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差別
'''Discrimination'''
1. 개요
2. 취향과 차별 문제
3. 발생 원인: 사회심리학적 설명들
3.1. 현실적 집단 갈등: 희소한 자원을 놓고 벌이는 집단 간 쟁탈전
3.2. 사회적 정체성: 우월한 우리 편, 열등한 너희 편
3.3. 공포 관리: 문화적 세계관 사이의 충돌
3.4. 사회적 지배 경향: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3.5. 일반화를 통한 차별
4. 차별에 의한 피해
5. 차별에 관한 어록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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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규정한 19가지 차별사유의 이모티콘.[1][2]물론 이는 예시규정이기 때문에 이 19가지 사유 이외의 차별이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란다: "독일인을 짐승에 비유한다면, 매에 가깝지요. 노련하고 강인한 포식자! 반면 유대인을 짐승에 비유한다면 쥐새끼에 가깝소. 총통 각하와 괴벨스 장관도 항상 그렇게 강조하지요. 하지만 난 그 비유가 모욕이라곤 생각 않소. 쥐가 사는 세상을 한번 생각해봐요. 온 사방이 적이오. 만일 지금 쥐가 문 앞을 지나간다면 적대적으로 내쫒겠습니까?"

라파디트: "아마 그럴 겁니다."

란다: "쥐가 무슨 미움 받을 짓을 했나요?"

라파디트: "질병을 옮기고 사람을 물지요."

란다: "한때 흑사병을 옮기긴 했지만 다 지나간 옛날 얘기요. 쥐가 옮기는 병은 청설모도 옮길 수 있소. 안 그렇습니까?"

라파디트: "네."

란다: "하지만 청설모를 쥐만큼 싫어하진 않지요?"

라파디트: "네."

란다: "둘 다 같은 설치류요. 꼬리 외엔 생긴 것도 비슷하지요."

라파디트: "흥미로운 생각이군요."

란다: "하. 아무리 흥미롭더라도 선입견이 없어지진 않지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쥐가 이 집에 들어온다면, 선생께선 이 맛있는 우유 한 잔을 대접하며 환영하겠소?"

라파디트: "아마 그러지 않을 겁니다."

란다: "그렇겠지요. '''싫거든. 이유도 없고 왠지 그냥 싫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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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유명한 가택수색 장면 중.


