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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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1141> '''시카고 불스'''
'''Chicago Bulls'''
'''창단'''
1966년 (58주년)
'''연고지'''
일리노이시카고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센트럴 디비전
'''연고지 변천'''
시카고 (1966년~현재)
'''구단명 변천'''
'''시카고 불스''' (1966년~현재)
'''홈구장'''
인터내셔널 엠피씨어터 (International Amphitheatre, 1966년~1967년)
시카고 스타디움 (Chicago Stadium, 1967년~1994년)[1]
'''유나이티드 센터''' (United Center, 1994년~현재)[2]
'''저지 스폰서'''
제니 옵티컬 (Zenni Optical)
'''구단주'''
제리 라인스도프 (Jerry Reinsdorf)
'''단장'''
마크 에버슬리 (Marc Eversley)
'''감독'''
빌리 도노반 (Billy Donovan)
'''G 리그 제휴'''
윈디 시티 불스 (Windy City Bulls)
'''로컬 경기 중계'''
NBC Sports Chicago[3]
'''약칭'''
'''CHI '''
'''홈페이지'''

'''공식 SNS'''

'''우승 기록'''
'''NBA 파이널 우승
(6회)
'''
'''1991, 1992, 1993, 1996, 1997, 1998'''
'''컨퍼런스 우승
(6회)
'''
1991, 1992, 1993, 1996, 1997, 1998
'''디비전 우승
(9회)
'''
1975, 1991, 1992, 1993, 1996, 1997, 1998, 2011, 2012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878''' - (1995-96시즌, 82경기 72승 10패)
'''최저 승률'''
'''.183''' - (2000-01시즌, 82경기 15승 67패)
'''최다 승'''
'''72승''' - (1995-96시즌, 82경기 72승 10패)
'''최다 패'''
'''67패''' - (2000-01시즌, 82경기 15승 67패)
'''최고 계약'''
'''$94,314,380''' - 2012년 데릭 로즈
'''팀 컬러 / 유니폼'''
[ 펼치기 · 접기 ]
'''팀컬러'''
적색 검은색 흰색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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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얼터네이트

1. 개요
2. 인트로 무비
3. 역사
3.1. 불스 이전의 시카고 농구
3.2. 초창기
3.3.1. 1996-97 시즌
3.3.2. 1997-98 시즌
3.4. 왕조의 해체, 암흑기
3.5. 리빌딩
3.6. 데릭 로즈의 시대
3.6.1. 2010-11 시즌
3.6.2. 2011-12 시즌
3.6.3. 2012-13 시즌
3.6.4. 2013-14 시즌
3.6.5. 2014-15 시즌
3.6.6. 2015-16 시즌
3.7. 리빌딩 어게인?
3.7.1. 2016-17 시즌
3.7.2. 2017-18 시즌, 굿바이 지미 버틀러
3.7.3. 2018-19 시즌
3.7.4. 2019-20 시즌
3.7.5. 2020-21 시즌
4. 이모저모
5. 최악의 짠돌이 프런트
6. 2020-21 시즌 선수단
7. 영구 결번
8. 역대 선수단
9. 역대 성적
10. G 리그 산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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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센트럴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시카고. 홈구장은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 팀 이름의 유래는 황소(Bull). 흔히들 시카고가 목축업의 중심지이기에 황소를 팀 상징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초대 구단주인 딕 클라인(1920~2000)이 "황소 같은 돌쇠 정신을 지닌 구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었다.
창단 초기에는 별 볼일 없는 성적에 인기도 없었으나, 1984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그 유명한 '''마이클 조던'''을 지명하면서 졸지에 인기팀이 되고 점차 강해졌다. 그리고 3년 연속 우승을 두 차례나 하며 왕조를 이뤘지만, 조던의 2차 은퇴 직후인 1998-99시즌부터 밑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후 2004-05시즌을 기점으로 리빌딩에 성공해 플레이오프에 계속해서 진출하게 되고 2010-11시즌 데릭 로즈의 각성 이후로는 꾸준한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군림하고 있었으나, 데릭 로즈가 나간 후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승 횟수는 조던 시대의 6회가 전부. 그런데 이게 NBA 전체 3위의 성적이다(...) 1, 2위인 보스턴 셀틱스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각각 여러번에 걸쳐 황금기를 가졌던 걸 생각하면 90년대 조던의 불스가 얼마나 사기급이었는지 짐작할만하다. 당시의 불스보다 한 시대에 더 많은 우승을 거머쥔 건 전설의 8연패를 한 60년대 보스턴 뿐이다.
조던이 데뷔한 해부터 은퇴할때까지 불스는 1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11년 연속 2라운드 이상 진출, 8년간 6번 우승, 3연패 두번, 역대 정규시즌 성적 (당시 기준) 1, 공동 2위, 공동 6위라는 말도 안되는 성적을 거두었는데, 역대 이렇게 단기간에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것은 앞서 언급된 8연패 셀틱스 뿐이었다. 게다가 이 때는 농구 초창기라 팀이 8팀이라 현재와 매우 다른 환경이었는데, 팀이 늘어나기 시작한 70년대부터 88년까지는 연속 우승팀조차 없었고, 불스가 3연패를 달성하기 전까지 24년이 걸렸다.
사실 아직도 연속 우승은 매우 어려운 업적으로 남아있는데, 2002년 레이커스 이후 아직까지 (2022시즌) 3연패 팀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후 17년동안 연속 우승을 달성한 팀은 세 팀 (09-10레이커스, 12-13 히트 17-18 워리어즈) 뿐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보스턴 셀틱스가 8연패를 달성했던 환경이 달랐다고 이들의 업적을 폄훼할 수는 없다. 당시는 팀이 적어 한 팀에 올스타 세네명씩 나오는게 보통이었는데, 포인트는 다들 똑같은 환경이었는데 러셀의 셀틱스만 유독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 윌트 체임벌린빌 러셀의 항목에도 나오지만 오히려 윌트가 더 좋은 환경과 동료들을 데리고도 러셀에게 진 적이 여러번 있다. 러셀은 매직 존슨이 얘기했듯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자"로 평가받는 선수이며, 조던만큼 높이 평가는 못 받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레전드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했듯이 당시와 리그가 거대화된 이후 농구는 환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1대1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기엔 연속 우승이 자주 나왔는데, 당대 최강센터 조지 마이칸이 NBA(당시는 BAA)에 합류한 1948-49시즈부터 바로 2년 연속 우승, 이후 준우승 한번 이후 3년 연속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기록을 보면 초창기엔 닉스가 3년 연속 동부 챔피언에 올랐다가 몇년 내 바닥을 기는 등 오르락내리락이 많다. 또한 포트웨인 피스톤즈는 바닥을 기다가 바로 2년 연속 서부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몇몇 팀들이 뛰는 소규모 리그였기 때문에 고만고만해서 한 팀이 잘하면 확 부각됐던 것. 물론 앞서 언급했다시피 러셀의 활동기에는 압도적인 괴물 체임벌린이 있었고, 러셀은 어떤 환경에서도 (단 한번 빼면) 그의 팀을 매번 이겼기 때문에 러셀의 업적을 폄훼할 수는 없다. 또한 60년대는 앞선 50년대와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때는 최고연봉자인 러셀과 윌트 체임벌린이 10만달러 연봉을 기록하는 등 엄연한 프로리그로서 자리 잡은 다음이기 때문. 그 전 시대에는 선수들이 연봉만으로 생활이 안되어서 다들 부업을 해야했고, 팀들도 막 생겨났다 없어졌다 이랬다. 예를 들어 1948년 우승한 볼티모어 불리츠는 10년도 못 채우고 사라졌다. 현재 있는 워싱턴 위저즈의 전신인 볼티모어 불리츠는 이름만 같을 뿐, 1960년대에 새롭게 창단한 완전히 다른 팀이다.
뉴욕 양키스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미국 구단 중 하나이나, 양키스처럼 꾸준한 성적은 내지 못하고 그저 그런 구단으로 다시 추락한 구단이기도 하다.[4]

2. 인트로 무비


홈경기 시 선수 소개 연출이 멋진 팀 중 하나이다.

'''“And Now, the starting line up for your Chicago Bulls!”'''

  • 2014-15 시즌부터 새롭게 바뀐 인트로 무비 : ##
  • 과거의 인트로 무비 (배경으로 쓰이는 음악은 Alan Parson's Project의 Sirius) : # ##
  • 1990년대부터 무비가 바뀌기 전까지 거의 전통적으로 포워드-포워드-센터-가드-가드 순서였으며, 앞에 소개되는 두 포워드들 중엔 더 실력이 좋은 쪽이 먼저,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두 가드들 중에는 실력이 더 좋은 쪽이 마지막으로 소개되는게 일반적이었다. [5] 불스의 2차 3연패 시기 때 소개 순서는 스카티 피펜-데니스 로드먼-룩 롱리-론 하퍼-마이클 조던 순서였으며, 처음 소개되는 포워드와 마지막 소개되는 가드는 From Central Arkansas, 6-7(피펜) 이런 식으로 출신지 먼저->키를 소개하고, 중간의 두 선수는 At six-six guard(하퍼) 이런 식으로 소개한다. 당연히 하일라이트는 조던의 소개. 원래는 From North Carolina!(늘어지게) Six-six! Michael! Jordan!이런 식으로 소개했으나 아나운서 분도 오래 하면서 요령이 늘었는지 2차 3연패 때는 더욱 맛깔스럽게 From North! Carrrrolina!하면서 소개했다. 대부분의 위키러들이 들어봤을 위키러는 이 톤. 여담이지만 센터는 "The man in the middle"(중앙에 서있는 남자란 듯이지만 The Man은 중요한 사람을 보통 뜻한다)란 멋진 소개멘트가 들어가지만 안타깝게도 이 멘트를 들은 센터들 중 제대로 된 실력자가 거의 없다...우연찮게도 불스의 에이스는 가드였던 적이 대부분이라 (조던, 커크 하인릭, 데릭 로즈, 지미 버틀러 등) 포워드-센터-가드 포맷이 계속 유지되었으나(사실 피펜이 독보적인 에이스이던 시절에도 이 포맷은 유지됐다. 애초에 에이스가 꼭 마지막에 소개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불스 왕조 해체 이후 전체 1순위인 유망주 엘튼 브랜드가 99-00 시즌을 앞두고 입단하자 파격적으로 순서를 바꿔 가드-가드-센터-포워드-포워드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마지막 소개되는 선수는 브랜드.

이때 라인업을 보면 랜드 브라운-허시 호킨스-윌 퍼듀-론 아테스트-브랜드인데, 90년대 농구를 좀 아는 사람이면 딱 감이 오겠지만 눈물이 앞을 가리는 라인업이다. 일단 호킨스는 한때 올스타까지 오른 실력자였지만 이때는 말년 중 말년이었고, 퍼듀는 전성기 실력도 백업급인데 말년이기까지 했다(...) 랜디 브라운은 딱 평범한 백업가드. 아테스트가 두각을 나타내는 건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였기에 믿을만한 건 브랜드 뿐. 이때문에 불스는 엘튼 브랜드가 무려 20점 10리바운드를 시즌 평균으로 냈음에도 바닥을 기었다.

3. 역사



3.1. 불스 이전의 시카고 농구


시카고 지역은 야구와 풋볼의 인기가 압도적인 곳이다. NBA 창설 이전에는 1925~1931년까지 시카고 브루인스(ABL)[6], 1944~1947년까지 시카고 아메리칸 기어스(NBL)[7]가 각각 있었지만 야구에 밀려 사라졌고, 1946-1947 BAA 시절 원년 시즌팀들 중 '''시카고 스태그스(Chicago Stags)'''[8]라는 팀이 있었지만 1950년에 같은 이유로 해체되었다. 홈구장은 시카고 스타디움으로 불스가 1994년까지 썼던 그 구장을 사용했다. 2005-06시즌 불스가 스태그스의 유니폼을 이벤트 형식으로 잠깐 입은 적이 있었다.
이후 1961년에 다시 '''시카고 패커스(Chicago Packers)'''[9]라는 팀이 창단되었지만 1962년 팀명을 '''시카고 제피어스(Chicago Zephyrs)'''로 바꾸었다가 1963년 볼티모어로 연고이전해 볼티모어 불리츠(현재의 워싱턴)가 되었다. 아메리칸 바스켓볼 리그라는 NBA의 경쟁리그에서 '''시카고 메이저스'''라는 팀이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존재했다.

3.2. 초창기


1966년 리그에 참가한 불스는 조니 "레드" 커 감독의[10] 지휘 하에 강력한 수비력으로 그럭저럭 리그의 다크호스 노릇을 하던 팀이었다. 창단 초기 선수는 제리 슬로언, 밥 부저, 래리 보우먼, 가이 로저스, 제리 워드, 짐 워싱턴, 조지 윌슨 등이었다.
1968년에 딕 모타 감독이 부임한 뒤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픽으로 테네시대 출신 센터 톰 보어윙클을 뽑고 밀워키 벅스에서 밥 러브를 샀으며, 1971년에는 신시내티 로열스에서 놈 밴 리어를 사는 등 차차 라인업을 갖췄다. 1973년에는 시카고 블랙호크스 구단주 아더 워츠가 구단을 인수했고, 1974년과 1975년에 두 차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밀워키 벅스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각각 패해 파이널에 진출하지 못했다.
1976년에 모타 감독이 워싱턴 불리츠로 떠난 뒤 초기 불스를 구축하던 멤버들도 나이를 먹고, 이제 은퇴할 무렵이 되면서 새로운 리더를 찾아야 했는데, 가장 좋은 기회였던 1979년 드래프트에서 1픽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그 해 나온 1픽은 바로 매직 존슨이었다.
대신 불스는 전체 2번픽으로 UCLA 출신 PF 데이빗 그린우드를 뽑아 아티스 길모어와 짝을 이룬 뒤 1981년에 올랜도 울릿지, 래리 키넌 등을 영입해 리빌딩에 전념코자 했으나, 1983/84 시즌까지는 플옵에 딱 한 번 나갈 정도의 약체로 전락했다. 거기에 구단의 재정도 빈약한 데다 졸속 행정이 횡행해 팬들도 점차 등을 돌려 NFL 팀 시카고 베어스와 MLB 팀 시카고 컵스를 찾았으며, 더러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가기도 했고, 심지어 드폴 대학교 농구부에게도 관중 동원력이 밀렸다.

3.3. 마이클 조던과 불스 왕조


그래도 망하라는 법은 없는지, 1978년부터 재임한 로드 쏜 단장은 1983년에 뉴저지 네츠 감독이던 케빈 로커리를 감독으로 맞이한 후, 1984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노스캐롤라이나대 출신 천재선수 '''마이클 조던'''을 지명했다. 1순위는 휴스턴 로케츠가 지명한 하킴 올라주원, 2순위는 두고두고 조던과 함께 세트로 묶이는 포틀랜드의 샘 보위다. 물론 당시 포틀랜드에는 이미 최상급 슈팅가드인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11] 그리고 불스는 센터를 뽑으려고 했는데 보위와 올라주원이 모두 뽑히자 당시 가드 중 최고유망주였던 조던을 선택했다. 실제로 당시 불스엔 올랜도 울릿지란 득점력이 좋은 포워드가 있었기 때문에 스코어러보다는 센터가 필요했다.
사실 조던이 대학 최고의 선수라곤 하나 원래 포지션 선호도에서 슈팅가드가 센터보다 훨씬 쳐지며, 당시엔 이게 훨씬 더 심했기 때문에 웬만한 팀들은 조던이 아닌 보위를 선택했을 것이다. 만약 당시 NCAA 우승을 한 대학 최고의 센터 패트릭 유잉이 졸업하라는 어머니의 바람을 저버리고 드래트에 나왔다면 휴스턴이 유잉을, 포틀랜드가 하킴을,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센터가 눈 앞에 온 불스는 얼씨구나하고 보위를 선택하고 폭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던을 뽑는 행운은 4순위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돌아갔을 것. 매버릭스가 원래 뽑은 샘 퍼킨스는 206cm에 불과해 프로에서 포워드 전환이 필수적인 선수였고, 조던보다 몇수 아래 선수였기 때문에 조던이 이때까지 남아있었다면 당연히 누구라도 조던을 뽑았을 것이다.
조던이 합류하자마자 첫 시즌부터 플옵 진출에 성공하여 전력이 상승해 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인기가 수직상승했지만, 보스턴 셀틱스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번번히 발목을 잡히며 파이널 목전에서 좌절했다. 특히 '배드 보이즈' 디트로이트는 조던을 더블, 트리플 팀은 기본에 아예 팀 전체가 덤벼들어 철저히 수비했고, 조던은 데뷔 초기 이들을 넘기 위해 고생을 해야 했다.
피스톤즈는 88년부터 90시즌까지 3년 연속으로 불스를 탈락시켰는데 이때 조던의 기록은 27.4점(야투 49.1%), 29.7점 (46%), 32.1점(46.7%)였다. 굉장한 기록이긴 하지만 이전까지 조던의 기록에 비하면 폭락수준으로 88시즌 당시 조던은 피스톤즈와 2라운드에서 붙기 전 1라운드 캐브스를 상대로 평균 '''45.2점'''(야투율 55.9%), 89년에는 1,2라운드 37.4점(야투율 53.4%), 90년에는 1,2라운드 '''40.2점'''(야투율 54.4%)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조던을 저렇게 막았으니 피스톤즈가 대단한 것. 어떻게 이렇게까지 집중수비가 가능했냐면 당시 불스엔 득점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88년 당시 피스톤즈 시리즈에서 팀내 득점 2,3위는 샘 빈센트와 호레이스 그랜트로 12.8점, 11.4점에 그쳤다. (빈센트는 야투율도 40%에 그쳤다) 89년에는 크레이그 하지스가 12점, 빌 카트라이트가 10.5점에 그쳤다. (피펜은 2번의 시리즈에서 모두 한 자리수 득점에 그쳤다) 90시즌엔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된 피펜이 그나마 16.6점을 올려주긴 했다.(야투율은 42.6%) 그러나 6차전까지 평균 19점을 올려주던 피펜은 7차전에서 원인불명의 편두통 증세를 호소하며 슛 10개 중 1개 성공하며 2점에 그쳤다. 조던이 31점을 기록하긴 했지만 나머지 주전 네명이 합쳐서 26점 넣고, 조던을 제외한 로스터의 10명이 평균 4.3점을 넣는 팀을 이끌고 승리하긴 역부족이었고 결국 패배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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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1985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주 제리 라인스도프가 팀을 샀고, 베테랑 스카우터 제리 크라우스를 단장으로 앉혔다. 크라우스 단장은 1987년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된 스카티 피펜[12] 트레이드 해 오고, 1라운드 10순위로 지명한 클렘슨 대학교 출신 호레이스 그랜트[13], 1988년에는 뉴욕 닉스의 주전이던 빌 카트라이트가 영입된 데 이어 1989년 이를 완벽하게 트라이앵글 오펜스로 조합한 명장 필 잭슨, 아이오와 대학교 출신인 B.J. 암스트롱의 가세로 완벽한 팀을 구축해 동부컨퍼런스의 강팀으로 도약하게 되어 90-91시즌 파이널에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꺾고 대망의 첫 우승을 차지한다. [14]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91-92시즌엔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92-93시즌엔 피닉스 선즈를 꺾고 우승하며 3연패를 이룩하게 된다.

