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러브
시카고 불스의 70년대를 제리 슬로언과 함께 책임졌던 파워포워드.
왼손과 오른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던 드문 선수로 루이지애나의 작은 학교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NBA에는 4라운드 33픽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낮은 픽으로 겨우 입성할 수 있었다. 신시내티 로얄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러브는 EBL이라는 2군 리그에서 데뷔하게 되었고 이 곳에서 활약한 후에야 다시 NBA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뛰지 못하던 러브는 ABA와 NBA가 합병하면서 열린 확장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었는데 밀워키가 러브를 바로 시카고로 트레이드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장받게 된다.
제리 슬로언과 시카고를 74-75시즌 동부 컨퍼런스 1위까지 이끌었지만 파이널까지는 다다르지 못했고 뉴저지 네츠와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1시즌여를 더 뛴 후에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불스 프런트에 고용되어 시카고로 돌아왔다.
시카고 불스는 1978년 은퇴 이후 바로 제리 슬로언의 4번을 영구결번했지만 러브의 등번호는 오랫동안 영구결번하지 않아 10번을 달고 뛴 선수들은 몇 명 더 있었고 90년대 마이클 조던의 1차 쓰리핏 때는 BJ암스트롱이 10번을 달고 활약했다. 러브의 등번호는 1994년 영구결번되었다. 영구결번식은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열렸다.[1]
왼손과 오른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던 드문 선수로 루이지애나의 작은 학교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NBA에는 4라운드 33픽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낮은 픽으로 겨우 입성할 수 있었다. 신시내티 로얄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러브는 EBL이라는 2군 리그에서 데뷔하게 되었고 이 곳에서 활약한 후에야 다시 NBA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뛰지 못하던 러브는 ABA와 NBA가 합병하면서 열린 확장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었는데 밀워키가 러브를 바로 시카고로 트레이드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장받게 된다.
제리 슬로언과 시카고를 74-75시즌 동부 컨퍼런스 1위까지 이끌었지만 파이널까지는 다다르지 못했고 뉴저지 네츠와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1시즌여를 더 뛴 후에 은퇴했다. 은퇴 이후에는 불스 프런트에 고용되어 시카고로 돌아왔다.
시카고 불스는 1978년 은퇴 이후 바로 제리 슬로언의 4번을 영구결번했지만 러브의 등번호는 오랫동안 영구결번하지 않아 10번을 달고 뛴 선수들은 몇 명 더 있었고 90년대 마이클 조던의 1차 쓰리핏 때는 BJ암스트롱이 10번을 달고 활약했다. 러브의 등번호는 1994년 영구결번되었다. 영구결번식은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열렸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