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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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흔히 '''‘트로트의 여왕’''', '''‘행사의 여왕’''' 등으로 불린다.
현 시대에 '트로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가수로,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2000년대 들어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트로트 장르를 박현빈, 홍진영과 함께 지탱한 최고의 트로트 가수이다.
2. 데뷔 전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이 가난해서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으며[6] 대학교 시절에는 자취를 했는데, 난방비가 없어서 겨울에 자다가 추위에 잠이 깰 때마다 헤어드라이어로 이불 속을 데우고, 강아지를 껴안고 다시 잠이 들 만큼 아주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토크쇼에서 밝히길,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학자금을 대출받으러 은행에 갔다가 부모가 진 부채 때문에 자신도 신용불량자인 사실을 알았고, 당시 은행 직원이 모니터를 돌려서 신용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 상태에서는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지점 안에서 자기를 보는 사람들도 많아서 엄청나게 창피했다고 한다.[7][8] 다행히도 장윤정의 사정을 들은 대학교 친구들이 돈을 모아서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으며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할 친구들이라고 한다.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내 안의 넌'으로 '''대상'''을 수상하였지만, 가수로 데뷔하는 과정은 어려웠다. 첫 공식 방송 무대에서 너무 떨었다.[9] 기획사에 들어가서도 음반을 낼 돈이 없어서 단역 배우로 활동했다.[10] 실제로 '어머나' 로 뜨기 전까지인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11] 나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등에서 재연배우 일로 전전하였다. 이 시절 모습은 이후에도 종종 케이블에서 나온다. 본인도 이것 때문에 돈을 밝혔고, 그래서 쉽게 갈 수 없는 트로트를 선택했다고 한다. 결국은 크게 성공했다. 다만 너무 상업성만 노렸다고 질타해서 이후, 노래는 같은 트로트지만 스타일을 바꾸었다.
3. 가수 생활
3.1. 행사의 여왕
전국 각지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출연하려고, 1년에 10만㎞ 정도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모 토크쇼에서 MC몽을 능가하는 '하루 12회 행사' 경험을 이야기해 주변이 깜짝 놀랐다. 전성기 시절에는 행사비로만 하루에 1억을 번 적도 있다고 한다. [12]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장윤정 몸값을 추정하면, 사실상 1년에 행사로만 100억 원 정도를 번다고 추측할 정도다. 그래서 1년 기름값은 억대, 교통 법규를 어겨서 내야 하는 과태료가 일곱 자리라는 썰도 있고 실제로 기름값은 수천만원대라고 한다.
예전에 이동할 때는 차를 이용했지만, 나중에는 비행기로 이동한다고 했다. '''비행기로 이동해서 남는 시간에 다른 행사를 더 참여하는 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장윤정 본인은 '자신의 노래는 시골 장터에서 시작했으며,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현재까지도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장윤정 급의 가수라면 폼나게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이 몸도 편하고 수익도 더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장윤정 본인의 말에 따르면 전국에서 자기가 행사를 가보지 않은 곳은 날씨 문제 때문에 도저히 가기 어려운 울릉도와 독도 뿐이라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행사 스케쥴을 많이 줄였었으나, 둘째를 출산한 뒤에 출연한 프로그램이 줄줄이 대박을 치면서, 2019년 하반기 현재는 '''10년전 전성기 스케줄로 복귀'''(...)했다고 한다. 하루에 행사 2~3개는 기본이고 한달에 하루도 못 쉰다고.
이러한 여왕의 권좌는 TV에서 빛을 발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TV에 안 나오는 기간이면 총합 집값만큼의 출연료를 받고 전국 노래투어나 다른 콘서트에 참여하느라 못 나온다는 것이다. 다른 가수들도 마찬가지지만 트로트 가수들은 이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지며 전국에 퍼져 있는 어르신들에게 흥도 드리고 인사도 하고 여러 활동이 겹치면서 TV에 나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장윤정이라면 이 상황에서 나오는게 기적과도 같을 것이다.
3.2. 1~4집
2004년 '어머나'로 데뷔했는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13] 작은 소속사에서 데뷔한 만큼 별다른 홍보도 없었으나, 노래가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신청받는 곡이 되며 알아서 홍보가 되었다. 트로트는 중장년층만 부른다는 편견을 깨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최초 사례. 서태지가 음악시장을 재편한 이후로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무송의 ‘사는게 뭔지’, 김수희의 '애모', '남행열차', -[14] 등 전 세대를 아우르는 트로트 히트곡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20대 초반 여가수가 본격 트로트로 데뷔하고 크게 성공한 것은 장윤정이 처음. 블루 오션 개척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웬만한 아이돌 가수보다도 크게 성공했다.
