명탐정 코난의 단행본 3권(애니메이션 22~23화)에 나오는 사건인 호화 여객선 연속 살인사건의 용의자들이 집사인 스즈키 켄지를 제외한 나머지가 다 가족인데, 하타모토 성을 가진 부잣집 가문이다.[6]

[1] 물론 휘하 무사들 봉급도 줘야 하고 농민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기타 필요경비도 들어가고 쇼군에게 세금도 내야 하니 실제 손에 쥐는 돈이 많지는 않았다.[2] 단, 키츠레가와 번(喜連川)은 5천석에 불과하였지만, 무로마치 쇼군에 대한 예우로 다이묘로 인정해주었다.[3] 엄밀히는 상하관계의 아래가 아니라 의전 서열이 밀리는 동등한 관계라고 봐야한다. 다이묘들 끼리 아무리 석고 차이가 크더라도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였던 것과 비슷하다. 아무리 석고가 다이묘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하타모토라고 하더라도 '도노사마'라 불리고 극존칭으로 존대받았고, 다이묘들과도 최소한 서로 도노라고 존칭하며 존대하는 관계였다. 실제로 메이지 유신기에 실측 석고 1만 석 이상인(물론 실제 1만 석에 다소 못 미치는 하타모토들 여럿이 작위를 받기도 했다) 하타모토들은 모두 중소 다이묘들과 함께 남작 작위를 받았다.[4] 공헌으로 화족이 된 경우 이외에 메이지 유신 당시 기준 실측석고 1만석 이상의 하타모토들은 모두 남작 작위를 받고 화족이 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다소 모자란 경우에도 어찌저찌 충족한 것으로 인정되기도 하였다.[5] 타 RPG 게임의 그 크리티컬이 아니다. 위저드리의 크리티컬은 설정상 적의 목을 참수해 즉사시키는 능력이다.[6] 이름값을 하는 듯, 조상 대대로 살아온 섬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