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백두산'''
''''''
| '''Mountain Paektu'''

'''위치'''
[image] 대한민국 함경남도 혜산군·함경북도 무산군#s-4(명목상)
[image] 중화민국 안둥성 창바이현, 쑹장성 안투현(명목상)
[image]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량강도 삼지연시
[image]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바이산시
'''높이'''
2,744m (병사봉 / 장군봉)
'''분류'''
활화산
'''산맥'''
장백산맥, 마천령산맥, 태백산맥
'''각국 표기'''
'''한국어'''
백두산(白頭山)
'''영어'''
Mt. Paektu (북한식・표준)
Baekdusan Mountain[1] (남한식)
Mt. Baitou (중국식)[2]
Mt. Changbai (중국식)
'''중국어'''
長白山, 长白山(Chángbáishān)
'''만주어'''
ᡤᠣᠯᠮᡳᠨ ᡧᠠᠩᡤᡳᠶᠠᠨ ᠠᠯᡳ
(golmin šangiyan alin)
'''일본어'''
白頭山(はくとうさん, ペクトゥサン)[3]
1. 개요
2. 특징
3. 명칭
4. 국경선
5. 자연과 기후
5.1. 동물상
5.2. 천지 괴수
6. 화산
6.1. 946년 백두산 대분화
6.2. 오늘날 보이는 활동
6.3.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7. 관광
7.1. 북파 코스
7.2. 서파 코스
7.3. 남파 코스
7.4. 동파 코스
8. 여담
9. 관련 문서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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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두산 천지
비룡폭포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북한중국 국경에 있는 화산으로 화산의 분류 체계에 따르면 성층화산, 활화산, 초화산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의 '조종산'이다. 봉우리는 총 16개로 최고봉은 해발 2,744m인 병사봉(兵使峰)[4]으로 북한 지역에 있으며,[5] 각 봉우리 정상 사이에 칼데라 호수인 천지를 품고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의 발원지이다.

2. 특징


백두산의 높이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데, 한국, 북한, 중국 세 나라가 해발 고도를 재는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6] 과거 측정의 정확성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2,744m는 일제강점기 때 측량한 것이다. 인공위성을 활용하기 전에는 높이가 알려진 곳에서 삼각 측량을 통해 높이를 쟀기 때문에 현대적 기준에 따른 측정 결과와는 오차가 있을 수 있다.
해발고도와 구분되는 기복량이란 개념이 있다. 기복량이란 특정 범위 내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높이 차를 말한다. 범위를 1 km2로 하여 기복량을 측정한 연구에서, 백두산의 기복량은 2,505 m라는 논문이 있다.[7]
세계에서는 37,473번째로 높은 산이다.[8] 량강도 삼지연시과 중국 지린성 사이에 있다.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상으로는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과 함경북도 무산군 삼장면에 걸치며, 천지(용왕담) 전역은 혜산군 보천면 관할이다. 중화민국 명목상 행정구역으로는 안둥성(安東省) 창바이현(長白縣)과 쑹장성(松江省) 안투현(安圖縣)에 걸친다. 천지는 창바이현 관할.
한민족영산으로, 지금도 한국국가북한국가에 모두 등장한다. 백두산을 영산으로 중요시한 기록은 상당히 오래됐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오대산에 대해 "이 산은 곧 백두산의 큰 줄기로, 각 대에는 진신이 늘 있는 곳이다"(#)라고 기록한 부분이 있어 이미 신라 때부터 한반도 산줄기의 근본 기준이자 신앙으로서 백두산을 꽤나 중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초기까지는 말갈/여진의 땅이었기 때문에, '아주 멀리 있는 산맥의 기원'이라는 의미 이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다만 묘청의 건의에 의해 서경에 세운 '팔성당'에서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 실덕 문수사리보살(護國白頭嶽太白仙人實德文殊師利菩薩)이라는 신격을 모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고려사 묘청열전 인종 9년[1131]조), 고려 의종 대에 쓰인 편년통록에서 왕건의 조상인 호경이 백두산으로부터 내려왔다는 기사를 남기면서 한동안 백두산이 자국의 기원과 관련된 중요한 산이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초에는 태종 14년(1414) 이전 어느 시점부터 제사 지낸 것을 이어받아 중사(中祀)로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나(태종실록 14년 8월 신유), 세종 19년(1437) 자국 영토에 있지 않다고 하여[9] 제사 대상에서 제외했다(세종실록 19년 3월 계묘). 이후에도 조선은 '백두산은 우리 땅은 아니긴 한데, 백두산 남쪽은 당연히 우리 땅이고 우리나라 산맥은 백두산에서 기원함!'이라는 식으로 의미 부여를 했고, 그 인식이 가장 잘 체계화된 것이 신경준산경표로 이 책에서부터 '백두대간'이라는 말이 확립되었다.
이후 영조 37년(1761)부터 백두산이 조선 산맥의 근본이 된다는 이유로 제사를 지내자는 건의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검토 단계에서 숙종 때 청이 목극등을 보내 확정한 경계가 백두산으로부터 남쪽이라는 이유로 백두산 대신 백두산 '''맞은 편'''에서 백두산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기로 하였다(영조실록 43년[1767] 윤7월 신축).[10] 이후 1880년대부터 이른바 간도 지역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면서 백두산 인근 지역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졌다. 대한제국 시기에 칭제건원하면서 황제국의 전례에 따라 오악(五岳)을 설정할 때에 북악으로 지정하여, 공식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영산으로 삼았다.
현재는 북한과 중국이 절반씩 나눠서 관리한다. 중국에서는 '''중국5A급여유경구'''로 지정하였다. 그래서인지 입장료는 125위안으로 비싸다.

3. 명칭


조선 국경에서 멀지 않은 산림 가운데 태백산, 즉 백두산이 구름 위에 솟아 있습니다. 이 산은 지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청조(淸朝)의 시조인 한왕(汗王 누르하치)의 탄생지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명합니다. 그 산 서쪽 비탈에는 그의 옛 집이 보수되어 보존되는데, 중국인들은 그곳을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아주 먼 지방에서 경건한 순례자들이 와서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조아립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페레올 고 요한[11]

