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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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오봉(朴五鳳)
생몰
1904년 4월 7일 ~ 1949년 4월 21일
출생지
광주부 금남동 5가
사망지
광주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오봉은 1904년 4월 7일 광주부 금남동 5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3년 광주일보 및 광주 소재 죽구인쇄소(竹口印刷所)에 고용되어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광주청년동맹(光州靑年同盟) 집행위원과 광주청년회(光州靑年會) 및 인쇄공조합원(印刷工組合員)을 역임했다. 그러던 1929년 11월 초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그는 장재성, 장석천, 나승규(羅承奎) 등과 회합을 갖고 한국인 학생들이 일제 경찰에 붙잡힌 것에 항거하여 재봉기할 것을 결의했다.
이후 그는 격문을 인쇄하여 살포하고 동년 12월 2차 광주학생시위를 단행케 하였으며, 이 운동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 일경에게 붙잡혔다. 이후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광주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9년 4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오봉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