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가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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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2. 개요
3. 상세
4. 관련 링크
5. 관련 문서


1. 제원


함종
호위함
배수량
기준
2,170톤
만재
2,370톤
길이
103.7m

12.5m
흘수[1]
3.8m
최고 속도
25 knots
항속거리
4,000 nm / 18 knots
승무원
186 (총원) / 16 (장교)
엔진
추진
CODAD
디젤 엔진
SEMT 피엘스틱 12기통 PA6V280 STC 디젤x4
레이더
대공
시그널 DA-08
대수상
탈레스 Variant
항법
2KH-1007
사격 통제
시그널 Liord Mk.2
소나
STN 아틀라스 ASO 90
기만 장비
디코이[2]
슈퍼 바리케이드 발사기 2기
ECM/ESM
ESM - 라칼 커틀라스 242
ECM - 라칼 스코피온 (재머)
무장
함포
오토브레다 76mm
56구경장 컴팩트 x1
CIWS
오토브레다 40mm
70구경장 기관포 2연장 컴팩트 2문
대함 미사일
오토마트 Mk.II 블록IV 4 × 2
대공 미사일
FM-90N × 8
어뢰
B-515[3] 324mm 3 × 2
항공기
아구스타 AW109 파워 × 1

2. 개요


방글라데시 해군호위함. 한국 최초로 수출한 함이다. 1999년 울산급을 확대개조한 수출형 설계안 DW-2000H을 기반으로 대우조선해양에서 건조하였다.

3. 상세


방가반두함 이전 방글라데시에서 고속정을 제외한 군함은 중국에서 쓰던 054급 오스만함 뿐이었다. 이전부터 미얀마와 잦은 갈등을 겪고 있었던 방글라데시 해군은 1994년부터 1995년까지 신형 호위함의 확보를 정부에 요청하였고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약 1억달러의 예산을 지원하였다. 이후 1995년 부터 1996년까지 9개 업체가 참가하는 국제 입찰을 실시하여 태국에 군함을 납품하던 중선중공과 한국 해군에 납품한 경력이 많고 울산급의 설계를 기초로 하여 이를 확대한 3,000톤급 호위함 DW-2000H 설계안을 제시한 대우조선이 경합하였고 가격은 중선중공 쪽이 저렴했으나 끝내 대우조선이 선정되었다. 1998년 3월에 계약이 체결되었고 계약금액은 9997만 달러에 2001년까지 건조 완료하여 인도하고 승무원 훈련은 대한민국 해군이 지원해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한국이 수주한 가장 큰 규모의 수상 전투함이자 1억 달러에 달하는 큰 계약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DW-2000H 설계안이 차기 호위함인 FF2000 사업에 제시될 설계안의 변형이라는 이야기에 군사 분야에 관심이 많던 사람들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위 시진을 보면, 건현 위 상부구조물이 광개토대왕급과 충무공이순급을 섞은 것처럼 보인다.
당시 대우그룹이 파산하면서 방글라데시 의회에서는 함정을 인도받지 못할까봐 우려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정대로 1999년 5월12일 기공하여 2000년 8월 29일 진수해 방글라데시 해군에 인도하였다. 2001년 6월 20일 방글라데시에서 정식 취역하였다. 함명 '방가반두'는 세이크 하시나 와세도 총리의 아버지로 방글라데시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이던 세이크 무지부르 라만의 애칭이며, 뜻 자체로는 "방글라데시인들의 친구"이다. 이 때 인수를 하러온 방글라데시 해군 수병들이 한국에서 탈영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2001년 방가반두함을 주문한 세이크 하시나 와세도 총리 정권이 선거에 패배하면서 새 정권에서 소나 결함 등 38개의 함의 결함과 입찰과정에서 가장 저렴한 6800만 달러 제시한 중국이 아닌 4번째 가격을 제시한 한국이 선택된 것은 로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방가반두함의 도입은 방글라데시 해군의 전력을 약화했다."면서 세이크 하시나 와세도 총리와 해군참모총장을 구속하고 함정을 퇴역시켰다. 하지만 함정의 결함은 조사결과 제조시에 결함이 없던 걸로 결론났으며, 로비 의혹도 관련자들이 보석금을 지불하고 풀려남에 따리 흐지부지되었다. 방가반두와 관련된 이 사태는 군함의 문제가 아닌 여야 교체에 따른 정치적 투쟁의 수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차피 방글라데시 해군 전투함 중 가장 강력한게 이거다. 방글라데시 경제력으로는 과분하기까지 한 성능의 이 함선은 그동안 결함은 커녕 잘만 써왔기에 욕을 먹을 이유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다.
사실 방글라데시로서는 지리를 봐도 알겠지만 적이라고 할 만한 나라가 그리 없다. 이를 가는 역사를 가진 옛 지배자 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를 공격하려면 인도아대륙을 횡단하는 등 숫제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찍어야 한다. 해군이라면 얘기가 달라질지 모르겠으나 파키스탄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탈레반이나 여러 내부문제가 꼬여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방글라데시 이웃인 미얀마와 여러 작은 섬 영토문제를 두고 갈등이 있지만 방가반두 하나만 가져도 충분한 상황이다. 미얀마도 군부와 여론의 갈등 및 소수민족 문제라든지 해결할 문제가 가득인 상황에 괜시리 방글라데시에게 까불다가 인도 및 중국에게도 비난당할 게 뻔하기에 대놓고 쳐들어올 상황도 아니며 미얀마도 해군으로는 그다지 내세울 게 없는 상황이기에 방가반두 하나만 보유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2017년 미얀마가 3,000톤급 kyan sittha 호위함을 취역시켜서 이제는 오히려 미얀마가 해군전력이 더 우세한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미얀마군에서 도입한 LSD가 바로 한국산이라서...
방가반두함은 2002년 예비로 지정되었는데 예비지정 후에도 함정에 승무원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장비와 탄약이 그대로 적재되어 현역과 같은 상태였다. 예비역 편성 당시에 고가의 최신함이 그 이유도 밝히지 않고 계속 예비역으로 있는 것을 방글라데시 언론도 비판했다. 2006년 중국에서 FM-90N을 도입하여 장착하였고 2007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였다. 이때 정치적인 이유로 함명을 방가반두에서 칼리드 빈 왈리드로 변경하였다가 세이크 하시나 와세도 총리가 다시 승리하여 집권한 2009년 다시 방가반두로 바꾸었다.
2007년 재취역 후 방가반두함은 배타적 영해 순찰과 사이클론이나 해일로인한 재난에서 인명구조 수색, 2008년 미얀마와 영해 갈등이 있을 때 출동 등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있다. 이러한 실적을 예로 들며 2008년 세이크 하시나 와세도 전 총리는 방가반두의 도입은 방글라데시 해군의 전력 강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당시 집권 여당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4. 관련 링크


BNS Bangabandhu
Bangladesh Navy

5. 관련 문서



[1] 수면아래 잠기는 부분[2] 어뢰 기만용[3] 화이트헤드 A244S 어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