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라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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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최고의 인기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 생제르맹 FC'''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더비 매치를 뜻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 매치를 뽑으면 단연 1순위가 르 클라시크이고, 이름도 그에 걸맞게 '''엘 클라시코'''에서 따왔다.
르 클라시크라는 이름이 엘 클라시코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고 'The Classic'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첫 맞대결이 1971년에 이뤄졌을 정도로 역사는 짧은 편이다. 두 팀이 경쟁 역사가 짧은 데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팀들이 아님에도 프랑스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 비유되는 이유는, 리그 앙에 타 빅 리그 명문 팀에 비견될 만한 팀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리그앙은 피파의 초대 회장 쥘 리메의 조국답게 철저한 준비 아래 시작된 프로 리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는데, 바로 '''수도가 연고지인 구단이 없었다는 것'''. 리그가 출범한 지 40여 년 동안 리그앙에 파리를 연고지로 한 팀은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는 예로부터 독일과 이탈리아처럼 지역감정이 극대화[1] 되어 있지도 않았고 스페인의 카탈루냐, 영국의 스코틀랜드처럼 독립을 원하는 지역도 없이 이미 중앙 집권화된 체제로 인해 파리를 중심으로만 발달되었다. 덕분에 관중 동원력이 괜찮은 도시라고는 남부의 마르세유, 리옹뿐이며 이로 인해 리그가 발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클럽들간의 격차도 거의 평준화되어 누가 크게 독주하여 우승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1950년대엔 스타드 드 랭스, OGC 니스가 강세를 보였지만 재정이 악화되자 급격히 무너졌고, 1960~70년대엔 AS 생테티엔, FC 낭트 같은 팀들도 마찬가지로 재정이 안좋아지면서 순식간에 중하위권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1970년에 파리 생제르맹(이하 PSG)이 창단되고 1년 만에 승격하여 1부 리그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마침 마르세유도 23년 만에 리그 우승을 성공하는 전성기를 시작했던 터라 이 둘의 경기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리그 수뇌부와 두 구단도 그점을 잘 알고있었기에 그것을 이용하여 더비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띄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억지로 만들어 준 더비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북쪽을 대표하는 파리와 남쪽을 대표하는 마르세유의 자존심 대결이며, 이로 인한 양 팀 팬덤 간의 대결은 장난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클럽'''이며, PSG는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UEFA 컵 위너스 컵을 우승해본 클럽'''이다. 즉 UEFA 주관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이라도 우승해본 클럽이 이 두 클럽밖에 없다는 것. 그동안 많은 프랑스의 구단들이 유럽 대항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마르세유와 PSG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우승까진 가지 못했으며, 유럽 대항전이 시작된 지 60년이라는 기간 동안 챔피언스 리그, 컵 위너스 컵, UEFA 컵, 인터-시티 페어스 컵[2] 에서 우승컵을 들었던 클럽이 마르세유와 PSG밖에 없기 때문이다.[3]
리그 앙의 관심 또한 국제적으로도 적은 편이라 이러한 상황이 르 클라시크에게 악영향을 미쳐 국내에서는 엘 클라시코나 밀란 더비와 같은 세계구급 더비는커녕, EPL의 수많은 지역 더비들보다도 인지도가 높다고 할 수 없는 편이다. 그렇긴 하나 파리는 오일 머니의 힘으로 유럽의 떠오르는 강호로 부상 중이고, 마르세유 또한 압도적인 관중 동원력과 PSG의 대항마라는 점이 이 더비 매치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확실히 잠재성만큼은 타 더비에 비해 만만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팀의 더비 매치가 유명해지려면 국제 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카타르 국왕이 구단주로 부임한 이후, PSG가 리그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라이벌리를 형성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4] 당연히 르 클라시크에서도 PSG는 연승 중. 결국 PSG는 승점 96점으로 압도적인 리그 우승(2위 리옹과 31점 승점 차)을 거두고 리그컵,FA컵까지 우승했지만 마르세유는 리그 13위로 강등을 면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참으로 우스운게 마르세유는 아랍계 및 이민자들이 많아서 이 구단도 서포터들이 이민자들이 주축이다보니 백인계, 보수적인 서포터들이 PSG를 응원하며 둘이 르 클라시크에서 야유하곤 했는데 PSG가 공교롭게도 아랍 오일&가스 때부자인 카타르 국왕을 구단주로 맞이하며 리그를 집어삼키는 터라 파리 서포터들도 좋아하면서도 씁쓸해하고 마르세유 서포터들은 "아랍놈 구단이라고 욕하더니만 정작 지들이 아랍 구단이 되셨네?"[5] 라고 비웃는다.
1. 개요
프랑스 최고의 인기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 생제르맹 FC'''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더비 매치를 뜻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 매치를 뽑으면 단연 1순위가 르 클라시크이고, 이름도 그에 걸맞게 '''엘 클라시코'''에서 따왔다.