주교에게 보낸 편지 中 #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유사』로, 신라 명주 오대산을 백두산의 줄기로 소개하는 기사가 2차례 등장한다. 『고려사』 세계와 성종 10년(981)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그 이전 기록의 경우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태백산'을 지금의 백두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하는 편이다.[12] 단군신화, 부여, 고구려를 설명하면서 '태백산'을 무대로 언급한다. 대체로 10세기 후반부터 백두산이라 불렀다고 추정하지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편지에서 보듯 19세기 때까지도 '''태백산이라는 이름이 쓰이기도''' 한 모양이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백두산 이외에도 장백산을 혼용했다. 용비어천가에서도 장백산이라는 명칭으로 언급되며 조선왕조실록에도 장백산이 백두산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온다.[13][14]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를 설명할 때는 환웅이 자리잡은 태백산에 '묘향산을 이른다'는 주석을 달았으나, 고구려 건국 신화 부분에서 동부여 왕 금와가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유화를 만난 부분에서는 태백산에 특별한 주석을 달지 않았다. 다만 고구려=졸본부여라 하면서 졸본을 요동 인근으로 비정했는데, 지리적인 상황으로 보아 학계에서는 백두산으로 본다.[15]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는 처음부터 태백산이라고만 적고 별도의 주석을 달지 않았다. 부여, 옥저, 신라[16], 고례(高禮), 예맥이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보는 동시에, 이승휴 자신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 요하 근처의 무덤을 현지인들이 '부여 부마 대왕의 무덤'이라고 증언하는 것과, 요하 인근을 부여의 땅으로 기록하고 부여가 후조선[17]의 후예라고 기록한 가탐의 기록을 실어놓아 요하 일대와 백두산을 부여 영토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 단군신화의 태백산을 일연이 묘향산이라고 주석을 단 데에는 백두산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설(서대석 교수의 주장), 묘향산이 불교의 성지라서 그 영향을 받았다는 설,[18] 백두산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면서 백두산 신앙의 요소가 묘향산으로 이동한 것을 반영했다는 설(최남선 주장),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으로 이동하면서 평양 지역에 토착화되면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단군 문서 참조).
북한의 평양 단군릉 발굴 및 개건과 남한 이승만 정권의 단기 사용[19], 대종교의 단군 숭배와 백두산 성역화, 단군 동상 설립 등이 한국인의 단군 숭배를 보여준다.
백두산에 관련된 신화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만주족, 특히 청나라에서도 나타난다. 만주족의 기원 신화의 중심지 또한 백두산이며 청나라 시절 백두산은 만주족의 영산으로서 매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중국에서는 산해경의 기록에선 불함산(不咸山)으로,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221∼589)에는 태백산(太白山), 도태산(徒太山) 등 여러 이명으로 불렸다. 현대에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통일되었는데, 이는 만주어로 '긴 흰 산', '큰 흰 산'이라는 뜻인 '골민 샹갼 알린(Golmin Šanggiyan Alin)'[20]번역차용한 것으로, 요나라, 금나라 시기부터 쓴 이름이다. 이러한 명칭은 9개월 가까이 눈이 쌓인 특색 있는 산정의 모습을 잘 반영했다.[21]
즉 현대 중국이 사용하는 '장백산'이라는 표현은 한족(漢族)의 용어가 아니다. '장백산', '백산'은 우리나라가 백두산을 지칭한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하다. 10세기 무렵부터는 중국에서 대부분 장백산, 백산이란 명칭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 고려에서도 장백산이란 명칭으로 많이 불렀고,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다. 지금의 백두산이란 명칭은 그 전에도 쓰이긴 했지만 조선 말기에서나 빈도가 높아진다.
일본 NHK에서 북한 측의 협력을 얻어 백두산 일대의 식생을 50분짜리 자연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적이 있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백두산은 그야말로 '희고 긴 산'이다. 한국측 미디어에서 대개 백두산 천지를 그려내는 데 비해 이 다큐는 삼지연 일대의 자연을 담고 있어서 밑에서 올려다보는 백두산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
영어권에서는 백두산이란 이름을 중국식으로 읽어서 'Baitou Mountain'이라고 하기도 한다. 한편 환빠들은 '밝달뫼'라는 어처구니없는 명칭을 원래 이름이라고 홍보한다. 이른바 순우리말 의 이름이라고 도는 이름 가운데 10월이 하늘연달(개천절 때문)이라는 주장도 더 석연찮게 하는 구석이다. 일단 공식 표기는 북한의 표기인 Mt. Paektu.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이름은 병사봉(兵使峰)이다.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하는데, 장군봉이라는 작명을 한 사람은 김정일. 1963년 8월 백두산 방문 때 백두산 최고봉 이름이 병사봉임을 알고 "수령님백두산이 낳은 장군님이신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병사봉일 수는 없다. 장군봉으로 고치게."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항간에는 원래 이름이 장군봉이었는데 일제가 비하할 목적으로 병사봉으로 고쳤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정작 일제가 붙인 이름은 대정봉(大正峰)이었다.
그런데 백두산의 병사봉은 병사(兵士)가 아니라, 지금의 사단장-군단장 급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줄여 말하는 것이다. 남북한 모두 더 이상 한자를 널리 쓰지 않는 이상 동음이의어 표기의 오해 여지가 있을 수 있기에 아예 명확한 의미인 장군봉으로 바꿨을 수도 있으나, 여기에 김일성의 항일투쟁에 대한 우상화 역시 반영되었으므로 차후 통일되면 표기 변경과 관련하여 고민해 봐야 할 듯하다. #
북한의 계급 중 상류층인 핵심계층 중에서도 최고위 계층을 '백두혈통'이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 동참했고, 북한 정부 수립 이후에도 끝까지 숙청되지 않고 함께한 측근 인사들과 그 가족들을 지칭한다. '백두혈통'의 개념은 혈연 관계에 의한 혈족 개념 보다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전통을 함께 공유하고 계승하는 정치사상적 혈통에 가깝다.
한국의 육군 보병 사단 중 제21보병사단은 '''백두산 부대'''라는 별칭이 있다.

4. 국경선



중국과 북한이 협약한 국경. 현재 국제법상 표준이다.
대한민국이 명목상(헌법상) 주장하는 국경.
6.25 전쟁이 끝난 후 북한중국이 맺은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현재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은 천지 한가운데를 지난다. 이 국경조약은 북한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 천지의 '''54.5%를 북한령'''으로, 중국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의 나머지 '''45.5%를 중국령'''으로 인정한다. 정확하게는 백두산 봉우리[22] 16개 중 9개가 북한령, 7개가 중국령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북한이 중국에게 백두산의 절반을 팔아넘겼다는 낭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 조선과 청은 백두산 부근의 국경선을 확정하기 위한 딜을 본 적이 있다.''' 1712년에 천지 동남쪽 4 km 지점에 세웠던 백두산정계비가 그 증거. 당시 정계비부터 흑석구까지 정계비와 목책, 석토퇴로 이루어진 경계표지물을 설치했다. 따라서 '''이때부터 천지를 포함해 백두산의 절반 넘게 청나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오히려 조중변계조약은 조선시대 경계선에 비해 조금 더 북한에 유리하게끔 체결된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 측 협상 대표였던 저우언라이가 중국 내부에서 크게 비판받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1885년 백두산정계비의 내용과 위치를 두고 조선은 청과의 국경이 두만강이 아니라 흑석구-오도백하-송화강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가 2년 뒤에는 철회했으나 청이 막장이 된 시기인 1900년대부터 다시 이 같은 주장을 내세워 1903년부터 1904년까지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파견해 두만강 이북과 해란강 이남 지역에 영향력을 행세하기도 했다.
한편 표지물이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 상류의 지류 중 하나로 연결된 이유는 당시 청에서 파견된 오라총관 목극등이 흑석구가 두만강으로 이어진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흑석구부터 두만강 발원지인 홍토수까지 이어진 성격이 불분명한 목책이 남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표지물 공사를 위해 파견된 조선인들이 일방적으로 목극등의 실수를 바로 잡으려 한 흔적이고 조선 정부도 이를 추인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 천지 인근에는 북한과 중국이 세워 놓은 경계비가 상당수 존재한다. 따라서 중국 쪽 루트로 백두산 천지에 올라 북한과 중국이 설치한 경계비를 지나치면, '''대한민국 국민도 북한 땅을 잠시나마 밟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북한이, 대만중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조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에는 영토 분쟁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 발행 지도에서 천지 서북방에 위치한 백두산 봉우리 전부를 연결한 선을 한·중 국경으로 표시하며 백두산의 대부분을 한국령이라고 주장한다.
대만 역시 천지 전체를 포함한 백두산의 상당 부분을 자국 영토로 여긴다. 물론 대만이 타이완(타이민) 지구 이외에는 특별히 나서지 않기 때문에 명목상에 불과하다. 과거 정부 발행 연감에서는 이곳이 아예 한반도가 아니라고까지 언급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타이완 지구 이외에는 언급이 없다. 사실 대만이 여기까지 신경 쓸 정도로 상황이 좋지는 못하다(...)
즉 마주한 쪽인 중국-북한 간에는 어찌어찌 합의를 했는데, 해당 지역에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쪽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해당 지역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양상이다.
[image]
참고로 위 사진은 대만이 주장하는 국경선이 빠져 있다.[23]

