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부인

 

''''''
<colbgcolor=white,#2d2f34> 보도부인(保道夫人 / 保刀夫人)[1] / 파도부인(巴刀夫人)[2]
'''별칭'''
부걸지비(夫乞支妃)[3]
'''법명'''
법류(法流) / 묘법(妙法)
'''본관'''
경주 박씨(慶州 朴氏)
'''성씨'''
박(朴)
'''이름'''
보도(保道 / 保刀) / 파도(巴刀) / 부걸지(夫乞支)
'''배우자'''
법흥왕
''''''
지소태후
'''생몰연도'''
? ~ 539년 이후[4]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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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 중기의 인물. 법흥왕의 왕비이자 지소태후의 모후다. 진흥왕에게는 외조모이자 백모가 된다.[5]

2. 생애


삼국유사에 따르면, 말년에 남편 법흥왕과 더불어 영흥사로 출가하여 비구와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울주 천전리 각석에 남은 추명에서는, 539년 딸 지소태후, 어린 외손자 진흥왕과 함께 그곳으로 행차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6]
화랑세기와 그를 인용한 논문에서는 소지 마립간의 딸이라고 하는데 삼국사기삼국유사 모두 그녀의 출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마 금석문에서 지증왕이 재위 중에도 갈문왕 호칭을 쓰고, 오히려 법흥왕이 다시 마립간(매금) 호칭을 쓰는 등 시열대가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 정도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법흥왕의 어머니 연제부인과 진흥왕의 왕비 사도부인이 모두 모량리 출신 박씨인 점을 감안해 연제부인, 사도부인과 같은 모량리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다.

[1] 삼국사기 기록.[2] 삼국유사 기록.[3] 울주 천전리 각석.[4] 539년 당시 울주 천전리 각석에 남긴 흔적이 있다.[5] 진흥왕은 보도부인의 딸 지소태후와 보도부인의 시동생 김입종 사이에서 태어났다.[6] 사서와 달리, 울주 천전리 각석 추명에서는 보도부인이 부걸지비, 지소태후가 지몰시혜비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