1. 개요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행위. 차별에 있어 그 집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든 부정적인 영향을 주든 둘 다 차별에 해당되지만, 주로 우리가 집중하는 것은 특정 집단에 불이익을 주는 차별이다.
단어의 본뜻은 '차등을 두는 구별'을 의미하는 용어. 하지만 일반적으로 차별 받는 사람들의 실제행동과는 거의 무관하거나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걸쳐 차별이 이루어지는데, 편견을 기초로 한 민족, 집단 또는 그것에 속하는 개인에 대한 차별적 개념이라 행위라고 한다.
이러한 차별은 사회생활 속에서 인종, 민족, 생활양식, 국적,성정체성,성적지향, 성별, 언어, 종교, 사상, 재능 등을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차별은 시대적 상황으로도 달라지는데, 봉건제도 하에서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서열로 구성된 신분제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서열간의 상호관계가 매우 차별적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러한 차별제도는 존재하지만, 차별당하는 집단이 설사 동일하다고 해도 근대 이전과 현대는 사회적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차별이 법률이나 규정에 의해 합리화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미국에서의 흑인차별 등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 등을 통해 사그라들게 되었지만 여전히 각종 차별은 사회에 남아 각종 문제를 일으킨다.
서구권에서는 이러한 차별을 '증오범죄' 또는 '증오 발언'이라 하여 법적으로 처벌하고 있으나, 대한민국에서는 특정지역이나 계층이라는 까닭으로 공연히 비방하더라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 명예훼손이 적용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특정될 것을' 요하므로 특정지역이나 계층을 비방하는 경우에는 그 범위가 너무 크고 막연하여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를 적용할 수가 없다. 단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 대하여 특정 지역이나 계층을 근거로 비방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 즉 '덕후들은 사회의 쓰레기'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지만, '아무개는 덕후라서 쓰레기'는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 직접적인 차별 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차별도 존재한다. 간접적인 차별이란 피차별계층에 대하여 형식상으로 제한·배제·분리·거부 등 다르게 대하지 않지만, 차별당하지 않는 사람과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정당한 사유 없이 피차별계층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구에서는 그 어디서나 크고 작게 있다. 인류는 영역 동물이라서 그렇다. 똑같이 영역동물인 고양이, 원숭이도 서로 알력 다툼이 존재하고 자기 영역에 들어온 낮선 개체를 차별한다. 집고양이들 중 집에 새 고양이나 다른 동물이 들어오면 하악질을 하거나 고양이들끼리 서로 죽어라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지성과 이성을 가진 만큼, 이 차별을 최대한 근절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3][4]
많은 나라에서 차별이 알게 모르게 자행되고 있다. 미국은 인종으로 아직도 은근히 사람을 차별하는 습관이 백인을 중심으로 남아있고, 황인은 외부인으로 소속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기 일쑤다. 히스패닉의 경우 흑인과 유사한 위치이지만 인구수가 늘어나고 있어 복잡한 모습을 보인다. 사실 숫자가 적어지니까 백인과 관련이 있는 민족들을 중심으로 외모가 비슷하면 백인으로 취급하는 모습도 나온다. 주로 서유럽 백인들만을 우대하고 아일랜드인, 동유럽인, 남미인 등을 차별이나 홀대하던 과거와 달리 백인과 외모가 비슷한 사람들이 자신을 백인으로 생각하면 백인으로 취급하는 자료들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 일본, 대만의 동아시아국가에서는 나이와 학벌 등으로 채용이나 결혼시장에서 차별이 매우 강해 문제가 된다. 또한 인종차별도 극심하다는 평. 구 영국령이나 영연방은 이러한 차별은 없는 편이지만 백인국가인 호주뉴질랜드는 인종차별은 미국 못지 않다.
반댓말로는 '''역차별'''이나 '''무차별'''이란 단어가 있는데, 어째 이 단어들이 좋은 어감으로 쓰이는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전자는 기존의 차별과 정확히 반대의 방향으로 차별이 이뤄지는 경우를 가리키는데, 후자의 경우 말 그대로 차별이 없지만, 대개 뒤에 붙는 단어들이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를 강화시킨다. (예: '''무차별학살''', '''무차별 대입 공격''')
차별화와는 구분해야 한다. '차별'은 기준에 공정성이 없을 때 발생하지만 '차별화'는 완전히 다른 것, 달리 말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냄을 뜻한다. ''''출신지역에 따라 선발에 차별이 있었다''''라고는 해도 ''''출신지역에 따라 선발에 차별화가 있었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차별은 불공정 · 불평등을 내포하지만 차별화는 새로움을 내포한다. 이 때문에 각종 업계 쪽에서는 차별화를 고급화의 다른 말로 쓰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차별이라는 요소를 비틀어서 '나 빼고 모두 차별하면 사실상 공평하게 대하는 것과 동일하다'라는 식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2. 취향과 차별 문제


취향(preference)차별(discrimination)의 차이는 정확히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단순히 취향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지만 차별은 위의 링크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양되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예를 보자.
  • 나는 백인 남성이 아니면 영 내 취향이 아냐.
  • 나는 흑인 여성과는 사귀지 않아.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지.
과연 이것은 취향인가, 차별인가? 개인의 기호에도 차별이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기란 실로 쉽지 않다. 위 문장을 아래와 같이 단어만 바꿔 보면 매우 일상적인 표현이 된다.
  • 나는 배추김치가 아니면 영 내 취향이 아냐.
  • 나는 아메리카노는 마시지 않아.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지.
이렇듯 일부 사람들에게는 위의 인종 취향 발언이 인종 차별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다른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저 취향일 뿐일 수도 있다.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는 동성애가 싫어" 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동성애에 반대해" 라고 이야기 하는것은 잘못된 것이다. 애초에 동성애는 당사자가 선택 하는 것이므로 제 3자가 찬성하거나 반대할 사항이 아니다.
'''차별'''은 행동적인 범주이다. 즉, 구체적으로 특정 기호에 따라 사람을 차등화해서 공정하지 못하게 대하면 그것이 곧 사람에 대한 차별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취향'''은 어느 정도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내적 기호의 측면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취향에 따라 '행동'하면 차별인가라는 의문이 붙기 때문이다. 차별을 논할 때 사적이고 미시적인 차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이 따르는 것이 이 때문이기도 하다. 임금 차별, 채용 차별같이 공적이고 사회적인 차별은 꽤 객관적인 실체가 명확하다. 하지만 사적이고 미시적인 차별은 단순 취향에 따른 것인지,악의, 증오심에 따른 것인지,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인지 사람마다 기준이 자의적이고 모호할 수 있기 때문에 의도, 맥락 등을 복잡하게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취향과 맞는 사람을 후대하고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는 사람은 밀어내어, 동일하게 대우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차별로 볼 수 있는가, 또는 차별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나쁘게 볼 수 있는가.