92-93시즌 파이널 6차전에서 존 팩슨[15]의 클러치 3점슛이 백미로, 동영상 초반의 작전타임에서 존 팩슨은 마이클 조던에게 '너한테 수비가 몰릴테니 나는 오픈이 될거다. 그때 내게 패스해줘.' 라고 말했다. 경기가 재개되자 피닉스 선즈의 모든 선수들은 조던만을 바라보면서 수비를 펼치게 된다. 근데 조던이 직접 드리블을 통해 공격해들어올 것이란 예상과 달리 조던은 급작스럽게 피펜에게 패스, 피펜은 무리하게 스틸시도를 한 바클리를 가볍게 제치며 인사이드의 그랜트에게 패스. 이로 인해 피닉스의 모든 수비는 우왕좌왕 볼을 쫓게 되었고, 대니 에인지[16]가 팩슨을 버리고 인사이드로 쫓아간 상황에서 그랜트는 다시 오픈된 팩슨에게 패스를 내어준다.[17] 그리고는...[18]
  • 1993 파이널 6차전 존 팩슨의 버저비터 : ##
하지만 92-93시즌 종료 후 조던의 아버지가 괴한에게 총격을 받아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조던은 그 충격으로 첫번째 은퇴를 선언하며 야구선수로 전업하게 된다. 조던이 없는 93-94시즌, 불스는 스코티 피펜과 토니 쿠코치를 주축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단순한 플레이오프 진출이 아니라 55승으로 동부컨퍼런스 '''3위'''에 해당했으며(전 시즌보다 2승밖에 안 떨어졌다), 그 해에 결승에 진출한 닉스와 7차전 혈전을 펼쳤다.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조던이 없으면 플레이오프도 간당간당하다"고 혹평한 것에 비하면 정말 대건투한 셈. 세계 최고의 선수와 함께 한 것 때문에 은근히 과소평가받던 피펜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슈퍼스타로 인정받게 된다. [19]
아이러니하게 이때 너무 잘해서 오히려 피펜을 과대평가하고 조던을 과소평가하는 트렌드도 생겼는데, 1993-94시즌의 불스는 정규시즌 성적은 비슷할지언정 플옵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는 걸 간과해선 안된다. 1992-93시즌의 불스가 57승에 그친 것은 연속우승을 하면서 선수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주전 PG가 존 팩슨에서 BJ 암스트롱으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거치고, 조던의 도박 스캔들 등 여러 잡음에 시달린 것이 커서 정규시즌에 부진한 것이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예년처럼 강력한 모습을 자랑했다. 어떻게보면 플옵에서는 92시즌보다 더 강력해보이기도 했는데, 92플옵에는 1라운드를 가볍게 통과했으나 2라운드에서 한수 아래로 여겨지던 뉴욕 닉스에게 고전한 끝에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으며 (정작 7차전은 조던의 대괴수급 활약으로 쉽게 이겼지만), 동부 결승에서도 당대 최고의 PG 중 하나인 마크 프라이스, 엘리트 센터 브래드 도허티 등이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6차전까지 갔다. 그러나 93플옵에서는 동부 결승 상대였던 뉴욕 닉스한테만 좀 고전했을 뿐 (첫 두 경기를 패하고 4연승을 거둬 승리), 1,2라운드 모두 전승을 거둔다. 특히 2라운드에서 동부 강호 캐브스와 리턴 매치를 벌였는데, 나름 빅 이벤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4전 전승으로 끝났다. 홈에서 열린 3,4차전에서 캐브스는 거세게 이들을 밀어붙혔지만 역부족이었다.
특히 캐브스가 "조던 스타퍼"라는 특명을 띄고 야심차게 영입한 제럴드 윌킨스[20]가 조던에게 붙었지만, 이 특명이 무색하게 조던은 시리즈 평균 31점을 기록했으며 4차전에는 윌킨스 앞에서 게임위닝샷까지 적중시켰다. 다만 이 당시 조던의 플옵 성적(93년 플옵을 통틀어 평균 35.1점)을 생각하면 평균 31점을 내준건 나름 잘 막은게 맞긴 하다. 심지어 피닉스 선즈는 올-디펜스 세컨팀에 오른 1급 수비수 (수비력으로 NBA에서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소리이므로) 댄 멀리를 붙혔음에도 조던에게 평균 41점을 내줬다.] 그러나 94시즌에는 이와 반대로 세계최고의 선수를 잃고 나서 다들 불스를 끝장난 팀 취급하는 가운데 나머지 구성원들이 "우리가 조던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쩌리가 아니란 걸 보여주자"란 강력한 동기를 갖고 시즌에 임했으며,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 BJ 암스트롱이 한층 더 상장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특히 피펜은 이 때 MVP후보로 꼽혔으며, 그랜트와 암스트롱은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21] 1993-94시즌 종료 후 FA였던 호레이스 그랜트가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1994-95시즌 막판, 조던이 컴백. 조던 컴백 후 불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22], 2라운드에서 샤킬 오닐과 호레이스 그랜트가 있는 올랜도 매직에 포스트를 유린당해 2승 4패로 석패하고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불스가 적지에서 열린 1차전에서 선전하면서 거의 이길 뻔했는데, 종료 몇초전까지 불스가 1점차로 앞서고 있었는데, 조던이 공을 몰고오는 것을 닉 앤더슨이 기습적으로 스틸했고 페니 하더웨이가 이를 받아 그랜트에게 패스, 그가 덩크로 마무리하는 바람에 매직이 역전해버린다. 그 누구도 상상못했던, 아니 조던이라면 있을 수 없는 실수. 원래 불스는 피펜이 주로 드리블을 많이 하지만 경기 막판에는 볼 운반까지 조던이 담당하는데 1.마지막 슛은 조던이 항상 담당하는데 패스해주다 뺏기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2.조던 본인도 한 때 포인트가드를 볼만큼 드리블이 뛰어나고 중요한 상황에서는 실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건 야구 하던 18개월이란 공백이 뼈저리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고 마지막 공격 기회가 불스에게 있었는데 여기서 조던은 또 한번의 실수를 한다. 스스로 마지막 슛을 던지지 않고 피펜에게 패스를 했는데 피펜은 당연히 조던이 던질줄 알고 리바운드 참여를 위해 골밑으로 쇄도하다가 패스미스가 난 것. 결국 조던이 정말 어색하게도 경기막판에 혼자 말아드신 꼴이 됐다. 참고로 1차전의 아쉬운 패배에도 6차전까지 몰고간 만큼, 만약 이때 승리했다면 매직을 꺾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한참 밀리지만 올랜도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인만큼 전력은 강하지만, 불스 자신들이 95-96시즌에 몸소 증명해냈듯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겉잡을수 없이 무너지는 성향도 있어서...

파이널 진출에 실패한 불스는 원인을 포스트의 약점에서 찾았고, 이 와중에 샌안토니오 스퍼스로부터 데니스 로드맨을 데려오며[23] 결과론적으로 약점 없는 라인업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사실 당시에는 개사기 라인업 소리를 듣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로드맨은 분명 수준급 선수지만 올스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실력에 샌안토니오에서의 말썽으로 인해 그냥 성격 더러운 노장 리바운드 스페셜리스트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고, 이로 인해 분명 전년대비 수준급 파워포워드를 갖췄지만 그래도 여전히 센터는 약세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동부에 좋은 센터가 우글우글했던 당시로서는 크나큰 약점이었던 것. 심지어 포인트 가드는 사실상 없었고 피펜이 사실상 포인트 가드의 역할을 했다. 선발 PG자리에 출전하는 론 하퍼는 원래 슈팅가드였고 당시 부상으로 인해 득점력도 거의 잃은 상황. 게다가 전성기 시절에는 이를 상쇄해주고도 남았던 조던이 전년에 기력이 쇠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 터라 전년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좀... 정도의 분위기였다.[24]
하지만 조던, 피펜, 로드맨이라는 명예의 전당급 선수 3명[25]에 식스맨으로 득점력 좋은 장신 포워드 토니 쿠코치, 3점슛 스페셜리스트 스티브 커, 왕년에 평균 20점씩 올렸던 B+급 스윙맨으로 무릎수술로 득점력은 거의 죽었지만 수비력만큼은 살아있었던 론 하퍼, 등 확실한 롤 플레이어들이 조화를 이룬 이 라인업은 결국 NBA 역대 시즌 최다승인 72승[26]을 거두었고, 1996 NBA 파이널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만나 4승 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의 라인업의 성과를 살펴보면
물론 위에 언급한대로 선수들이 잘해서 결과적으로 보니 사기라인업으로 보이는 거지, 정말 슈퍼스타들급 선수들이 모인 팀[27]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단적인 예로 이때 조던-피펜-로드맨의 나이는 33세-31세-35세로 피펜을 빼고 노장소리 들을 만한 선수들이었다.[28]
72승 시즌 당시 불스의 인기는 그야말로 세계구 수준이라서 우리나라 스포츠 뉴스에서도 거의 매경기 결과를 보도했었고 어쩌다가 패배라도 하는 날엔 스포츠 뉴스 탑 내지는 두 번째 뉴스였다. 미국에서는 한술 더 떠서 구단 버스로 이동하는걸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생중계 했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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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어벤저스

3.3.1. 1996-97 시즌



1996-97시즌에도 승승장구하던 불스는 또 한번의 70승 시즌을 노려봤으나 69승을 거둔 상태에서 맞붙은 동부의 두 강자 마이애미 히트와 뉴욕(각각 시카고에 이어 동부 2,3위를 달리던 강팀이었다) 연달아 패배하며 70승 문턱에서 좌절한다. 그러나 이때 불스가 거둔 69승은 72년 레이커스와 더불어 역대 공동 3위의 고승률이다.[29]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불스는 1라운드에서 떠오르는 신예 크리스 웨버와 주완 하워드가 이끄는 워싱턴 불리츠를 3승으로 스윕해버리고[30]
애틀란타를 4승1패, 역사상 최초로 60승 문턱을 넘은 마이애미 히트조차 동부결승에서 4승1패로 따돌리며[31] 1997 NBA 파이널에 진출한다. NBA 파이널 상대는 클라이드 드렉슬러-찰스 바클리-하킴 올라주원의 명예의 전당 트리오가 버티는 휴스턴 로케츠를 6차전만에 꺾고 올라온 유타 재즈. 불스는 시카고에서 열린 첫 두 경기를 잡아버리지만 유타 원정에서 2연패를 당하며 위기에 몰린다. 심지어 5차전을 앞두고 마이클 조던이 식중독에 걸려 엄청난 고열과 설사 및 구토에 시달리고 있었다.[32] 그러나 조던은 눈에 띄게 무거워진 몸[33]에도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 승부를 결정짓는 3점슛을 포함해 38점을 득점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다.
이어진 6차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동점 상황에서 조던이 더블팀이 올 것을 예측해 스티브 커에게 패스를 빼주었고, 커가 이를 적중시킨다.[34]( 이어 재즈의 인바운드 패스를 피펜이 스틸하고 이를 쿠코치가 덩크로 연결시키며 불스는 승리를 거둔다.
복귀 이후 다른 시즌에 비해 양이 적은데 타 시즌에 비해 이야기 거리가 적은 시즌이었다. 팀 성적도 69승으로 불스 역사상 2번째이고 우승도 했지만, 워낙 95/96시즌이 올랜도 매직에 대한 복수전, 최다승 등 이슈들이 많았고 97/98시즌은 불스왕조 마지막 해와 페이서스와의 접전 시리즈가 매우 유명하기에 상대적으로 96/97시즌이 무난한 감이 없지는 않다.[35]

3.3.2. 1997-98 시즌



이어진 1997-98시즌. 감독인 필 잭슨스카티 피펜은 단장인 제리 크라우스와 계약 문제를 놓고 계속 갈등을 겪었고 (자세한 상황은 각 항목 참조) 조던-피펜-로드맨은 각각 만 35세-33세-37의 노장이 되면서 팀원들과 팬들,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번이 마지막이다"란 느낌이 강하게 드는 시즌이었다. 실제로 잭슨이 시즌 개막 전에 팀원들에게 나눠준 책자에 "Last Dance"라고 적혀있었을 정도.[36] 특히 잭슨과 크라우스의 갈등은 극에 달해 크라우스가 "잭슨이 82승0패를 해도 재계약 안한다"고 면전에 대고 고함을 지를 정도였다.
시즌 초반, 피펜을 부상으로 잃은 불스는 한때 5할을 겨우 넘길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리그 개막전에서 당시 하위팀 셀틱스 원정경기를 패하면서 시작했고, 무엇보다 피펜이 빠진 상황 만 35세 조던의 부담이 가중되었다. 은퇴 복귀 이후에도 50%에 가깝던 필드골이 45%수준으로 감소했으며 3점슛도 95/96시즌 40%, 96/97시즌 36%에서 20% 초중반으로 크게 감소했다. 당시 불스 로스터에서 쿠코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공격력은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나 곧 조던을 중심으로 제 정신을 차린 불스는 승승장구하며 피펜의 복귀 전까지 이전의 위력을 찾는데 성공한다. 피펜의 복귀로 불스는 후반에 13연승을 달리기도 하는 등 초반에 까먹은 승률을 회복하며 62승을 거둔다. 지금이야 최종성적만 보고 당시 시즌을 평가하니 지난 시즌에 비해 고작 7승 떨어졌다고 볼 수 있으나, 당시 초반 불스상황은 17/18 클리블랜드 초반 상황만큼이나 답이 안 나오던 시기였다.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조던이 팀이 이끌고 초반 40경기 결장 이후 복귀한 피펜이 복귀하자 쿠코치 벤치로 내려가고 48분간 팀 전력을 유지하는 기존의 불스로 되돌아 왔고 기어코 페이서스, 히트를 물리치고 동부 1위를 차지 했다.
유타 재즈와 전체 공동 1위(62승20패)에 해당하는 승률이었지만, 유타와 맞붙은 정규시즌 두 경기를 모두 패배하며 규정상 유타에게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뺏긴다.
뒤이은 플레이오프에서 불스는 신예 키스 밴 혼, 케리 키틀즈 등이 이끄는 뉴져지 네츠와 붙는다. 1차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서 조던이 막판에 결정적인 스틸에 이은 덩크슛을 꽂아넣는 활약 덕분에 승리하고, 나머지 두 경기도 승리하며 2라운드에 오른다. 상대는 불스 소속으로 올스타까지 올랐던 베테랑 B.J. 암스트롱과 리그 최고의 슈터 중 하나인 글렌 라이스, 준올스타급 센터 블라디 디바치 등이 이끄는 샬럿 호네츠. 1차전에서 불스는 무난히 승리하지만 2차전에서는 전 동료 암스트롱이 꽂아넣은 위닝샷에 홈에서 2점차 석패를 하고 만다. 절치부심하고 샬럿으로 자리를 옮긴 불스는 나머지 3,4차전, 그리고 홈에서 열린 5차전을 싹쓸이하며 (그 와중에 조던과 라이스가 약간의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승리.
동부지구 결승 상대는 보스턴 셀틱스의 전설이자 인디애나 토박이인 래리 버드 감독과 역대 최고의 슈터 중 하나인 레지 밀러, 포스트업이 일품인 포인트가드 마크 잭슨 등이 이끄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였다. 이때 시카고의 필 잭슨 감독은 스몰포워드인 피펜을 잭슨에게 붙히는 승부수를 둔다. 잭슨은 PG치고 큰 덩치와 강한 힘으로 상대 PG들을 포스트업으로 괴롭혔지만 스피드는 매우 느렸는데, 이를 간파하고 잭슨보다 10cm 이상 큰 피펜을 붙여버린 것이다. (사실 이때 불스의 PG는 잭슨보다 훨씬 큰 론 하퍼라 어차피 이게 안 통했을 것이다) 결국 잭슨이 턴오버를 연발하면서 시카고는 첫 두 경기를 잡는다.
그러나 인디애나로 무대를 옮겨간 3,4차전에서는 페이서스가 2연승을 거둔다. 특히 4차전에서는 밀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플레이 중 하나가 나왔는데, 이때 밀러는 자신의 마크맨인 론 하퍼를 스크린으로 떼어버리고 수비 커버하러 들어온 마이클 조던을 대놓고 밀어버리고[37] 공을 잡아 삼점슛을 성공시켜 역전승을 거둔다. 이때 전 경기장이 환호하며 난리치는 가운데 감독인 래리 버드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표정도 안 변한채 조용히 남은 시간을 확인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역 시절 역대 최고의 클러치 슈터였던 버드인만큼, 기절할만큼 극적인 상황에서도 전혀 동요되지 않고 남은 경우의 수를 확인하고 다음 수를 계산한 것. 실제로 2초가 남은 상황에서 불스는 겨우 조던에게 공을 넘겼고, 클러치 대마왕으로 유명한 조던은 위에서 달려드는 수비수의 블럭을 공중에서 제치고 더블클러치 삼점슛(...)을 던졌는데 이게 거의 들어갈 뻔하다가 림을 돌아 나왔다.
다음 5,6차전을 시카고와 인디애나가 각각 잡으면서 결국 불스는 94년 이후 처음으로 7차전을 치르게 된다. 경기를 앞두고 조던은 "우리가 7차전에서 승리할 거요"라고 기자회견에서 장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조던은 슈팅난조에 시달리고 불스는 4쿼터를 지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커는 훗날 이 경기에 대해 회상하면서 "아 이제 진짜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슛 11개 중 7개를 성공시키며 21점을 넣은 토니 쿠코치의 맹활약, 슛은 안 들어가지만 돌파를 계속하며 자유투를 얻어내면서 28점 9리바운드 8어시스트[38]를 곁들이면서 공헌한 조던, 불스가 처음으로 리드를 잡는 3점슛을 성공시킨 커 등의 활약으로 불스는 5점차 진땀승을 거둔다. 2인자 피펜은 비록 조던보다 더한 슛난조에 시달렸지만 수비와 리바운드(12개)로 공헌했고, 조던과 피펜은 공격리바운드를 무려 5,6개씩 잡아내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이 시리즈에서는 주로 하퍼가 밀러를 막았는데, 조던은 이 경기 4쿼터에 밀러를 전담마크하며 큰 경기에 강하기로 유명한 밀러가 4쿼터 무득점에 그치도록 했다.
조던이 첫우승을 차지한 90/91시즌 부터 97/98시즌 까지 가장 치열했고 탈락할 수 도 있다는 느낌을 준 유일한 시리즈가 바로 1998년 동부 결승전 이었다. 그만큼 페이서스의 전력이 매우 강했고 조던 만큼이나 강한 승부사인 버드, 밀러가 주는 영향력도 대단했던 대결이였다.
그리고 1998 NBA 파이널에 진출하게 되고, 6차전에서 터진 더 라스트 샷으로 유일 무이한 2번의 3-peat을 성공하게 된다. 모든 NBA, 농구팬들이 추억하는 그야말로 전설의 시대. 조던과 1990년대 왕조를 통해, 시카고 불스는 그럭저럭 인기있는 지역팀에서 전세계 차원의 인기를 자랑하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여담으로, ''''조던이 은퇴하지 않았다면 8연패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건 미국이든 한국이든 팬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떡밥 중 하나이다. 진지하게 따져보자면 전력을 그대로 보유한 94년이라면 몰라도 빌 카트라이트, 호레이스 그랜트의 이적[39]으로 골밑이 말 그대로 뻥 뚫린 95년은 힘들지 않겠냐는 분석이 많다.
다만 조던이 역대 최고의 선수로서 불리한 상황에서 팀을 승리로 이끈 적이 여러번이라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사실 조던이 야구하다 돌아와서 어리버리하던 95년에도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한 올랜도 매직을 적지에서 맞은 1차전에서 거의 이길 뻔 하기도 했고, 6차전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 게다가 조던이 은퇴하지 않았었다면 95년에도 불스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기 때문에 그랜트가 굳이 이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건 가정에 불과하고 재미삼아 하는 얘기기 때문에 진지하게 듣고 열불 낼 필요없이 가볍게 생각하고 얘기하면 그만이다.

