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디 펠레

 

''' 가나의 前 축구선수'''
''' 이름 '''
'''아베디 펠레'''
'''Abedi Pele'''
''' 본명 '''
아베디 아유[1]
Abedi Ayew
'''출생'''
1964년 11월 5일 (59세)
가나 이스트아킴시[2]
'''국적'''
가나 [image]
'''신체'''
177cm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팀'''
그레이트 팰컨스 (1970~1978 / 유스)
레알 타말레 유나이티드 (1980~1982)
알 사드 SC (1982~1983)
FC 취리히 (1983~1984)
AS 드라공 FC 드 루에메 (1984)
레알 타말레 유나이티드 (1985)
FC 샤무아 니오르 (1986~1987)
FC 뮐루즈 (198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88~1993)
LOSC 릴 (1988~1990, 임대)
올랭피크 리옹 (1993~1994)
토리노 FC (1994~1996)
TSV 1860 뮌헨 (1996~1998)
알 아인 FC (1998~2000)
'''국가대표'''
73경기 33골 (가나 / 1982~1998)
1. 소개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은퇴 이후
6. 여담


1. 소개


가나 국적의 前 축구선수,

2. 클럽 경력


10대 시절부터 가나에서 공을 차던 아베디 펠레는 주목받는 선수도 아닌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다. 여러 클럽은 전전했지만 딱히 활약을 한적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2부리그인 샤무아 니오르로 이적하게 되고 이 곳에서 14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덕분에 당시 막강한 스쿼드를 구축중이던 마르세유에게 러브콜을 받아 아베디 펠레는 그 제안을 수락한다.
하지만 마르세유는 막강한 스쿼드로 인해 자리는 포화 상태였고, 1년 동안 겨우 9경기 출장 그리고 0득점에 그친다. 결국 펠레는 릴OSC에 임대되지만 아베디 펠레는 자기를 임대보낸 마르세유를 비웃으면서 보란듯이 거침없는 활약을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37경기 9득점. 이 활약으로 다시 기대를 받은 그는 마르세유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아베디 펠레를 품은 마르세유는 아베디 펠레와 장 피에르 파팽, 크리스 와들 이들의 삼각편대를 내세워 강력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마침내 이들의 고공폭격은 마르세유를 리그 우승과 유로피언 컵 결승전으로 인도하게 되지만 당시 동유럽의 강호였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에게 승부차기에서 패하는 바람에 준우승에 그친다. 그리고 파팽과 와들이 마르세유를 떠났지만 루디 푈러알렌 보크시치가 합류하였고, 아베디 펠레는 등번호 10번을 달며 마르세유의 에이스로 등극하게 된다.
그는 마르세유가 계속해서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하는 1등 공신이었으며, 1992-93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면서 마르세유의 통산 2회 결승 진출이라는 업적을 세운다. 그리고 그 결승전에서 코너킥으로 바질 볼리에게 헤더 골을 기록해주는 어시스트를 하였고, 이 결승골을 잘 지켜서 1-0으로 AC 밀란을 꺾으며 마르세유는 프랑스 클럽 최초로 빅 이어를 든다.
이렇게 뛰어난 활약을 펼친 펠레는 1991년, 1992년, 1993년 연속으로 아프리카 최우수선수를 석권한다.
그러나 마르세유가 승부조작 혐의로 1992-93 시즌 리그 우승을 박탈당하고[3] 아베디 펠레는 리옹으로 떠난다. 그후 토리노, 1860 뮌헨을 전전하다 중동에서 은퇴하게 된다.

3. 국가대표 경력


73경기를 출전하여 33득점을 기록하여 현역 당시 최다득점자였지만 아사모아 기안이 갱신하였다. 다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볼을 다루는 테크닉이 뛰어났으며, 강력한 드리블 돌파, 훌륭한 패스 감각을 무기로 '''중원의 킹'''으로 군림했다.

5. 은퇴 이후


  • 2004년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축구단 나니아 FC 아크라를 창단하고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감독 역할도 오래 겸임하였다.

6. 여담


[1] Ayew는 가나 아샨티족의 성이며 /ˈɑːjuː/'아유'로 발음된다. '아예우'는 '기타 언어 표기의 일반 원칙'에 따른 표기일 뿐 프랑스에서 쓰이는 발음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ajəw/'아유우'로 발음한다.[2] 현 아부아콰사우스시 키비[3] 다행히 챔피언스리그는 승부조작과 관련이 없었기에 우승 타이틀은 그대로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