5. 자연과 기후


높은 위도와 고도로 인해 이 산의 정상부는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10월부터 5월까지가 겨울이며, 1월 평균 기온 -25℃, 7월 평균 기온 7.8℃로 시베리아와 비슷한 기온 분포를 보이며, 강수량은 1,500mm 정도로 많다. 1997년 1월 2일에는 비공식적으로 무려 '''-51℃'''가 관측되어, '''한반도 비공식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 정상에 한정하면 한반도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한대기후툰드라와 가까운 기온을 보이는 지역이다. 다만 사실 이렇게 고산 지역에서 나타나는 추운 기온대는 고산기후로 분류함이 일반적이다.
백두산의 날씨는 눈, 구름, 안개, 폭우, 강풍, 혹한 등이 일반적이며, 연중 변화무쌍해서 쾌청한 날씨를 찾아보기 힘들다.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겨울이며,[24] 봄이 되면 곧 여름, 가을로 이어져 버린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기상이 급변하고 구름에다 안개로 가려져 백두산의 전경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날씨 좋은 타이밍 맞추어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보는 것은 행운이라 여길 정도다.
여름에도 갑작스럽게 기온이 낮아져 방풍복을 준비해야 한다. 기온은 연평균 6~8℃, 최고 18~20℃이며,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 일, 연중 강풍일수는 270일이다. 겨울 날씨가 1년 중 230일이다. 6월 초까지 눈에 덮여있는 백두산 등정은 한여름 장마철보다 6월 말에서 7월 초, 8월 말에서 9월 초가 적당한 시기이다. 실제로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등 일행이 천지를 방문했을 때는 쾌청했으나 늦가을 날씨(!)였으며, 그 다음에 김정은이 10월 중순 천지를 다시 방문했을 때는 '''블리자드'''가 몰아치는 사진이 북한 매체에 등장했다.(....)
백두산이라는 이름답게 정상 부분에 화산재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용결 응회암층이 있다. 현지 가이드들은 '백 번 올라서 두 번 천지를 보기 어렵다'고 지어졌다는 농담을 한다.[25]
칼데라 호수인 천지가 정상에 있으며, 이 천지의 수량은 20억 톤이라는 양을 자랑한다. 천지의 수량이 이렇게 많다는 건 문제가 되는 게, 화산이 폭발할 때 주변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 중 하나인 화산재가 많이 발생한다.
오늘날 천지는 천여 년 전인 10세기 무렵 폭발로 형성된 것이다.[26] 백두산이 천여 년 전에는 높이 3,500m 정도였고 폭발하면서 오늘날 모습이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그 폭발은 천여 년 전이 아닌 훨씬 이전에 일어난 일이고 천여 년 전에는 주로 부석을 분출했다. 백두산에 안 가 본 사람들은 백두산이 후지산처럼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백두산은 후지산과 달리 개마고원이 있고 주변에 2,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막연한 상상과는 상당히 다르다. 백두산은 옛 분화로 흘러나온 마그마가 사방으로 흘러내려 이룬 용암대지에 있기 때문에, 높이보다는 산의 밑동이 거대하다.

5.1. 동물상


그야말로 한반도 동물상의 정수만을 모아다가 데려놓은 듯한 화려한 동물상을 자랑한다.
서식 포유류는 남한에서 흔히 생각하는 멧돼지, 노루, 멧토끼 따위가 아니다. 주로 검은담비, 반달가슴곰, 우수리불곰, 사향노루, , 대륙사슴, 수달, 산양, 족제비, 오소리, 백두산사슴이라고 불리는 와피티사슴의 한 아종, 심지어 이젠 남한에는 소백산 외에는 찾아볼수 없는 붉은여우도 서식한다. 조류도 독수리, , 멧닭, 까막딱따구리, 올빼미, 수리부엉이, 소쩍새, 할미새, 심지어 팔색조까지 있다. 파충류도 북살무사 등 남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종류가 많고 곤충 고유종도 풍부하다.

5.2. 천지 괴수


천지에는 괴수가 산다는 소문이 있다. 증언에 따르면 네스호의 괴물을 닮았다고 하고, 머리가 황소를 닮았다는 카더라도 있다. 최근에 만들어진 루머는 아니고 의외로 오래 전부터 목격담이 존재한다.
산해경 17권에 백두산에 산다는 괴생물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 有蜚蛭 四翼 有蟲 獸首蛇身名曰琴蟲

대황(大荒) 가운데에 산이 있는데 이름을 불함(不咸)이라 한다. 숙신씨(肅愼氏)의 나라에 있다. 비질(蜚蛭)이 있는데 날개가 넷이다. 짐승 머리에 뱀 몸통을 한 것이 있는데 이름을 금충(琴蟲)이라 한다.

[image]
위의 그림이 백두산에 산다고 산해경에 나오는 괴수 금충(琴蟲). 하지만 곽박이 산해경에 단 주석에서 금충을 '뱀의 일종'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뿐이라, 흔히들 생각하는 '천지에 서식하는 거대생물'과는 거리가 있다. 머리 부분이 특이하게 생긴 뱀이었을 것이다.
백두산이 10세기 무렵에 대폭발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도 분출한 적이 있으므로, 천지에 괴물이 산다는 소문은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는 헛소문에 불과하다. 천지에 정말로 괴물이 살았다 해도 이런 화산 폭발 때문에 이미 옛날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1960년에 산천어를 천지에 푼 이후 산천어가 번식함을 확인하였다. 천지가 물이 맑고(먹잇감이 없고) 차가워서 산천어를 풀어도 그 안에서 살기 어려우리란 평이 지배적이었으나, 결과를 보면 산천어가 살기 매우 좋은 환경인 듯. 천지에 사는 산천어는 몸집도 다른 곳에 사는 산천어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6. 화산


백두산은 크기가 상당한 성층화산이다. 백두산 아래에 넓고 두껍게 퇴적되어 있는 (조면)현무암 성분의 순상 화산체 위에 납작한 원뿔대 모양의 산체가 발달해 있다. 산체 위에는 큰 규모의 칼데라(천지)가 놓여있다. 보통 휴화산이라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뜨거운 열수 활동이 잘 관찰되고, 이따금 일어나는 화산성 지진, 그리고 1만 년 이내의 활발한 화산 분출 기록에 근거해 활화산으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판내부 화산(intraplate volcano)[27]으로, 산체의 규모, 역사시대의 폭발 기록, 지질학적으로 독특한 위치 때문에 지질학계에서 주목하는 산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백두산 부석'''이 유명하다. 북한도 이를 아는지 헐값에 팔아서 중국 내에서 건축자재로 쓰인다.
백두산이 언젠가 대분출해 큰 피해를 입힐 지 모른다는 견해는 21세기 들어 상당히 주목받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사례가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터지긴 할텐데 그것이 언제 어느 정도 규모일지가 관건. 한국인이 영산으로 긍정적으로 여기는 산임에도 일본 규슈아소산과 함께 한반도 주변에서 가장 가깝고 위협적인[28] 양대 활화산인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화산학계에서도 한때 미스터리라고 불릴 정도로 영 엉뚱한 위치에 있어서 초유의 관심을 끌었다.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어마어마한 대분화를 일으킨 화산임에도, 기존의 판구조론으로도, 플룸(열점) 이론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사례였던 것. 그러다가 여러 연구를 통해 많은 획기적 발견들이 이어졌다. 동아시아 지역의 지질학에 관심이 있다면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한 영상.