이후 '어머나'로 쌓은 인지도로 2집 '짠짜라'와 3집 '이따이따요', 4집 '장윤정 트위스트'를 냈는데, 어머나 못지않게 히트를 치며 적자를 낸 음반이 없다. 음반을 판매한 수량은 둘째고, 보통은 특정 세대만 기억하는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거의 모든 세대가 자기 노래를 기억하는 건 엄청 드문 일이다. 간드러지는 음색 자체가 트로트랑 적합하고, 넉살 좋은 이미지는 중장년~노년, 심지어는 10대까지 아울렀다.
3.3. 노홍철과의 연애
2007년부터 슬슬 게스트로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일단 우리 결혼했어요 파일럿으로 출연했으며, 그 후 각종 방송에 조금씩 출연 횟수를 늘리면서 '골드미스가 간다'에서 고정 출연한다. 원래부터 장윤정한테 끈질기게 구애했던 노홍철이 프로그램 내에서 진행한 맞선을 망치자[15] , 그를 위로하려고 맥주를 마시다가 훗날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본디 이렇게 커플이 나오면 '싱글에게 짝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인 '골드미스가 간다' 특성상 하차할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하차하지는 않고 역할을 바꾸어서 노홍철처럼 러브 메신저로 활약했다. 사실상 이 프로그램이 배출한 커플이라서 제작진도 좋게 봐줬다.
2009년 12월 28일자 연예 플러스에서 노홍철과의 관계를 두고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바쁜 탓에 볼 수 있는 때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 자기가 힘든 걸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직설적인 성격은 좋아하지만, 노홍철이 보여주는 괴이한 패션 센스는 안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레깅스를 입은 모습은 딱 질색이라고 표현했다. 그래도 연인 취향을 존중해서 구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9일부터 노홍철과 결별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본인은 성격이 달라서 헤어지지 않았다고 했으나, 무한도전 뉴욕편에서 장윤정이 쓴 편지에서 '나는 의지할만한 강한 사람이 필요했는데, 기댈 수 있을 거란 본래의 생각과 다르게 '나도 솔직히 힘들어서 기대고 싶어.' 라고 하는 등 내가 기대기도 전에 으스러질 것 같은 여리디 여린 순두부 같은 모습에 실망했다' 와 같은 류의 말들이 있었기에, 훗날 성격 차이를 결별의 원인으로 삼는 여러 추측이 돌았다. 하지만 당사자 모두 결별 당시, 상대방의 문제나 성격으로 인한 것이 원인이 아니며 다툰 적도 없기에 서로에게 부정적 감정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6월 방영된 무릎팍도사에서 결별을 놓고 쏟아진 여러 기사에 그가 상처받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다고 입을 떼면서, 서로가 개성이 강했고 달랐을 뿐 틀려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고 했다. 뒤이어, 친구로 지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이야기를 나눌 무렵, 결별 기사가 먼저 나왔고 헤어짐을 조율하거나 정리할 새도 없이 매듭지어져 버렸다고 속상해했다.[16] 결별 소식이 나왔을 당시에도 기자들 앞에서, 한 여자로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 털어놔야함이 슬프다고 착잡한 심정을 밝히었다.[17]
2012년 10월, 그녀는 노홍철과 헤어진 진짜 이유는 그때 본인을 둘러싼 스캔들 때문이라고 이실직고했다. 제 3자와의 염문설이 임신설, 더 나아가 미국 출산설로까지 번져 연인과의 애정전선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풍문 속의 인물과 알지도 못했기에 처음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나 낭설들이 쌓일수록 말은 안 했지만 서로의 가슴에 묵잔한 것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앙금은 없었다는 과거의 말을 반증하듯, 두 사람은 각자가 출연한 방송 등에서 여전히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라며 서로의 앞날을 응원했다.
3.4. 도경완과의 결혼
2013년 일본에서 발표한 2집 타이틀 곡인 '最期の川' 로 일본 유선방송 엔카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해당 곡은 한국에서 발매했던 '초혼'의 번안곡으로, 기존 장윤정표 트로트와는 조금 다른 애절한 곡이다.