3.4. 왕조의 해체, 암흑기


1997-98시즌이 끝나고, NBA 직장폐쇄가 일어났다. 이 와중에 두 번의 3연패를 이끌었던 필 잭슨 감독이 사임하고, 조던 역시 두번째 은퇴를 선언했다.[40] 그리고 로드맨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피펜휴스턴 로키츠로, 스티브 커샌안토니오 스퍼스로, 룩 롱리피닉스 선즈로 이적하며 팀은 재창단했다고 해도 믿을 지경[41]으로 개박살 나고 말았다.
사실 97-98시즌부터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97년 오프시즌에 단장 제리 크라우스는 감독 필 잭슨과 갈등이 극에 달해 크라우스는 언론에 "이번 시즌이 필의 마지막이다"라고 하고 다닐 정도였고,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도 이를 묵인했다.[42] 또한 데니스 로드맨과도 오프시즌이 끝나기 직전에 계약하는 등 팀 케미스트리가 한계에 달했다. 결국 아슬아슬하던 팀 케미스트리는 조던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던 잭슨 감독이 떠나면서 와르르 무너졌고, 조던의 은퇴를 시작으로 피펜의 이적, 로드맨의 재계약 불발 등이 이어지면서 전 시즌 우승 스쿼드 중 론 하퍼, 토니 쿠코치, 디키 심킨스, 빌 웨닝턴, 랜디 브라운, 러스티 라루까지 단 6명만 남게 된다.
심지어 저 중 주전인 하퍼와 주전급이었던 쿠코치를 제외하면 전부 잉여 전력에 가까웠다.[43] 결국 나머지 스쿼드는 서둘러 모은 롤플레이어들로 메워야했는데, 클리퍼스와 히트에서 벤치플레이어였던 브렌트 베리, 불스 왕조의 붙박이 벤치였던 브라운, 위에 언급된 심킨스 등 커리어 내내 이름이 없던 선수들이 중용되었다. 왕조 해체 이후 첫홈경기(단축시즌이라 2월이다)에서 주전 라인업 소개를 보면, 하퍼와 쿠코치, 그나마 이름을 알린 브렌트를 제외하면 90년대 농구 광팬들도 전혀 모를 선수들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5e3IBQZF1g&t=258s 당연히 성적도 처참해서 98년 NBA직장폐쇄의 여파로 50게임으로 단축시즌을 운영했던 1998-99시즌에 13승 37패, 동부 꼴찌에 그치고 만다.
99년 드래프트에선 전체 1순위로 엘튼 브랜드, 16순위로 론 아테스트를 영입했고, 브랜드는 명성에 걸맞게 루키임에도 평균 20.1점 10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아테스트도 신인치고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팀 성적은 17승 65패에 그쳤다. 불스 1차 3연패 멤버이던 BJ 암스트롱과 윌 퍼듀를 영입하기도 했으나, 둘 다 은퇴 직전의 노장들이라 별 임팩트는 없었다. 이 시즌을 기점으로 불스는 왕조 시절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졌는데, 99시즌 종료 후 은퇴를 고민하던 하퍼는 필 잭슨의 부름을 받아 LA레이커스로 이적했고[44], 쿠코치는 시즌 중에 필라델피아로 1라운드 지명권, 래리 휴즈, 존 스탁스 등이 끼인 대형 3각 트레이드를 통해 필라델피아 76ers로 이적했으며[45], 브라운은 시즌 종료 후 보스턴과 계약, 웨닝턴은 시즌 전에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 암스트롱은 시즌 이후 은퇴, 퍼듀는 시즌 이후 방출되었고, 심킨스와 라루 둘 다 재계약하지 못하고 해외로 떠났다.
이 때 불스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는 연봉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은퇴 직전의 롤플레이어들인 퍼듀, 허시 호킨스가 연봉 1,2위이고 (트래이드 직후 방출된 존 스탁스를 빼면) 루키 계약인 엘튼 브래드가 그 다음이다. 팀 전체에서 500만 달러 이상 받는 선수가 단 한 명, 그것도 15분 뛰는 은퇴 직전 노장이란 말. 결국 1999-00시즌 17승 65패로 동부컨퍼런스 압도적 꼴찌. 2000-01시즌은 더 한심해서 전년도 대비 2패를 더 하고 만다.
신인 지명 및 육성에도 참으로 인연이 없었는데, 이 와중에 2001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에 지명된 고졸 출신 타이슨 챈들러를 데려오기 위해 엘튼 브랜드를 팔아먹는 실책을 저지른다.[46] 그외에도 당시의 불스는 브래드 밀러, 론 아테스트 등의 유망주들을 제대로 키우지도 않고 타 팀에 조공하다시피 했다. 또한 트레이드해온 타이슨 챈들러와 직접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에디 커리를 키우려고 그야말로 발악을 했지만[47] 둘이 상성이 좋지 못했던 것인지, 챈들러가 잘하면 커리가 죽쑤고, 커리가 잘하면 챈들러가 죽 쑤는 등 시너지 효과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다가 2005-06시즌 종료 후 둘 다 트레이드 된다.
그리고 2002년 2픽으로 뽑은[48] 팀의 유망주 포인트 가드였던 제이 윌리엄스가 단 한 시즌만에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엄청나게 큰 부상을 입으면서 사실상 재기불가능 상태[49]가 되는 등, 신인과는 인연이 정말 더럽게 없었다.[50]
2001-02시즌에는 21승이나 거두게 되지만 성적은 동부컨퍼런스 전체 꼴찌. 2002-03시즌엔 그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이며 30승 52패로 시즌 종료. 이 와중에 팀 플로이드 감독이 해임되고, 첫번째 3연패 주역이었던 빌 카트라이트가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게 된다.
하지만, 2003-04시즌 빌 카트라이트는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당시 불스 선수들에게 가르치려 했으나, 전술 이해도가 떨어지는 젊은 선수들과 베테랑들의 출전 시간 배분 문제로 인해 다시금 팀 케미스트리가 개판이 되고 말았다. 당시 불스 소속이었던 제일린 로즈는 빌 카트라이트 감독에게 어째서 자신이 20분 밖에 뛰지 못하냐며 대놓고 항명했다. 결국 로즈는 팀 케미스트리 개선 차원에서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스카티 피펜이 이 시즌에 잠시 시카고 불스로 복귀해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최종 성적은 23승 59패로 전년 대비 -7승.
이쯤 성적을 한번 보면,
  • 1998-99시즌부터 2003-04시즌까지 동부 전체 15-15-15-15-12-14위.
  • 1998-99 ~ 2001-02시즌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 2003-04 시즌엔 센트럴 디비전 꼴찌.

3.5. 리빌딩


이미 2003년 드래프트에서 7순위로 캔자스대 출신 PG 커크 하인릭을 지명하며 성공을 거둔 팀은 크라우스 대신 불스 왕조 1기 멤버이던 존 팩슨을 단장으로 임명하고, 현역 시절 올랜도 매직에서 뛰었던 스캇 스카일스를 감독으로 임명하며 리빌딩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2004년 드래프트에서 벤 고든 - 루올 뎅 - 크리스 듀혼 등 유망한 신인들을 영입한 뒤, 트레이드 시장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 출신 안드레스 노시오니도 영입했다. 이에 따라 2004-05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2005-06시즌 종료 후에는 시너지 효과를 전혀 내지 못하던 타이슨 챈들러와 에디 커리를 각각 뉴올리언즈 호네츠와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했고, 벤 월러스를 FA로 사들여 본격적으로 새 판 짜기에 돌입했다.
결과적으로 2006-07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 이쯤 되면 나름대로 리빌딩에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했지만, 스카일스 감독의 단조로운 공격전술, 포인트가드 배분 문제 등 아직 완전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2007-08시즌엔 스캇 스카일스 감독이 해임되는 등 어수선한 시즌을 보내며 최종성적 33승 49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시카고의 로컬보이인 멤피스대 1학년생 데릭 로즈를 1라운드 1순위로 픽하였다. 이 당시 불스의 1순위 픽은 그야말로 로또 당첨이었는데, 1순위 당첨 확률은 고작 '''1.7%'''였다. 그 확률을 뚫고 팀의 중심을 얻은 것이었다. 신임 감독으로 과거 샌안토니오 스퍼스 선수 출신 비니 델 니그로를[51] 임명, 2008-09시즌 최종성적 41승 4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상대는 2007-08시즌 우승팀 보스턴 셀틱스. 셀틱스가 발라버리고 2라운드에 곧바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았지만[52], 불스는 시리즈를 3승 3패까지 끌고 갔다. 결국 역부족으로 마지막 게임에 패배했지만.
2008-09 시즌 종료 후 벤 고든을 FA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뺏기고, 노시오니도 새크라멘토 킹스로 떠났다. 그래도 2009-10시즌도 기어이 플레이오프에 동부컨퍼런스 8번 시드로 진출했다. 그러나 상대는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결국 1승 4패로 탈락했다.
시즌 종료 후 베테랑 커크 하인리히를 워싱턴에 트레이드해서 자유 이적 영입금을 마련하고, 르브론 제임스나 시카고출신인 드웨인 웨이드 같은 FA대어들을 노리는 의사를 보였다. 일단 카를로스 부저를 5년간 8000만달러(추정 금액)로 영입하는데 성공. 그러나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조 존슨 같은 특급 스윙맨들을 놓치면서 약간은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대신 이사진과 선수들에게 신임을 잃은 델 니그로 감독이 잘리고, 2007-08시즌 우승을 차지한 보스턴 셀틱스의 수비 전담 코치였던 톰 티보도 감독이 선임됨으로써 불완전하게나마 리빌딩은 일단락되었다.

3.6. 데릭 로즈의 시대



3.6.1. 2010-11 시즌


어느정도 쏠쏠한 영입들이 있었고 조아킴 노아데릭 로즈는 점점 성장하고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주축선수들의 장기부상같은 불행이 없다면 플레이오프 막차를 탔던 2009-10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였다. 하지만 주전 3번 루올 뎅의 유리몸끼, 그외 2, 3번 진영의 퀄리티, 훌륭한 코치였지만 감독으로는 초보인 톰 티보도, 그리고 몇몇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강해진 동부 컨퍼런스의 팀들같은 불안요소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봐야 동부의 영원한 강자 보스턴 셀틱스나 최강의 센터 드와이트 하워드올랜도 매직, FA시장 최고의 승리자인 마이애미 히트에는 못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시즌 개막후 좋은 모습으로 동부 3위에 랭크됐지만 보스턴 셀틱스마이애미 히트를 제치고 더 위로 올라가기는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시즌 초반부터 엄청나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 데릭 로즈가 시즌 중반에 들어서더니 완전히 미쳐버렸다. 팀의 주전 4, 5번인 카를로스 부저와 조아킴 노아가 번갈아가며 부상을 입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매경기 맹활약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며 MVP 후보 1순위로 평가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 후반기 다른 최상위권팀들이 부진한 것에 반해 계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결국 조던 시대 이후 처음으로 전체 1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팀성적을 이끈 톰 티보도 감독은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고 '''데릭 로즈는 결국 NBA 역사상 최연소 정규시즌 MVP가 되었다.'''[53] 팀 수비의 핵심중 한명인 루올 뎅도 올해 NBA 디펜시브팀에 들어가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규시즌 1위지만 아직 플레이오프 첫 라운드를 통과한 경험이 없는 너무 젊은 팀이고, 팀의 주축인 데릭 로즈와 카를로스 부저가 부상으로 컨디션이 100%가 아니다. 그러나 2011 플레이오프에서는 또다른 젊은 팀인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치열한 승부 끝에 4-1로 제치고 두번째 라운드에서 애틀란타 호크스도 4-2로 탈락시킨 후,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마이애미 히트와 맞붙게 되었다.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에서 마지막으로 뛰었던 97-98시즌 이후 13년만에 오른 동부 결승이다!
하지만 르브론 제임스가 활약한 마이애미 히트에게 4승 1패로 파이널 결승 진출을 넘겨야 했다.

3.6.2. 2011-12 시즌


2011-12시즌에는 슈팅 가드 리차드 해밀튼이 합류, 빈약한 2번 포지션에 충분한 보강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고, 주전 스몰포워드 루올 뎅 또한 손목 부상을 안고 플레이했으며, 팀의 핵심 데릭 로즈마저도 여러가지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많은 경기를 결장했다. 하지만 오메르 아식, 타지 깁슨, 로니 브루어, 카일 코버, C.J. 왓슨 등 벤치 멤버들의 엄청난 활약, 티보도 감독의 짠물수비전략이 완전히 만개하여 정규시즌 전체 1위를 다시 따내고야 만다! 한동안은 '로즈 무용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으니... 특히 3번째 포인트가드 존 루카스는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등 불스는 이래저래 드라마틱한 승리를 많이 거두었다.(보고 싶으신 분들은 2012년 3/14일 경기를 찾아보자.)
시즌 말미에 데릭 로즈를 포함, 멤버 전원이 모두 컨디션을 회복했기 때문에 2012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했으나... 1라운드 필라델피아와의 1차전부터 데릭 로즈가 전방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급격하게 대권 전망은 흐려지고 당장 업셋을 걱정해야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아니나 다를까, 센터 조아킴 노아 마저 발목이 심하게 꺾이면서 아웃, 공수의 두 핵심선수를 잃어버린 불스는 2-4 패배로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2012년 여름, 데릭 로즈의 장기간에 걸친 부상에 더불어, 노아, 부저, 뎅, 로즈의 고액계약으로 인해 팀 샐러리가 한계치에 다다름에 따라 상당히 많은 트레이드로 팀 로스터를 변화시켰다.
일단, 노아의 백업 센터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터키 출신 오메르 아식을 휴스턴으로 보냈고, 3점 스페셜리스트 카일 코버와 백업 백코트진 C.J. 왓슨, 로니 브루어와도 결별, 11-12시즌동안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벤치 깡패들(Bench Mob)'을 완전히 해체시켰다.

3.6.3. 2012-13 시즌


2012-13시즌, 불스는 2012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9픽으로 포인트가드 마퀴스 티그(애틀랜타 호크스의 가드 제프 티그의 동생)를 픽하고, 해체된 벤치 깡패들의 빈자리를 커크 하인릭, 마르코 벨리넬리, 네이트 로빈슨, 나지 모하메드,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로 채워놓았다. 샐러리문제로 지난 시즌보다 (특히 수비 측면에서) 무게감이 떨어지는 구성이었지만, 특유의 끈끈한 경기스타일과 티보도 감독의 용병술로 로즈의 빈자리를 잘 메꿔주면서 동부 5위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특히 카를로스 부저 , 네이트 로빈슨의 활약, 소포모어 지미 버틀러의 성장이 눈에 띄는 점. 다만 티보도 감독의 출장시간관리가 또 선수들의 내구성문제로 연결, 많은 선수들이 잔 부상을 당한 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3 플레이오프에서는 1라운드에서 브루클린 네츠를 맞아 시리즈스코어 4-3으로 2라운드 진출 . 특히 4월 27일에 열린 4차전은 무려 3차연장까지 가는 명승부였는데, 네이트 로빈슨과 조 존슨의 클러치대결이 압권이었던 경기였다. 컨퍼런스 준결승에서는 이미 밀워키를 상대로 시원하게 스윕을 하고 올라온 마이애미 히트와 대결, 1차전은 승리했지만, 내리 4연패를 당하면서 이번 시즌의 모든 일정은 종료됐다.
특히 2013 플레이오프에서 불스가 인상적인 모습을 많이 남겼는데, 앞서 말한 대로 플레이오프 시작부터 진행하는 내내 선수들의 잔부상에 시달려왔다. 조아킴 노아는 족저근막염을 앓으면서도 경기에 출장, 리처드 해밀튼은 몇번의 부상 이후 폼을 회복하지 못했으며, 커크 하인릭은 위에 기술했던 네츠와의 경기 이후 다리 타박상이 심해서 이후 경기에는 출장할 수 없었다. 거기에 루올 뎅이 뇌수막염 의심증상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이후 심한 후유증 때문에 체중이 7~8kg 가까이 빠져버리는 통에 히트와의 시리즈에는 나올 수 조차 없었다. 네츠와의 시리즈 중반부터 팀이 7~8인 로스터로 근근히 운영됐었던 상황.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디펜딩 챔피언 히트를 상대로 첫 경기에서 대폭발 후 사라져가는 모습이 흡사 모 고교 를 연상시켰다는 반응이 많다. 다만, 너무 헝그리했는지 거친 파울이 자주 나오는 등 위험한 플레이에 대한 지적도 뒤따랐고, 일부 여론에서는 팀이 이지경인데도 복귀하지 않은 슈퍼스타 데릭 로즈에 대한 비난이 일기도 했다.

3.6.4. 2013-14 시즌


2013-14시즌, 드디어 데릭 로즈가 복귀했으나, 시즌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무릎 반월판 부상으로 다시 장기간 아웃됐으며, 지난 시즌 로즈의 빈 자리를 잘 메꿔줬던 백코트진, 마르코 벨리넬리와 네이트 로빈슨이 각각 샌 안토니오와 덴버로 떠났고, 그 빈자리는 벅스에서 온 스몰포워드 마이크 던리비 주니어와 2013 드래프티 토니 스넬과 에릭 머피가 채웠다. 최근 몇 년간의 멤버중에서 가장 빈약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도 주전 선수들의 잔부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나 완전히 시즌 아웃된 로즈와 잔부상으로 꾸준한 출장을 하지 못하는 커크 하인릭으로 인해 1번 포지션이 완전히 붕괴. 결국 2013년 12월 토론토에서 웨이브당한 D.J. 어거스틴을 영입함으로써 빈자리를 메꾸었다. 이 시즌 완벽한 라인업으로 스타팅을 끊은적이 초반 몇 경기 이후 거의 없을 정도로 로스터가 부상병동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순위도 급 추락, 2013년 12월 24일 기준으로 동부 9위에 랭크되어있다. 불스의 몇몇 팬들은 스퍼스의 선례(로빈슨의 시즌 아웃->팀 던컨 픽->우승!)를 들어 차라리 탱킹으로 2014년 드래프트를 노리는게 어떻겠냐라고도 하지만, 이 시즌의 극심한 서고동저 현상으로 이마저도 쉽지가 않은 상황이다.
결국 2014년 1월 7일 2004년부터 묵묵히 불스를 지켜온 스몰포워드 루올 뎅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앤드류 바이넘과 트레이드(바이넘은 트레이드 후 바로 방출-구단의 입장에선 거액의 사치세를 절감했다)시키면서 사실상 리빌딩 선언을 하게 된다. (이 외에도 마퀴스 티그를 브루클린의 솅겔리아와 트레이드, 마이크 제임스 와의 FA 계약이 진행되었다.)불스 팬들이나 여타 NBA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팀의 탱킹을 예상했으나 이게 웬걸, 2014년 4월까지도 5할 승률을 유지하면서 동부 4위에 자리잡았다. 원인은 건재한 프론트코트와, 그리고 이번 시즌에도 다시금 발휘된 주워 쓰기 능력. 방출된 플레이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D.J. 어거스틴의 준수한 플레이가 공격시 나름의 활로를 뚫어주고 있다. 톰 티보도 감독 또한 슈퍼스타가 누워버리든, 팀 내 프랜차이저가 떠나든 주어진 카드만 가지고도 게임을 만들어내는 신기에 가까운 용병술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이럴 거면 왜 뎅을 보냈는냐며 아쉬워하는 팬들도 나오고 있다.
최종 성적은 48승 34패(.585)로 토론토 랩터스와 동률이었지만 상대전적 부족으로 동부 4위로 진출해, 5위인 워싱턴 위저즈와 붙게 되었다.
하지만 티보도 감독이 보여주었던 신기에 가까운 용병술이 위저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고, 노아와 하인릭은 수비에선 좋았지만 공격에선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버렸으며 많은 선수들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자유투 및 슛 난조력을 보이면서 답답한 공격력을 보이고 말았다.
심지어 핵심 식스멘이었더 타지 깁슨이 1승 3패로 물러설 곳이 없었던 5차전 4쿼터에서 왼쪽 발목을 다치는 부상을 입어 경기에서 빠지면서 포워드진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채 1승 4패로 1차전에서 탈락하고 만다. 부저의 사면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그 남은 셀러리를 어떻게 활용하고 로즈의 건강한 복귀여부가 내년 불스의 성적을 좌우할 열쇠가 될 듯.