6.1. 946년 백두산 대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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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산의 가장 유명한 분출은 서기 946년 11월 초 있었던 겨울 대분출이다.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분출인 이 분출은, 과거 연대 측정 값이 약 1000년 내외로 산출되었기에, 일명 '천년 분화(The Millennium Eruption)'라고 불린다. 지속적인 고-분해능 동위 원소 측정 및 고생물학자들의 탐사로 그 범위는 점차 좁혀져 현재는 946년 분출이었다고 추정한다. 또 소분화에 대한 기록은 매우 미비하나, 중국 측에서는 가장 최근 1903년에도 있었으며 그 사이에도 제법 있었다고 주장한다.[29]
천년 분출이 알려진 것은 일본에 있던 상당한 양의 화산재 덕분이었다. 역산 결과 꽤 큰 폭발이 있었어야 했다는 추측이 나와 화산학계가 관심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학자들이 해당 분출을 연구해 왔다. 천년 분출 분출물의 상당량이 동해에 퇴적되었고, 다양한 이슈 때문에[30] 정확한 규모를 계산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여러 추정이 있었는데, 화산재의 양을 넉넉히 잡아 가정하면 화산폭발지수 7에 해당한다. 이 정도는 서력기원 후 기준으로도 사례가 3번밖에 없는 강력한 규모이다. 여러 정황상으로 단번에 모든 분출물을 터뜨린 게 아니라, 1-2년에 걸쳐 수 차례 분화했을 것 같다는 추측도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무척 적은데, 현전하는 기록 중에는 450 km나 떨어진 개성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하고, 1000 km 떨어진 일본에서도 화산재 구름을 목격한 기록이 있다.
천년 분출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데에는 단순히 역사시대 분출로서 규모가 크다는 것뿐 아니라, 시기가 맞물려 발해 멸망과 관련 있다는 주장도 한 몫 한다. 일본의 마치다 히로시라는 학자는 940년 백두산이 폭발해 발해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설을 주장했는데, 요사나 동시대 역사서에 백두산 언급이 없어 분화와 멸망의 인과관계는 인정받지 못했다. 또 바람의 방향에 따라 중국 쪽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을 수도 있음이 밝혀졌다.[31] 946년은 발해가 멸망한 지 대략 20년이 지난 시기로 발해멸망과 백두산 폭발과 연관이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발해 멸망 이후 진행된 발해부흥운동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2010년 이후 일본 넷에선 혐한을 중심으로 백두산 분화로 인한 '한국인 교체설'이 유행했다. 백두산 분화로 대부분의 고대 한국인이 멸종(...)하고 만주에서 거주하던 민족이 한반도로 남하했다는 주장이다. (일본 도래인과 관계 있다고 추정하는) 고대 한국인과 현재 한국인은 유전적, 문화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말은 일본 재야사학계에서 꾸준히 나오는 주장이다. 상식적으로 그 정도 대폭발이 벌어지면 각국의 역사서에서 크게 다루어질 것이고 지층에도 그만한 흔적이 남겠지만 혐한들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실제로 백두산 주변에서는 전조(前兆)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2년 6월 중국 동북부에서는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다. 여기에다 2003년에는 균열·붕괴·산사태가 이어졌다. 2004년 계곡 숲에서는 원인 모르게 말라죽은 나무들이 관찰됐다. 지하 틈새를 통해 지표로 방출된 유독가스 탓으로 추정했다.
2005~2006년까지 이와 비슷한 현상이 종종 일어났지만 2006년 말부터 잠잠해졌다.
영국스위스,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이 2017년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를 정확하게 측정해 발표했다. 946년 10월에서 12월 사이.[32] 해당 연구를 리뷰한 블로그
연구팀은 백두산 화산 폭발 당시 뜨거운 용암에 뒤덮여 죽은 낙엽송의 화석을 이용해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를 산출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북서쪽으로 24 km 떨어진 중국 지역에서 발견된 이 나무의 화석은 화산 폭발 당시 수령이 264년 된 나무였다. 나무 화석에 남아 있는 나이테와 방사선 탄소 동위 원소 측정을 동원해 분석한 결과다. 특히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이 나무 화석에서 발견됐다.
낙엽송 화석에서 775년에 만들어진 나이테를 찾아낸 연구팀은 그 나이테를 기준으로 이 나무에 나이테 몇 줄이 추가로 더 만들어졌는지를 산출했다. 결과적으로 775년부터 백두산 화산 폭발로 쇄설물에 덮여 죽게 될 때까지 몇 년을 더 살았는지를 산출한 것이다. 산출 결과 이 낙엽송은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백두산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946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백두산 화산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화산 폭발 시기를 이번처럼 오차 범위 3개월 이내로 정확하게 추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실제로 백두산 화산 폭발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그린란드의 빙하코어(ice core)에서 화산 분출물인 황이 유난히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당시 강력한 백두산 화산 폭발로 방출된 황이 전 세계로 퍼졌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지구 기온 변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백두산 대폭발의 흔적을 빙하에서 찾은 것이다.

是歲天鼓鳴赦.

'''이 해(946년) 천고(天鼓)가 울리므로 사면령을 내렸다.'''

『고려사』 정종 원년 기사

연구팀은 또 한국 역사서인 고려사에서 946년 바로 그 해에 개성 하늘에서 커다란 천둥소리[천고명(天鼓鳴)]가 들렸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것이 백두산 화산 폭발 소리라고 추정했다. 개성과 백두산은 약 470 km 떨어졌지만 탐보라 화산 폭발 당시 이 거리보다 더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도 화산 구름으로 뒤덮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백두산 화산 폭발이 충분히 개성까지도 영향을 주었으리란 주장이다.

十月七日夜白灰散如雪。

'''10월 7일(양력 11월 3일) 밤 하얀 재가 눈처럼 흩어져 내렸다.'''

『고후쿠지연대기(興福寺年代記)』 텐교(天慶) 9년 기록 中

연구팀은 일본 나라 지역의 사찰인 고후쿠지(興福寺)의 기록에서도 증거를 찾아냈다. 고후쿠지의 기록에는 946년 11월 3일 '하얀 재가 눈처럼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이 바로 백두산의 분화로 화산재가 떨어진 것을 기록한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연구팀이 백두산 화산 폭발을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로 추정한 것이 기존의 역사 기록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해당 기사. 백두산 분출물이 일본 나라 현까지 도착하는 데는 16시간이면 충분하므로, 정확한 화산 폭발 시간은 946년 11월 2일 저녁 무렵일 확률이 높다.

正月十四日庚子,此日空中有声,如雷。

'''정월 14일 경자, 이 날 하늘에 소리가 울렸는데, 마치 우레와 같았다.'''

