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호(독립운동가)
1. 옥천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재호
박재호는 1876년 1월 21일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6일 청산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가담하여 태극기를 제작 배포하고 3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주재소를 습격하여, 기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해 4월 21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옥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7년 9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박재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1899년생 독립운동가, 박재호
박재호는 1899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그는 1930년 5월 13일에 열린 홍원농민조합 임시대회에서 사회를 맡아 대회를 진행하였고, 대회 중 조직선전부장에 선임되었다. 1931년 8월 홍원군 11개면에 산재한 농민조합원 1,000여 명을 비롯한 약 3,000명의 군중이 군청에 쇄도하여 일대 시위운동을 단행하였다. 특히 1,000여 명의 농민조합원들은 몽둥이를 휴대하고 농민의 원성이 높던 대금업자의 가택을 수색하여 장부 및 차용증서를 탈취, 소각하는 항쟁을 벌였다. 이날의 항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고, 약 110명이 함흥지방법원에서 예심을 받았다.
이때 박재호 역시 이 시위운동의 주도자로 일경에 체포되어 예심을 기다리던 중 지병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32년 1월 10일 오전 7시경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박재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3. 영월군 출신독립운동가, 박재호
박재호는 1885년 7월 8일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금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21일 영월군 주천면 금마리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박광훈·박수영·이병익(李炳翼)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 영월군수인 석명선(石明瑄)이 이 마을에 강연하러 출장오자 군수에게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9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8월형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영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9년 5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박재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