2013년 4월, KBS 소속 도경완 아나운서와 2013년 9월에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결혼 발표 전까지 5개월 간 철저하게 007작전을 불허하는 비밀연애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친한 동료들도 몰랐을 정도라고. KBS 아나운서들은 도경완이 한두달 전부터 연애의 낌새는 보였지만 그 상대가 장윤정 일 것이라곤 생각을 전혀 못했다고 한다.
재미난 것은 두 사람이 처음 연락하던 날, 장윤정 꿈에 삼신할머니가 나와서 "너희 둘은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했을 뿐 아니라 둘의 열애 공개 3일 전에 도경완의 친부 꿈에 장윤정이 갑자기 등장하여 인사하였다고 한다.
2013년 5월 8일 혼인신고를 하여 법적인 부부가 되었으며, 예정보다 빠른 2013년 6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를 밝히면서 어머니와 남동생이 장윤정이 10년간 벌어온 돈을 탕진했으며, 오히려 빚만 남아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장윤정은 현재 어머니, 동생과 의절한 상태이며, 유일하게 연락하고 교류하는 이는 아버지뿐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오히려 남편인 도경완의 부모님들, 즉 장윤정의 시부모님들이 친부모보다 더 가족같이 든든하게 챙겨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도경완은 처음엔 돈 잘 버는 아내와 결혼한 '로또 당첨자' 따위의 평가를 받다가 재산 탕진 논란이 터진 뒤엔 성인군자 취급을 받고 있다.
2014년 6월 13일 도경완 아나운서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출산했는데, 6월 2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스페셜 방송으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까지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물론 장윤정 친정 쪽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보여주지 않고, 도경완 친가만 보여준다고 했다. 도경완의 부모님이 이로써 최초로 방송에 공개되는 셈. 8월 10일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2006년 '만화로 풀어가는 스타고백' 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데뷔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인생이 만화로 보여지기도 했는데, 상위 논란들을 생각한다면 더욱 안타까워지는 이야기가 된다.
2014년 8월, 소속사였던 '인우기획'이 갑작스럽게 폐업하게 되면서 무적(無籍)상태가 되었다.[18] 장윤정의 계약기간은 이미 만료된 지 오래였지만, 데뷔 때부터 함께 해 왔으니 당연히 함께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본인은 충격이 매우 컸던 듯. 이후 많은 소속사들이 러브콜을 보냈으나, 도전 1000곡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함께 출연한 이휘재가 소속된 '코엔스타즈'와 계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코엔스타즈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관련기사.
2015년 발표한 7집 앨범의 타이틀곡 '반창고'가 다시 대박을 내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마쳤다. 타이틀곡 선정 능력으로는 따라갈 사람이 없는 듯.
2017년 3월에 7집 앨범의 수록곡인 '벚꽃길'을 재편곡하여 벚꽃길 2017을 발표했다. 또한 7년 만에 음악 방송도 출연하였다.
2018년 11월 9일 딸을 출산하였다.
4. 음반 목록
5. 수상 경력
5.1. 시상식
5.2. 가요 프로그램 1위
6. 논란
6.1.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
6.2. 기타 논란
- 그녀가 출연한 솔로몬저축은행 광고가 마치 대부업체 광고처럼 나와서 천천히 안티가 생겼다. 그래서 양자 모두가 굉장히 곤란했다. 문제는 이게 제2금융권 신용대출 광고다. 저축은행 신용대출 이자는 대부업체 이자와 비슷하다.[20] 하지만 이후에 드러난 "가정불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CF를 찍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재평가를 받았다.
- 2010년 6월 30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나름대로 억울해서 나갔지만, 그 방송에 나가자마자 시청자 게시판과 각종 키보드워리어들이 장윤정을 공격했다. 당시 자신을 둘러싼 임신설 루머를 해명하려고 언급했는데, 정작 시청자들은 이를 잘 몰랐다.[21] 오히려 장윤정 자신이 '나 임신 루머 돌았어요'하고 되려 언급한 격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네이버 실시간 검색에 장윤정 임신이 튀어나왔다. 결국, 해명하려고 방송에 나갔다가 일만 커졌다.
