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준

 


김원준
金元俊 | Kim Won Jun'''
출생
1973년 2월 16일 (51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국적

신체
178cm[1], 65kg, B형
가족
부모님, 2남 1녀 중 막내
배우자
이은정(1987년생) (2016년 ~ 현재)[2]
자녀
딸 김예은(2017년 1월 19일생)
학력
반포중학교 (졸업)[3]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4]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 전문학사)
상명대학교 문화기술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 / 석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뉴미디어 음악학 / 박사과정)
종교
개신교
소속사
EM 컴퍼니
소속 그룹
베일(V.E.I.L) (2006년 ~)
M4 (2010년 ~ 2013년)
데뷔
1992년 정규 1집 〈눈에 띄고 싶어〉[5]
링크

1. 개요
2. 데뷔 및 전성기
3. 쇠퇴기 및 재기
4. 평가
5. 음반 목록
6. 출연 작품
6.1. 영화
6.2. 드라마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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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싱어송라이터이자 대학 교수이다.[6]
1992년 1집 타이틀곡 '모두 잠든 후에'로 데뷔, 이후 대표곡으로는 '언제나', '세상은 나에게', '너없는 동안', 'SHOW' 등이 있다.

2. 데뷔 및 전성기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7] 밑에서 엄격하게 자랐으나, 고교 시절에 4인조 아마추어 그룹 '쥬크박스'를 결성해 활동했고,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에 진학, 재학 중에 교내 메탈 그룹 'Last Scene'을 거쳐 통기타 클럽인 '예음회'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에 심취한다.
1992년 8월 예음회 선배의 오디션 추천으로, 당시 제일기획에서 개최한 가수 오디션을 통해 30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다. 당시 제일기획에서는 같은 삼성그룹 계열인 삼성물산의 의류사업부에서 런칭한 새로운 패션브랜드인 '카운트다운'의 광고 기획을 맡았는데, 참신한 신인 가수를 발굴하여 음악과 CF를 동시에 선보이며 유행을 만들어가는 파격적인 광고 전략이 수립되어 오렌지라는 레이블로 음반사업을 시작하였고, CF 전속모델을 겸하는 신인 가수를 발굴해 내는 과정에서 김원준이 뽑힌 것이다. 이 오디션에서 불렀던 노래가 자작곡인 '모두 잠든 후에'
제일기획은 곧바로 김원준의 데뷔 앨범 제작에 착수했으며 김원준의 자작곡들을 비롯해 작곡가에게 받은 노래를 모아 음반 작업을 진행하고, 동시에 김원준은 카운트다운 광고 촬영과 8일간 밤샘작업을 통해 음반 녹음을 수행하는 등 타이트하고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딱딱 짜여진 계획 속에서 데뷔 준비 과정을 거치며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김원준은 오디션 합격 후 45일 만에 CF 모델과 가수로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데뷔 앨범 타이틀곡 '모두 잠든 후에'는 가요 차트 17회 1위(KBS 가요톱텐 4주 연속 1위,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7주 연속 1위 등)를 차지하면서 김원준은 그야말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며 가능성을 보이게 된다.[8]
▲ 김원준의 데뷔곡 '모두 잠든 후에'의 뮤직비디오[9]
데뷔 당시 신인 아이돌의 이미지가 강했던지라 그저 반짝하는 스타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993년부터 각종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하여 당시 MBC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특종TV연예에서 당대 최고의 개그우먼 이영자와 함께 영화 보디가드를 패러디했으며[10] "김완선" 실명이 그대로 쓰였다. 이것으로 단순한 10대의 아이돌 스타를 넘어서 2030 세대 및 전 연령층까지 포섭하게 되며, 1990년대 초중반의 대표적 문화현상이었던 X세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얻기 시작한다.
▲ 1993년 X세대의 대표주자로 이병헌과 함께한 아모레 트윈엑스 CF
그리고 그 해 8월, 2집 '나에게 떠나는 여행'을 발표하면서 록과 댄스리듬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자작곡 '언제나'를 타이틀곡으로 활동을 시작, 1집 때와는 사뭇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그는 1993년 골든 디스크 본상, 10대 가수상을 MBC, KBS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비디오형 가수가 아닌 오디오와 비디오가 결합된 가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어, 1994년 7월 3집에서는 '너 없는 동안'으로 가요톱텐 골든컵을 수상한 이후 '짧은 다짐'을 후속곡으로 활동했다.
3집 때의 인기가 절정이었고, '짧은 다짐'이 일본음악과 도입부가 흡사하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샘플링이다)
방송용 버전에서는 도입부 멜로디를 다른 버전으로 불렀고 '짧은 다짐'은 이후 콘서트의 정식 넘버가 될 수준에다 중박 정도로 히트한 노래였으며 활동 당시에는 골든컵을 수상한 룰라의 "비밀은 없어"와 같이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 오른 곡이다. 영상. '너 없는 동안'으로 하우스 리듬과 정열적인 '허리춤', 치마패션으로 일약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는 등 인기를 이어가면서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 골든컵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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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을 연상시키는 조각같은 외모 덕분에 1995년에는 배우로도 영역을 넓혀 공군사관학교 생도의 생활을 그린 KBS 드라마 창공에 주인공으로 활약했고, 이 드라마의 주제곡인 '세상은 나에게'도 김원준이 직접 작곡해 불렀다. 다만 드라마 자체의 평가는 고만고만한 수준... 또한, 영화 데뷔작 불의 태양은 안타깝게도 흑역사급의 영화라서 언급하는 사람이 없다.
김원준은 1990년대 대표적 스타로서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카운트다운'을 비롯한 광고 모델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당시 패션유행을 일으킬 정도였다. 인기가 최절정에 달했던 1994년에 발표한 3집 앨범 '너 없는 동안'은 앨범판매량 140만장 이상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김원준 신드롬' 을 일으켰다.
데뷔 앨범 때 부터 타이틀 곡 및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 할 정도로 뛰어난 음악성도 갖추었던 김원준은 1995년 10월 발표한 4집 'Dear'로 자신이 직접 앨범 프로듀싱까지 담당해 뮤지션으로서 진일보했음을 알렸고 타이틀곡 '넌 내꺼'가 가요 차트에서 1위까지 오르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거기에 이듬해인 1996년에 발표한 5집 '(Show)'[11]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1위 후보까지, TV가요 20에서는 1위까지 차지했으며 가요톱텐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잡게 된다.#