3.6.5. 2014-15 시즌


2014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개의 픽을 가지고 있던 불스는, 덴버의 11픽, 크레이튼 대학의 포워드 덕 맥더못을 얻기 위해 두개의 1라운드 픽과 미래의 2라운드 픽을 내어줬다(덤으로 앤서니 랜돌프도 덴버에서 얻어왔으나 바로 웨이브). 기본적으로 공격재능은 출중하나 수비문제와 백인의 폭발력 한계가 공존한 선수이기 때문에 팬들의 의견은 반신반의 수준. 2014년 여름리그에서 괜찮은 활약을 펼치고 있어 나름 기대감이 늘어나는 중이다.
이후 FA 시장에서는, 카를로스 부저를 포기, 레이커스의 파우 가솔을 영입했다. 한창 시장에서는 카멜로 앤서니의 옵트 아웃 선언으로 인해 시카고행 가능성이 주목받았으나 프론트진에서 강력한 골밑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는지 타지 깁슨을 계속 안고가는 형태의 연봉액을 멜로에게 제시함으로써 심각한 페이컷을 유도했고, 결국 멜로는 뉴욕과 재계약 수순을 밟으면서 없는 일이 돼버렸다. 가솔의 영입 또한 팬들은 옆그레이드다, 업그레이드다로 반반으로 갈리는 지경. 다만 3년 2천2백만달러의, 상당한 염가계약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선수지명권을 보유했던 니콜라 미로티치도 계약을 확정지었으며, 로즈의 빈자리를 한시즌 동안 훌륭히 메꿔준 D.J. 어거스틴은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했고, 로니 브루어, 그렉 스미스, 루 아문슨, 마이크 제임스 등 더부살이 로스터를 웨이브 혹은 트레이드로 처분함으로써 시즌 시작 로스터가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데릭 로즈와 커크 하인릭이 모두 내구성을 장담할 수 없으므로 준수한 세번째 포인트가드 가 중요했는데, 이는 덴버와 휴스턴에서 뛰었던 애런 브룩스를 영입하므로써 마무리했고, 포인트 가드 이트완 무어까지 영입하면서 만약 로즈가 또 다쳐버릴경우에도 1번 포지션에 구멍이 없도록 완전히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데릭 로즈는 시즌 시작 후 발목과 햄스트링등을 다치는 등 여전히 완전치 못한 몸 상태임이 드러났으나, 백투백 원정 불참이나 출장시간 관리 등으로 지난 두 시즌 처럼 시즌아웃 급 부상은 당하지 않으며 14년 12월말 현재 계속 출장중이다. 아무리 몸상태가 옛날같지 않더라도 여전히 날카로운 플로터와 스텝백 풀업점퍼로 정규시즌을 공략하고 있으며, 간간히 터지는 MVP급 플레이(클러치 3점... 그것도 플로터로!)는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몸소 입증해주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로즈보다는 스윙맨 지미 버틀러의 엄청난 성장이 돋보이는데, 기존의 에이스 스타퍼로써의 수비능력은 여전했고, 더불어 야투율이 거의 10% 이상, 평균 득점도 10점 가까이 증가하면서 공수 양면으로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지미 조던'으로 불리면서 조던 은퇴 이후 계속해서 불스가 찾아 헤맸던 2번 포지션의 적임자를 스스로 만들어낸 셈. 특히나 평균 출장시간이 40분에 육박, 리그 1위로 과거 루올 뎅의 노예자리를 뒤이어받고 있다. 이정도면 '사실상' 불스의 에이스라고 봐야 할 정도. 그 밖에도 노아, 깁슨의 지원 속에 파우 가솔의 인사이드 공격력이 다시 부활하여 로즈의 공격력이 무뎌지더라도 지난 시즌들과는 달리 크게 답답하지 않은 공격흐름을 보여주고 있으며, 애런 브룩스의 폭발적인 득점력, 그리고 유럽 MVP 출신 루키 니콜라 미로티치도 신인왕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알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반면, 미로티치와 더불어 새 시즌에 합류한 덕 맥더못은 3월 현재 데릭 로즈, 지미 버틀러의 부상으로 인해 출장시간을 받고있으며, 나름 좋은 활약을 해주고 있다.여름리그 때 좋은 활약을 보여준 토니 스넬은 시즌 초반 전혀 NBA급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으나, 중반에 3점슛이 눈에띄게 좋아지면서 식스맨 혹은 주전으로 훌륭한 제원임을 입증하고 있지만, 커크 하인릭은 스팟업 3점 이외에는 리딩능력저하와 본헤드플레이가 늘어나는 등 점차 노쇠화가 심해졌다. 이트완 무어가 최근 몇경기동안 괜찮은 활약을 펼쳤지만 2번 포지션의 수비력을 현재 버틀러 혼자서 꾸역꾸역 막아내는 형태라 티보도 감독의 무개념 출장시간관리에 혹시라도 로즈, 버틀러가 희생당할 경우 백코트진이 초토화될 가능성에 불스 팬들은 현재 팀의 좋은 모습에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상황.
2014-15 올스타로, 정말이지 그 동안 카를로스 부저에게 바래왔던 모든 것을 보여준 파우 가솔이 주전으로 뽑혔으며 , 후보로 지미 버틀러가 선발됐다. 라이징 스타 챌린지의 세계 대표에도 니콜라 미로티치가 뽑혔다. 파우 가솔은 멤피스의 센터로 뛰고 있는 동생 마크 가솔과 나란히 올스타 주전으로 뽑혔으며, 형제가 올스타 주전이 된 것은 NBA 역사상 최초이다.
2015년 3월 16일 현재 40승 28패 센트럴 디비젼 2위를 달리고 있다. (동부 컨퍼런스 전체 4위) 클리블랜드는 트레이드와 르브론의 부상복귀로 무섭게 치고 올라가 컨퍼런스 2위를 차지한 반면, 3월 현재 데릭 로즈, 지미 버틀러, 타지 깁슨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연패를 당하고 있다. 이들 모두 3월 내로는 복귀하기 어렵다고 하여 밴치멤버들을 끌어쓰고 있다. 구단에서는 4월 복귀이기 때문에 로스터를 채울 필요가 없다 판단, 트레이드나 영입없이 로스터를 진행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이다. 게다가 파우 가솔의 전봇대 수비로 인해 인사이드 수비는 완전히 무너지고 있으며[54], 노아가 매꾸기엔 역부족이다. 애런 브룩스, 토니 스넬, 니콜라 미로티치가 이들의 빈자리를 매우려 하지만, 밴치라는 이름의 한계로 역부족이다. 동부컨퍼런스 순위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지금의 전력상태로 과연 상위시드를 차지할 수 있을것 인가에 대한 우려가 깊다.
그래도 로즈나 버틀러의 부상이 시즌 아웃급 중상은 아니라 4월에는 출전하면서 50승 32패를 찍고 3위 수성에는 성공. 1라운드에서는 밀워키 벅스와 만나게 되었다. 3승을 먼저 거뒀다가 내리 2패하면서 고전하는 듯 했지만 6차전에서 최종스코어 120-66로 아예 박살을 내버리며 세미파이널에 올라간다. 상대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하지만 세미파이널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2승4패로 탈락했고, 탈락 후 베스트 5만 주구장창 돌린다는 비판을 받던 톰 티보도 감독을 경질했으며, 그후 1999년부터 4년간 시카고에서 선수로 뛰었던 아이오와 주립대 감독 프레드 호이버그를 감독으로 내정했다.

3.6.6. 2015-16 시즌


15년 드래프트에서는 파워포워드 바비 포티스를 픽, 넓은 슛레인지를 보유하여 서머리그때 좋은 활약을 펼쳤다. 재밌는건, 과거 마이애미팬이였는지 불스가 히트랑 플레이오프에 맞붙었을때 불스를 씹는 트윗을 날린바 있다는 것. 물론 불스에 픽당하자마자 포티스는 로즈가솔에게 어떤 도넛을 좋아하냐며 재치있게 사과하는 트윗을 올렸다.
개막 전부터 시끌시끌 했었다, 데릭 로즈는 윤간 혐의로 피소를 당하지 않나, 미디어 데이 인터뷰 중 자식을 위해 FA시장을 생각하고 있다는 정신줄 놓은 인터뷰를 하질 않나... 게다가 그 인터뷰 이후 이뤄진 팀 연습 중 타지 깁슨과 충돌로 안와골절로 또 부상, 로즈는 시즌을 안면마스크와 복시현상과 함께 시작하고 있다. 야투율은 3할대 중반으로 MVP출신이라곤 믿을 수 없을정도로 하락한 상태... 복시현상이 나아지기 전까지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볼배급에 주력하는 모양이다.
반면 팀은 새 호이버그 감독의 입맛에 맞게 구조를 개편하면서 노아-가솔의 프론트코트 스타팅이 아닌 가솔-미로티치로 조아킴 노아를 벤치로 내려앉혔다. 호이버그식 시카고 불스 오펜스에 대한 글. 전임 티보도 시절 혹사를 당했고, 사실 그전부터 기량저하가 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터라 이번 조치는 어느정도 합리적이었으며, 실제로도 상대팀들에게도 벤치타임까지도 골밑 우위를 유지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등 수술로 몇 달 자리를 비운 마이크 던리비의 빈자리는 토니 스넬, 덕 맥더멋 둘이서 충분히 메꿔주고 있고, 특히 덕 맥더멋은 지난시즌 느리고 끈덕진 디펜스팀과 정반대로 빠르고 스페이싱을 추구하는 슈팅팀으로 변모한 불스의 팀컬러에 맞게 극적으로 반등하여 불스의 외곽을 책임져주고 있다. 맥더멋은 물론, 이트완 무어까지도 로테이션에 중용되어 로즈(브룩스)-버틀러(무어)-맥더멋(스넬)-미로티치(깁슨)-가솔(노아)의 균형있는 10인 로테이션을 보여주고 있다. 더이상 시즌 말에 지치거나 부상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생각 안해도 될 만큼 팀의 관리측면은 향상된 모습.
12월 20일, 지미 버틀러가 호이버그 감독에게 '''너무 부드럽다'''며 좀 더 강한 지도로 팀관리를 해달라며 쓴소리를 했다. 연이어 12월 22일 호이버그 감독이 '''우리 팀은 단결력이 부족하다'''라고 인터뷰를 했다. 거기에 조아킴 노아의 어깨 부상까지 겹치며 팀분위기가 좀 묘해졌다. 다행히 12월 25일 오클라호마 시티에게 대승을 거두긴 했다.
이 후 분위기를 다잡은 듯, 승수를 쌓아가며 동부 2위. 클리블랜드를 바짝 뒤쫓고 있다. 호이버그 감독의 공격 전술이 조금씩 맞아들어가고 있고, 데릭 로즈가 살짝 예전의 폼을 회복하면서 팀을 돕고 있다. 버틀러와 로즈가 동시에 부진한 날에는 가솔이 캐리를 한다.
이후에 다시 어째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연패하다 주축선수들이 여럿 빠진 속에서 1월 15일 필라델피아 76ers와의 경기에서 지미 버틀러가 연장까지 49분을 뛰며 53득점으로 캐리하며 연패를 끊었다.
1월 23일, 감독 교체로 어수선한 클리블랜드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문제는 불스가 결코 경기력이 좋아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클리블랜드가 훨씬 더 심각하게 못했다.
게다가 12월까지 잘 돌아가나 싶었던 로테이션도 지미 버틀러의 혹사 등으로 티보도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 아니게 된데다, 부상선수까지 속출하면서 경기력 자체가 많이 떨어졌다. 3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8위 디트로이트와 3승 차이라 플레이오프 탈락이 유력하다.
최종성적 42승 40패 동부 9위로 시즌을 끝마쳤다.
결국 시즌 종료 후 팀의 주축선수인 데릭 로즈뉴욕 닉스로 보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데릭 로즈, 가드 저스틴 할러데이와 2017년 드래프트 2차 지명권을 닉스로 넘기고, 센터 로빈 로페즈, 가드 호세 칼데론과 제런 그랜트를 받아왔다.

3.7. 리빌딩 어게인?


'''이해할 수 없는 짠돌이 행보의 연속'''
사실 밑의 기타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조던 시절에도 화끈한 투자를 한 적이 없다.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는 둘 다 드래프트로 키운 선수들이고, 심지어 그랜트는 몸값이 높아지자 바로 놓쳤다. 피펜도 여러 번 팔려고 했으나 조던 때문에 못 판거고. 또한 데니스 로드맨은 백업센터 하나 주고 데려온 선수다. 실상 불스가 조던 왕조 시절 지갑을 제대로 연 적은 딱 세번 뿐인데 첫번째는 94시즌 종료 후 조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당시 수준급 득점원이었지만 부상으로 하락세이던 론 하퍼를 데려온 것, 96 오프시즌 당시 로드맨의 재계약을 위해 당시로서는 상당한 거액이던 9백만불을 지른 것, 그리고 조던을 마지막 두 시즌동안 어마어마한 거액인 도합 6천3백만불을 주고 잡은 것 뿐이다. 전체적으로 2차 3연패 당시엔 그나마 투자를 한 편이지만 빅마켓이라는 이름값에는 모자라다. 98시즌 당시 로드맨의 노쇠화가 본격화되어 벤치에서 많이 출장할 정도였는데 별 보강이 없었다. 게다가 피펜도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날려먹고 플레이오프에서 극도의 공격부진에 시달려 조던에게 과부하가 왔다.
여담으로 얼핏 보기에는 2차 3연패 때는 조던의 연봉 때문에 투자를 못 한 것이라고 볼수 있으나, 당시 조던은 1년 계약을 두번 한 것이고 샐러리캡을 넘긴 상태에서 얼마든지 계약할 수 있는 래리버드 권리가 있었다. 즉, 다른 선수를 잡고 나서 조던과 계약한다면 충분히 보강이 가능했다. 물론 조던의 연봉이 워낙 어마무시했기에 2차 3연패는 그나마 정상참작이 가능하지만 1차 3연패 때까지는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존 팩슨은 당시 모든 NBA 주전 PG 중 가장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였으며, 불스 오기 전엔 후보하던 선수였다.

3.7.1. 2016-17 시즌


로즈와 노아가 뉴욕 닉스로, 가솔이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떠나게 되면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불스멤버가 해체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스 구단이 버틀러의 트레이드도 살짝 시도를 해보았다는 것(...). 구단측의 버틀러에 대한 대접이 계속 오락가락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라존 론도를 2년 2,800만 달러에 영입했다.
드웨인 웨이드가 2년 4,750만 달러에[55] 불스 유니폼을 입는다는 놀라운 뉴스가 나왔다. 웨이드 영입을 위해 호세 칼데론과 마이크 던리비를 각각 LA 레이커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 하며 샐러리캡을 비워야 했다. 이로써 불스는 이름값만으로는 초호화 백코트를 구성하게 됐다. 그러나 버틀러-웨이드-론도 셋 다 3점슛 구사능력이 신통치 않고 페인트존 공략을 많이 하는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서 과연 셋이 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기에다 밀워키에게 토니 스넬을 내주고 마이클 카터 윌리엄스를 얻어오는 트레이드까지 이어졌다. 리그의 대표적인 슛없는 가드를 또 모으면서 프런트가 예고한 다음 행보가 엘프리드 페이튼, 리키 루비오 같은 슛없는 가드 영입이 아니냐는 농담이 나오는 상황이다.
버틀러가 한단계 스텝업하고 웨이드 역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고 있으나, 시즌 전 예상대로 팀은 3점 슛 시도, 성공률, 메이드 부문에서 모두 리그 꼴등을 찍고 있다. 2016년 성적은 16승 18패.
2017년 초에는 다소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어찌저찌 전반기를 28승 29패로 마무리했다. 유독 TNT 전국방송에서 홈경기를 중계할시 패배하지 않는것이 특이점. 샌안토니오 스퍼스, 보스턴 셀틱스 같은 상위권 팀들을 전국방송 홈경기에서 잡았다.
트레이드 마감일 전 지미 버틀러의 트레이드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트레이드 소식은 없었다. 버틀러 외에도 동부 각 팀의 주축 포워드들의 트레이드 설들이 돌았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는데 버틀러는 잔류했으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선수 둘+2018년 2라운드 지명권을 내주고 세 선수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문제는 트레이드 대상의 무게 차이가 너무 심각해서 불스 프런트의 향후 구단 운영 방침 및 딜 능력에 혹독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불스에서 썬더로 보낸 선수는 타지 깁슨과 덕 맥더멋인데 타지 깁슨은 불스의 파워포워드 주전이자 조아킴 노아의 뉴욕 이적 후 불스 인사이드의 버팀목이나 마찬가지인 선수고 덕 맥더멋은 이번 시즌 NBA 구단 중 3점슛 지표와 관련 전 부문 최하위를 기록중인 불스에서 니콜라 미로티치와 더불어 희귀한 3점슛 메이드 능력 보유자이자 준수한 공격옵션인 유망주다. 주전 파워포워드와 로테이션 스몰포워드/슈팅가드 겸 주요 식스맨을 내주고 받아온 자원이란게 썬더도 더 이상 육성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는 웨스트브룩과의 댄스 파트너 역할 이외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백업 포인트가드 카메론 페인, 3점 전문슈터라기에는 이번 시즌 3점슛 관련 지표가 너무나 처참한 앤서니 모로우, 센터 겸 포워드 조프리 로베르뉴다. 그나마 로베르튜의 사이즈, 운동능력과 향후 발전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는 있겠지만 팀의 핵심자원을 내주는 출혈을 하면서 정작 팀의 약점은 딱히 보강된것이 없는 누구도 불스가 이득이라고 말할 수 없는 트레이드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목적이 모호한 (탱킹도 아니고 샐러리캡 터는 용도도 아니고 억지로 이유를 찾아본다면 FA로 풀리는 킵슨을 카드로 사용한 것 정도?) 트레이드를 하고 이번 시즌은 버린게 아닌가 했는데 웬걸, 트레이드 이후 연승을 달려 5할 승률을 넘기고 있다. 물론 상대가 르브론 제임스 가 결장한 클리블랜드[56] 등이긴 했지만 이전과는 확연하게 개선된 3점슛 관련 지표가 눈에 들어온다. 새로 영입된 자원들의 활약상은 딱히 돋보이는게 없지만 잉여자원으로 분류되던 댄젤 발렌타인의 재발견, 니콜라 미로티치의 컨디션 회복 등 호구잡혔다는 평가를 받는 트레이드르 통해 나름의 교통정리를 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펠리시오 등 신예 인사이드 자원들에게 좀 더 기회를 부여할수 있게 된 점도 긍정적인 면. 그러나 시즌 초반 트렌와 동떨어진 로스터 구성을 하고도 3연승을 내달려 팬들을 의아하게 했던 전력을 생각해보면 트레이드의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17년 3월 2일 홈에서 TNT가 전국방송을 하는 가운데 전체 1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만났다. 케빈 듀란트가 부상으로 빠졌다지만 설마 불스의 TNT 과학이 2015년 4월 이후 정규시즌 연패가 없는 워리어스를 상대로 이어질까 했지만, 귀신같이 94-87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정규시즌 TNT 전국방송 홈경기 19연승.
그러나 골든스테이트전 승리 이후 5연패를 끊어버리면서 하락세를 보였고 샬럿을 잡아내며 연패는 끊었지만 다시 멤피스에게 패배하며 순위가 10위까지 밀리고 말았다. 물론 플레이오프 진출이 여전히 가시권에 들어는 있지만 7위 밀워키, 그리고 8위 디트로이트와 승차 없는 9위 마이애미가 상승세를 타 버린 상황이라 부담스럽게 되었는데, 일단 시카고로서는 최대한 많은 경기를 이긴 뒤 7-8위권에 있는 밀워키, 디트로이트, 마이애미의 추락을 바래봐야 하겠지만 버틀러가 부진하고 웨이드가 부상으로 시즌아웃당해버린 걸 보면 쉽지 않다.
그런데 웨이드가 아웃된 후로 팀 전체가 상승세를 타고 디트로이트와 인디애나의 DTD가 더해져 동부 7위를 탈환했다.
이후 뉴욕 닉스브루클린 네츠에게 원정에서 발목이 잡히는 의적 본능이 나와 아슬아슬했으나 다행히 마지막에 정신을 차리고 홈에서 올랜도, 브루클린을 압살하며 41승 41패 동부 8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1라운드 상대는 동부 1위 보스턴 셀틱스.
라존 론도의 플레이오프 모드와 인사이드 우세를 앞세워 원정 1,2차전을 잡고 업셋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론도가 2차전 이후 손가락 골절로 시리즈 아웃되어 공격 흐름이 순식간에 죽어버렸으며 보스턴의 스몰 라인업의 기동력을 따라가지 못하며 내리 4연패를 당하고 탈락했다.

