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주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경주는 1896년 5월 13일 전라도 나주부 광주군(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광주의 장날을 이용해 김강(金剛), 김철(金鐵), 최병준, 최한영(崔漢泳)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읍내를 돌면서 경찰서 앞으로 행진했다가 일본 경찰과 기마헌병이 출동하여 주모자들을 연행하자, 흩어진 군중을 재집결한 뒤 경찰서 마당으로 진격해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일제는 재향군인과 소방수까지 동원해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고 대대적인 체포에 착수했다. 박경주는 체포를 피해 피신했고, 3월 17~18일 양일에 걸쳐 송정면 선암리의 자택에서 독립선언서와 경고문 각 1,500여 매와 독립가(獨立歌) 500여 매를 등사하여 목표 등 인근 지역에 배포했다. 그러다가 결국 체포되었고, 1919년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는 평양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1938년 10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경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7년에 고향에 묻힌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