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태항아리
白磁 胎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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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조~성종 재위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조선백자 2점. 현재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0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외항아리 : 높이 42.5㎝, 입지름 25㎝, 밑지름 25.3㎝.
내항아리 : 높이 22.6㎝, 입지름 10.6㎝, 밑지름 11.7㎝.
조선 전기,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한국의 조선백자 항아리 2점으로,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대략 세조~성종 재위기로 파악된다.
왕실의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내·외의 항아리에 태를 담아 묻은 것으로, 이러한 태항아리는 15세기 전반에는 분청사기로 만들어지다가 15세기 후반경부터 백자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관어용(官御用) 도자기를 제작하던 경기도 광주군 일대의 무갑리, 우산리, 번천리 요지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백자 태항아리 제작 초기의 모습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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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백자 태항아리 2점. 항아리의 양식으로 볼 때 호림박물관에 소장 중인 보물 제1055호와 같은 시기에 비슷한 장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 호림박물관 소장본(보물 제1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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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요
조선 전기, 세조~성종 재위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조선백자 2점. 현재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055호로 지정되어 있다.
1.2. 내용
외항아리 : 높이 42.5㎝, 입지름 25㎝, 밑지름 25.3㎝.
내항아리 : 높이 22.6㎝, 입지름 10.6㎝, 밑지름 11.7㎝.
조선 전기,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한국의 조선백자 항아리 2점으로,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대략 세조~성종 재위기로 파악된다.
왕실의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내·외의 항아리에 태를 담아 묻은 것으로, 이러한 태항아리는 15세기 전반에는 분청사기로 만들어지다가 15세기 후반경부터 백자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관어용(官御用) 도자기를 제작하던 경기도 광주군 일대의 무갑리, 우산리, 번천리 요지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백자 태항아리 제작 초기의 모습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1.3. 바깥고리
1.4. 보물 제1055호
태항아리란 왕실에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태를 담은 항아리로, 그 안에 이름과 생년월일이 기록된 태지석을 함께 묻었다.
조선시대 태항아리로 크기는 외항아리는 높이 42.5㎝, 아가리 지름 25㎝, 밑지름 25.3㎝, 내항아리는 높이 27.6㎝, 아가리 지름 10.6㎝, 밑지름 11.7㎝이다.
안쪽 항아리와 바깥 항아리가 거의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뚜껑은 냄비 뚜껑처럼 생겼고, 꼭지에는 사방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몸통 윗부분에 있는 4개의 고리와 연결하여 뚜껑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몸통의 아가리 부분은 넓고 밖으로 말려 있으며, 넓은 어깨에서부터 서서히 좁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어 단정하고 풍만해 보인다. 옅은 청색을 띠는 백자 유약이 고르게 퍼져 있으며 은은한 광택이 있다.
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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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백자 태항아리 2점. 항아리의 양식으로 볼 때 호림박물관에 소장 중인 보물 제1055호와 같은 시기에 비슷한 장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자로 만든 태항아리[胎壺]이다.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항아리에 넣어 모셨는데 이 항아리를 ′태옹′ 또는 ′태호′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태는 태아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라 여겨,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특히 왕실인 경우에는 국운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여겨 더욱 귀하게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