3. 발생 원인: 사회심리학적 설명들


사회심리학 문서에서도 나오지만, 이 분야 자체가 워낙에 이론적 조망이 수두룩 빽빽하게 널려있는 바닥이라서 이론을 바탕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히 차별에 대해서도 설명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이론들이 몇몇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그 중 많이 거론되는 몇 가지를 우선적으로 언급해 보기로 한다. 이들 중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두번째로 소개되는 "사회적 정체성 이론".

3.1. 현실적 집단 갈등: 희소한 자원을 놓고 벌이는 집단 간 쟁탈전


일찍이 무자퍼 셰리프(M. Sherif)가 이제는 고전이 된 연구 "Robber's Cave Study"를 통해 밝혀냈듯이, 많은 차별들은 어떻게 보면 여러 이해관계 집단들 사이의 이권다툼으로 인해 초래되기도 한다. 셰리프는 이것이 집단 사이의 갈등에 대한 본질이라고 생각했고, 이 건조하기 짝이 없는 설명은 곧 '''현실적 집단 갈등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립되었다.(1961년)
이 관점에 따르면 집단 사이의 갈등은, 그리고 제도화된 갈등으로서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여러 집단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적 자원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문제는 이 자원 자체가 우리끼리 나누어 먹기에도 빠듯할 만큼 희소한지라, 남들(패배자)에게 줄 여유는 없다는 것. 결국 승자 집단이 자원을 독식하고 패자 집단은 자원에 접근하는 데 실패하면서 차별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이론의 이름에 "현실적" 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게 괜한 게 아닌지라, 여기에는 갈등 이전에 두 집단이 사적으로 얼마나 친밀한 관계였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서로 하하호호 하면서 좋은 무드를 만들던 사이에서도 일단 처지만 바뀐다면 곧장 서로 으르렁거리는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
그러나 셰리프는 다행히 이 차별을 완화시킬 수 있는 길을 암시했다. 아무리 서로 갈등을 빚고 차별대우를 밥 먹듯이 하던 앙숙 같은 관계일지라도, 두 집단이 공통적으로 추구할 만한 목표를 정해 주고 협력하게 하면 차별이 사라진다는 것. 두 집단이 힘을 합쳐야만 모두가 원하는 이상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두 집단은 곧 서로가 갖고 있는 자원을 상대방에게 공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면 희소한 자원의 양을 늘리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아도 차별을 줄일 수 있다. 셰리프가 강조했던 것은 경쟁과 협력의 맥락이 차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설명이었기 때문.

