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순

 


1. 중화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양순
2. 동작구 출신 독립운동가, 박양순


1. 중화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양순


성명
박양순(朴養淳)
생몰
1863년 ~ ?
출생지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신읍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박양순은 1863년생이며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신읍리 출신이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2일 상원면 천도교 교구실에서 약 200명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중화경찰서장과 순사부장 및 순사보 한명이 천도교 교구실에 가서 시위대의 해산을 요구하고 몇 명을 밖으로 끌어내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그들을 포위하였다. 박양순 등은 순사의 칼을 빼앗은 후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구타, 폭행을 하여 중경상을 입혔다. 이들은 시위대를 지휘하여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여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 1919년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박양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동작구 출신 독립운동가, 박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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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양순(朴良順)
생몰
1903년 4월 13일 ~ ?
출생지
경기도 과천군 하북면 노량진리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사망지
미상
추서
대통령표창
박양순은 1903년 4월 13일 경기도 과천군 하북면 노량진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서울 배화학당 학생으로, 김경화 등 동료 학생들과 함께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만세시위운동을 벌일 것을 계획하고 이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1920년 3월 1일 아침 8시 반경에 학교 교정(校庭)과 기숙사 뒤편 언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체포된 그녀는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에 수감되었는데, 그곳엔 유관순, 어윤희, 김향화 등이 있었다.
1920년 4월 5일, 박양순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당시 서대문형무소 수형자 명부에 기록된 그녀의 키는 4척 8촌 3분으로, 147cm를 겨우 넘기는 작은 키였다. 이후 ‘1920년 은사(恩赦)’로 징역 3월로 변경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박양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