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말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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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산말갈은 말갈 7부의 하나로, 주로 백두산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백산말갈이라고 불리웠다. 고구려시대에 이미 속말말갈과 함께 고구려인으로 동화되었고, 말갈이라는 호칭이 단순히 지방민에 대한 비칭이라고 보는 소수 학설에 의할 경우에는 그냥 백두산 근처에 사는 고구려의 지방민일 뿐이다.
말갈족은 크게 두 종류로 분류 할 수 있는데 속말말갈, 백산말갈의 예맥계에 다소 밀접한 말갈과 흑수말갈로 대표되는 퉁구스 원형의 말갈이 그것이다. 퉁구스계인 흑수말갈은 발해 멸망 후 여진족이 되어 금나라를 건국하고 훗날에는 만주족으로 청나라를 세워 중국 최후의 왕조로 군림하게 된다. 다만 숙신계가 분명한 흑수말갈과는 달리 나머지 말갈들은 그 비중에 차이가 있을 뿐 예맥계인지 숙신계인지 딱 잘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에 있다. 고구려에 대한 귀속감과 정체성이 강했던 속말말갈과 백산말갈이 예맥계의 비중이 확실히 높았다는 개연성이 있을 뿐. 한편 백산말갈은 그 주민 중 숙신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주로 옥저 계통의 예맥인들로 구성되었다고 여겨진다. 또한 동부여의 세력권과도 대부분이 겹치므로 동부여인들과의 연합과 혼합도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2.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에 동화된 백산말갈인들은 속말말갈을 비롯한 고구려인들과 함께 대거 당나라 영주 근처로 끌려갔다가, 이후 대조영의 고구려부흥운동 당시 속말말갈을 비롯한 고구려인들과 함께 고구려의 옛 땅으로 탈주하게 된다. 다만 끝까지 당나라에 대한 철저항전을 외치며 옛 부여의 고토로 들어간 속말말갈과는 달리, 백산말갈은 요동 방면에서 그들과 헤어진 후 고구려인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신라의 영향력 또한 건재하면서도 자치력은 유지할 수 있는 패서 지역, 즉 오늘날의 황해도로 돌아가는 걸 선택하게 된다. 향후 이들은 황해도 일대에 남아 있는 옛 고구려인들과 융화한 후 신라의 영향력 아래에서 고구려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여, 통일신라-후삼국시대의 패서 호족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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