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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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apoleonic Wars(여러 차례의 전쟁, 전역이 나폴레옹이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상호 연결되어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쓰인다.), Napoleonic Era(아예 하나의 시대로 취급되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과 프랑스 혁명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정복전쟁. 독일 일대(특히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침략자 나폴레옹에 대항해 싸웠다는 이유로 이를 '해방 전쟁'(Befreiungskriege)(정확히는 제6차 대프랑스 동맹과 프랑스가 벌인 독일 전역을 일컫는 명칭이다.)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전쟁 이후 100여 년 동안 유럽은 국지적인 전쟁은 있어도 전 유럽이 휘말리는 대규모 전쟁 상황은 없는 일종의 평화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2. 상세
2.1. 시작과 끝
프랑스 혁명전쟁과 워낙 밀접하게 맞닿아있는지라 '정확히 어느 시점을 나폴레옹 전쟁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1796년의 이탈리아 원정을 그 시발점으로 본다.
다만 제1, 2차 이탈리아 전쟁이나 이집트 원정 모두 프랑스 제1공화국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프랑스 혁명전쟁의 일부이기 때문에, 혁명전쟁과는 관련없는 순수히 나폴레옹 본인의 야심으로 시작한 전쟁만으로 따지면 영국이 아미앵 조약을 파기하고,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이 시작된 1803년이 시발점이다. 끝나는 시점은 이론의 여지없이 워털루 전투가 끝나고 프랑스가 항복했던 시점인 1815년.
2.2. 이 시대의 의미
나폴레옹의 제국은 단순히 시대의 패자라는 것을 넘어 다른 쪽으로도 영향을 잔뜩 끼치기도 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영국의 산업혁명이 유럽의 경제적 근대화를 촉발했다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근대화의 흐름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근대 유럽이 전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고 다른 나라들도 근대 유럽을 모델로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같이 나폴레옹과 전혀 엮이지 않았던 비서구 국가들 입장에서도 엄청 중요한 사건이었다.
2.2.1. 군사적의 영향
이 시대를 기점으로 군사학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2.2.1.1. 기술적인 측면
군사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 전쟁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영국은 1807년 퍼커션 캡이 발명되었음에도, 특허료 주기 싫다는 이유로 계속 플린트락 소총을 고집했고,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기구를 통한 정찰을 도외시했고, 증기기관을 선박에 적용하는 것도 회의적으로 보았다. 참고로 이 시기에 최초로 증기기관식 자동차가 발명되었다. '''문제는 핸들이 없어서,''' 직진만 하다 남의 집 담벼락만 허물었다고 한다.
사실 어쩔 수가 없는 게 전쟁터에서는 새로운 무기보다 신뢰할만한 무기를 더 선호한다. 퍼커션 캡 소총이 후장총만큼 획기적이지 않은 데다, 이 시기는 물론, 19세기 중반까지 기술 부족으로 증기기관은 안전성에 신뢰를 받지 못했다. 여기에 기구 역시 전장에서 사용하기 번거롭고 추락할 위험도 있기 때문에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2.2.2. 정치적 부분
정치 부문에서도 군사 부문의 그것 못잖은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이후의 국제정세 또한 크게 달라진다.
2.2.2.1. 헌법의 발달
현대 대륙법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나폴레옹 법전이 제정되었다.
2.2.2.2. 자유주의의 전파
또한 나폴레옹의 대규모 정복 활동을 통해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유럽 전역에 급속히 전파된다.
2.3. 이후의 유럽
이 시대 이후로 유럽은 산업화 및 제국주의의 도래로 벨 에포크라는 일종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정확히 99년 뒤, 인류는 유럽 대륙 전체를 휩쓸어버리는 또 다른 전쟁을 마주하게 되었다.
3. 전개 과정
3.1. 프랑스 혁명전쟁 중
3.1.1. 제1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의 일부
- 이탈리아 원정 (1796 ~ 1797)
- 이집트 원정 (1798 ~ 1801) - 프랑스 혁명전쟁의 일부
- 피라미드 전투
- 아부키르 해전(나일 강 전투)
-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1799. 11. 9)
3.1.2. 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의 일부
- 제2차 이탈리아 전쟁 (1799 ~ 1800)
3.2.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3.2.1.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3.2.2. 제4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 독일·폴란드 원정 (1806 ~ 1807)
-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 아일라우 전투
- 프리틀란트 전투
- 틸지트 조약
- 대륙 봉쇄령 (1806. 11. 21)
- 이베리아 반도 전쟁 (1808 ~ 1814)
3.2.3.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 제2차 오스트리아 전쟁 (1809)
- 러시아 원정 (1812)
3.2.4.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3.2.5. 제7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4. 인물
- 프랑스 제1제국
-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나폴레옹의 26인 원수 (괄호 안은 제국원수 임명 연도다.)