3. 쇠퇴기 및 재기


하지만 그 이후로 그는 아티스트라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되면서 따라부르기 쉬운 대중성 일변도의 과거와는 달리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음악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앨범 프로듀싱을 하는 바람에 대중성은 그만큼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앨범들은 전성기 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면서 최고의 톱스타로서의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전성기도 차츰 저물어가게 되었다.[12]
7집 음반의 타이틀곡 '가까이'는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에서 인기가요 5위, 뮤직뱅크 3위(전화 투표)로 꽤 선전하고 있었으나, 7집 활동 시작초에 프로그램 방송 때문에 화성에서 경비행기를 탔다가, 갑작스레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기절,
응급진료 후 서울로 후송, 서울 영동 세브란스에 입원했으며 정밀검사후
팔과 다리 목 등의 골절상 등의 발견되어 보름 정도 입원하게 되었다. 2주간의 입원후 퇴원,
미리 짜여진 약간의 스케줄 소화 후 상태가 좋지 않아 다시 7집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게다가 1999년 병역 문제에 연루되면서 연예인의 이미지에도 큰 손상을 입었고 마음고생을 하는 등 예기치 않았던 수난도 겪었다. 의혹의 주요 내용은 의사이던 아버지가 뇌물수수에 연루되어 김원준이 뇌물로 습관성 어깨탈골로 면제 받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조사결과 댓가성이 없다는 판단과
수차례의 공개재검을 통해 동일 사유로 면제 판정을 받았으니, 결국 억울할 수 있는 케이스.
전성기 시절 벌어놓은 전재산을 탈탈 털어 지은 녹음실 '디어넷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직접 음반 제작까지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정규 9집 발매 후에는 생활고에 빠지며 잘 나가던 시기에 좋아하는 모델을 종류별로 사 놓을 정도로 많았던 자동차들, 적금과 부동산도 정리하면서 재산은 밑바닥을 드러냈다. 또한 아들이 스스로 일어서길 바라는 아버지가 지원을 하지 않자 그는 스스로 재기하기로 마음을 먹고 2002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행사를 뛰었고, 잘 나갈 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단편 드라마 등에도 출연하는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재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후 베일#s-8(V.E.I.L)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동갑내기 가수 친구들과 M4#s-5라는 프로젝트 그룹도 결성해 활동했다.
2015년 11월 베일(V.E.I.L)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새 앨범으로 컴백했다.
2018년부터 빈방 프로젝트(BB Project)로 1인 프로듀싱 음악활동 중이다. <Guest JP김진표> <Guest 규형>
빈방 프로젝트
작사: 인디 케이 바이츠 (indi K bytes)
작곡: 인디 케이 바이츠 (indi K bytes)
편곡: 인디 케이 바이츠 (indi K bytes)
인디 케이 바이츠로 표기되어 있으나, 김원준의 등록자명인 별칭중 하나이다.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8월 30일까지 KBS 제2라디오에서 김원준의 라디오스타를 진행했다.