3.7.2. 2017-18 시즌, 굿바이 지미 버틀러


'''전반기 : 누가 감히 시카고를 비웃는가!!!'''
'''후반기 : 이얏 탱킹하자!!!(...)'''
드웨인 웨이드가 팀에 잔류한다는 결정을 내린 가운데, 팀의 코어가 될 것으로 보였던 지미 버틀러, 그리고 2017 드래프트 1라운드 16순위 지명권을 결국 미네소타와 트레이드했다. 버틀러의 대가로 받은 선수들은 잭 라빈크리스 던, 그리고 2017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지명권이다.
버틀러의 트레이드는 수많은 의혹만 남겼는데, 관련한 기사# 에서 언급하듯이 여러 가지 면에서 의문을 낳고 있다. 지미 버틀러의 계약 규모와 버틀러를 내주고 받아온 라빈의 기대 가치 및 활용가능한 기간, 크리스 던의 가치 등등 단순히 트레이드 건에 한정해서 평가를 내린다고 해도 손해가 막심하고 트레이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시카고의 리빌딩 방향 역시 지난 시즌에 이어 오리무중 이라고 밖에 표현하기 힘든,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리빌딩이 진행되고 있다. 그 와중에 무려 9명의 가드가, 그것도 비슷비슷한 스타일에 트레이드 카드로도 활용하기 힘든 애매한 가드진만 모인 로스터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는데 결국 라존 론도와 아이재이아 캐넌을 포기했다. 플레이어 옵션을 사용, 잔류한 드웨인 웨이드 외에는 팀의 주축이 될만한 선수가 없고, 그 웨이드마저도 선수시절의 황혼기 단계라 다음 시즌은 작정하고 탱킹 모드에 들어가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만 가능.
이후 백업 센터-포워드 정도의 자원이자 지난 시즌 트리플더블 파괴자라는 특이한 이력으로나 유명한 크리스티아노 펠리시오에게 4년 3200만불의 계약을 안겨 라인스도프-팩슨-포먼으로 이루어진 프론트진의 머릿속을 더 의심케 만들었다. NBA 연봉 규모에 인플레이션이 있다고는 하나 펠리시오를 팀내 연봉 3위로 올려준 프런트의 행태를 보면 버틀러 측의 시카고에 대한 비난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프런트의 행태에 질렸는지 당초엔 시카고에 남는다고 했던 웨이드마저도 계약 해지를 했고, 웨이드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계약을 체결하여 다시 르브론과 함께 뛰게 되었다. 결국 불스는 과거 필라델피아가 걸었던 길을 걷게 되었으나, 이번 시즌부터 로터리 픽 추첨 확률이 변경이 되어, 자칫 더욱 더 암울해 질 수도 있다.
안그래도 우울한 시즌이 예상된 불스인데, 개막 직전에 팀의 주포 역할을 해줘야 할 포워드 니콜라 미로티치가 팀 동료인 포워드 바비 포르티스한테 맞아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단순히 몇대 맞은게 아니라 안면골절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불스팬들 입장에선 한숨만....그나마 7번픽으로 새롭게 합류한 루키 라우리 마카넨이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팬들조차도 마카넨과 라빈의 미래를 기대하는 중.
아이러니하게도 미로티치가 복귀하고 원투펀치 듀오(?)의 힘으로 뜬금없이 6연승을 달리고 있다.
2018년 1월 16일 기준 17승 27패를 기록중이다. 초반 20경기 구간까지는 독보적인 탱킹레이스 1위였지만 지금은 탱킹레이스 9위로 최근 21경기 성적이 무려 14승 7패(!)다. 미로티치를 기용하다가 안하는 상황이 몇번 보이면서 트레이드 루머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호이버그 특유의 용병술 호이볼이 어느 정도 정착되고 장신의 신인 라우리 마카넨의 기대 이상의 활약, 미로티치의 포텐셜 폭발, 지미 버틀러 트레이드의 댓가로 받아온 터지지 않던 유망주 크리스 던의 성장, 큰 기대 없었던 저스틴 홀리데이, 댄젤 발렌타인 등의 쏠쏠한 활약이 겹치면서 눈에 띄는 성적 상승세가 보이고 있다. 부상으로 로스터에서 제외되어 있든 잭 라빈도 출장시간 제한을 받기는 하지만 가세해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전력이 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올스타전 종료 이후, 구단에서 대놓고 탱킹을 제창하면서 패배가 계속되고 있다. 베테랑 센터 로빈 로페즈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예 벤치에 앉혀버렸으며[57] 교묘하게 주전 라인업 중에 한 명씩을 제외하면서 프로페셔널한 탱킹을 하고 있다.(...) 애틀랜타, 올랜도, 피닉스, , 뉴욕, 새크라멘토, 멤피스 등 탱킹경쟁자가 상당히 많은 시즌.
결국 노골적인 탱킹을 하던 시카고 불스에 사무국에서 경고가 주어졌다. 하지만 좀 더 눈치를 보게 되었을 뿐, 패배 레이스에서 이탈한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후보선수 위주의 라인업을 은연중에 밀고 있으며, 애틀랜타가 시전하던 타임아웃 멸시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시즌 최고의 패배 전문가로 등극한 멤피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막판 3점슛에 반쯤 고의적인 파울을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탱킹력을 보여준 상대에게 111-110 한점 차 승리를 거두면서 도리어 순위가 올라갔고 탱킹 7총사의 한 자리를 뉴욕에게 내주고 말았다.
최종 성적은 27승 55패. 같은 성적의 새크라멘토와의 타이브레이커를 반영하여 잠정적 6순위의 픽 순위를 확보했다.

3.7.3. 2018-19 시즌


2018-19을 앞둔 오프시즌, 시카고 불스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7순위를 받으며, 블루워커 빅맨 타입의 웬델 카터 주니어, 악성 계약자 오메르 아식을 흡수하면서 얻은 22순위 신인 픽으로 NCAA에서 20-7.7-3.5를 기록한 3&D 자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여겨지는 챈들터 허치슨을 영입하면서, 쏠쏠한 신인수급을 이루었다. 여기에 제한적 FA였던 잭 라빈에게 4년 8천만불을 지급하며, 잡았다(!) 여기에 자바리 파커를 FA로 영입(2년차 팀 옵션)하며, 불과 2시즌 전 론도-웨이드-버틀러-로페즈라는 노장들로 꾸려진 라인업이 크리스 던-잭 라빈-자바리 파커-라우리 마카넨-로빈 로페즈로 꾸려지며 상당히 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9월 28일 라우리 마카넨이 연습 도중 우측 팔꿈치 인대부상을 입으며, 6~8주간 결장했고, 웬델 카터 주니어 역시 왼쪽 어깨 부상에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라스베가스 도박사들은 시카고 불스가 최하위가 될 팀 3팀중 하나로 꼽는 상황이다. 그 예측은 틀리지 않았고 5승19패 컨퍼런스 14위인 상태에서 프레드 호이버그 감독이 경질되었다. 후임은 수석코치 짐 보일렌. 전반기 성적은 14승 44패로 동부 13위.
트레이드 데드라인 즈음해서 자바리 파커, 바비 포티스, 2라운드픽과 워싱턴의 오토 포터 주니어를 트레이드했다. 대형 계약후 폼이 떨어진 선수를 다소 비싸게주고 데려왔다는 평가와 미래 플랜에 없는 선수들로 약점인 3번 자리를 젊고 검증된 선수로 보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오토 포터 주니어는 트레이드 이후 스탯이 수직상승하며 시카고의 경기력을 다소 끌어올렸다.

3.7.4. 2019-20 시즌


시즌 45경기를 마친 현재 16승 29패로 동부 10위, 디비전4위로 시즌 전 목표로 했던 플레이오프 진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승률 5할 미만 팀을 상대로는 나름 접전도 펼치고 가끔 잡아 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팀들에게는 승률 자판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팀의 3번과 백코트 수비 중심을 잡아야 할 오토 포터 쥬니어가 시즌 초 부터 발 부상으로 기약없는 장기 결장 상태가 되어 토마스 사도란스키[58], 잭 라빈, 크리스 던으로 이어지는 3가드 시스템으로 시즌을 운영하고 있다. 3가드의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팀 스틸 5위, 상대 턴오버 유발 1위, 상대 턴오버에 이은 득점 1위로 스틸 및 그로 부터 이어지는 속공은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크리스 던잭 라빈이 상대 3번을 막게 됨에 따라 피지컬이 우수한 3번이 있는 팀에게는 탈탈 털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와 팬들이 시즌 전 3번 포지션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구장창 지적했지만 오프시즌 때 또 가드만 잔뜩 모으면서 오토 포토 쥬니어가 뻗어버리자 주전 3번을 볼 선수가 자체가 없는 상황. [59]
거기에 1월 들어 팀의 주전 센터이자 수비 기둥인 웬델 카터 쥬니어가 발목 부상으로 결장하고, 백업으로 올라온 신인 센터 다니엘 가포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다 손가락 탈구로 아웃 되면서 라우리 마카넨, 루크 코넷[60] 두명의 백인 스트레치형 빅맨이 프론트 코트를 맡게 되어 웬델 카터 복귀 전 까지 더욱 암울한 상황. (두명다 기동력이 떨어지고 몸싸움과 수비에 약하다.)
결국 1월 중순 주전 라인업은 토마스 사도란스키와 잭 라빈, 크리스 던 3가드에 발이 느리고 수비가 약한 스트레치형 7ft 빅맨 두명이 골밑을 맡는 기묘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공격에서는 잭 라빈의 3점이 터지는 날은 강팀과도 막판까지 접전이 이뤄지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1~2쿼터 준수한 모습을 보이다 3~4쿼터에서 점수가 벌어지며 지는 패턴이 반복 중. 보일런 감독의 3~4쿼터 로테이션 운영이나(3쿼 후반~4쿼터 초반 중요한 접전 상황에 주전 멤버 투입 시점을 놓쳐 이미 경기가 넘어간 상태에서 주전을 넣는 경우가 꽤나 많다.) 상대 흐름을 끊는 타임아웃을 부르는 타이밍 등에서 아쉬운 모습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팀의 공격전술도 특출난 색깔이나 개성이 없는 상황.
시즌 중반까지 볼 때 긍정적인 부분은 에이스 잭 라빈이 전시즌 대비 평균득점을 끌어올리며 39%에 육박하는 3점슛 성공률을 보이는 등 발전 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61] 약점으로 지적 받던 수비도 조금은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여전히 팀수비 때 로테이션을 헤매기는 하지만 전보다 빈도수가 줄었다. ),
1라운드 7픽으로 뽑은 가드 코비 화이트가 이름답게[62] 난사기질이 있지만 폭발력을 보여주며 교체멤버의 주포로 나름 활약해주고 있다는 점,
2라운드로 뽑은 빅맨 다니엘 가포드가 준수한 운동능력과 공격 리바운드 능력으로 2라운드 신인 답지 않게 20점 이상을 기록한 적도 있고 웬델 카터 쥬니어 부상 이후 주전으로 나설 때는 12~15점 8~10리바운드를 해주는 등 기대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준 점 등이다.(단점은 슛거리가 짧고 3점은 아예 없다. 신인 빅맨 답게 파울관리도 미숙한 편.)
부정적인 부분은 잭 라빈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면이 큰 공격부분과 너무나 얇은 로스터 뎁스. 잭 라빈이 상대 수비에 막히거나 기복을 탈 때 다른 멤버가 뜬금포로 터져주지 않으면 여지없이 팀 전체가 수준이하의 공격력을 보이며 4쿼터에 탈탈 털리는 패턴이다.[63] 거기에 팀의 2옵션이자 기대주였던 라우리 마카넨이 성장은 커녕 올시즌 기복도 심해지고 평균득점이 4점이나 내려갈 정도로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64] 잭 라빈에 대한 의존도와 부담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상황. 결국 공격에서 라빈 원맨팀에 가깝게 되어버렸는데 잭 라빈이 마이클 조던급의 공격력을 꾸준히 보여주며 본인에게 수비가 몰리면 팀원에게 찬스를 만들어 줄 레벨도 아니고 지미 버틀러 같은 공수겸장도 아닌 3점과 돌파 2툴 플레이어에 가깝다 보니....[65]
전체적인 팀 로스터가 허약한 것도 큰 약점인데 빅마켓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선수영입 능력과 로스터 구성 능력은 올시즌도 역시 한숨을 자아내고 있다. 오토 포터 쥬니어의 장기 결장 상태에서 3번 포지션의 경쟁력은 리그 최하로 봐도 무리가 없으며 다른 포지션도 정상적인 팀이면 13인 로스터에도 끼기 힘든 G리그나 2Way 계약 출신 선수들이 팀의 주요 교체멤버로 나오거나 선발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한숨만...
결국 그간 99% 가깝던 홈관중 동원률이 90%까지 떨어지고 중계권료 수익도 급감하면서 1월 중순 즈음 ESPN 라디오를 통해 시즌 후 경영진 등 프론트 물갈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팬들은 경영진 뿐 아니라 무색무취의 감독 등 코치진의 교체도 원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리그가 중단 된 사이, 팬들에게 스트레스만 안겨주었던 프런트 멤버들인 부사장 존 팩슨을 구단 고문으로 영전(?) 하고 단장 가 포먼은 해임했으며 공석이 된 부사장 자리엔 덴버 너기츠 단장으로서 능력을 보여준 아르투라스 카르니쇼바스를, 단장자리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어시스턴트 GM이었던 마크 에버슬리를 영입했다. 리그가 중단되어 우울한 와중에도 불스 팬들은 드디어 팀이 정신을 차리나 하는 희망을 갖고 오프시즌아닌 오프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후 시즌 재개가 예고됐지만 하위 8개 팀중 하나인 불스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아 시즌을 조기 마감하게 됐다. 시즌 종료 후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던 감독 짐 보일런이 드디어 해고당했으며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순위보다 높은 4번픽에 당첨되는 행운도 따랐다.
후임 감독으로는 그간 OKC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던 빌리 도노반이 부임하여 모처럼 A급 명장이 팀을 이끄는 모습 또한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3.7.5. 2020-21 시즌



4. 이모저모


만화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주인공팀 북산의 모티브가 된 팀이며, 유니폼 색깔도 똑같다. 주인공 강백호서태웅에어 조던을 신는다.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이 광적으로 응원하는 팀이기도 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바마는 고등학교 때까지 농구 클럽에서 활동했고,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틈만 나면 농구를 할 정도로 농구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데다가, 시카고는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이자 본거지다. 시카고 연고의 야구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도 응원하지만, 아무래도 불스에 대한 애정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 중론. 마이클 조던이 두번째 은퇴를 할 때 언제나 뉴욕의 그늘에 묻혀있던 시카고와 일리노이를 승리자로 만들어준 위대한 영웅이라는 헌사도 했었다. 거기다 같은 흑인이기도 하고.
다만 홈구장을 같이 쓰는 NHL 시카고 블랙호크스가 오바마가 당선된 이후 2번 우승[66]해 백악관을 방문할 동안, 불스와 화이트삭스는 우승을 못해 한번도 백악관에 오지 못했다.[67][68]
흔히 불스=조던=나이키의 공식 때문에 불스의 스폰서는 언제나 나이키!라고 일반인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NBA의 저지 스폰서는 그런 인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실제로 조던이 뛰던 시기에도 불스의 스폰서가 나이키였던 적은 단 한 시즌, 97-98 시즌뿐이다. NBA는 저지 스폰서로 단독기업을 선호하는 편이라 97년까지 챔피언사가 단독 스폰서였고,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짧은 기간 동안 나이키가 계약을 맺은 후에 2000년대 중반 아디다스가 NBA와 독점 계약을 맺으면서 스폰서는 아디다스가 되었고, 2010년대 중반 나이키가 다시 독점계약을 뺏어오면서 2010년대 후반~2020년대까지 NBA의 저지는 나이키가 생산한다. 나이키는 독점계약 후 첫 시즌에 그 기념으로 조던의 불스 저지를 발매하기도 했다.[69]
마이클 조던이라는 존재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NBA팀 중 하나다. 농구나 NBA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조던의 등번호 23번과 불스의 로고는 알아볼 정도. 아예 농구를 몰라도 불스의 모자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한국에서도 불스의 모자나 마이클 조던의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야구의 뉴욕 양키스처럼 팀의 로고와 색깔이 스포츠 종목 그 자체의 인지도를 능가해버린 사례 중의 하나다.
NBA를 넘어서 비교적 신생팀을 제외하고는 4대 리그 북미 스포츠 팀들 중에 유일하게 창단 이래 팀 로고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7~80년대 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90년대나 00년대에 창단된 팀들도 못해도 2~3번은 바꾼 편인데 무려 60년대에 창단된 시카고는 저 강렬한 붉은 황소를 자잘한 수정 작업조차도 한 적이 없다. 유니폼도 1985-86 시즌 이후 크게 바뀌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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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의 황소의 유명세 때문인지 오인용의 애니메이션 돼지에서는 불스의 황소 얼굴을 한 소 캐릭터가 농구 감독으로 등장한다.
같은 연고지를 쓰는 WNBA구단으로 시카고 스카이가 있다. 시카고의 위성도시 로즈먼트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올드 NBA팬들이 대부분 응원하는 구단이며, 로즈의 MVP시즌으로 신규팬도 많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프런트의 노골적인 탱킹 운영으로 최근에는 언급이 많이 줄어든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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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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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불스의 2018 시티 에디션 유니폼
시카고 불스의 시즌 슬로건이나 유니폼에 가끔 별 4개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시카고 불스의 우승 횟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시카고 시의 깃발에 들어있는 4개의 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2017-18시즌 시티 에디션 유니폼도 이 깃발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루키 잡지선정 역대 최고의 시카고 불스 라인업
  • 센터: 아티스 길모어 (1976~1982, 1987) [71]
  • 파워포워드: 호레이스 그랜트 (1987~1994) [72]
  • 스몰포워드: 스카티 피펜 (1985~1998, 2003~2004)
  • 슈팅가드: 마이클 조던 (1984~1993, 1995~1998)
  • 포인트가드: 데릭 로즈 (2008~2016)
  • 식스맨: 데니스 로드맨 (1995~1998)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이 작곡한 'Sirius'라는 곡은 시카고 불스의 선수 등장 배경음으로 사용되었으며, 이외에도 여러 매체에서 BGM으로 깔릴 정도로 유명하다.

