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삼서

 


1. 개요
2. 특징


1. 개요


百濟三書
백제 시대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인 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를 묶어서 부르는 말. 이 책들은 현존하지 않으며 일본서기에 일부 기록이 인용되어 전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이 책들이 방송에도 거의 노출된 적이 없는 일본 황실의 보물창고 격인 정창원에 지금도 현존하고 있는 것 아니냔 희망 섞인 추측을 하기도 하나, 한 학자가 정리한 정창원 고문서 목록에 따르면 백제삼서는 없다. 신라시대 민정문서도 정창원에서 이미 1930년대 발견되어 공개되었다. 즉,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으나 현재로선 희박한 시각이다.

2. 특징


백제삼서를 인용한 일본서기 자체가 당대 일본 편찬자들의 덴노 중심주의, 애국 고취 의도가 강하게 담겨있다보니, 해당 서적들을 인용한 기록들을 보면 당시 백제가 마치 일본의 신하국이며, 거의 모든 일을 일본에 결재를 받고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서술이 왜곡됐다.
때문에 비판 측에선 일본서기 편찬자들이 오히려 백제가 한 일을 마치 자신들이 한 것처럼 각색해서 기록해 놓았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하는데,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 중 하나로 일본을 고귀한 나라(貴國) 혹은 하늘이 내려준 정권(天朝)이라고 부르고 있다. 반면 고구려는 짐승의 나라(狛)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371년 평양성에서 일어난 전투 이후 백제, 고구려 양 국가간의 악감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나, 당연히 일본측 입장에서 보자면 고구려와 그렇게 척을 질 사이가 아니기에, 일본서기 편찬자들이 백제 측의 사료를 인용하면서 마치 자신들과 연관 되었다는 듯이 각색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만 이러한 오류는 따지고 보면 나름 자연스럽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가 백제 멸망 후 유민들이 야마토 정권의 수뇌부에 대거 흡수된[1] 국가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능성 하에, 이념적으로 재무장할 필요성이 있던 일본의 지배층들과 역사를 집필한 관료들은, 당대 상당수 귀족 계급들의 출신 성분인 백제계라는 정통성까지 자연스레 품으면서 옛 백제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투영했을 확률이 있다고 봐야 한다.[2] 즉, 일본서기의 오류는 그들의 중심지가 반도 백제국에서 열도 일본국으로 갑작스레 바뀌다보니 빚어진 서술상의 혼선에, 일본이 대륙과 결별하여 독립국가로 거듭나면서 일본 왕실 성역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날조 작업이 더해진 것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는 주장.


[1] 다만 백제계를 비롯한 한반도 출신 도래인 귀족이 제법 있었던건 맞아보이나, 비율이나 위상에 대해선 지금도 갑론을박이 좀 있다.[2] 그나마 근현대에 맞게 비유하자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 또는 직후까지의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영국인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