『일본기략(日本紀略)』中

947년 2월 7일에도 일본 교토에 하늘이 요동치는 소리가 울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일본 내의 자연현상인지 백두산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플리니식 분화 소음이 교토에까지 들릴 정도였다면 필시 한반도에서도 들렸을 테지만 교차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내 다른 현상이라고 추정한다. 만에 하나 백두산에서 난 소리라면 앞서 11월 시작한 분화가 이때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6.2. 오늘날 보이는 활동


20세기 말엽까지 중국의 무관심과 한국의 정세 등이 맞물려 백두산은 화산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했다. 사실 천 년 전 분출이 제대로 알려진 게 20세기 후반이다. 바야흐로 사람들이 백두산의 활동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건 2000년대에 이르러 지진계가 하나둘씩 설치되고, 2006년 지진이 극도로 많아진 때 즈음이다. 뉴스인사이드에 따르면, 2002년과 2006년 사이에 지진 횟수가 전과 비교하여 극단적으로 증가했으며, 최대 월 243회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백두산 분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시기. 하지만 방송에서는 2006년 말부터 다시 지진이 예년 정도(월 0~30회 사이)의 횟수로 잦아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온천수 온도도 꾸준히 상승하여 2011년 77.7도로 최고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지표면의 상승도 2002~2006년 사이 최고조를 기록했는데, 2005년에는 백두산 정상부의 지표면이 7cm까지 상승하였다고 한다. 요약하면, 2002~2006년 사이 거의 휴화산이라 여겨졌던 백두산이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현재로서는 다시 다소 잠잠해진 상태라는 것.
백두산은 여러 지점에서 열수 활동이 나타나고, 언급한 대로 지진 활동도 있어 완전히 쉬는 것은 아니다.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다. 2000년대 들어 화산 활동의 세기가 조금씩 강해진다는 주장이 있다.[33] 지구 물리 측정의 한계와 모니터링 시설이 아직 미비하고 갓 출범한 단계인지라 백두산의 지하 구조에 대한 많은 추측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 제대로 된 것은 많지 않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아래는 여러 관측 시도 결과들에 대한 내용이다.
천지 주변의 열 분포를 보면 지열이 지속 상승하고 있으며, 일본의 위성 관측상으로는 천지 주변 지면이 예전보다 2cm 정도 부푼 상태라고 한다. 지표로 나오는 열수의 성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관측 결과가 있다. 지진 횟수가 일정하지 않으며, 이따금 지진 발생 밀도가 급증하던 때가 있었다. 2010년에는 떼가 출몰했으나 화산의 징조라기보단 대량 방생으로 인한 출몰이라는 견해가 좀 더 우세했고, 실제로 화산 활동에 대한 징조로 보기에는 인과 관계가 매우 부족했다. 또한 대북인권단체는 2010년 12월 김정일이 함경북도 무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2016년에 백두산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백두산 인근 주택들은 철거하고, 철광 생산을 서두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제대로 된 근거가 없기에 '''화산이 언제 터질지 예측하기는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급한 주장, 예컨대 100년 뒤라는 주장도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된 근거는 없고 오히려 이슈를 만들거나 혼란을 가중하는 효과밖에 없다. 학술적 접근은 모니터링 시설의 확충과 과거 분출 기록[34]에 대한 명확한 조사, 백두산 형성의 원리와 활동 양상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 중국 측에서는 백두산 연구를 비공개로 활발히 진행하는 중이다. 학자들도 "백두산이 언젠가 폭발하는 것은 확실하다."라고만 할 뿐, 정확한 예측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의 여파인지 핵실험장 주변의 땅이 요동치고 있다. 예상보다 상당한 규모의 실험이었기에 백두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최근 들어 분화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지가 부푼다거나, 천지 물에서 이산화질소가 올라오고 수온이 상승한다거나, 2003~2005년경에 잦게 발생한 화산성 지진 등이 대표적인 증거들이다. 따라서 한국지진자연연구원에서는 통일부 등과 함께 대응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2019년 4월 15일에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피해 예방 대응책 구축과 관련된 토론회가 열렸다.#
중국 허페이과학기술대 장하이쟝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백두산 북쪽에 있는 헤이룽장성의 우다롄츠 화산지대에 있는 웨이산 아래에서 두 개의 거대한 마그마 지대를 발견했다.#

