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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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활동 내역


1. 소개


대한민국가수작곡가. 1973년 4월 10일 서울특별시 출생이며, 본명은 박진형. 90년대 중반 <느낌만으로>라는 곡으로 한동안 인기를 얻었으며, 2000년대에 작곡가로 데뷔하여 가수 박현빈의 <오빠만 믿어>, 장윤정의 <이따이따요> 등을 작곡했다.

2. 활동 내역


삼성그룹 산하의 광고회사 제일기획이 음반시장에 뛰어들면서 발굴한 2명의 가수(김원준, 박지원) 중 한 사람. 1995년, 경원대학교[1] 건축설비과에 재학 중 가수로 데뷔, 20대 초반의 나이지만 나름 힘을 갖추기 시작한 라이브와 곱상한 외모, 제일기획의 광고전략(의류 브랜드 카운트다운)이 배합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뒤 한창 치고 올라가야 할 3년차(1997년)에 눈길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뇌출혈에 이은 사흘간의 뇌사 상태, 경추 2,3번 골절, 광대뼈 함몰과 팔다리 골절 등을 입었다. 경추의 신경을 건드렸다면 하반신 마비도 각오했어야 할 정도로 위중했던 상황. 침대 위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5개월 간의 입원과 1년간의 재활 치료에 매달림으로서 사실상 가수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이후 상명대 음악대학원에 진학해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하여 이 때부터 다른 가수들의 앨범 수록곡을 작곡해주는 등 음반제작 일에 뛰어들었다.
초창기에는 제작자들에게 작곡비를 떼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서울예대 등지에서 강사로 일하며 얻은 수입으로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대학원 재학, 대학 강사 활동 중 만난 젊은 학생들이 의외로 장르를 편식하지 않는다는걸 파악, 트로트 노래를 작곡해 요즘의 밴드 연주로 반주를 넣는 시도를 하게 된다. 특히 장윤정에게 준 이따 이따요, 박현빈에게 준 오빠만 믿어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가수 박지원'''이 아닌, '''작곡가 박지원'''으로 중앙일간지와 인터뷰를 하는 등 재조명을 받았으며, '''흠집이 아물어져 특급품으로 거듭난 바둑판'''처럼 유명 음반제작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외 중국어에 매우 능통한 편. 1990년대에는 방한한 중화권 연예인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1] 현 가천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