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라티온
1. 중세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의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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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바그라티온 왕가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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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바그라티온 왕가 상징
아르메니아어 : Բագրատունի 바그라투니, 바그라티드
조지아어 : ბაგრატიონი 바그라티오니
약 800년대부터 1045년경까지(아르메니아), 780년경부터 19세기 초까지(조지아) 군림한 조지아의 왕조이다. 바그라티온은 본래 '바그라투니'라고 불리던 아르메니아의 유력 귀족 가문으로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두 나라의 왕가였다.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투니 왕조는 11세기에 단절됐다. 한 때 같은 왕가를 공유했었던 역사 때문인지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사이는 이웃 나라 관계치곤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한다. 1008년 통일 조지아 왕국이 수립되었고, 다비트 4세(재위 1089년 ~ 1125년)와 타마르 여왕(재위 1184년 ~ 1213년) 때는 조지아 역사의 "황금 시대"로 일컬어진다. 초기 수도는 쿠타이시였으나 1122년 트빌리시로 이전한다. 트빌리시는 현재 조지아의 수도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호라즘 제국과 몽골 제국의 습격으로 황금 시대는 막을 내렸다.
1490년에 통일 조지아 왕국은 카르틀리(ქართლი), 카케티(კახეთი), 이메레티(იმერეთი)로 3분할된다. 그러면서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역대 왕조들의 봉신으로 연명해 나간다. 1762년 카케티의 에레클레(헤라클리우스) 2세가 카르틀리의 왕위도 확보하여 카르틀리카케티 왕국(Kartli-Kakheti, 수도 트빌리시)이 개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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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틀리카케티 왕국의 국기.[1]
이후 북쪽에서 러시아 제국의 세력이 접근하면서 정교회의 보호자임을 내세운다. 1783년 에레클레 2세는 예카테리나 2세 치하의 러시아와 게오르기옙스크 조약을 맺으면서 카르틀리카케티 왕국은 러시아의 보호국이 된다. 이후 러시아 제국은 1801년에 카르틀리카케티 왕국을 완전 합병한다. 서쪽의 이메레티 왕국(수도 : 쿠타이시)도 1810년 같은 운명을 걷게 되어, 바그라티온 왕조의 군림이 끝났다.
이후 바그라티온 왕가는 러시아의 고위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에 종군했던 러시아의 장군 표트르 바그라티온 또한 이 가문의 왕자였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1921년에 붉은 군대가 트빌리시를 점령하면서 가문 구성원들은 재산과 작위 몰수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서유럽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들 중 일부는 1991년 이후 귀국했다.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조지아의 역대 공화국 행정부들이 계속 삽질을 하자 분노가 터진 조지아 국민들 중에서는 바그라티온 왕가를 복위시킨 후 입헌군주제를 실시하자는 여론이 상당하다. 1998년만 해도 왕정복고에 대해서는 16%만이 지지하여 냉담한 편이었으나, 이후 여론 조사에서 2007년 45%, 2013년 79%의 지지를 받았다.[2]
그 동안 바그라티온 왕조는 왕위요구자가 두 명이었으나, 왕위요구자 누그자르 바그라티온의 딸이자 차기 계승자인 안나와 또다른 왕위요구자 다비드 바그라티온이 결혼해서 두 계통의 통합된 후계자인 기오르기(2011~)를 낳았다. 현재는 이혼했다. 영문위키에 따르면 일리아 2세 총대주교, 살로메 주라비쉬빌리 조지아 대통령도 근왕주의자로 분류하였다.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티온 가문은 1045년에 바그라티온 아르메니아 왕국이 셀주크의 공격을 받아 멸망당하면서 단절되었다.
2. 제정 러시아의 장군 표트르 바그라티온
위의 바그라티온 가문 출신의 인물이다.
3. 바그라티온 작전
해당 항목 참조
[1] 우연의 일치로 영국 잉글랜드의 콘월 주기와 닮았다.[2] 2013년 11월 조사 : 조지아가 국왕을 가져야 하는가? 78.9% 찬성. 조지아에 군주제가 복고되어야 하는가? 56.8% 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