5. 최악의 짠돌이 프런트


전술했듯 84년 마이클 조던을 지명한 이후 90년대 2번의 쓰리핏과 슈퍼스타들의 조합으로 엄청난 팬층을 쌓았고, 심지어 홈인 시카고는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대도시로 얼마든지 LA 레이커스,뉴욕 닉스,보스턴 셀틱스같이 NBA를 대표할 명문 프랜차이즈가 되기에 하등 부족함이 없는 빵빵한 배경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대접은 매우 허접한 편이다. 스카티 피펜에 대한 건 말 할것 도 없고... 커크 하인릭, 루올 뎅, 조아킴 노아, 데릭 로즈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픽해놓고 쓴물 좀 나왔다 싶으면 바로 팽해버리는 통에 현지 팬들에 대한 여론도 매우 안좋아지고 있다. [73]선수를 그렇게 버리면서 성적을 내는것도 아니고... 물론 전적으로 구단의 책임으로 보기엔 엮여있는 원인이 많지만, 코비 브라이언트팀 던컨처럼 프랜차이저가 가져다 주는 이점에 대해, 불스 구단은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듯 한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조던 시대때부터 불스는 그 매력적인 시장과 초절정의 인기팀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짠돌이 행보를 보여왔다. 실제로 불스왕조가 워낙 빛나서 그렇지 당시에도 별 투자 안 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이클 조던이 마지막 2년 동안 엄청난 돈을 받긴 했지만 조던은 받는 것 이상으로 벌어주던 선수고, 사실 그도 10년 넘게 헐값에 뛰었다. 스카피 피펜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적으로 시카고 불스 왕조 멤버들 역시 과감한 투자로 잡은 선수들은 거의 없다. 1차 3연패의 경우 존 팩슨은 불스 합류 전에 후보가드였다. 그리고 슈팅가드 조던, 스몰포워드 스카티 피펜, 파워포워드 호레이스 그랜트 모두 드래프트 픽으로 얻은 선수들이며 포워드라인의 경우 당시 특급 유망주도 아니었다. 센터인 빌 카트라이트는 올스타에 딱 한번, 그것도 불스 합류 8년전에 선정된 노장센터였다. 합류 당시에는 연이은 큰 부상으로 기량이 줄어들며 이미 닉스에서 벤치롤로 밀려난 상황이라, 수비력이 돋보일 뿐 평범한 주전급 센터였다. 2차 3연패에서 데니스 로드맨은 스퍼스에서 불화를 일으켜 붕떠있던걸 후보급 센터 하나 주고 데려와 터진 로또나 다름없고, 센터인 룩 롱리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74]
그나마 과감하게 투자한게 론 하퍼였는데, 심지어 이건 상당한 액수를 안겨준게 삽질에 가까운 무브였던 것이 하퍼는 원래 올스타급에 가까운 선수긴 하나 올스타에 선정된 적이 한번도 없고 계약 당시 이미 하락세였던 선수였다.[75] 비슷하게 저물어가던 선수에게 거액을 안겨 투자 대비 손해를 본 케이스가 벤 월러스였다. 월러스는 첫 시즌부터 올디펜스 세컨팀으로 밀려나며 뭔가 수상한 기미를 보이다가[76] 07-08시즌부터는 완연히 하락세를 보여 결국 두시즌도 안되어 트레이드 된다. 이때 받아온 선수들은 래리 휴즈와 드류 구든 등인데 짧게 말해 시카고에서 뭔가 대단한 걸 해준 선수는 없다. 심지어 이때 월러스를 잡느라 돈 많이 써서+자리 없어서 트레이드 시켜버린 타이슨 챈들러는 뉴올리언즈에서 터졌다.
심지어 로드맨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원래 로드맨은 계속 사고를 치고 깽판 때문에 가치가 많이 떨어져 백업급인 윌 퍼듀에 현금 좀 얹어서 맞트래이드될 정도였다. 연봉도 250만 달러. 그러나 96시즌 FA의 광풍[77]에 힘입어 로드맨에게 무려 1년 9백만 달러란 엄청난 액수를 안겨주게 된다. 문제는 로드맨이 96-97시즌 당시 부상과 비행 등으로 고작 55경기 출전에 그쳤다는 것. 그나마 정규시즌에선 리바운드라도 평균 16개 이상 잡아줬지만 플레이오프에선 평균 '''8.4개'''에 그치는 졸전을 펼치며 시카고의 유명 기자 샘 스미스가 '''파이널 도중에''' "팀 분위기만 망치고 잘 하지도 못하는 저 놈 방출해버려라"란 기사를 쓸 정도였다. 자세한 내용은 데니스 로드맨 항목 참조.
심지어 위에 언급된 그랜트는 몸값이 오르자 바로 올랜도 매직에 허무하게 자유계약으로 잃었고, 피펜도 계속해서 팔려고 했다. 95년에 복귀한 조던이 반드시 잡으라고 하지 않았으면 팔았을 확률이 높고...
이와 같은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무브가 바로 위에 언급된 론 하퍼 계약이었다. 사실 대다수의 한국팬들 (즉, 시카고 불스 왕조부터 봐온 팬들)에게 론 하퍼는 수비 좋고, 득점력은 평범하지만 뛰어난 센스로 종종 영리한 플레이를 펼치는 롤플레이어 정도로 알려졌지만 하퍼는 당시까지 커리어 통산 19.3점 5.2리바운드 4.9어시스트에 직전 시즌에 38.1분동안 20.1점을 올린, 올스타급에 버금가는 선수였다. 실제로 당시 기사를 보면 불스, 그리고 조던 관련해 최고 전문가 중 하나인 시카고 트리뷴의 샘 스미스 기자가 "불스가 드디어 하퍼를 확보했다. 이제 문제는 이게 그들(불스)가 피펜을 트래이드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의미냐는 것이다"라며 "이것(하퍼를 계약했다는 것)은 피펜이 이제 처분가능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피펜의 흔히 말하는 하위호환 정도로 여겨졌다는 것.
실제로 스미스가 지적한대로 198cm에 팔이 길고 다재다능한 하퍼는 피펜과 비슷하게 슈팅력은 딸리지만 돌파력이 있는 슬래셔에 패싱레인을 잘 끊어먹는 수비수, 골밑쇄도와 슈터들에게 패스를 빼주는 능력을 겸비한 선수였다. 게다가 피펜을 하퍼로 대체한다면 당시 불스가 큰맘먹고 영입했지만 피펜과 포지션이 겹쳐 파워포워드로 출전시키고 있어 장점을 깎아먹고 있던 토니 쿠코치를 원 포지션인 스몰포워드로 기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피펜을 대가로 수준급 파워포워드를 영입할 수 있었던 것. 실제로 그를 영입하고 나서 제리 크라우스는 "7월 초부터 (즉 오프시즌 시작할때부터) 그는 우리의 목표였다"면서 영입에 만족감을 표했다. 물론 실제로 영입해보니 하퍼가 1990년에 다치고 1년동안 재활을 해야했던 무릎을 포함한 몸상태가 생각보다 안 좋았으며 [78]불스 시스템에 안 맞아 출장시간이 전시즌 대비 반토막, 득점은 더 심각해서 6.3점으로 폭락했다. 망한 영입이 될 뻔했지만 다행히 슈팅가드 포지션을 복귀한 조던이 차지하고, 하퍼는 특유의 센스와 수비력을 살려 장신 포인트가드로 포지션 전환을 이뤄내 롤플레이어로서 시카고 왕조에 크게 공헌하는 선수가 된다.
여담으로 하퍼는 99시즌이후 은퇴를 결심했으나, 새롭게 변신한 역할이 워낙에 잘 맞았기 때문에 필 잭슨이 그의 리더쉽과 친화력, 농구센스를 높게 사 레이커스에 부임할때 그를 부르고, 주전 PG로 두번의 우승을 더 하고 2001년에 명예롭게 은퇴한다.당시 피펜과 주로 트래이드 얘기가 오갔던 선수가 파워포워드 숀 켐프란 점에서 이와 같은 의도를 볼 수 있다. 만약 크라우스의 구성대로 되었다면 94-95시즌에 BJ 암스트롱-론 하퍼-토니 쿠코치-숀 켐프-윌 퍼듀로 이어지는 라인업인데, 수비가 안 좋고 골밑의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강력한 포스트득점원 (켐프)와 슬래셔 (하퍼), 외곽슈터 (암스트롱과 쿠코치)로 이어지는 화끈한 공격라인업이 됐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된다면 다재다능한 쿠코치가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는 구성이다. 조던이 복귀계획이 없었다는게 드러나는 점이기도 한데, 이 상태에서 조던이 복귀하면 거액을 들여 영입한 하퍼나 암스트롱 둘 중 하나를 벤치로 보낼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시애틀과 협상이 틀어지면서 피펜 트래이드가 무산, 한동안 분위기가 개판이었으나 조던이 복귀하면서 해결이 된다.
위에 언급된 프랜차이저들 중에 진득하게 잡았던 선수는 미치지 않고서야 누구도 팔 리가 없는 조던, 그리고 데릭 로즈 뿐이다.
게다가 96-97시즌 당시 조던이 3천만 불을 받은 것도 뒷 얘기가 있는데, 헐값을 받던 조던은 당연히 제 값을 받기를 원했고 당시 최고연봉을 받던 패트릭 유잉 (1,800만불)보다 당연히 다 많이 받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불스의 반응은 실망스러웠는데, 그들은 조던에게 천만~천이백만불 이상 줄 팀은 없다고 여기고 조던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1,500만, 1,800만 불, 많아봤자 2000만불 선에서 계약이 정리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당시 뉴욕 닉스는 연봉과 샐러리캡 외에 챙겨주는 과외 수익(닉스의 구단주 그룹에 속하는 쉐라튼 등의 대변인 직으로 인한 연봉) 등으로 2천5백만 달러 이상을 오퍼한 상태였다. 불스의 헐렁한 태도에 빡친 조던과 에이전트 데이비드 포크는 전화를 걸어 "한 시간 안에 닉스보다 좋은 오퍼를 하지 않으면 닉스와 계약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버렸고, 똥줄이 탄 불스는 결국 3천만불을 안겨준다. 물론 이게 단순한 협박이었는지, 실제로 닉스로 가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포인트는 '''리그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치가 높은 선수, 아니 스포츠 역사상 가장 압도적이고 상품성이 뛰어난 선수 중 하나를 돈 몇푼 아끼려다가 어이없이 놓칠 뻔했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금전적으로는 원래 쓰려던 돈보다 훨씬 많이 쓰게 됐다.
종합해보면 '''돈쓰기 싫어해서 돈도 많이 안 쓰고, 가끔씩 지갑을 풀때는 엉뚱한 데 투자하는 등 그나마 쓰는 돈도 못 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불명이다. 시카고는 NBA에서 3위의 마켓이며, 불스 자체도 상당한 인기팀이라 구단가치도, 수입도 매우 높다. 그리고 구단주 제리 라인스도프는 2019년 기준 재산이 16억달러로, 구단주 중 재력도 나쁜 편은 아니라 본인이 돈이 없고 시장이 작아서 반강제로 짠돌이가 된 피닉스 선즈의 로버트 사버(재산 4억달러)같은 케이스도 아니다.
굳이 따지면 구단주가 그렇게까지 농구에 목숨거는 성격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철저하게 비지니스적인 측면에서 보면 돈을 물 쓰듯 써서 우승을 확보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돈이 되는 장사는 아니다. 샐러리 캡은 리그 전체의 농구관련수익 (Basketball Related Income: BRI)을 팀별로 나눈 평균 금액으로 이뤄지며 보통 BRI의 절반 정도 금액으로 정해진다. (구체적인 액수는 CBA협상때마다 다르다. 2011년에 체결된 CBA는 매해 49~51%를 오가는 것으로 정했다) 즉, 예외조항을 이용해 샐러리캡의 두배 가까운 돈을 연봉으로 쓰면, 추가적으로 팀운영에 드는 비용까지 합해서 '''그 해에 번 돈 전부를 탕진하게 된다.''' 실제로 농구광인 마크 큐반이 댈러스 매버릭스를 인수한 이후, 선수영입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것부터 시작해 팀시설 보강 등 무지하게 돈을 들였고, 이 때문에 매버릭스의 인기가 엄청 올라 수입이 매우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년동안이나 적자를 냈다. 물론 댈러스 팀의 가치는 껑충 뛰었고 큐반은 적자 따위 신경 안 쓸 정도의 부자였으며, 이후 초기비용을 회수하고 수익을 내게 되었지만.
즉, 시카고 불스처럼 빅마켓에 위치해 충분히 팀 가치가 높은 팀이라면 돈을 무리하게 써서 우승을 노리는 것보다는 적당히 투자해 적당히 성적을 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한 것이 바로 LA 클리퍼스의 악명높은 전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으로, 불스와 달리 어차피 레이커스가 같은 연고지에 있어 LA를 대표하는 구단이 될 수 없었던 클리퍼스는 유망주가 조금 몸값 오르면 팔아버리거나 투자를 하는둥마는둥하는 막장 행보를 거의 30년 가까이 했다. 물론 제리 라인스도프는 이 정도 악질은 아니지만 Time 잡지가 기사에서 "짠돌이(cheapskate)"라고 묘사하는 등 투자를 매우 안하는 구단주이다. 재밌는 우연은 스털링과 라인스도프 모두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변호사 출신의 자수성가 부동산 재벌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나이도 두살 차이로 또래다.[79]
거기다 이런 행보를 까야 할 지역언론마저 불스의 구단주인 제리 라인스도프가 꽉 잡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3위 (북미권 4위)의 대도시인 시카고에 딱 하나 있는 농구팀을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정말 개판 행보를 보이고 있는 또 다른 동부의 뉴욕 닉스라고 할 수 있다. '''조던 추억팔이 장사나하는 놈들'''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말 조던 이후에 로즈 시대를 제외하고 뭐 한 게 하나도 없다.(...)
구단주 제리 라인스도프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도 소유하고 있는데 야빠라서 불스가 NBA 역사상 다시 오지 않을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도 화이트삭스에 더 신경을 썼다는 전설같은 스토리도 있다. 그러나 시카고 화이트삭스도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선수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최근 말이 심각하게 나오는 편.
덕분에 팬들은 라인스도프의 고령의 나이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샘 스미스가 불스를 전담하며 취재한 내용을 엮은 Jordan Rules에 보면 제리 라인스도프-제리 크라우스 듀오가 얼마나 악랄한(?) 지가 나오는데, 피펜의 백업 클리프 레빙스턴을 90-91시즌을 앞두고 영입할 당시 경쟁 상대들이 많이 있었고, 레빙스턴은 이미 원소속팀 애틀란타 호크스로부터 4년/4백만 달러 계약 (당시 벤치플레이어에겐 상당히 좋은 액수다)을 오퍼받은 상태였다. 불스는 레빙스턴에게 그가 원하는 액수 (연간 최소 120~130만 달러)를 줄 수 있는 여력이 있었지만 이를 꺼려했는데 1. 이걸 주면 피펜이 자신의 백업보다도 적게 받기 때문에 안 그래도 많은 불만이 폭발할 위험 2. 이미 지명되었지만 유럽에서 뛰고 있던 토니 쿠코치가 갑자기 합류할 때를 대비해 샐러리캡 여유를 2백만 달러 정도 두어야 했다는 점. 3. 라인스도프가 철저한 비지니스맨이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게다가 레빙스턴은 동료 도미니크 윌킨스와 어울리며 생긴 사치스런 습관 때문에 은행에 급히 20만 달러를 입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크라우스는 레빙스턴의 에이전트 (사실 그의 친구였고 농구선수 고객이 레빙스턴 하나였기 때문에 협상능력이 없었다)가 요구조건을 말하자 들어주겠다고 해놓고 시간을 질질 끌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팀들은 다른 선수들과 계약하거나 레빙스턴을 포기하고, 그에게 거액을 줄 팀은 없게 되었다. 마침내 협상테이블에 앉은 크라우스가 내놓은 금액은 '''75만 달러'''. 멘붕한 에이전트에게 크라우스는 "다른 오퍼가 있으면 그거 받아들이든가"라고 했고 (당연히 다른 오퍼 없는 거 알고 한 소리), 이 말을 들은 레빙스턴이 빡쳐서 차라리 유럽에 가겠다고 통보를 하자 2년/215만 달러에 1년만 보장되는, 애틀란타 오퍼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계약조건을 제시하게 된다.
연간 평균만 따지면 애틀란타보다 약간 좋지만 계약기간이 짧고, 첫 시즌 연봉이 75만 달러인데다가 1년 이후 마음이 안 들면 불스가 40만 달러 주고 바이아웃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 최악의 경우 115만 달러 챙기고 다시 시장으로 나와야 했다. 게다가 레빙스턴은 롤플레이어이자 80년대 당시로선 꽤 연차가 쌓인 9년차 선수였기 때문에 언제까지 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워 장기계약이 더 좋은 옵션이었다. 드래프트된 이후 피펜이 무조건 장기계약을 고집한 것도 이 때문이었은데, 비록 높은 순위에 뽑혔지만 완전 듣보잡이었던 피펜은 자기가 성공할 거란 확신이 없었기 때문. 심지어 에이전트에게 "1년만 뛰고 방출되면 얼마 받을 수 있나" 물어봤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레빙스턴의 시카고행은 악수가 되었는데, 양 포워드를 오가며 20분 이상 뛰고 주전으로도 좀 나왔던 호크스 시절과 달리 출장시간이 10분 가까이 줄었으며 기록도 선수가치도 떨어져 불스와 2년 계약이 끝난 후 결국 유럽 (그리스, 이탈리아)로 가야했다. 2년을 유럽에서 보낸 후 이후 너깃츠와 1년 계약했지만 노장이 된 그는 늘어난 샐러리캡에도 불구하고 고작 60만 달러만 받고 초라한 기록만 남기고 NBA를 떠났다. 애틀란타에 있었다면 돈도 훨씬 많이 벌고 유럽으로 넘어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도미니크 윌킨스는 이때부터 NBA커리어를 끝내고 유럽에서 뛸 것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레빙스턴은 유럽으로 가고 싶지 않아했다. 어쩌면 윌킨스-케빈 윌리스 포워드진이 있는 애틀란타보다 피펜-그랜트라는 더 젊고 비교적 미숙한 포워드진이 있는 시카고가 경쟁이 덜 빡세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불스가 이 어린 듀오에 갖는 기대는 견고했고 결국 레빙스턴은 그냥 백업에 그쳐야 했다. 그나마 반지 두개를 챙긴 게 위안이 됐을 듯.
또한 NBA역사에 길이 남을 두 플레이에서 흔적을 남기게 됐는데, 마이클 조던이 91파이널 2차전에서 한 유명한 "손 바꿔 레이업"에서 조던에게 패스를 받고 돌파하다가 다시 조던에게 빼준 선수가 바로 레빙스턴이며, 해설하던 마브 앨버트도 이름을 언급한다. 또 하나는 이듬해 파이널에서 조던이 당시 기록이었던 6개 3점슛을 꽂아넣을때 벤치에서 카메라를 보고 타월을 (열을 식히듯) 흔들며 익살스럽게 "He is HOT!! WHOO!!"라고 맛깔스럽게 리액션한게 바로 레빙스턴. 이 장면은 조던 관련 다큐에 단골로 등장한다.
기자회견에서 이 계약건에 대해 질문을 받은 레빙스턴의 표정은, 평상시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유명한 그답지 않게 딱딱하게 굳었다고...또한 존 팩슨의 친한 친구인 에드 닐리란 선수가 피닉스 선즈와 70만 달러에 계약하자, 크라우스가 팩슨에게 "재계약 때 그런 액수 기대하진 말게"라고 했다고...팩슨은 당시 리그 주전 포인트가드 중 가장 적은 돈을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팩슨이 빡쳐 변호사를 통해 크라우스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자기한테 말 걸지 말라고''' 통보했다. 그 외에 호레이스 그랜트에게 절대 80만 달러 이상 받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거나 필 잭슨에게 "절대 감독에게 백만달러 이상 줄 일은 없다"고 하는 등 (웃긴게 두 경우 모두 결국 그 이상 액수를 주고 만다) 욕 먹을 짓만 골라서 했다. 사실 크라우스가 워낙 사회성이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시카고 프런트 자체가 선수들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돈을 아끼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나쁘게 말해 이 팀과 비교할만한 수준의 팀 운영은 바다 건너 KBO 리그의 롯데 자이언츠급은 돼야 나올만한 수준이다.
다만 짠돌이인 것과는 별개로 조던 이후 팀이 완전 개판, 엉망이라는 것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2010년대만 놓고 봐도 불스의 통산 성적은 NBA 13위권이고, 리빌딩에 들어간 2018년 전까지 10여년간 플레이오프는 거의 매해 진출했다. 빛나는 과거에 비해 그 이후가 초라하다는 것은 맞지만, 실제로 리빌딩하며 10여년 정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팀들이 많은 NBA에서 유독 엉망이다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지갑을 열고 질러대는 향상심이 없다보니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
정확히 말하면 조던 은퇴 직후와 00년대 중반 이후 불스의 운영은 차이가 있다. 은퇴 직후 99~04시즌까지 제리 크라우스 단장 체제에서는 위에서도 언급됐지만 정말 동부의 클리퍼스라고 할 만큼 돈을 노골적으로 아끼고 전력보강은 면피 수준으로 하는 운영을 보였다. 그러나 존 팩슨 단장 체제에서 리빌딩이 성공하고, 이후 데릭 로즈를 뽑으면서부터는, "돈은 아끼지만 어느 정도 투자는 하는" 수준의 운영을 하고 있다. 구단주의 요구에 충실한 크라우스와 대비되는 팩슨 단장의 성향 차이도 있고, 2000년대가 되고 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리그의 규모도 커지면서 더 이상 구단 운영을 구단주 마음대로 할수만은 없게 된 것이 결정적이다. 실제로 막장 운영으로 욕을 먹던 클리퍼스의 도널드 스털링도 2010년대 와서는 크리스 폴을 데려오는 등 어느 정도 투자를 했었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스털링식 운영을 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80]
그래도 2020년 제리 라인스도프의 아들인 마이클 라인스도프가 운영을 시작하면서 이런 기조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아버지 대로부터 이어지던 프런트진과 감독, 코치진을 전원 해고하고 프런트 전체를 개편하고 싼 감독을 데려오던 이전 시대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 하는 중이다.