- 장 란† (1804)
- 조아킴 뮈라 (1804)[12]
- 루이알렉상드르 베르티에 (1804)
- 앙드레 마세나 (1804)
- 장바티스트 베시에르† (1804)
- 에두아르 모르티에 (1804)
- 루이 니콜라 다부 (1804)
- 니콜라 장드듀 술트 (1804)
- 미셸 네 (1804)[13]
- 장바티스트 주르당 (1804)
- 장바티스트 베르나도트 (1804)[14]
- 샤를 피에르 프랑수아 오주로 (1804)
- 프랑수아 조제프 르페브르 (1804)
- 프랑수아크리스토프 켈레르만 (1804)
- 기욤 마리 안 브륀 (1804)
- 카트린도미니크 드페리뇽 (1804)
- 장 마티유 필리베르 세뤼리에 (1804)
- 아드리안 쟈노 드 몽세 (1804)
- 클로드 빅토르 (1807)
- 오귀스트 마르몽 (1809)[15]
- 자크 마크도날 (1809)
- 니콜라 우디노 (1809)
- 루이 가브리엘 쉬셰 (1811)
- 로랑 드구비옹 생시르 (1812)
-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1813)[16]
- 에마뉘엘 그루시 (1815)
- 루이 샤를 앙투안 드제†
- 앙도슈 쥐노
- 장 막시밀리앙 라마르크
- 조제프 보나파르트[17]
- 제롬 보나파르트
- 외젠 드보아르네[18]
- 앙투안샤를루이 드라살†(Antoine-Charles-Louis, Comte de Lasalle)[19]
- 샤를 드 라 베두아예르
- 피에르 캉브론
- 프랑수아 브뤼예†
- 제라드 뒤로크
- 앙리 그라티엥 베르트랑
- 조제프 푸셰
- 피에르 빌뇌브[20]
- 샤를모리스 드탈레랑페리고르
- 조제핀 드보아르네 ◆
- 마리 루이즈[21] ◆
- 나폴레옹 2세[22] ◆
- 사드 후작 ◆
- 피에르시몽 라플라스[23] ◆
- 조제프 푸리에 ◆
-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 ◆
- 앙토넹 카렘 ◆
- 왕당파
- 신성 로마 제국(오스트리아 제국)
- 프란츠 2세
- 테셴 공작 카를 루트비히
- 슈바르첸베르크 공작 카를 필리프
- 요제프 라데츠키
- 요제프 알빈치
-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5. 관련 문서
- 국가/동맹
- 역사적 사건
- 병종/군대
- 전술개념/군사(軍事)
- 학술
- 지명
- 사상/철학
- 기타
6. 이 시대를 다룬 작품
- 도서
- 회화
- 음악
- 교향곡 제3번(베토벤) 일명 영웅 교향곡[37]
- 라데츠키 행진곡
- 1812년 서곡
- 만화/웹툰
- 영화/드라마
- 게임
- 미니어쳐 게임
7. 외부 링크
[1] ~1806[2] 1805, 1809, 1813~[3] 1804~1807, 1812~[4] 1806~1807, 1812~[5] 1808~[6] ~1809, 1812[7] ~1804[8] 1804~[9]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는 맞서 싸웠으나 이후 나폴레옹과 손잡고 영국,러시아와 맞서 싸웠다.[10] 당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었다.[11] 직접적 관여자의 예시: 참전국의 국가수반, 군인, 정치인, 외교관 등.[12] 웬수 4호. 1800년 나폴리의 국왕 조아키노 1세로 즉위.[13] 웬수 3호. [14] 나폴레옹 입장에서 단연 웬수 1호. 그리고 명실상부한 전쟁의 최대 수혜자. [15] 웬수 2호. 이 양반의 전적(...) 덕분에 전후 그 누구에게도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16] 바르샤바 공국의 전쟁장관, 주 방위 사령관을 겸직하였다.[17] 1806년, 나폴리의 국왕으로 즉위. 1808년, 스페인의 국왕 호세 1세로 즉위.[18] 1806년, 이탈리아의 부왕(Viceré)으로 즉위.[19] 당대의 이름난 맹장 중 한 명. 경기병대를 이끌었으며,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20] 나일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등지에서 넬슨에 맞선 프랑스의 제독.[21] 본래 오스트리아 인물이나, 나폴레옹의 두 번째 황후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프랑스측으로 기재함.[22] 엄밀히 따지자면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부각되는 인물이나, 나폴레옹의 유일한 적자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곳에 기재함.[23] 나폴레옹 집권기에 내무장관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나, 수학자로서의 면모에 주목하여 비관여자로 분류함.[24] 나폴레옹의 몰락에 큰 공을 세웠던 프로이센의 유명한 장군 게브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의 성을 자신의 첫 증기기관차의 이름으로 땄다.[25] 아일라우 전투에서 활약한 장군. 나폴레옹을 상대로 백중세의 전투를 진행하였으며, 이 전투를 기점으로 연합군에게 나폴레옹도 해볼 만하다는 희망이 생기게 된다.[26] 조제프 보나파르트와 동일인물.[27]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술트 원수를 상대로 분전했던 장군.[28]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영국군과 함께 분전했던 장군.[29] 나폴레옹의 군대에 몸을 담기도 했었으나, 그보다는 페루의 총독, 그리고 아르헨티나 최초의 장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30] 이탈리아 왕은 나폴레옹이 겸하고 있었다.[31] 이집트 원정 당시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32] 이집트 원정 당시 아크레 공성전에서 니자므 제디드 군대를 이끌고 나폴레옹을 격퇴했다.[33] 이집트 원정 당시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34] 이집트 원정 당시 피라미드 전투에서 맘루크를 이끌고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35] 이집트 원정 당시 피라미드 전투에서 맘루크를 이끌고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36] 나폴레옹 전쟁과 접점이 매우 많으므로 추가.[37] 본래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던 작품이었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조.[38] 나폴레옹이 주요 캐릭터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자세한 건 여기서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