4. 평가


비주얼 때문에 인기가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김원준은 아이돌로 통하던 시절부터 작사작곡을 해 온 싱어송라이터며 다른 가수들 곡도 종종 쓴다. 참고로 데뷔곡인 '모두 잠든 후에'부터 자신의 대부분의 곡이 자작곡이다.
김원준은 무려 300곡이 넘는 자작곡을 남기고 있는 싱어송라이터였다.(2017. 04. 30. 판타스틱듀오 2 김원준편 방송분 기준)

5. 음반 목록


<rowcolor=#FFFFFF> 날짜
유형
앨범명
타이틀 및 후속곡
1992년
10월 20일
정규 1집
눈에 띄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1993년
8월 20일
정규 2집
나에게 떠나는 여행
언제나
1994년
6월 16일
정규 3집
KIM WON JUN 3
너 없는 동안 / 짧은 다짐
1995년
10월 30일
정규 4집
Dear
넌 내꺼 / 다시 내곁에
1996년
8월 20일
정규 5집
Show
Show / 작별
9월 6일
라이브 앨범
나에게 떠나는 여행
나에게 떠나는 여행
1997년
7월 30일
정규 6집
One
얄개시대 / 내 품에 안겨
1998년
9월 24일
정규 7집
Self Destruction
가까이 / 너를 끝으로
2000년
6월 20일
정규 8집
Another 8000
부탁 / 나만의 사랑
2001년
7월 24일
정규 9집
Dearro Nine
나인 / 세상 그 누구보다
2009년
10월 14일
싱글
[나]스럽게
[나]스럽게 (Rock Ver.)
2010년
2월 16일
싱글
M4 세번째 이야기
가라가라 (Feat. 길미)
2011년
12월 24일
싱글
니가 뭔데
니가 뭔데
2012년
1월 14일
싱글
러브콜
러브콜 (Feat. 유세윤 Of UV)
8월 24일
싱글
넝쿨째 굴러온 당신 OST special
Crazy (Remake) (Feat. 박미경)

6. 출연 작품



6.1. 영화


<rowcolor=#FFFFFF>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94년
불의 태양
승정
주연
1995년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특별 출연
2002년
유아독존

2004년
새빨간 악몽

2006년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6.2. 드라마


<rowcolor=#FFFFFF> 연도
방송사
방송명
배역
비고
1995년

창공
박찬영
주연
2000년
RNA
홍지호(가수)
특별 출연
2003년 ~ 2004년

이브의 화원
강준하

2010년 ~ 2011년

폭풍의 연인
에릭(뮤지컬배우)

2012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
윤빈(가수)


결혼의 꼼수
박수호

2012년 ~ 2013년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2013년 ~ 2014년

별에서 온 그대
연예인
특별 출연
2015년

딱 너 같은 딸
고형석(작곡가)

2016년

꽃가족
독고동백
주연

7. 여담


  • 현재 4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30대 같은 외모의 대표적인 동안 캐릭터의 소유자이다.
  • 한 방송에서 배기성이 김원준에게 동안 비결에 대해 묻자, "하루 세끼 다 챙겨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근데 흥미로운 건 일부 프로필에서는 김원준의 취미가 게임으로 밤새우기란 건데 이건 어찌된 일인지 참...
  • 90년대 초반에는 TV예능에서 영화 패러디 극을 자주 찍었다. (그 당시 국내 예능의 트랜드였다.) 이영자와 출연했던 '보디가드' 패러디 극은 이를 보고 자란 세대에게는 꽤 유명하고, 이경규와 '지존무상' 패러디도 한 적 있다. 심지어 여기선 엉터리 광동어로 '모두 잠든 후에'를 부르기까지 한다.