- 세바퀴에 출연했을 때, '결혼하면 자기 돈은 안 쓰고 필요한 걸 구하는데 남편 돈만 쓰겠다'고 말해서 까였다. 사실 본인이 여러 번 방송에서 자기 돈만 보고 접근하는 남자들이나, 결혼 적령기인 아들 가진 여자들에게 시달렸다고 말해서 나온 농담이다. 예를 들어 의사라는 남자와 소개팅을 했는데, 상대 부모가 '우리는 연예인 며느리 탐탁지 않지만, 그쪽이 병원 지어준다면 생각해 보겠다'는 식으로 나왔다고 한다. 오히려 현재는 본인의 엄청난 수입으로 남편과 시댁을 잘 챙기고 있다는 게 공공연히 알려져있는 상황이다.
7. 여담
- 대학교 시절에 강아지를 키웠는데, 겨울철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매일 밤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가서 강아지와 함께 땀이 뻘뻘 날 정도로 뛰고 나서 찬 물로 같이 씻었다고 한다. 본인은 사람이니 버틸 수 있었지만 키우는 강아지한테 잘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고 한다.
- 지금의 장윤정을 만든 대표곡인 '어머나'는 사실 다른 가수들에게 여러 번 거절을 받고 신인인 장윤정에게 온 곡이라고 한다.[22] 장윤정도 처음에는 멜로디가 다소 가벼운 느낌이라 그저 그랬으며 특히 가사가 맘에 안 들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이러지 말라'로 시작해놓고 후렴에서는 '좋아해요', '사랑해요'로 급 진행을 하더니 마지막에는 아예 '다 줄게요'로 끝나서 사람이 헤픈 느낌도 나고 너무 이상해서 못할 것 같았다고[23] .
- 이휘재와 함께 도전 1000곡 MC를 맡았다. 진행력은 역대 여자 MC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지만,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것보다는 무대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까부는 스타일에 약간 호불호가 갈리긴 한다. 프로그램 성격과 잘 어울리고, 그런 진행 스타일을 선호하는 해외 동포를 비롯한, 장년층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좋아하는 쪽이 더 많았다. 이따금씩 왕중왕전에서 있는 패자부활전에서 노신(노래의 신)으로 나와 게스트들과 대결했는데, 짬밥 자체가 허풍이 아닌 걸 여실히 증명했다.
- 2011년 9월 12일 나는 가수다의 스핀오프격 추석 특집 프로그램인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 를 불렀는데 원곡을 재현하려고 한 것은 좋았지만, 호불호가 갈렸으며 일부 시청자들의 혹평을 받았다. 원곡은 락발라드인데 트로트식 바이브레이션이 나와 본인도 연습 과정에서 계속 이걸 자제하려고 했지만 트로트 창법이 몸에 베였다고 볼 수 있다.
- 데뷔 초와 2012년을 비교하면 창법이 변화했다. 데뷔 초에 불렀던 '어머나' 하고 '짠짜라'의 경우에는 발음이 굉장히 또박또박한 편이었고 포인트에서 잠깐씩 쥐어 짜는 듯한 창법이었다. 이후에는 콧소리가 많이 들어가고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넣으면서 발음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발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25] 좀 더 말하자면 확실히 부를 때 좀 더 간드러지게 변했다. 본인 스스로가 일부러 창법을 바꾸었는지, 아니면 가요계에 몸 담은 지가 꽤 되어 자신의 노래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서 기교 형식으로 그렇게 된 건지는 미지수. 이러한 창법의 변화에 대해서는 주 고객층인 중장년, 어르신들 사이에서 약간 호불호가 갈린다. # 그녀가 이미 라이브를 엄청나게 많이 하는 가수인 데다가 데뷔 10년이 넘었으니, 아무리 성대가 튼튼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 나갈 것이다. 이 창법은 목에 상대적으로 무리가 덜 가는 창법이라 바꾼 듯 하다. 어머나 같은 경우는 '소설 속에, 영화 속에' 이 부분이 원래 Bb Bb C Bb 이지만 다 같은 Bb로 처리해서 부르고 있다.[26]
- # 자신의 팬클럽 회원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천만원이라는 통큰 축의금을 쏴 화제가 되었다. 이에 네티즌들은 장윤정 팬클럽에 가입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 태교를 로이킴의 노래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판타스틱 듀오 시즌2의 스타 판듀에 무려 박완규가 장윤정의 팬 자격으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이킴을 최종 선택했다.