3.2. 사회적 정체성: 우월한 우리 편, 열등한 너희 편


현대 사회심리학의 거의 모든 거시적 논의는 이 단락의 서술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차별이라는 행동이 과연 무엇으로 인해 촉발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던 헨리 타이펠(H.Tajfel)은, 내친김에 차별을 불러일으킬 만한 모든 예상 변인들을 철저하게 소독하다시피 통제해 가면서 차별의 최소한의 조건을 찾고자 했다. 이를 위해 타이펠은 일명 '''최소 집단'''(minimal group)이라는 연구 패러다임을 만들었는데, 참가자들을 옷 색깔이나 동전 던지기 같은 시답잖은 기준으로 청팀 백팀으로 나누어서 조 배정을 한 다음, 임의로 두 명을 뽑아서 일대일로 대면시키고 1만원의 금전 중 어느 정도를 상대방에게 나누어 줄 것인가를 묻는 것이 골자이다. 여기서 핵심은, 만난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집단일 수도 있지만 다른 집단일 수도 있다는 것. 연구 결과,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집단의 상대방에게는 굉장히 후하게 베푸는 경향을 보였지만, 다른 집단의 상대방에게는 그런 관대함을 보이지 않았다. '''내집단 편애'''(ingroup favoritism)가 발생한 것이다.
금전의 배분에 있어서 이런 차별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서 가능한 모든 외적 설명은 배제될 수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부정적인 태도도 없고 선입견이나 범주 관련 고정관념도 없었기에, 이 상황은 '''편견고정관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나타난 셈'''이었다. 남은 것은 이들이 자신의 자기에 관련된 이슈 때문에 일부러 자기 집단에게 좀 더 이타적인 행동을 했다는 설명뿐.
현대의 연구자들은 일명 C-I-C 프레임워크라고 부르는 논리적 설명의 단계를 취한다. 이 사람들은 "내가 어떤 범주에 소속되어 있는가" 를 우선적으로 생각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그렇다면 사회 속의 나는 누구인가" 를 정립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속한 집단은 저들에 비하면 어떠한가'''" 의 생각으로 이어짐으로써, 사람들은 자기고양적인 삼단논법을 통해 자존감을 끌어올리게 된다. 즉,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하여 "나는 이 집단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 집단은 우월하다. 따라서 나도 우월하다"의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 이제 사람들은 자기 집단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심리적인 경쟁에 불이 붙게 되면서 제한된 자원과 무관하게 이미 경쟁이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동전을 던져서 임의로 배치한 집단일지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 어딘가는 남들보다 잘난 구석이 있기를 바란다'''.[5] 그렇기에 그들은 자기 집단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대해서라면 자원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반대로 외집단에 대해서는 (설령 모든 경우에 꼭 공격성이나 폄하가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더 대충 생각하려 하고, 기회만 된다면 얼마든지 편견 및 고정관념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 이는 추가적으로 외집단에 대한 자원의 제공을 더욱 마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사회적 정체성 이론이 이야기하는 집단 속의 개인의 심리다. (1979년)
이렇게 말하면 이게 차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겠지만, 이 이론의 성과는 차별과 같은 거시적인 현상조차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뭇 사람들의 개인적이기 짝이 없는 생각, 즉 "나는 누구지? 나는 잘난 놈이지! 이렇게나 잘난 집단에 속해 있거든!"(…)을 만들어내고 확인받고 싶어하는 심리에 기초해 있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현대의 연구자들이 이들의 영향력 하에 있다는 얘기는, 결국 이런 거시적인 사회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통찰하기 위해서 이제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의미다.
이 맥락에서 수많은 차별 완화 방법들이 제안되었다. 개인의 정체성이 그 소속 집단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을 경우 그 사람을 탈범주화시키는 방법, 경쟁 관계의 외집단과 자신의 내집단을 아우르는 상위 집단을 강조함으로써 상대적 우월성에 대한 집착(?)을 줄여주는 방법, 자신의 내집단과 자신의 상위 집단 양쪽에 대한 다중적인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가질 수 있게 하는 방법 등등이 있으며, 이 각각의 제안들에는 저마다 관련 논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3. 공포 관리: 문화적 세계관 사이의 충돌


