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가드 위성

 

1. 개요
2. 상세


1. 개요


미국해군 주도로 개발한 로켓 및 인공위성의 이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예정되었으나 스푸트니크에 밀려 두 번째의 인공위성이 된 물건이다.

2. 상세


원래는 세계 최초로 발사된 인공위성이 될 예정이었으나, 소련에서 선수를 쳐서 스푸트니크 1호를 먼저 발사함으로써 미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놀란 미국은 1957년 12월 6일 급히 뱅가드 TV 3호를 발사했지만, 발사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대대적인 망신을 당했다. '''고작 4피트(1.2미터)가량 떠오르다가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폭발했기 때문.'''
당시 생중계된 영상으로 그야말로 나라 망신이 아닐수 없다. 이때 소련은 공식적으로 '''조문'''을 보내며[1] 뱅가드(전위부대)가 아니라 리어가드(후방부대)라고 부르자며 조롱했고, 미국 언론은 뱅가드 TV3에 카푸트니크(Kaputnik),[2] 스테이푸트니크(Stayputnik),[3] 플롭니크(Flopnik)[4], 웁스니크(Oopsnik)[5] 등 별의 별 조롱섞인 별명을 붙였다. 미국은 소련에게 대굴욕을 당한 것이기에 부들부들거리면서도 복수를 다짐했다.
그래서 미국은 다시금 뱅가드를 만들어서 TV3BU(백업) 발사 계획을 수립했지만 악천후와 기체 손상 때문에 발사일정이 지연되었다. 겨우 수리를 한 이후 1958년 2월 5일 2차 발사를 했지만, 이번에는 잘 날아가다가'1분이 조금 안 되어 2단 로켓이 반으로 부러져서 다시 한 번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베르너 폰 브라운이 만든 익스플로러 1호가 발사에 성공했기에 그나마 약간의 체면은 세웠지만, 스푸트니크에 비해 매우 작았기 때문에 전혀 돋보이지 못했고 당시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익스플로러가 오렌지만 하다며 비웃었다. 스푸트니크가 84kg 정도였던 데 반해, 익스플로러 1은 14kg 정도. 참고로 뱅가드 TV3과 TV3BU는 위성체 무게 1.36kg, 뱅가드 1은 1.47kg.
같은 해 3월 17일 세 번째 발사에서 뱅가드 1[6]이 인공위성으로서 제 궤도에 올랐지만, 이미 주노 1 로켓이 1월 31일 익스플로러 1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아서 미국 최초 타이틀도 따지 못했고, 따라서 명예 회복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이후 4번 연속 실패하고 나서야 뱅가드 2가 성공한다. 총 11회 발사 중 성공한 것은 1(3회차), 2(8회차, 10.8kg), 3(11회차, 22.7kg) 뿐이다. 안습.
때문에 이를 주도했던 당시 해군참모총장 알레이 버크 제독의 몇 안 되는 흑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아는 사람이 적을 뿐 엄청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재 지구궤도상에 있는 위성 중 가장 오래된 인공위성'''이다. 예상 수명은 무려 240년인데 그나마도 처음엔 2000년 이상 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태양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태양압[7] 때문에 예상치보다 줄어든 것. 자체 신호 발신은 궤도진입 후 약 7년 정도 송신했다. 스푸트니크가 신호발신이 고작 3주 정도에 3달 만에 궤도를 벗어난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명이다. 그리고 훌륭한 우주파편[8]으로 다른 인공위성 발사에 장애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발사된 후 6년 동안 많은 자료를 지구에 보냈는데, 그 덕에 지구가 완전한 공 모양이 아니라 적도면이 튀어나온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1] 당연히 무인 로켓이니 죽은 사람도 없었으므로 이건 그냥 국가 단위로 놀려먹기 위한 조문이었다.[2] 결딴난 스푸트니크[3] 주저 앉은 스푸트니크[4] 뒤집힌 스푸트니크[5] 자빠진 스푸트니크[6] 원래 명칭은 뱅가드 TV4였는데, 발사 성공 이후 뱅가드 1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 숫자는 성공한 위성에만 붙었다.[7] 태양풍과는 다른 현상.[8] 송신능력도 없고 더 이상 임무수행을 하지 않으니 우주파편으로 취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