6.3.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설사 백두산이 분출을 재개한다 할지라도 그 규모가 실제로 어떨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원래 재난이라는 것이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현상이기 때문. 아래 내용은 명확한 사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일 뿐이다.
화산이 폭발하면 경제기반이 취약한 북한 지역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공산이 큰데,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화산성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특히 건물들은 부실공사가 대부분이고 내진설계를 안했기에 상당수가 붕괴될 것이다. 부실공사현장두번째 또한 백두산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있는 북한의 '''핵 시설'''도 완전히 초토화될 것이기에 여러 모로 총체적 난국이다.
폭발시 엄청난 화산재가 생기고, '''20억 톤'''에 달하는 천지의 물 때문에 다량의 화산쇄설류 발생 예측은 거의 확실시된다. 이 때문에 폭발시에는 혜산시, 대홍단군, 회령시 등 백두산 천지 혹은 그 기슭에서 발원하는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 유역이 화쇄류로 쑥대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35] 그리고 폭발과 함께 증발된 천지의 담수는 응결하여 다시 비로 내리게 되는데,[36] 예상되는 양이 '''시간당 800 mm'''[37]로 집이 무너질 수준이라고 한다. 시간당 200 mm여도 엄청난 강우임을 고려하면... #
만일 위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경우 북한의 국가 시스템은 대규모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전무하므로, 막대한 피해를 보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남북통일이 돼서 남한이 처리해주지 않는다면 피해를 영원히 복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재난으로 인한 민심이반, 경제마비 등의 파멸적 상황은 북한 정권과 국가의 붕괴로 직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에서도 백두산의 화산 활동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가능한 역량을 동원하여 화산 활동 연구에 매진한다고 알려졌다.
분화로 발생한 화산재는 북한뿐만 아니라 동해를 건너 '''울릉도, 독도, 일본 홋카이도, 러시아 연해주사할린 남부'''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동아시아와 러시아 연해주의 항공편[38] 상당수가 결항될 것이다.
백두산에 인접한 국가들의 피해 규모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가령, 백두산의 분화가 아이슬란드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Eyjafjallajökull) 화산 분화와 다른 점은 아이슬란드는 북위 65°, 백두산은 북위 42°에 있다는 점이다. 편서풍과 극동풍은 북위 65° 즈음에서 만나기 때문에 이 즈음에 있는 아이슬란드 화산은 현지 기압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이와 달리 계절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백두산은 폭발한다 해도 여름에는 남동풍을 타고 북한의 북동부와 중국 북동부, 러시아 남동부 지역에 화산재가 향하며 겨울에는 편서풍을 타고 화산재가 한국이나 중국 쪽으로 가지 않고 태평양, 즉 일본 쪽으로 갈 것이다. 특히 겨울철 시베리아에서 강한 북서풍과 편서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이 바람을 타고 화산재가 일본으로 향한다. 한반도 동쪽에 위치한 독도울릉도 또한 많은 영향을 받는다.[39]
결론적으로 계절에 따라서도 여름에는 동남풍이, 겨울에는 북서풍이 부는 한국은 '''화산재의 영향을 정통으로 맞지 않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화산재가 동남풍이 부는 여름에는 중국으로, 북서풍이 부는 겨울에는 일본으로 날아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국이 최대 11조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입을 거라는 예상'''은 바람이 남쪽으로 부는 특이 상황에서 화산폭발지수(VEI) 8단계 중 5단계 이상의 강한 폭발이 일어났을 경우의 예상이다.# 또한 이러한 예상치를 내놓았던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학과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미세 화산재는 성층권으로 올라간 뒤 동쪽으로 이동해 일본 혼슈 북부와 홋카이도 지역에 떨어지겠지만 대류권까지만 올라가는 화산재는 한국으로 올 것이라고 한다.#
북한도 차츰 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 관심을 보여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남측과 공동연구를 제의하는 등의 시도를 한 적도 있다. 일본 쪽에도 의견을 구했는데, 인터뷰 상대였던 일본 지질학자는 북한이 상당히 다급하고 당황한 듯 보였다고 말을 남겼다. 화산이 터지면 그 순간 정권 붕괴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실험으로 마그마 층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는 얘기도 있으며, 핵 실험이 폭발을 유발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관련 기사
게다가 제주도의 한라산과 울릉도 및 독도의 해저 화산, 추가령 구조곡에 속한 휴화산들 (예: 오리산)과 양산단층, 신갈단층 등 단층지대에서도 연쇄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그에 따라 한반도 전체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존재하며, 지속적인 연쇄 반응으로 불의 고리까지 건드릴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해선 밑의 내용에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1668년 백두산 분화를 전후해서 한반도에서 큰 지진이 많이 일어났다. 그 중 1643년 울산에서 일어난 지진의 규모는 추정진도 VIII-IX 로 추측될 정도로 큰 지진이었다. 1643년 울산 대지진 문서를 참조.
환태평양 지진대 끝자락에 있는 한반도 동부에서 화산이 분출하여 연쇄 반응으로 주변 다른 불의 고리 축인 대만일본, 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반대쪽 미 서부와 멕시코 북부에까지 연쇄 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있다.[40] 참고로 대만에 위치한 양명산은 활화산으로,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무서운 화산이다. 여기가 터지면 일본에서 후지산이 터진 것과 동급 효과가 나타난다. 화산재 및 연무는 최소 오키나와홍콩, 최대 호주 북부까지 날아간다고 추정한다.
특히 일본과 중국이 큰 영향을 받는데, 일본의 경우 도카이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아지고 중국의 탄루단층 지역에서도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윗 문단에서 선술한 1668년 및 1702년 백두산 분화를 전후해 1643년 동래, 울산 등지에서 일어난 지진에서부터 시작해 1707년 호에이 대지진 및 후지산 분화까지 한중일 3국에서 지진 및 화산활동이 잦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000년 전 있었던 백두산 폭발은 일본까지 날아가 화산재를 5 cm나 쌓은 전례가 있다. 이 것이 얼마나 강한 위력인지 감이 잘 안 온다면, 봄철 황사가 부는 시기를 떠올려 보자. 황사철에는 온 하늘이 뿌옇지만 쌓이는 양은 겨우 0.1 mm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화산재를 바다 건너 일본까지 넘어가서 5 cm나 쌓았다는 것이니 얼마나 엄청난 폭발이었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1000년 전, 백두산 분화보다 화산 지수가 2단계나 낮은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기록한 에너지 방출량이 350 Mt으로 차르 봄바의 7배나 된다.
왠지 의심스럽게도 중국은 2005년부터 백두산에 관한 관측 자료를 비공개로 돌렸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2010년 11월 27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분을 참고해 보자.
백두산이 폭발한 946년 화산 폭발 지수(vei)는 7 정도로 1816년 탐보라 산의 폭발에 비하면 살짝 약했으나, 그래도 분출물의 양은 100여 ㎢에 달했다. 이는 2010년 4월 있었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분출물의 약 1천 배에 달한다.
여담으로 백두산 폭발 주장 때문에 1998년에 KBS 일요 스페셜 특집으로 참고 자료를 위해 규슈의 화산 분화 현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 분화로 인해 굴러떨어진 화산 암괴가 숲에 있는 도로 한복판에 떨어진 바람에 치우기가 여의치 않아 식힌 일이 나온다. 어쨌거나 이 방송에서 백두산 분화 당시 일본에 쌓였던 화산재도 방송되었다.
2011년 3월 북한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며 백두산 화산 관련 연구를 공동 진행하자고 제의를 했다. 남한은 민간 전문가를 파견하여 회의를 가졌으며, 해당 회의에서 북한은 일본 지진을 언급하며 백두산의 위험을 환기, 연구에 협조를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은 천안함 피격사건부터 연평도 사건까지 쌓인 게 많은 상황이었으므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고, 북한도 4월부터 현대 아산의 금강산 사업권을 날려 버려 도루묵이 되었다.
2011년 국내에서 백두산 폭발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예측하고 모의실험한 결과가 공개되었는데, 동아시아의 항공로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다고 한다. '''#'''
2011년 11월 24일 북한이 '지진 화산 피해 방지 및 구조법'을 제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2년의 연구에 따르면 봄, 가을에는 남한에도 화산재가 유입될 수 있다고 한다. #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화산이었는데 지금은 엄연한 활화산이다. 천지 밑에 마그마방이 서너 개 발견됐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국제 연구진에 의해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서울 면적의 2배나 되는 마그마가 백두산 아래 5-10km 지점에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연구는 북한 학자들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서방 학자들과의 공동 연구로 진행되었는데, 상기했다시피 북한이 서방 학자들까지 끌여들이는 것은 백두산에 크든 작든 위기의식을 느끼는 탓인 듯하다. #
세계 여러 화산들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 이제는 지진계를 통해 화산 폭발로부터 적게는 몇 달, 많게는 몇 년 전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백두산은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 불분명하다.
2016년 12월, 북한과 서방 공동 연구팀의 두 번째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이 발표가 무서운 점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두산 폭발은 '''유사 이래 최대'''고 1000년 전에 분화로 인한 황의 분출량은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 당시 분출량(28메가톤)보다 훨씬 많은 45메가톤이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이라는 것이 된다.
2018년 8월 4일 SBS 뉴스에 따르면 백두산 천지가 다시 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현상이 단순히 폭염 때문인지 다시 백두산이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물 속에 마그마의 주성분인 이산화탄소 방울이 올라온다고 한다.#
2019년부터 뚜렷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위 6.2 항목 참조.