6. 2020-21 시즌 선수단


2020-21 시카고 불스 선수단
감독
빌리 도노반
코치
크리스 플레밍, 네이트 로앤서, 딘 쿠퍼, 숀 레스퍼트 등
가드
0.코비 화이트 3.샤킬 해리슨 8.잭 라빈 20.아담 모코카(2way) 31.토마스 사도란스키 32.크리스 던 45.덴젤 발렌타인 51.라이언 아치디아코노
가드-포워드
28. 맥스 스트러스(2way)
포워드
15. 챈들러 허치슨 21. 테디어스 영 22. 오토 포터 주니어
포워드-센터
2.루크 코넷 6.크리스티아노 펠리시오 24.라우리 마카넨
센터
12.다니엘 가포드 34.웬델 카터 주니어

7. 영구 결번


'''시카고 불스 영구결번'''
'''등번호'''
'''이름'''
'''영구결번 날짜 '''
4
제리 슬로언
1978년 2월 17일
10
밥 러브
1994년 1월 14일
23
마이클 조던
1994년 11월 1일 [81]
1999년 1월 13일 [82]
33
스카티 피펜
2005년 12월 9일
코치
필 잭슨
1999년 5월 5일
매니저
제리 크라우스
2003년 10월 31일
아나운서
조니 커
2009년
재즈에서 1000승 이상을 기록한 감독으로 유명한 인물. 초창기 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감독 데뷔도 이곳에서 했다.

딕 모타 감독이 지휘하던 불스의 첫번째 전성기에 제리 슬로언과 함께 팀을 지탱하며 활약했던 파워포워드.[83]

농구 외에 스포츠를 넘어서 어떤 분야에서건 그 숫자를 보면 연상되는 선수. 이른바 조던 넘버.

1987~98년, 2003-04년 두 차례에 걸쳐 불스에서 모두 11시즌을 활약. 6개의 반지를 얻었다.

1989~1998년까지 재직했던 불스의 감독.

1985년부터 2003년까지 불스 구단의 단장으로 재직하면서 불스의 6번의 우승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 조니 커(Johnny Kerr)
불스의 전담 해설가로 1976년부터 2008년까지[84] 활약했다. 한때 시라큐스 내셔널즈의 주전 선수였으며 불스의 초대 감독(1966~1968)과 단장도 잠깐 역임했다. 2009년에 타계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특별히 기념하고 있다.

8. 역대 선수단



9. 역대 성적


<color=#373a3c>­
우승
­
준우승
<color=#373a3c>­
플레이오프 진출

플레이오프 탈락
<color=#373a3c> '''연도'''
'''정규시즌 순위'''[85]
<color=#373a3c>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팀이름'''
'''경기수'''
''''''
''''''
'''승률'''
1966-67
4위/5팀
<color=#373a3c>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서부 디비전'''
'''시카고 불스'''
81
33
48
.407
1967-68
4위/6팀
<color=#373a3c>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82
29
53
.354
1968-69
5위/7팀
탈락
82
33
49
.402
1969-70
3위/7팀
<color=#373a3c>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82
39
43
.476
1970-71[86]
2위/4팀
<color=#373a3c>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
'''서부 컨퍼런스'''
82
51
31
.622
1971-72
2위/4팀
<color=#373a3c>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
82
57
25
.695
1972-73
2위/4팀
<color=#373a3c>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
82
51
31
.622
1973-74
2위/4팀
<color=#373a3c>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82
54
28
.659
1974-75
1위/4팀
<color=#373a3c>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82
47
35
.573
1975-76
4위/4팀
탈락
82
24
58
.293
1976-77
3위/6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44
38
.537
1977-78
3위/6팀
탈락
82
40
42
.488
1978-79
5위/5팀
탈락
82
31
51
.378
1979-80
4위/5팀
탈락
82
30
52
.366
1980-81
2위/6팀
<color=#373a3c> 2라운드 진출
'''동부 컨퍼런스'''
82
45
37
.549
1981-82
5위/6팀
탈락
82
34
48
.415
1982-83
4위/6팀
탈락
82
28
54
.341
1983-84
5위/6팀
탈락
82
27
55
.329
1984-85
3위/6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38
44
.463
1985-86
4위/6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30
52
.366
1986-87
5위/6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40
42
.488
1987-88
2위/6팀
<color=#373a3c> 2라운드 진출
82
50
32
.610
1988-89
5위/6팀
<color=#373a3c>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82
47
35
.573
1989-90
2위/7팀
<color=#373a3c>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82
55
27
.671
1990-91
1위/7팀
<color=#373a3c> '''우승'''
82
61
21
.744
1991-92
1위/7팀
<color=#373a3c> '''우승'''
82
67
15
.817
1992-93
1위/7팀
<color=#373a3c> '''우승'''
82
57
25
.695
1993-94
2위/7팀
<color=#373a3c> 2라운드 진출
82
55
27
.617
1994-95
3위/7팀
<color=#373a3c> 2라운드 진출
82
47
35
.573
1995-96
1위/8팀
<color=#373a3c> '''우승'''
82
72
10
.878
1996-97
1위/8팀
<color=#373a3c> '''우승'''
82
69
13
.841
1997-98
1위/8팀
<color=#373a3c> '''우승'''
82
62
20
.756
1998-99
8위/8팀
탈락
50
13
37
.260
1999-00
8위/8팀
탈락
82
17
65
.207
2000-01
8위/8팀
탈락
82
15
67
.183
2001-02
8위/8팀
탈락
82
21
61
.256
2002-03
6위/8팀
탈락
82
30
52
.366
2003-04
8위/8팀
탈락
82
23
59
.280
2004-05
2위/5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47
35
.573
2005-06
4위/5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41
41
.500
2006-07
3위/5팀
<color=#373a3c> 2라운드 진출
82
49
33
.598
2007-08
4위/5팀
탈락
82
33
49
.402
2008-09
2위/5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41
41
.500
2009-10
3위/5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41
41
.500
2010-11
1위/5팀
<color=#373a3c>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82
62
20
.756
2011-12
1위/5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66
50
16
.758
2012-13
2위/5팀
<color=#373a3c> 2라운드 진출
82
45
37
.549
2013-14
2위/5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48
34
.585
2014-15
2위/5팀
<color=#373a3c> 2라운드 진출
82
50
32
.610
2015-16
9위/15팀
탈락
82
42
40
.512
2016-17
8위/15팀
<color=#373a3c> 1라운드 진출
82
41
41
.500
2017-18
13위/15팀
탈락
82
27
55
.329
2018-19
13위/15팀
탈락
82
22
60
.268
2019-20
11위/15팀
탈락
65
22
43
.338
<rowcolor=#373a3c> '''NBA 통산 54시즌'''
'''V6'''

'''4281'''
'''2194'''
'''2087'''
'''.512'''

10. G 리그 산하팀


[image]
윈디 시티 불스
Windy City Bulls
설립년도
2016년 (8주년)
역사
원디 시티 불스 (2016년~현재)
연고지
일리노이 주 호프먼 이스테이트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센트럴 디비전
홈구장
나우 아레나