  • 비트매니아 IIDXBMS 플레이어인지 과거 게임 매장에 비트콘을 사러 갔다가 예약이 걸려있는 물건을 따블을 불러서 가져왔다는 썰도 있다.
  • 코요태와의 인연이 상당한데, 보컬 신지가 김원준 팬클럽의 인천지부 회장이었다고 한다. 신지가 불후의 명곡 김원준 편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공식 인증하기도 했는데, 팬클럽 시절부터 서로 익히 아는 사이인지 김원준이 신지의 본명인 지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2005년에는 코요태 전 멤버 김구, 나비효과의 정한종, 강선우, 이창현과 '베일'이라는 밴드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래서 김원준, 신지, 김구는 셋이 서로 친분이 깊은데 다음과 같은 인간관계다.
    • 김원준 - 신지: 가수와 팬클럽 회장
    • 김원준 - 김구: 베일 멤버
    • 김구 - 신지: 코요태 멤버
  • 유리상자이세준의 배기성 말로는 "김원준은 왕자 기질이 있어서, 방송에 부르려면 PD가 삼고초려를 해야 마지못한 척 나온다."라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박승화는 "그런 애들은 말로도 안 되고 약으로도 안 되고, 좀 맞아야 정신차린다."라고...
  • 데뷔 초 일간 신문에 연재된 어린시절 회고를 보면 사실 의외로 굉장히 우울하다고 한다. 김원준의 유아기 때 놀이 상대는 오로지 강아지와 자전거였으며, 말도 없고 사람 살이 몸에 닿기만 해도 깜짝 놀랄 정도로 소심해서 주위 사람들이 자폐증 걱정까지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무척 엄하게 키웠다니... 그의 아버지가 용산구에서 개인병원을 하던 시절,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 하게 했으며 또 아버지 눈에 나는 행동을 하면 병원의 지하방에 감금당하기도 했다. 수술실 바로 옆에 있어서 어린아이에겐 음침하고 무서운 그 지하방에 12시간이나 감금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가정교육과 소심한 성격은 초등학교 진학 후에도 계속되어서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같이 놀았던 친구나 추억이 전혀 없다고... 중학생 즈음에야 겨우 외향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 그의 히트곡 SHOW가 삼성 라이온즈 4번타자 최형우의 응원곡으로 쓰였다가 2016년 말에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 응원가의 여파로 2013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에서 삼성을 응원한다고 했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지는 알 수 없다.
  • 1집인 'Wanna be sexy'의 인트로를 듣다보면 본인 주민번호가 나온다.
  • 2012년부터 실용음악과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동시에 학과장 직도 맡고 있다. # 학과장 인터뷰: 2014년 본교 블로그 #, 2018년 YouTube #
  • 2013년 5월 30일에는 부친상을 당했다.#
2016년 3월 8일, 14살 연하인 현직 검사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4월 16일 대검찰청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9개월 후인 2017년 1월 19일, 첫 딸을 낳아 아빠가 되었다.
  • TV 동물농장에 대학 강의실 돌며 사는 고양이가 소속 대학에 나온 터라 인터뷰 내용도 있다.
  • 뜻밖의 Q 5회에서 출제자로 나오면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 2020년 1월 31일 JTBC 슈가맨3 9화에서 희열팀 슈가맨으로 출연했으며 슈가송은 였다.
  • 한때 박용하, 박효신과 셋이서 술은 안 마시고 커피만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던 시절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1] 카더라, 루머, 카메라 투샷으로 인한 키 차이 착시 현상으로 인한 검증 되지 않은 발언은 논란만 부추기므로 지양하길 요망하며 프로필상의 키로 기재하는 게 맞다. 사람은 컨디션에 따라 잠 여부, 활동량에 따라 신발굽, 경사진 길 형태, 카메라 구도, 키 차이에 따른 오차가 있을 수 있다. [2] 변호사 시험 4회 검사[3] 가수 싸이의 중학교 선배라고 한다.[4] 그가 학교를 다녔을 땐 중대부고는 남학교였고 동작구에 있었다. 현재의 중앙대병원 위치이며 1990년대 말 중대부여고와 통합하면서 남녀공학으로 전환 후 강남구 도곡동으로 이전하였다.[5] TV 데뷔는 1992년 10월 18일 SBS-TV "쇼 서울서울" 에서 했다. 그 당시 소개멘트도 "쇼 서울서울의 새 식구입니다" / "쇼 서울서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친구입니다" / "쇼 서울서울의 새로운 기대주입니다"라고 할 정도였다.[6] 현재 강동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과장도 역임했었다.[7] 김기영씨로 산부인과 전문의. 어머니는 간호사로, 아버지가 인턴으로 일하던 병원의 간호사였다. 할아버지는 소아과 의사였으며, 고모부도 의사다.[8] 김원준의 이런 단기간의 데뷔 및 성공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류시원에게 연예계 입문의 결정적인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다.[9] 2020년 기준으로 정확히 28년 전인 1992년에 촬영된 영상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감상하자. 원색 위주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영상효과와 촌티나는 패션은 그 당시 X세대로 불리던 20대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행하던 최신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다.[10] 톱가수로 나오는 이영자를 간주 때 괴한이 무대 위로 올라가 총으로 위협하며 이영자를 인질로 삼는데 괴한의 총에 왼쪽 어깨를 맞음에도 불구하고 발차기로 괴한을 제압한뒤 육중한 이영자를 김원준이 업고 나가던 장면은 그야말로 큰 화제를 일으키며 김원준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이영자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립싱크로 부르며 김완선 따라잡기 댄스도 꽤 화제였다.[11] 김동률이 작사/작곡한 곡으로 김동률이 고교시절 TV에서 본 김원준의 가수 활동 모습을 보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12] 그래도 6집 타이틀곡인 '얄개시대'와 7집 타이틀곡인 '가까이', 8집 타이틀곡 '부탁'은 10위 안에 들었고 9집 타이틀곡인 <나인>도 중위권에 들면서 선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