- 해외에서 장윤정과 가장 많이 비교당하는 가수는 바로 독일의 국민 여가수 헬레네 피셔.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자국에서 최정상급의 솔로 여가수며 나이대도 얼추 비슷하고 노래 스타일, 창법도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헬레네 피셔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수시로 거론되곤 한다. 미국음악 갤러리 등지에서 농담 식으로 미국의 트로트라 할 수 있는 컨트리송으로 인기를 얻은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테일러가 컨트리 음악에서 팝으로 장르를 바꾼 이후에는 지나간 일이 되었다. 사실 커리어나 노선을 고려하면 진짜 미국의 장윤정은 캐리 언더우드다. 이 쪽은 아직도 컨트리 음악을 고수하며 활동 중이고 컨트리 장르 팬들에게 좋은 비평적 평가를 받고있다.
- 도경완 아나운서에 따르면 아내와 자신의 수입은 경포대 모래사장과 그 위에 놓인 모래 포대 두 자루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그래서 도경완은 방송 등지에서 이런 아내의 재력에 관한 농담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이에 장윤정은 이런 남편의 농담에 '내가 번 게 많을 뿐 남편 걸 뺏은 게 아니다'(힐링캠프 200회)라는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 2015년 이후로 공연 등에서 '사랑아'라는 곡이 굉장히 많이 리퀘스트된다. 무려 2집에 실린 곡이라 십년도 넘은 노래인데 장윤정 본인도 의아해하면서도 행사 레파토리에 꼭 넣게 되었다. 트로트는 아니고 2000년대 초반풍 나이트댄스에 가까운 노래인데 알고 보니 뒤늦게 콜라텍 등지에서 히트했다고.[27][28]
- 장윤정의 매니저는 어머나때부터 20년 가까이 같이 활동한 그녀의 백댄서였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나이가 들어서 춤추다 다치고, 멍드는 일이 잦아져서 백댄서 일이 힘들어지자, 장윤정의 제안으로 매니저로 전직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백댄서인 매니저도 장윤정에 대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는 뒷이야기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장윤정의 안무팀의 공백이 생기면 매니저일 던지고, 바로 백댄서로 투입할 수 있다고 하니, 백댄서로서의 실력이 녹슨것도 아니다.
8. 관련 문서
[1] 유년기는 충주시가 아닌 오산시 일대에서 보냈다. 이유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기 때문인데, 장윤정은 아버지와 함께 경기도 오산시에 살면서 영신여고까지 졸업하였고, 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충주시에 계속 살면서 충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2] 네이버 프로필 기준[3] 네이버 프로필 기준[4] 현 매홀중학교[5] 현 영상학부 방송영상전공.[6] ‘힐링캠프’에서 말하길, <어머나>로 뜬 이후부터 번 돈을 쓸 여유도 없는 살인적인 행사 스케줄을 돌고 너덜너덜해져 집에 돌아와도, 가족 모두가 한 집에 모여서 자신을 맞아주는 것을 보면 '그래, 내가 이걸 위해서 일을 하는 거지.'라고 보람을 느껴왔다고 한다.[7] 부모가 빚을 져도 금융연좌제가 없으면 생존자인 부모가 자녀에게 채무를 상속하지 않는다. 장윤정 본인이 부모에 의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경우라면 부모가 장윤정 이름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거나, 연대보증인을 세운 정도. 그런데 자신 명의로 채무나 연대보증이 걸렸음을 알았다면 추가로 빚을 지는 학자금 대출을 받으러 갈 리가 없다. '''장윤정과 친모가 다툰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부분이다.[8] 2010년대를 기준으로 그렇게 쉽게 어머니가 딸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도 많으나, 2000년대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자녀 명의로 대출을 받거나 자녀를 몰래 연대보증인으로 지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장윤정의 대학 시절은 90년대 말부터였고, 금융실명제만 해도 고작 93년에 시행됐다. 물론 합법적 금융권이 아닌 사채 등의 비합법적인 루트를 고려한다면 현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9] 제주도에서 열린 행사에서 댄스곡을 불렀는데 의외로 잘 부르고, 안무 실력도 수준급이다. 댄스 가수로 활동할 기회도 있지만, 본인은 트로트가 제일 편하다고 실토했다. 사실 비음 때문에, 다른 장르와는 잘 안 맞는다고 말한 음반 제작가도 있다.[10] 장윤정이 소속됐던 인우기획 전신은 무명시절이었던 장윤정과 같이 일했던 이벤트 회사다. 