젊은 사회심리학도 제프 그린버그(J.Greenberg)와 그 친구들은 인류학 관련 문헌을 뒤적거리다가 아주 우연히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인간의 사회적 삶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통찰을 얻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 죽음 내지 인간의 필멸성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실존주의적인 공포 내지는 거북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전제였다. 결국 사람들은 그 꺼림칙한 기분을 몰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수단들을 동원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문화적 세계관'''(cultural worldview)을 통해 상징적으로 불멸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상의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의 몇몇 주요 내용은 <Public Self and Private Self>라는 책에 실렸다. (1986년)
여기서 문화적 세계관이라 함은 결국 그 사람이 죽음으로 완전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적 방법으로 불멸을 보장받도록 믿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라고 믿을 수 있게 하는, 개인의 가장 근본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떠오르듯이 종교가 그 중 하나의 수단이고, 사후세계를 믿는다면 현세의 죽음에 대해서도 좀 더 초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속적인 방법 역시 포함하기에, 현충원에서 고인을 기린다거나, 제사를 지낸다거나,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다거나 하는 것들 역시 불멸을 얻고자 하는 개인에게 선망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것이 차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공포 관리 이론가들에 따르면 다양한 집단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같은 집단 내에서라면 같은 세계관이 존재하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갖는 집단끼리 서로 만나면 두 집단 모두 어마어마한 실존적 위협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그래서 어쩌면 내가 죽음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개인을 가볍게 압도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단 이렇게 접촉한 두 집단은 서로에 대해서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물고뜯고 싸우며 상대방에게 차별적 행동을 보이게 된다.
국내에 이와 관련하여 아주 전형적인 차별의 사례가 바로 근본주의 개신교계가 동성애자들에게 보이는 차별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동성애자들을 용인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들이 믿고 있던 근본주의적 신앙의 안전성이 위협받게 됨을 의미한다. 자신들이 배우기로는 남녀가 짝을 이루어 한 몸이 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의 섭리이기 때문. 이들의 신앙이 위협받는다는 것은 곧 다시 말하면 그것과 결부된 구원과 내세의 약속까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끔찍한 결론까지도 이어질 수 있으므로, 실제로 일부 극단적인 교회들에서는 커밍아웃을 한 교인은 아예 내쫓아 버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공포 관리 이론은 종교심리학이나 정치심리학 등에서만 한정적으로 쓰이며, 그나마도 그렇게 확고한 이론까지는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상기된 호모포비아의 심리도 사실 어지간한 집단 관련 사회심리학 이론들이 죄다 적용 가능한 주제인지라... 게다가 공포 관리 이론으로 집단 간의 차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사실 문헌적으로도 그렇게 누적되어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해야 할 것은, 이 이론이 굉장히 참신하고 특이한 발상으로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연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는 것이다. 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알고보니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공포 때문이더라는 설명은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그야말로 뜬금포가 따로 없기 때문.

3.4. 사회적 지배 경향: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


심리학자 짐 시다니우스(J.Sidanius)와 펠리시아 프라토(F.Pratto)는 사회심리학 역사상 사회학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이론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적 지배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제도적 차별과 개인의 심리가 상호작용하는 메커니즘을 구명하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갈등론적 세계관의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의 논리를 적극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수직적 위계가 되게 하는 다양한 층위의 원인들을 고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9년)
이들이 전제하는 것은 일견 현실적 집단 갈등 이론과도 유사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자원들은 결국 강한 집단이 약한 집단보다 더 많이 가져감으로써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불평등은 시간이 지나도 잘 해소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떤 개인들이, 어떤 제도나 사회적 조직들이, 그리고 어떤 사회적 체제가 그것을 긍정하고 옹호하며 보호하고 있기 때문. 결국 이 이론은 "차별? 불평등? 그거 당연한 거 아냐?"라고 말하는 심리를 개인에서부터 사회적 구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적 지배 경향(social dominance orientation)이 강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자원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을 긍정하고 적극 찬동하거나, 잘해봐야 필요악 정도로 치부하고 넘긴다. 반대로 이 경향이 낮은 사람들은 가능한 한 모두가 평등하게 자원을 나누어가질 수 있도록 애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조직이나 집단, 제도의 수준에서도 발견되며, 개인의 이런 성향이 제도 수준에서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제도 수준에서의 차별과 불평등이 개인의 심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쪽 이론가들이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용시장에서의 여성 차별이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등에 점차 둔감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는 특히 보수주의자들(보다 엄밀히는 아마도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심리, 어퍼머티브 액션의 필요성, 유리천장 문제, 임금격차가 끼치는 심리적 영향, 남초/여초 성비 및 위계질서/평등주의적 기업 분위기를 논의하는 데 적절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유례없이 거시적인 수준의 논의를 전개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성격심리학적인 측면도 강한데, 그 이유는 사회적 지배 경향이 일종의 개인차(individual difference)로서 취급되고 있기 때문.[6]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게 당연하다" 고 믿는다. 다시 말해, 원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 그리고 그것이 반영된 제도가 뭇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제도 수준의 노력이 요청된다. 우리 사회의 억압적인 구조를 갈아엎어야만 개인의 삶의 질과 사회적 정의에도 모두 해피한 결말이 도래하기 때문. 차별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주장을 펼치는 이론은, 그 수많은 이론의 춘추전국시대를 누리는 사회심리학계 속에서도 정말 흔치 않다. 그렇기에 거꾸로 말하면 페미니스트들이나 사회학도들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볼 만한 논의거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3.5. 일반화를 통한 차별