7. 관광


1980년대까지는 해외여행 가기가 힘들었다. 냉전 체제로 인해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과 함께 적국으로 인식하던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가는 것은 꿈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고, 19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과 민간 교류를 시작하면서 일부 민간 단체들을 중심으로 제한된 백두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반 냉전이 완전히 끝나고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일반인들도 중국을 통해 백두산 관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제작된 칠성사이다 CF에서 백두산 비룡폭포, 천지 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이 백두산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 백두산 관광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백두산은 관광 지역이기 이전에 '''엄연히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대'''이다. 방문 빈도가 높은 천지 구역은 한국의 명목상 영토에 속하나 북한은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조중변계조약으로 천지의 반절은 중국령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에 갈 수 있다는 역설. 한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인 '천지 서북부와 그쪽에 붙은 땅'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민이 중국을 통해 관광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국가 보안법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라고 되어 있지만, 북한 실효지배 지역을 거쳐서 등산을 하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기소한 적은 없다.
천지 구역은 북한과 국경으로 정확히 절반으로 갈리기 때문에, 정상 및 천지 부분에서 지정된 경로 및 구역 외에 함부로 이탈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정상 부근에 파견 나간 중국 공안들의 통제도 꽤 심하다. 한국인이 백두산 정상 및 천지에서 태극기를 펼치거나 애국가아리랑 등의 민족적 색채가 짙은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41] 관광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사진 촬영조차 상당한 통제를 받는데, 중국 당국으로부터 사전에 정식으로 촬영허가를 받은 특수한 경우 말고는 일반적으로 백두산 천지 및 정상의 풍경을 담는 사진 촬영은 '''인물을 포함하는 기념사진 촬영의 범주에서만 허락'''되고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에서 이경규가 남북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한라산 백록담에서 퍼온 물을 백두산 천지에 담기 위해 백두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산행 장면은 방송되지 못하고, 천지에 올라가 백록담 물을 천지에 쏟아 부은 장면만 방송되었다. 이후 1박 2일에서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백두산 촬영허가를 따냈는데, 이를 준비하기 위해 6개월 이상을 소비해야 했을 정도다. KBS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뢰성 있는 공영 방송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걸린 것을 보면, 중국 당국에서 상당히 까다롭게 심사를 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중국 입장에서는 국경 지대로서 보안상 예민하게 관리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고, 백두산 영토 문제와 관련하여 발생할 주변국과의 역사인식 충돌 및 마찰 등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는 느낌도 강하다. 하지만 현지 유학생 등 개인 관광객의 경우 중국 대도시 관광객과 외관상 별 차이가 없다 보니 그냥 넘어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중국 땅을 거쳐 가는 경우 이런 불편함과 눈칫밥을 감수해야 하다보니, 2000년대 초중반 북한과의 교류가 많았을 때는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가보자는 목소리들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도 당시 한국 정부에서 북한과 함께 금강산 관광에 이어서 북한 삼지연공항행 항공편을 통한 백두산 관광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실무적인 문제 및 수익성 검토 등으로 인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금강산 관광을 갔던 관광객을 북한군 초병이 사살하는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논의가 무산됨은 물론 금강산 관광조차 중단되어 버려 결국 북한을 통한 백두산 관광은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못했다.
대한적십자사의 헌혈 기준에서 북한 지역 중 유일하게 여행시에도 헌혈이 가능한 지역이다.
2020년 1월 24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예방의 일환으로 일시적으로 영업 중단을 한다고 밝혔다.#

7.1. 북파 코스


중국 쪽에서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는 코스.
가장 먼저 개발된 관광 코스다. 때문에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코스. 정상 부근 기상대까지 자동차[42]로 오른 후 5분이면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보는 관광 코스로서, 비룡폭포 좌우로 한정된 부분[43]만 오르는 산행 코스다.

7.2. 서파 코스


중국 쪽에서 걸어서 올라가는 코스. 산행을 하려면 이 코스가 좋다.
백두산 서파 시작지점에서 표를 산 후 지프차 또는 버스를 통해 오를 수 있다.
중국에서도 생태여행 코스로 개발하여, 보존된 원시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서파 코스는 대체로 완만하여 지프차 또는 버스에서 내려 청석봉 아래 37호 경계비가 있는 천지에 40여분이면 오를 수 있으며[44], 천지에서 청석봉까지 오르는 코스와 북파까지 종주하는 코스가 있다.
서파 코스에는 서파 37호 조중 경계비와 그 주변 경치, 경계선 등 볼 거리가 많다. 이 코스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통일부의 허락 없이 한국인들이 북한이 실효지배하는 이북 땅을 밟을 수 있게끔 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라고 하는데, 등산객들이 조중경계비인 서파 37호 근방의 몇백 미터 북한 량강도 삼지연 땅을(이북5도에서는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 밟을 수 있다! 즉, 한국 국민으로서 위험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는 방도.[45] 하지만 2018년 6월 기준 경계비를 넘어갈 수 없도록 철제 울타리를 설치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대개 백두산 여행 상품들은 북한 접경 지대 관광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백두산 관광은 북한을 상당히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7.3. 남파 코스


중국에서 오를 수 있는 코스.
비교적 근래에 홍보되고 있는 코스로, 개마고원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과 가장 근접한 코스라서 안전 문제로 개방과 폐쇄가 반복되고 있다. 관광 시설이 부족하지만 북파와 서파에 비해 천지에 가깝게 접하다 보니, 인근 주민들이 선호한다고.
입장료도 북파나 서파에 비해 비싸다.

7.4. 동파 코스


북한에서만 오를 수 있는 코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은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방북한 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이 코스를 가지 못하고 있다.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을 넘어가는 코스로, 북한에서 관광용으로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차량으로 이동 가능한 산 중턱부터 정상쪽인 향도봉(망천후)까지는 지상궤도열차 "향도봉호"가 있고 이후 향도봉에서 천지까지는 케이블카 "천지삭도"가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오를 수 있다.
지상궤도열차 향도봉호는 1989년에 설치되어 2km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케이블카 천지삭도는 오스트리아에서 만든 것으로 1995년에 설치되어 1.3km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케이블카 하나에 4명이 탑승할 수 있고, 왕복에 7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8. 여담