[1] NHL 시카고 블랙호크스와 공용[2] NHL 시카고 블랙호크스와 공용[3] 2019년까지는 시카고의 독립 지상파 방송국인 WGN계열 채널에서도 중계했으나, 2019-20 시즌부터 NBC 스포츠 시카고가 독점 중계권 계약을 했다.[4] 사실 조던 시대만 들어내고 시카고의 행보를 보면 좀 잘하다 망하고, 좀 잘하다 망하고를 반복하는 걸 볼 수 있다. 이걸 생각하면 애초에 그저그런 구단인데, 하필 역대 최고의 선수가 입단하는 행운 덕에 황금기를 맞은 것. 조던이 없었다면 피펜 중심으로 팀을 꾸리며 우승은 못한채 강팀으로 몇년 군림하다가 몸 값이 올랐을때 팔아치웠을 것이다.[5]
예외적으로 1차 3연패 당시엔 실력이 더 떨어지는 호레이스 그랜트가 먼저 소개됐는데, 이는 둘다 드래프트 당시엔 평범한 유망주였으나 초창기엔 그랜트의 실력이 약간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입단동기였던 둘이 주전으로 올라선게 2년차가 된 1988-89시즌이었는데, 이때 그랜트는 출장한 79경기 모두 주전, 피펜은 73경기 중 56경기만 주전으로 뛰었다. 당시 불스는 리그 최고의 리바운더 중 하나이던 찰스 오클리를 보내고 그랜트를 주전 PF로 밀어주던 시기였다. 이때 앞 순번을 받은 그랜트였기에, 둘의 실력이 역전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먼저 소개되었다. 피펜이 가장 먼저 소개된 건 1994-95시즌부터.
[6] NFL 팀 시카고 베어스의 창단자 조지 할라스가 구단주를 맡았다.[7] 해당 팀은 빅맨 조지 마이칸을 배출했다.[8] 팀의 상징이 숫사슴이었다. 현재 NBA에서 숫사슴을 상징으로 하는 팀은 밀워키 벅스 [9] 현존하는 그린베이 패커스라는 미식축구팀이 쓰는 팀명과 같다.[10] 감독(통산 5년)이나 선수 커리어(3회 올스타)보다는 지역해설자로서 오랜 세월동안 사랑을 받았던 분이다. 특유의 맛깔난 해설과 대인배적 성품으로 불스팬들, 구단 관계자들에게 평판이 좋았으며 마이클 조던 항목에 나와있듯 조던과도 친했다. 유나이티드 센터 바깥에 동상도 세워졌을 정도.[11] 정확히 말하면 최상급 '''유망주'''였다. 당시 주전 슈팅가드는 짐 팩슨 (존 팩슨의 형)이었기 때문. 올스타 출신 2번에, 바로 전년도에 뽑은 훌륭한 유망주까지 같은 포지션에 있으니 조던을 뽑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12] 이 과정이 정말 재미있는게 원래 피펜은 NCAA대학팀이 아닌 NAIA라는 존재감이 전혀 없는 하부 컨퍼런스 팀인 센트럴 아칸소 대학을 졸업한 선수였다. 당시 대학감독이 스카우터 및 구단 관계자들에게 피펜을 적극적으로 알렸고 이걸 NBA 명 스카우터였던 마티 블레이크가 바로 당시 단장이었던 제리 크라우스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크라우스는 피펜을 보자마자 하악하악 거렸다. 피펜이 워크아웃을 통해 그야말로 NBA급 기량을 보여주자 초조함과 불안감이 극에 달해서 "너 님 하와이로 가서 잠시 숨어 지냈다 오셈" 할정도였으니... 참고로 크라우스는 좀 괴짜라 이런 식의 요상한 제안을 종종 했는데 이해에 1라운드 지명이 확실시되는 댄 멀리(썬더 댄이란 별명의 선수로 외곽슛과 수비력이 뛰어났는데 피닉스 선즈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올스타에도 뽑혔다)에게 "자네 우리가 2라운드에서 뽑아줄테니 다른팀과 워크아웃(드래프트 참가선수들이 기량을 선보이는 것)을 거부하게"란 말도 안되는 제안을 했다. 이에 멀리는 "거절하겠습니다. 1라운드에 뽑혀야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요"라고 너무나도 당연히 거절했다.[13] 동생 하비 그랜트와 쌍둥이 NBA 선수였다. 항상 고글을 쓰고 플레이했다. 후에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14] 매직 존슨과 마이클 조던의 대결, Old MJ와 New MJ로 화제를 모았던 파이널이었다. 그리고 이 파이널을 끝으로 매직과 버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조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15] 2013년 현재 시카고 불스의 부사장.[16]보스턴 셀틱스의 단장[17] 사실 이 경기에서 그랜트는 33분을 뛰면서 단 1득점에 그쳤을정도로 최악의 슛난조를 겪고 있었고, 피펜이 패스를 해주었을 당시 골 밑에서 좋은 자리를 잡고 있었음에도 자기보다 15cm나 작은 에인지가 황급히 다가오자 외곽으로 볼을 빼버렸다. 그랜트가 슛난조를 겪고 있어서 쉬운 골밑슛을 못넣었을수도 있고 넣었어도 동점으로 연장전에 돌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팩슨에게 빼준것이 좋은 판단일수도 있으나 경기 막판 높은 확률을 버리고 낮은 확률을 택한 플레이임은 분명하고 이 플레이에 대해 마이클 조던은 자기 공격비중 높여달라고 징징대더니 막상 공 주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다시 패스 돌리더라며 비웃기도 했다. 팩슨이 슛을 성공시키고 이후 마지막 플레이에서 그랜트가 케빈 존슨의 마지막 슛을 블락해내서 그랜트의 패스를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또한 마이클 조던의 발언은 조던과 그랜트가 별로 좋지않은 사이인것도 감안해야 한다.[18] 슬램덩크의 북산 대 능남전에서 경기 막판 안경선배가 넣은 3점슛의 모티브가 된 장면이다. 실제 마이클 조던은 경기중에도 스카티 피펜이 패스를 안하고 자기가 슛을 던졌단 이유로 경기중에 대놓고 훈계를 하는 전권지휘자였다. 때문에 피닉스는 팩슨을 전혀 계산에 넣고 있지 않았다가 허를 제대로 찔릴 수 밖에 없었다. 북산전에서 허태환서태웅에게 더블팀 가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간단.[19] 사실 피펜이 과소평가받았다고는 하나 93시즌 우승 당시 조던은 2위 피펜이 기록한 득점의 두 배를 기록한 적도 있고, 가장 부진한 96시즌조차 득점과 모든 2차 스탯에서 팀내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절대적인 팀의 중심이었다. 역대 우승팀들의 "우승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각 선수들이 기록한 player efficiency rating(선수생산성을 나타내는 2차 스탯)"을 보면, 93시즌의 불스는 팀내 1, 2위간 격차가 역대 두번째로 큰 팀이었다. 또한 "역대 1, 2위 격차가 가장 컸던 톱 10 우승 시즌" 리스트 중 네 번이 불스의 우승 시즌이다. 이 말은 우승 당시 조던의 공헌도가 역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넘사벽으로 컸단 얘기다. 물론 PER은 수비공헌도를 잡아내지 못해 피펜의 공헌도가 과소평가되는 문제점이 있지만, 조던도 피펜 못지않은 수비력을 지녔으니 결국 넘사벽인 건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의 평가가 완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는 얘기.[20] 레전드 포워드 도미니크 윌킨스의 동생이며, 형에 비해 실력은 한참 떨어지지만 운동능력은 형 못지 않았다.[21] 다만 엄밀히 말하면 암스트롱은 당시 꽤 높던 인기와 시카고 불스 왕조의 향수 때문에 팬투표로 선발된 것이지 올스타급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그의 성적은 14.8점 3.9어시스트 2.1리바운드 1스틸이었는데 수비력과 리딩력 둘 다 평범해 (많이 알려졌지만 불스의 리딩은 주로 피펜이, 그가 없을때는 조던이 담당했다. 사실 이걸 떠나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는 리딩은 별 의미가 없었다) 스탯에 드러나지 않는 공헌도도 거의 없었다. 주로 외곽지원으로 팀에 공헌하던 선수. 실제로 94시즌에 정점을 찍고 이후론 올스타 근처에도 못 갔다. 반면 그랜트는 똑같이 통산 1회 올스타였지만 확실히 올스타에 뽑힐만한 실력을 보였던 선수고, 운이 따랐다면 한두번 정도 더 선정을 노릴만한 선수였다. 득점은 BJ랑 비슷했지만(오히려 1대1옵션은 더 부족했다) 한창 때는 리바운드 10개 언저리를 잡아주던 선수고 가장 큰 장점은 93~96시즌 4년 연속 올디펜스 세컨팀에 선정되었던 수비력이었다.[22] 조던 복귀 전까지 불스는 34승 31패로 5할을 약간 넘기는 수준이었지만 조던이 합류한 이후 13승 4패를 기록한다. 야구하다 돌아와 제 컨디션이 아닌 조던이었는데도... 뉴욕 닉스 전에서는 55점을 넣기도 했다.[23] 트레이드 상대가 백업센터 윌 퍼듀였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어이없는 트레이드라고 봐도 이상할 게 없지만, 샌안토니오 입장에선 사고만 치고 다니는 로드맨을 빨리 처리하고픈 마음에 단행한 트레이드로 보여진다. 그리고 트레이드 직후 언론에서는 로드맨이 조던과 충돌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지만... 훗날 스티브 커의 증언에 따르면 로드맨은 애초에 조던에게 덤빌 생각 자체를 못했다고 한다.[24] 실제로 1995-96 시즌 직전 당시 동부 최강으로 예상되던 팀은 전 시즌 준우승팀이자 이 시즌에도 60승이나 한 올랜도 매직이었다. 물론 이후 결과는...[25] 다만 이 시기의 데니스 로드맨은 이미 35세의 노장이라 전성기가 한참 지난 선수였고, 올스타급과도 거리가 멀었다.[26]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NBA는 한 시즌에 통상 82경기를 치른다.[27] 예를 들어 80년대 초반의 레이커스 - 매직 존슨, 카림 압둘자바, 제임스 워시와 셀틱스 - 래리 버드, 케빈 맥하일, 로버트 패리시. 2000년 이후로는 2008 보스턴 셀틱스나 2010년 초반의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가 모인 마이애미 히트.[28] 사실 이런 식으로 상을 싹쓸이한 팀 중에는 01시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처럼 "원맨팀"으로 불리는 팀도 있다. 2001년 필라델피아의 경우 우승을 못했기 때문에 우승 트로피와 파이널 MVP가 없었지만 그 외에 받을수 있는 상인 시즌 MVP에서 감독상까지 개인상들을 싹쓸이 했다.[29] 당시에는 역대 2위였으나 2015-16 시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의해 한 계단 내려갔다.[30] 다만 매번 접전이었을 정도로 젊은 불리츠는 최강 불스를 잘 몰아붙혔다. 조던의 지배력과 불스의 노련미에 매번 밀렸을 뿐.[31] 참고로 이 시리즈에서 마이클 조던은 정말 보기 드물게 슈팅난조를 겪었다. 4차전에서는 그답지 않게 난사를 하며 2할 성공률을 기록하기도...[32] 마이클 조던이 "마이클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 출연해서 직접 밝힌 바로는 5차전 경기 당일 새벽에 배가 고파서 시켜먹은 피자 1판을 모두 먹고난 뒤 구토와 고열에 빠지면서 5차전 경기는 독감이 아닌 식중독이었다고 확실하게 인증함.(이전까지는 조던의 몸상태를 독감이라고 정설처럼 여겨서 5차전 경기를 "The Flu Game"으로 칭했으나 조던의 증언으로 이는 틀린것이 됐다)[33] 이때 경기를 보면 벤치에 앉을 때마다 수건을 머리에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헤롱거리는 조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경기가 끝난 후 거의 스카티 피펜에게 안겨 퇴장했다. 이때 1등 공신은 조던이라 당연히 그가 경기 후 인터뷰를 해야했지만, 너무 몸상태가 안 좋아서 피펜이 대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34] 당시 28초가 남은 공격 직전 작전타임때 조던이 스티브 커에게 "스티브, 스티브, 준비해"라고 조용히 속삭이는데, 이는 클러치 타임에 카메라가 조던을 주로 잡아주기 때문에 작전이 새어나기지 않게 거의 복화술에 가까운 스킬로 커에게 작전을 몰래 전달한것인데... 순진한 커는 조던에게 아주 큰 소리로 "존(스탁턴)이 내게서 떨어지면 준비하고 있을게!" 라고 대답한다. 이는 스티브 커도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 출연해서 창피한 추억인듯 얘기한다.[35] 사실 플레이오프에서 위기가 없었던게 컸다. 워싱턴이 생각보다 잘 싸웠지만 그래봐야 스윕, 2,3라운드를 모두 1패만 하고 통과한데다 난적 닉스를 꺾고 올라온 히트는 불스에게 완전히 호구잡혀서 조던이 웬일로 부진하기까지 했는데도 1승밖에 못했다. 다만 파이널에선 재즈가 훌륭히 맞선데다 5차전의 드라마가 유명하다.[36] 2020년에 조던의 허가를 받고 ESPN이 제작한 이 시즌 불스에 대해 다룬 10부작 다큐멘터리의 제목 역시 The Last Dance다.[37] 이 플레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살짝 미는 것도 아니고 자신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조던을 제치기 위해 두 손으로 대놓고 밀어버렸기 때문에. 밀러는 은퇴한 후 이 플레이에 대해 "경기 막판에 심판들은 공격자 파울을 부는 걸 주저한다는 것을 염두에 뒀다"고 언급한 바 있다.[38] 사실 조던이니까 못해보이는거지 이것만 해도 트리플더블에 가까운 활약이다.[39] 은퇴 직전이었던 카트라이트는 그렇다 쳐도 이제 전성기에 오르던 그랜트를 잃은 건 치명적이었다.[40] 조던은 몇년 후 워싱턴 위저즈에서 잠시 선수생활을 하다가 세번째 은퇴를 한다.[41] 사실 재창단보다 상황이 안 좋았던게 신생팀이라면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권 지명순위가 주어지는게 일반적인데 불스는 전 시즌 우승팀이자 정규시즌 2위 성적을 거둔지라 꼴찌에서 두번째 지명순위를 받고 코리 벤자민이란 실력없는 선수를 지명했다. 참고로 벤자민은 1라운드 신인들에게 보장되는 3년 계약이 끝나고 어느 팀과도 계약을 못하고 해외에서 나머지 농구커리어를 보내게 된다. (중간에 애틀란타와 단기계약으로 잠깐 뛰기도 했지만) 이때 드래프트가 디르크 노비츠키, 빈스 카터, 폴 피어스 등 슈퍼스타부터 앤트완 재미슨, 마이크 비비, 라샤드 루이스 등 준척급 선수들까지 즐비한 풍작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쉬운 점. 물론 이 시즌 시원하게 말아먹은 덕에 마찬가지로 풍작인 9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를 획득하긴 했다.[42]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에 보면 라인스도프가 "필 잭슨과 재계약하려고 오퍼했다"고 하는 인터뷰 장면을 보고 마이클 조던이 순간 울컥해 말을 못 잇는데,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개소리기 때문이다'''. 구단주의 묵인이 없다면 피고용자인 단장 입장에선 절대로 "우리 팀은 감독 재계약 절대 안 할 거임"이라고 말하고 다닐 수가 없다. 실제로 조던은 최소 1시즌 더 우승 도전해보고 싶어했지만 구단 측에서 잭슨부터 시작해 (조던만 빼고) 주축 멤버들을 잡을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에 말년에 리빌딩 팀에서 혼자 고생하고 싶지 않아 은퇴했다.[43] 라루는 97-98시즌에 총 14경기에 평균 10분 뛰었고 플레이오프 로스터에서도 제외되었으며, 심킨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5.7분 뛰었다. 웨닝턴은 훌륭한 롤플레이어였으나 조던과 동갑인 노장으로 결장과 부상도 잦고, 98시즌엔 평균 9.7분만 소화했다. 브라운은 운동능력만 좋은 단신 가드로, 불스 주전라인업의 약점인 단신 가드 수비 말고는 딱히 쓸모가 없었다.[44] 하퍼는 부상과 고령으로 인해 이때 은퇴를 고려했으나 그의 리더쉽과 트라이앵글에 대한 이해를 높게 산 필 잭슨의 설득으로 레이커스와 계약해 주전 포인트가드로 뛰며(다만 01시즌엔 부상이 심해 시즌 막판부터 데릭 피셔가 주전으로 뛰고, 하퍼는 플옵에서도 거의 뛰지 못했다) 2차례 더 우승을 거두고 은퇴한다.[45] 여담이지만 쿠코치 트래이드 당시 샐러리 맞추기용 부록으로 불스에 합류한 선수 중 하나가 당시 완전한 무명이었던 브루스 보웬이었고, 트래이드 직후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방출되었다. 이후 그가 마이애미 히트에서 NBA 올 디펜스 세컨드팀에 뽑히는 정상급 수비수, 스퍼스에서 한단계 더 성장해 수비왕 후보로 꼽힐 정도로 탁월한 수비수가 됐다는 걸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46] 어이가 없는 게, 당시 브랜드는 신인 시절부터 2년 연속으로 평균 20점 10리바운드 이상을 하는 탁월한 빅맨이었다. 팀성적만 폭망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올스타감이었고 실제로 트래이드되자마자 올스타에 뽑힌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203의 단신 파워포워드인 브랜드는 성장의 한계가 있고 216 장신이었던 챈들러는 케빈 가넷처럼 클거란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지만 현실은... 한마디로 주식몰빵했다 망한 꼴. 물론 훗날 챈들러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빅맨으로 크지만 불스 시절엔 거의 실망만 안겨줬다.[47] 등번호도 커리 2번, 챈들러 3번을 줬는데 둘이 합쳐 23번만큼 해달라는 의미에서 준거지만 현실은...[48] 야오밍 다음 순번이었다.[49] 그렇게 큰 부상을 입었으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3년 후에 뉴저지 네츠와 계약했다가 5게임만 뛰고 방출되었고, NBDL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지금은 은퇴해서 ESPN의 대학농구 방송해설가로 일하고 있다.[50] 불스는 윌리엄스의 부상 직후 2003 드래프티로 또다른 포인트 가드 커크 하인릭을 뽑는데, 구단 입장에서는 다행히 하인릭이 오랫동안 좋은 활약을 펼치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51] 여담으로 주석의 대표곡 '정상을 향한 독주' Mo' Smooth 버전 가사에 나오는 농구 선수다.[52] 사실 셀틱스도 팀 수비의 핵인 케빈 가넷이 부상으로 아웃된 상황이라 전 시즌보다는 전력이 크게 하락한 상황이었다. 여담으로 이 시리즈를 계기로 라존 론도가 빅3 깍두기 정도의 위치에서 슈퍼스타로 거듭난다.[53] 기존의 최연소 MVP는 1969년에 신인왕과 MVP를 모두 휩쓴 웨스 언셀드로 당시 23세(+9일)이었다. 데릭 로즈는 22세(+191일).[54] 다만 가솔은 이해 그 빡센 포워드 자리에서 해당시즌 올NBA 세컨팀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센터로 오른게 아니다! 센터 세컨팀은 드마커스 커즌즈) 원래부터 수비는 잘 못하지만 공격력만으로 종합활약이 전체 포워드 중 네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잘하는 선수를 데려와놓고 수비 못한다고 뭐라고 할 순 없는 노릇. 노비츠키가 인사이드 수비 못한다고 뭐라고 하진 않지 않은가.[55] 2년째는 선수 옵션.[56] 클리블랜드는 2014-15시즌 이래 르브론이 결장한 23게임에서 19패를 기록중[57] 그 이전까지 전경기 출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로빈이 엄청난 희생을 한 것이다.[58] 체코출신으로 워싱턴에서 준수한 게임운영 능력을 보여줬던 201cm의 장신 PG[59] 백업 3번인 챈들러 허치슨(201cm)은 시즌 초 벤치워머로 뛰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다 부상까지 당했고 결국 수비력이 좋은 193cm의 가드 크리스 던이 스타팅으로 3번을 보게 되었다... 크리스 던이 1번으로는 피지컬이 좋고 수비력도 좋지만 괴물들이 득실 거리는 3번 자리를 보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른다. 새로 영입한 베테랑 테디어스 영이 오토 포터 대신 3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올시즌 31살이 되면서 확실히 느려졌고 전성기 때도 약하던 3점이 더욱 약해져 주로 백업 PF로 출장 중이다. [60] 뉴욕에서 뛰던 선수로 218cm의 신장을 가지고 있지만 운동능력이 매우 떨어지고 주로 픽앤팝 후 받아 먹기 3점을 노리는 선수. 라우리 마카넨과 활동 반경도 겹친다.[61] 하지만 골밑 돌파 후 마무리에 약점을 드러내면서 필드골 성공률 자체는 낮아졌고 돌파 후 킥아웃도 약하다 보니 돌파의 효율은 낮은 편. 결국 라빈의 3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3점이 터지면 접전 내지는 박빙승, 안 터지면 10점차 이상 패배하는 패턴[62] 단 Coby와 Kobe로 철자는 다르다.[63] 애초에 현재 가동되는 로스터에 잭 라빈 외에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 낼 능력이 있는 선수가... 거기에 잭 라빈의 돌파 후 킥 아웃 능력이 평균이하 수준이라 상대 수비입장에서는 라빈의 묻지마 3점 폭발 외에는 큰 위협이 없는 상황[64] 주요 공격 옵션인 3점슛 성공률도 2%나 하락해 더욱 효율이 낮아지고 있다.[65] 거기에 잭 라빈의 수비가 분명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비에서 까먹는 마진이 많다. [66] 2012-13시즌과 2014-15시즌[67] 오바마 본인도 불스가 아닌 팀을 자꾸만 초대해 서글프다고 농담조로 발언한 적이 있다.[68] 오바마는 컵스의 팬이 아니다. 영부인 미쉘 오바마가 컵스팬이다.[69] 조던 개인이 나이키와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아디다스는 NBA 저지를 생산하면서도 조던의 저지를 발매할 수 없었다.[70] Chicago를 비스듬하게 쓴 유니폼에서 BULLS 대문자를 크게 써놓은 유니폼을 바뀐 이후로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71] ABA 출신으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시카고 불스에서 뛴 센터선수로 강렬한 아프로머리가 트레이드마크였다. 등번호는 53번.[72] 찰스 오클리 - 빌 카트라이트 트레이드로 기회를 얻어 성장하기 시작한 시카고 불스 왕조 1기 멤버. 조던의 1차 은퇴 이후 올랜도 매직으로 떠났다. 등번호는 54번.[73] 커크 하인릭은 무려 두번이나 버렸고, 지미 버틀러는 한창때에 트레이드할라고 했었다! 그러고는 계속 흔들기 하더니 결국엔 트레이드. 대가로 받아온 선수들도 전력보강하고 차원이 먼 상황이었으나... 이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론 이득을 본 트레이드가 되었다[74] 참고로 윌 퍼듀는 커리어 내내 벤치롤을 주로 맡은 평범한 센터였는데 롱리는 94-95시즌 당시 퍼듀의 백업이었다. 위에 언급된 카트라이트가 노화하면서 점점 롤이 줄어들도 94오프시즌에 시애틀로 이적했는데, 이 공백을 그의 후보였던 퍼듀로 때운 것. 참고로 같은 해에 이적한 그랜트의 공백도 보강하지 않고 스몰포워드인 쿠코치를 파워포워드 자리에 세웠다.[75] 다만 다행히 90년대 중반부터 샐러리캡이 급격히 늘어 (94-95시즌 2천4백만 달러에서 한 시즌만에 3천4백만 달러로 급상승했다) 덕분에 하퍼의 금액은 큰 타격을 주진 않았다.[76] 월러스는 합류 전까지 01-02시즌부터 05-06시즌까지 다섯시즌동안 네번이나 (02,03,05,06)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한 선수였다. 그런데 이건 충분히 예측했어야 하는 것이 월러스는 맨발키가 2미터 남짓한 초단신 센터인데 운동능력으로 특급수비력을 보여주는 케이스였다. 문제는 운동능력으로 사이즈를 커버하는 선수들은 당연히 그 운동능력이 떨어지면 기량이 급격히 하락한다는 것, 그리고 계약 당시 월러스가 만 32세였다는 점이다. 이 점을 의식했는지 월러스는 장기계약을 원했으나 디트로이트는 이에 난색을 표했고, 이를 덥썩 문 것이 바로 시카고 불스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노장이 되어가는 초단신 센터 월러스는 이후 기량이 눈에 띄게 하락하게 된다.[77] 당시 조던이 역대 최고액인 3천만불에 1년 계약했고, 알론조 모닝과 주완 하워드는 둘 다 1억불이 넘는 장기계약으로 팀에 잔류했다. 시장에 나온 최대어인 샤킬 오닐은 이들보다도 많은 액수에 레이커스와 계약했고, 심지어 그 외에 디켐베 무톰보, 게리 페이튼, 레지 밀러, 데니스 로드맨, 존 스탁턴, 클라이드 드렉슬러, 팀 하더웨이,케니 앤더슨, 케빈 윌리스 등이 있었다.[78] 그는 커리어 내내 이 부상으로부터 100%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79] 실제로 99시즌부터 03-04시즌까지 암흑기의 팀운영을 자세히 보면 (루키 계약에 묶여 연봉이 낮은) 신인급 선수들 위주의 스쿼드, 스타급 선수들 영입을 최소화, 은퇴를 앞둔 노장이나 만기계약자 영입 등 노골적으로 돈을 아끼면서 최소한의 팀성적만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스털링 시절 클리퍼스의 운영방식과 똑같다. 심지어 이후 성장해서 거액을 주고 잡아야 하는 유망주들을 돈 아끼다가 놓치는 것도 똑같다.[80] 예를 들어 90-91시즌 당시 주전들이 쌓아놓은 점수차를 벤치멤버들이 까먹는 전개가 이어지자 지친 조던이 "벤치 스코어러 한명을 데려와달라"고 프런트에 요구했고, 크라우스 단장은 이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그대로 전력보강 없이 트래이드 데드라인을 넘겼다는 것이 샘 스미스의 책 "Jordan Rules"에 나온다. 이후 조던은 구단주 라인스도프의 사무실에 가서 길길히 날뛰었고, 그의 중재로 겨우 사태가 진정될 수 있었다. 만약 현대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난리가 났겠지만 당시는 책이 나오기 전까지 이런 일이 있었다는게 '''대중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팬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기에 저딴 식의 운영이 가능했던 것이다.[81] 1차 은퇴 이후 영구결번된 날짜[82] 1차 복귀 이후 영구결번이 보류되었다가 2차 은퇴 이후 영구결번식을 열었다.[83] 선수 은퇴는 1977년에 했지만 영구 결번 지정은 1995년에 되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10번을 달고 뛴 선수가 좀 있다. 1차 3-peat 때 존 팩슨과 함께 3점 슛터로 활동한 가드 B.J 암스트롱이 대표적. 데니스 로드맨은 10번이 영구 결번된 이후 불스에 입단해서 91번을 달고 뛰었다.[84] 1997-98시즌에 존 팩슨이 잠깐 해설을 맡았다.[85] 디비전 순위가 의미가 없어진 2015-16 시즌부터는 컨퍼런스 순위 기재.[86] 이 시즌 부터 서부, 동부 컨퍼런스로 구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