후세 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차별의 이유 중 하나로 '''일반화'''를 들었다. 올포트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은 '''검증된 해결책'''에 매달린다. 즉,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직접 알아가는 것보다 자신의 경험 등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범죄 현장이나 불법사이트 등에서 찐따나 오타쿠 같은 사람들을 자주 발견한다면 사람들은 내심 모든 찐따나 오타쿠를 그런 인간들로 판단한다. 물론 이는 개개인에게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못생기거나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제로는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아 개개인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정의나 질서 등을 주장하는 검찰이나 경찰마저 특정 집단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부조리(?)가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한국의 연쇄살인과 같은 책에서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나타나며 공무원들조차 당연한 것처럼 검증된 해결책을 이용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통계를 바탕으로 사회부적응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오타쿠들의 이미지가 좋아졌다는 썰이 있는 일본에서도 경찰이 관할 구역을 넘어서까지 오타쿠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한다. https://ja.wikipedia.org/wiki/%E3%81%8A%E3%81%9F%E3%81%8F%E7%8B%A9%E3%82%8A 이런 짓은 당연하게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증가시킬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나 일본에서나 바람직한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꽤 공부하거나 배운 사람들도 고든 울포트의 주장에 부합하는 모습을 현실에서도 자주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편견으로 가득해 자신의 편견 이용을 인지하는 사람도 "나는 편견이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일반화로 사람들을 차별한다. 일반화는 어느 정도 무능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편견 인정은 자신이 개개인을 조사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며 검찰 혹은 경찰과 같은 직업 및 직무를 가진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다. 따라서 편견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주로 경험을 통해 이미 일반화된 답이 정해져 있을 수 있다.[7] 미디어 따위를 통해 사람들을 세뇌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런 수단은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경험에 의존하여 히틀러와 같은 악인, 범죄자들조차 단순히 주변 사람들에게 공손하거나 친절하게 대하는 것만으로 선인 취급을 받을 수 있다.[8] 따라서 경험을 통해 쌓인 일반화는 선전선동이나 망상에 의한 편견보다도 위력적이고 그에 의한 차별은 사라지는 게 거의 불가능하여 오직 다른 경험만이 바꿀 수 있다. 쉽게 말해서 경험을 통해 찐따나 일진에 대한 편견이 생긴 사람들은 다른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대다수가 결국 그 편견을 바꾸기 힘들다. 결론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차별과 혐오를 표출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모습만 갖췄을 뿐, 그들이 일상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험들이 이미 내재해 있을 확률이 높다.[9]

4. 차별에 의한 피해


차별이 심해질수록 차별받는 계층은 차별을 버티지 못해 자신이 속한 사회를 떠나거나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범죄를 저지르게 되며, 극단적으로는 "못 살겠다! 엎어보자!"라며 봉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차별받는 계층에 속한다는 이유로 출세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사회 전체가 손실을 보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차별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5. 차별에 관한 어록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개인이 속한 국가 또는 영토가 독립국, 신탁통치지역, 비자치지역이거나 또는 주권에 대한 여타의 제약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그 국가 또는 영토의 정치적, 법적 또는 국제적 지위에 근거하여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 '''세계인권선언 제2조'''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ㆍ미혼ㆍ별거ㆍ이혼ㆍ사별ㆍ재혼ㆍ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ㆍ개정 및 정책의 수립ㆍ집행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이하 "차별행위"라 한다)로 보지 아니한다.