2. 상세
르 클라시크라는 이름이 엘 클라시코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고 'The Classic'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첫 맞대결이 1971년에 이뤄졌을 정도로 역사는 짧은 편이다. 두 팀이 경쟁 역사가 짧은 데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팀들이 아님에도 프랑스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 비유되는 이유는, 리그 앙에 타 빅 리그 명문 팀에 비견될 만한 팀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리그앙은 피파의 초대 회장 쥘 리메의 조국답게 철저한 준비 아래 시작된 프로 리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는데, 바로 '''수도가 연고지인 구단이 없었다는 것'''. 리그가 출범한 지 40여 년 동안 리그앙에 파리를 연고지로 한 팀은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는 예로부터 독일과 이탈리아처럼 지역감정이 극대화[1] 되어 있지도 않았고 스페인의 카탈루냐, 영국의 스코틀랜드처럼 독립을 원하는 지역도 없이 이미 중앙 집권화된 체제로 인해 파리를 중심으로만 발달되었다. 덕분에 관중 동원력이 괜찮은 도시라고는 남부의 마르세유, 리옹뿐이며 이로 인해 리그가 발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클럽들간의 격차도 거의 평준화되어 누가 크게 독주하여 우승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1950년대엔 스타드 드 랭스, OGC 니스가 강세를 보였지만 재정이 악화되자 급격히 무너졌고, 1960~70년대엔 AS 생테티엔, FC 낭트 같은 팀들도 마찬가지로 재정이 안좋아지면서 순식간에 중하위권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1970년에 파리 생제르맹(이하 PSG)이 창단되고 1년 만에 승격하여 1부 리그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마침 마르세유도 23년 만에 리그 우승을 성공하는 전성기를 시작했던 터라 이 둘의 경기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리그 수뇌부와 두 구단도 그점을 잘 알고있었기에 그것을 이용하여 더비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띄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억지로 만들어 준 더비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북쪽을 대표하는 파리와 남쪽을 대표하는 마르세유의 자존심 대결이며, 이로 인한 양 팀 팬덤 간의 대결은 장난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클럽'''이며, PSG는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UEFA 컵 위너스 컵을 우승해본 클럽'''이다. 즉 UEFA 주관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이라도 우승해본 클럽이 이 두 클럽밖에 없다는 것. 그동안 많은 프랑스의 구단들이 유럽 대항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마르세유와 PSG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우승까진 가지 못했으며, 유럽 대항전이 시작된 지 60년이라는 기간 동안 챔피언스 리그, 컵 위너스 컵, UEFA 컵, 인터-시티 페어스 컵[2] 에서 우승컵을 들었던 클럽이 마르세유와 PSG밖에 없기 때문이다.[3]
리그 앙의 관심 또한 국제적으로도 적은 편이라 이러한 상황이 르 클라시크에게 악영향을 미쳐 국내에서는 엘 클라시코나 밀란 더비와 같은 세계구급 더비는커녕, EPL의 수많은 지역 더비들보다도 인지도가 높다고 할 수 없는 편이다. 그렇긴 하나 파리는 오일 머니의 힘으로 유럽의 떠오르는 강호로 부상 중이고, 마르세유 또한 압도적인 관중 동원력과 PSG의 대항마라는 점이 이 더비 매치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확실히 잠재성만큼은 타 더비에 비해 만만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팀의 더비 매치가 유명해지려면 국제 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카타르 국왕이 구단주로 부임한 이후, PSG가 리그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라이벌리를 형성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4] 당연히 르 클라시크에서도 PSG는 연승 중. 결국 PSG는 승점 96점으로 압도적인 리그 우승(2위 리옹과 31점 승점 차)을 거두고 리그컵,FA컵까지 우승했지만 마르세유는 리그 13위로 강등을 면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참으로 우스운게 마르세유는 아랍계 및 이민자들이 많아서 이 구단도 서포터들이 이민자들이 주축이다보니 백인계, 보수적인 서포터들이 PSG를 응원하며 둘이 르 클라시크에서 야유하곤 했는데 PSG가 공교롭게도 아랍 오일&가스 때부자인 카타르 국왕을 구단주로 맞이하며 리그를 집어삼키는 터라 파리 서포터들도 좋아하면서도 씁쓸해하고 마르세유 서포터들은 "아랍놈 구단이라고 욕하더니만 정작 지들이 아랍 구단이 되셨네?"[5] 라고 비웃는다.
3. 기록
- 2021년 2월 7일 기준
4. 양팀에서 모두 뛰었던 적이 있던 선수
- 클로드 마켈렐레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1997~1998) - 파리 생제르맹 FC(2008~2011)
- 라사나 디아라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2015~2017) - 파리 생제르맹 FC(2018~2019)
- 아템 벤 아르파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2008~2010) - 파리 생제르맹 FC(2016~2018)
[1] 알다시피 독일은 근대에서야 통일 왕국을 이뤘으며 이탈리아 또한 여러개의 나라로 분할돼 있다가 비교적 최근에서야 통일이 되었다. 덕분에 지역감정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오랫동안 통일 왕국이 유지되어 왔기에 지역감정이 생기기 힘들었던 것.[2] UEFA 컵의 전신이며 UEFA 주관 대회는 아니었지만 UEFA 컵이 후계 대회와 같은지라 여기서 우승한 팀은 사실상 유로파 우승 취급을 받는다.[3] 공교롭게도 이 두 클럽이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했을 때가 90년대다. 다른 말로는 이 때를 제외하면 프랑스 팀은 유럽 대항전에서 한 번도 우승을 못했다는 뜻이 된다.[4] 2012년 첫 르클부터 2018년 리그앙 11라운드까지 PSG가 18경기 15승 3무로 마르세유 담당 무패행진을 하고있다.[5] 골때리게도 비슷한 역사를 가진게 바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첼시 FC. 런던을 연고지로 하던 첼시가 토트넘이 연고지인 토트넘 핫스퍼를 유태인 구단이라고 야유하고 2차대전 전만 해도 하켄크로이츠를 휘두르며 야유하던 역사가 있는데 2000년대 와서 첼시 구단주가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유태인계 러시아인이 되면서 토트넘에서도 우릴 지드 구단이라고 비웃던 첼시 놈들이야말로 지드 구단이 되셨네? 라고 비웃고 있다... 둘 다 런던, 파리라는 수도를 연고지로 두고 있으며 돈많은 자원 관련 구단주를 두면서 팀이 우승 후보로 달라진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