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락지명총람사건
1. 개요
部落地名総鑑事件. 지명총람사건(地名総鑑事件)이라고도 한다.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부락민 차별이 법적으로 철폐된 일본에서 도시전설로 여겼으나 1975년에 실체가 드러난 것으로, 전근대적 신분제도와 연고주의에 입각한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이 드러난 사건이다.
2. 정의
지방분권적인 경향이 강했고 류큐, 아이누 등을 복속시키며 세력을 넓히기도 한 일본은 한자 읽기가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어서 인명, 지명의 읽는 방법을 수록한 총람이 출판되어왔고, 대형 서점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서의 지명총람은 그렇게 정식으로 출판된 책자가 아니라, 흥신소, 사설탐정사무소 등에서 비밀리에 만들어 대기업 인사담당자 등에게 유통시키는 극비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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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부락』과 『인사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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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1월에 발견된 부락지명총람. 제목이 『인사극비』라고 되어있다. 대놓고 차별하면 여론의 포화를 맞을 것 같고, 차별을 안하긴 싫어서 붙은 제목이다.
이름 그대로 부락지명총람에는 부락의 이름, 주소 등이 수록되어 있어서 인사담당자가 채용을 할 때나, 자녀의 결혼 상대를 알아보는 데에 대한 필터링 자료로서 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1975년 이전에는 이 서적의 존재는 그냥 도시전설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3. 발각
그런데 1975년 11월에 이러한 서적들이 통신판매가 된다는 것이 알려져 파문이 일어나게 되었다. 내용은 일본 전국의 부락의 지명, 주소, 주민들의 주요 직업 등의 데이터가 있었기에, 일단 부락 출신자라고 의심받는 인물에게는 입 밖에 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을 추궁할 수 있는 공격질문을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당시 발견된 지명총람 서문에는 "채용 문제로 고민하시는 인사담당자나 자녀의 결혼 문제로 고심하시는 가족들을 위하여 현재의 정서에 역행하여 본서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게다가 이 서적들을 구입한 회사들은 일본 전국에 걸쳐 있었고 물론 1부증시 상장사 같은 대기업도 다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부락출신자 차별 반대단체인 부락해방동맹이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벌이게 되었으며, 도시전설로만 치부되던 부락민 차별 데이터베이스의 존재가 알려져 일본 전국이 경악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부락지명총람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11년 기준 최소 9종류가 유통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권당 가격이 5000엔에서 5만엔 사이의 다양한 가격대로 형성되어 있었다.
부락지명총람사건은 1975년의 사건 이외에도 계속 대두되어, 1990년 행정서사가 흥신소에 호적을 대량으로 몰래 팔아넘긴 사건이나, 1996년 대기업으로부터 의뢰받은 흥신소가 호적 뒷조사를 대거 감행한 차별신원조사사건 등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06년 2월 1일 수요일 아사히 신문의 기사.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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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일 주간포스트 표지. 왼쪽에 '''부락지명총람과 일본기업 이것이 취직 차별의 현장이다!'''라고 나와있다.
4. 총람의 정확도
신빙성은 '믿을 수 없다'는 수준이다.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대놓고 할 수 없는 조사이다 보니, 과거 정권, 공무원, 행정사 등이 빼돌리는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에 댐 속에 수몰된 마을까지 현존하는 부락으로 명시됐을 정도이다.
어떤 경우에는 작성자가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엉터리 소설을 쓰는 경우도 있다. 토호쿠 지방 다수의 마을을 부락으로 명시한 총람까지 있을 정도.
다만 이 총람을 구입하는 목적 자체가 '''100% 정확할 필요 없고 부라쿠민일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는 불순한 욕구에서 나온 것이니만큼, 구매한 사람이 신빙성 없는 자료를 기반으로 상대를 부라쿠민으로 추측해서 얻는 손해는 모두 구매자의 손해이다.
이런 총람들 때문에 희귀한 성씨[1] 를 가진 사람도 덩달아서 피해를 본다. 한국에서 천방지추마골피가 천민 성씨라는 유언비어가 나도는 것처럼.
5. 관련 문서
[1]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貝原(카이바라/카이하라)라는 성씨도 부라쿠민의 성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기도 했다. 오사카의 카이즈카시가 큰 부락단지였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