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우

 


성명
박수우(朴受祐)
이명
박수호(朴受祜), 박수조(朴受祚)
본관
밀양 박씨[1]
생몰
1885년 3월 3일 ~ ?
출생지
강원도 영월군 양변면 금마리[2]
사망지
미상
추서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수우는 1885년 3월 3일 강원도 영월군 양변면 금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초 박수창(朴受昌)[3], 남상은, 탁원근(卓源瑾)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준비하고 만세연명부를 작성했지만 4월 20일에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압수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날인 21일 장날을 이용해 다시 군중을 모았고, 시위 중지를 위해 출장나온 군수에게 강제로 만세연명부에 서명하도록 한 후 2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박수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1] 규정공파-선곡공파 21세 '''수(受)''' 진(鎭) 항렬.[2] 인근의 신일리·용석리·주천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광훈·박수경·박수영·박재호도 이 마을 출신이다.[3]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박수창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