  • 한국 노래에서 정말 많이 나오는 단어이기도 하다. 관련문서에서 설명하듯이 대한민국 애국가에도 나오며, 육군가, 홀로 아리랑 등 에서도 언급된다.
  • 1박 2일 경주 수학여행 편, 즉 김C의 1박 2일 마지막 촬영 때 김C가 아침 일찍 유호진 PD와 함께 석굴암에 오를 때 말한 것이, "백두산 천지엔 괴물이 없는 것 같다. 추워서 발도 못 담그는데 어떻게 물고기가 살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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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자 표기의 경우 'Baekdusan'이나, 영문 표기 시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에 따라 이처럼 표기한다.[2] '백두(白頭)'의 중국어 발음을 한어병음에 따라 표기.[3] 한국에서 조어도보다 센카쿠라는 명칭이 더 자주 쓰이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백두산을 부를 때 한국 쪽 지명이 더 자주 쓰인다. 백두산 화산재에 관한 일본 논문을 찾아보면 장백산보다 백두산으로 표기된 것이 더 많다.[4]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바꿔 부르고 있다. 일제가 백두산의 격을 낮추기 위해 '병사봉'으로 명명했다는 루머가 있으나, 아래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낭설이다.[5] 때문에 중국 영역을 통해 관광이 가능한 남한 사람들은 백두산 최고봉에 오를 수는 없고 천지 너머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6] 인천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수준원점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측량 방식으로는 백두산의 높이가 2,744 m가 되지만, 원산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수준원점으로 삼고 있는 북한의 측량 방식으로는 2,750 m, 톈진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수준원점으로 삼고 있는 중국의 측량 방식으로는 2,749.2 m가 된다.#[7] 출처: 대한지리학회지 제48권(2013) 1호, p.6, <<지형학적 산지의 분포와 공간적 특성에 관한 연구>>, 탁한명 등 3인[8] 구글 어스 데이터를 기준으로 기복량 300 m 이상을 으로 보았을 경우.#[9] 기록 [10] 이때 영조의 발언은 굉장히 정치적이다. 목극등이 지은 경계선 이야기를 다 듣고도 '용비어천가 보니까 우리 조상님(이안사) 집이 경흥에 있었다는데 거기 백두산 근처 아니냐? 야 아무리 봐도 백두산 우리 땅 같은데? 야 그럼 우리나라 땅이니까 제사 지내야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몰아갔다. 물론 두만강 하구에 있는 경흥은 백두산과는 300 km 가까이 떨어져 있으니 시작부터 뭔가 이상한 소리(...). 당연히 조선에 청나라에 맞서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할 의지가 있었다기보다는, 칭제건원 얘기가 나올 정도였던 이 무렵 조선 내부의 고양된 분위기에 맞춰 백두산 '''남쪽'''의 국경 지대에 대한 처우를 높여준 것에 가깝다. 실제로 이 발언과 무관하게 백두산 망제의 장소는 백두산 남쪽의 녹반치(綠礬峙)로 정했다.[11]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3대 교구장.[12] 기록에 따라 묘향산설, 지금의 태백산설 등 이설이 있다.[13] 게다가 북한 김일성장군의 노래도 첫 소절이 장백산으로 시작한다.[14] 2007 창춘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이 사실을 몰랐는지 중국 측 편파판정과 장백산이란 표현에 반발하여 우발적인 세리머니를 하여 중국 측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의 이모저모 부분을 참고할 것.[15]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평안도에 있다고 나오나, 이는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추정하여 적은 것이기 때문에 부여의 실제 위치인 만주 지역하고는 맞지 않는다.[16] 원문에는 시라(尸羅).[17] 기자조선을 말한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대로 현재 남북 학계 모두 기자조선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저 단군 왕조에서 다른 토착민 계열 왕조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한다.[18]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암자가 무려 360여 곳이 있었다고 한다.[19] 당시 대부분의 책은 단기를 사용했다. 또한, 화폐에서도 연도표기를 단기로 사용했다.[20] 한자로는 '果勒敏 珊延 阿林 山(과륵민 산연 아림 산)'. 현대 표준 중국어 발음으로 읽으면 '궈러민 산옌 아린 산(Guǒlèmǐn shānyán ālín shān)'.[21]만주어 명칭은 조선 영조 때 학자인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지행록(地行錄)에 '가이민 상견 아린(歌爾民 商堅 我隣)'이란 음차로도 기록되어 있다. 음차일 뿐인데 굳이 한자의 훈을 억지로 끼워 맞춘 해석인 '그곳 백성(爾民)이나 장사꾼(商)이 노래하는(歌) 굳센(堅) 우리(我) 이웃(隣) 산'(...)이란 말이 웹상에 떠돌지만, 이는 지행록 역자의 오류인 듯. 지리지인 성경통지(盛京通志)에도 "'歌爾敏(가이민←골민)'은 '크다(≒길다)'는 뜻이고 '商堅(상견←샹기얀)'은 '희다'는 말이며 '阿隣(아린←알린)'은 '산'을 말하는 만주어"라고 되어 있다.[22] 2,500m 이상[23] 중국 전도라서 잘 안보일 수 있으나, 백두산을 비롯해 주변 남동쪽 영토 전체를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켜 놓았다. 북한 혜산시에서 국경선이 백두산이 있는 북쪽으로 꺾이지 않고 북동쪽으로 이어진다. 여기를 보면 더 확실하게 보인다. 이 지도는 중화민국의 명목상 영토를 보여주면서 '현실' 경계선도 같이 나타냈다.[24] 실제로 '''9월 초'''에 눈이 내린 적도 있다.[25] 근데 틀린 말은 아니다. 고산 지역인 특성상 구름끼거나 하면 보기 매우 힘든데, 아침엔 맑던 것이 정오 지나고 눈이 온다던가(...)하는 일이 잦다.[26] 시기상으로 따지면 발해가 멸망한 직후다. 발해가 멸망한 원인을 이 화산 폭발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기상으로 발해가 망하고 10년 뒤쯤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대폭발 전에 지진 등의 이상현상이 있었다면 민심 혼란이나 왕권 약화 등의 문제는 생길 수 있다. 당시 자연 재해나 이상 현상은 ''''왕의 부도덕함으로 신이 노했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교육이나 생각하는 수준이 상당히 발전한 오늘날에도 무슨 일만 터졌다하면 지도자를 탓하는 마당에 그 당시에는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가 났다하면 임금 책임을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27] 이 경우 맨틀 활동으로 인한 열점이 있어서 화산이 생긴 경우가 대다수이며 이렇게 생긴 화산들은 말 그대로 지구 내부 열에너지를 빼는 굴뚝 역할을 한다. [28] 서울시와 수도권 기준으론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약 500km, 아소산은 약 620km로 백두산이 조금 더 가깝지만 비슷한 편이고, 북한은 백두산이, 남부 지방은 아소산이 가깝다. 특히 부산광역시에서는 서울만큼 가까우며 이외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등지에서도 북한의 평양직할시보다 더 가깝다.[29] 그러나 원 출처를 잘 찾아보면 근거가 불확실하다. 1000년 사이에 몇 차례나 분출이 있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30] 대표적으로 정치적, 즉 북한 문제.[31]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윤수 박사는 '백두산 대분출은 946년에 일어났지만, 그 전에 소규모 분출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백두산은 1000년 단위 대분출 주기와 100년 단위 소규모 분출 주기가 함께 도래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발해가 멸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했다.[32] (Oppenheimer et al., 2017).[33] 다만 이건 관측량의 증가와 중국의 이슈 메이킹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34] 문헌 및 퇴적 기록.[35] 세인트 헬렌스 화산의 분화나 네바도 델 루이스 화산의 예에서 보듯 반경 50 km 이내는 거의 쑥대밭이 된다고 보면 된다.[36] 도쿄 대공습 등 소이탄을 사용한 대규모 폭격과 시가지 화재 후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로 엄청난 비가 내린다.[37] 대한민국 1년 평균 강수량의 30~50%가 1시간 동안 내리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38] 특히 인천, 홍콩, 타이베이, 도쿄(나리타·하네다), 베이징(수도·다싱), 상하이 등에서 뉴욕, LA북극항로를 거쳐 '''북미로 가는''' 항공편은 100% 백두산 분화 영향반경 안에 포함된다. 아이슬란드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분화가 제트 기류를 타고 독일과 동 유럽까지 마비시켰음을 떠올리면.... 그래도 화산재를 피하고 북미 쪽으로 운항을 해야하는 경우 미국의 하와이 또는 파리, 런던, 프랑크푸르트, 모스크바 등 유럽의 큰 국제공항을 필수로 기착해야해 항속거리 및 비행시간이 평상시보다 최대 2배 정도 더 길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39] 출처: 화산재 피해 예측 기술 개발[40] 약간 다른 예이지만 2004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샌 앤드리어스 단층이 파열된 것을 시작으로 한 달 후인 10월에 미국의 세인트 헬렌스 화산과 멕시코 콜리마 화산이 폭발하고, 일본에서 니가타 추에쓰 지진이 일어나고, 두 달 후에 인도네시아에서 그 유명한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이 발생한 바가 있다.[41] 그래서 1박2일팀이 왔을 때는 독도, 가거도, 우도, 백령도 바닷물을 모아 뿌렸다고 한다.[42] 기본요금으로는 미니버스(쌍용 이스타나가 대부분)이고 지불하는 금액에 따라 포드 트랜짓이나 중국제 SUV, 돈을 더 지불한다면 벤츠 스프린터로 올라갈 수 있다. [43] 1박 2일에서 올라간 코스는 비룡 폭포 옆의 계단을 올라가는 곳이었으나, 현재 진입로가 폐쇄되고 폭포 근처까지만 갈 수 있다.[44] 낮고 완만한 경사의 계단 1441개를 올라가야 한다.[45] 다른 방법은 판문점 견학. 휴전선에 걸친 군사 정전 위원회 건물 견학시 북한 쪽 출입문만 폐쇄하고 내부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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