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볼리
1. 소개
'''AJ 오세르를 한때 중상위권으로 올려준 기둥이자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게 빅 이어를 안겨준 공신'''
2. 커리어
바질 볼리는 1967년,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에서 태어났다. 어릴적에 프랑스로 이민을 가면서 파리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당시 1부리그로 승격한지 얼마안된 팀이자 기 루가 지휘하는 AJ 오세르에서 15세의 나이로 프로입단을 하는 파격적인 데뷔를 치룬다. 게다가 19살에는 프랑스 대표팀에도 승선하였는데, 이는 오세르 역사상 최초로 프랑스 국가대표를 배출한 사건이며 바질 볼리는 오세르 소속으로 프랑스 국대에서 활약을 하였다. 결국 이를 바탕으로 당대 최강 팀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한다. 볼리는 마르세유에서 첫시즌을 완벽히 보내게 되는데, 리그에서 전경기 선발출전을 하였고, 유로피언컵에선 팀이 결승진출을 하는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결승전에서도 볼리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공격진들을 완벽히 봉쇄하였지만, 팀은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여 준우승의 슬픔을 삼키고 만다. 볼리는 패배가 확정된 후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1992-93시즌에 FC 낭트에서 이적해온 마르셀 드사이가 바질 볼리의 파트너로 들어왔고, 둘의 콤비는 단단한 벽이 되어 마르세유를 챔스 결승까지 올려놓는다. 거기다가 결승전에서 아베디 펠레의 코너킥을 헤더로 넣어 '''결승골'''을 넣고 팀이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마르세유에게 빅 이어의 꿈을 안겨준 일등공신이 된 것.
그렇지만, 이러한 영광도 잠시 마르세유는 승부조작파문으로 리그에서 강등되었고, 볼리는 마르세유를 떠나 AS 모나코와 레인저스 FC로 한시즌씩 뛰기도 하였다. 이때쯔음엔 기량이 크게 하락하여 1997년 일본의 우라와 레즈에서 뛴것을 마지막으로 30세에 선수은퇴를 한다.
3. 국가대표
오세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이른나이에 국대에 승선하였을정도로 기대가 컸지만 정작 1986 월드컵 엔트리에선 탈락을 하였고, 1990 월드컵에선 프랑스가 본선에 오르질 못하였다. 볼리가 참가한 대회라곤 유로 1992뿐이며 이마저도 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였고 볼리는 1993년 국대에서 은퇴한다.
4. 기타
볼리가 마르세유로 이적해온 첫 시즌 활약(1990-91시즌)이 매우 역대급인데, 일단 수비수가 리그에서 38경기 '''8골'''을 넣은 활약을 하였다는것. 게다가 그 골의 순도도 매우 높은게 8골중 2골은 팀이 지고있다가 '''후반''' 80분대에 넣은 동점골, 1골은 동점상황에서 '''후반''' 70대에 넣은 역전골, 1골은 0-0의 팽팽상황에서 '''후반''' 78분에 넣은 선제결승골, 2골은 각각 팀이 대승하던 상황에서 '''후반''' 종료직전 마지막으로 넣은 쐐기골, 그리고 팀에게 승점을 안겨준 결승골이 2골이며 이것들도 '''후반'''에 넣은것들이다. 바로 '''후반전'''에만 중요한 골을 넣었을정도로 매우 집중력이 높았다. 참고로 결승골 1골이 파리 생제르맹 FC와의 르 클라시크에서 넣은것인다. 그 외에도 유로피언 컵 16강에서 레흐 포츠난을 상대로 후반 90분 마지막 쐐기골을 넣고 나흘후에 리그에서 또 후반 90분 마지막 쐐기골을 넣었다.
성깔도 꽤나 있었던 것으로 유명한데 이미 월드클래스 성질머리로 명성을 얻었던 '잉글랜드산 싸이코' 스튜어트 피어스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이마로 슬쩍 때렸던 일이 유명하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