장윤정이 성공할 가능성을 보고 대표가 연예 기획사로 전업했고,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인우기획은 잘못된 경영으로 장윤정, 박현빈, 윙크라는 말도 안 되는 라인업을 가지고도 (저 셋은 젊은 나이에도 트로트계에서도 높은 몸값과 인지도로 수많은 행사를 소화하는 탑 급이다.) 폐업하고 말았다.[11] 어머나로 뜬 이후에도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다.[12] 물론 장윤정이 모두 1억을 가져간건 아니고, 여러 비용을 떼면 실제로 돌아오는 돈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13]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트로트가 1위를 한 것은 김수희의 '애모'가 93년 상을 받은 이후 11년 만의 일이었다.[14] 94년에 발표된 곡이긴 하나 유명해진 것은 1박2일 기상송으로 등장한 2007년이다.[15] 그 맞선 상대가 후에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서 다시 만나게 된 임윤선 변호사이다.[16] 실제로 두 사람은 2004년경 처음 만나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하였다. 엄청난 이목이 집중된 것과 달리 두 사람 모두 휴식이 없을 만큼 바빴던 탓에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만날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소원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 탓에 친구였을 시절이 더 나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사료되며 이같은 이야기들이 나올 무렵 기사가 터져나와 당황하였으나 관계가 소원하던 시기였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선보도, 후결별인 셈. 그녀는 결별을 두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한 것인데 마치 그를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모습이 비춰져 슬펐다고 이야기 하였으며 연애기간 내내 쏟아진 뜨거운 관심과 근거없는 소문들에 부정적 상황들에 놓이게 되자 그녀는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지하벙커에서 연애할 것이라고 공개연애에 부정적 의사를 드러냈다.[17] 그 직후, 상대 역시 최대한 말을 아끼는 모습으로 직접적 결별 사유는 밝히지 않았으나 그녀의 말을 뒷받침하듯 그 또한 결별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기사가 먼저 나와 당혹스러웠다고 이야기 했다.[18] 폐업 즈음, 장윤정의 모친이 서로의 행복을 빌자고 메세지를 보냈다고 한다.[19] 하하와 공동 수상[20] 솔로몬저축은행은 대부업체가 아닌 제2금융권이지만, 지나치게 대출을 강조하고 광고까지 촌스러워서 영락없이 대부업체로 찍혔다. CF가 이들 이미지만 더럽혔다. 또한 연락처(주로 휴대폰 번호)가 새어나갔을 때 저축은행에서 전화하는 빈도가 대출 업체랑 맞먹었다. 간판에 건 은행만 보고 대출하면 큰일난다.[21] 물론 장윤정의 주요 수요층인 중노년층에게는 어느정도 퍼져있던 루머다. 그렇지 않았다면 해명하겠다고 방송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을테니. 문제는 이 루머 자체의 인지도가 극히 일부 계층에만 높았지 그 외 대중에게는 매우 낮았던 것.[22] 원래는 계은숙을 위해 만든 노래였는데 거절되고, 이후 송대관, 주현미 등을 거쳐 장윤정에게까지 왔다는 모양.작곡가 인터뷰. 이 때문에 곡이 히트한 후에 '나한테도 제의가 왔던 곡이다'라고 밝힌 가수들이 많았다.[23] 작곡가 윤명선에 따르면 주현미가 곡이 마음에 드는데 아쉽다며 제목을 바꾸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이 곡의 위트와 경박함이라는 포인트를 잃기 싫어서 거절했다고.[24] 같은 장씨에 이름이 윤이 들어간다는 점, 노홍철과 썸씽이 있었다는 점, 남편은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 한 분야의 넘사벽 스타라는 점 등등 공통점이 많다.[25] 장윤정이 등장한 가요 무대나 트로트 이벤트와 장윤정 데뷔 초 뮤직비디오 혹은 행사 동영상을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26] 어머나가 Bb~Db의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부르기 매우 힘든 곡이다[27] 콜라텍 항목에 설명되어 있지만, 초기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등장한 콜라텍은 오늘날에 와서는 대부분의 청소년층이 클럽으로 빠져나감에 따라 중장년층부터 노년층을 주고객으로 하는 장소로 변화했다. 이제는 콜라텍하면 춤추는 걸 즐기는 중장년층이 노는 장소라고 봐도 무방하다.[28] 여담으로 KIA 타이거즈시절 안치홍의 응원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