가. 고용(모집, 채용, 교육, 배치, 승진, 임금 및 임금 외의 금품 지급, 자금의 융자, 정년, 퇴직, 해고 등을 포함한다)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ㆍ배제ㆍ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나. 재화ㆍ용역ㆍ교통수단ㆍ상업시설ㆍ토지ㆍ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ㆍ배제ㆍ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다. 교육시설이나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ㆍ훈련이나 그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ㆍ배제ㆍ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라. 성희롱(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공공기관(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초ㆍ중등교육법」 제2조, 「고등교육법」 제2조와 그 밖의 다른 법률에 따라 설치된 각급 학교, 「공직자윤리법」 제3조의2제1항에 따른 공직유관단체를 말한다)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직위를 이용하여 또는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행위

-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호'''

Each person possesses an inviolability founded on justice that even the welfare of society as a whole cannot override.

'''모든 사람은 정의에 기초한 불가침권을 가지며, 이는 사회 전체의 평온이란 이름으로도 희생시킬 수 없다.'''

- 존 롤스, 《정의론》 中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보여질 수 있는데 정작 신분제도에 의해서 양반들은 일도 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평민과 천민만 일을 하거나 아예 평민과 천민을 통해서 일을 시키고 있다. '''사람이 일하는 데 있어서 양반이든, 평민이든, 천민이 따로 있던가.''' 양반도 땅을 가졌으면 자기 손으로 일해야 한다.

- 다산 정약용

양반들은 자신이 일하기보다는 거의 노비나 소작농 평민들을 시켜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평등한 세상에서는 양반도 제 손으로 일할 줄도 알아야한다.

- 연암 박지원

세계의 모든 국가와 민족은 어떠한 경우에도 특정국가나 민족을 폄하하고 차별하는 언행이나 행동을 삼가야하며 상대방 국가나 민족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통해서 서로간의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 국제연합(UN)

올림픽에 참가한 전 세계 모든 선수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특정 국가, 인종, 집단 등에 대해서 차별적인 발언이나 행위를 삼가야하며 선의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선수들끼리의 우정과 신뢰를 쌓도록 노력해야한다.

-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월드컵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은 특정의 나라, 인종, 집단 등에 대한 어떠한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행과 행동을 삼가야한다. 만일 경기 중에 이러한 행위가 있을 경우 출전 자격을 박탈할것이며 해당 국가 축구협회에 대해서는 징계를 통한 제재를 내린다. 또한 선수들을 응원하는데 있어서도 특정 나라, 인종, 집단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행위를 삼간다.

- FIFA

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햄버거나 영화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

-*Arthur Goldberg 미국 연방대법관 (김지혜. 2019.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경기도 파주시. 133page.)


6. 같이 보기



[1] 왼쪽 위부터 1)성별 2)종교 3)장애 4)나이 5)사회적 신분 6)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7)출신 국가 8)출신 민족 9)용모 등 신체 조건 10)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11)임신 또는 출산 12)학력 13)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14)인종 15)피부색 16)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17)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18)성적(性的) 지향 19)병력(病歷)이다.[2] 참고로 5)번의 '사회적 신분'의 경우, 헌법재판소는 이를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는 것'''(93헌바43)으로 정의하는 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천적 신분'과 같이 사실상 쉽게 변경할 수 없는 고정성이나 국적·신앙 등과 같이 특정한 인격과 관련된 일신전속적 표지 뿐만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으로서 위 짤과 같은 직업(학자-노동자) 등도 '사회적 신분'에 포함된다.[3]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상 어딜가든 현실주의에 눈을 뜬 모든 인간은 사회에 대한 실망감을 갖게 되며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체시키며 차별을 정당화 시키려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인간들도 정작 자신이 부당한 상황에 처하면 억울한 감정을 드러내며 개념을 요구하는 이중잣대를 보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덕분에 가장 중요한 말이자 무의식적인 행동에선 누구나 차별을 가할 수 있기에 되풀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며 인간관계에 있어 가볍게 보지 말고 조심해야한다.[4] 다만 이러한 말 역시 한계를 보여주는 현실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개념은 진심이 아니면 모순이자 가식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며 사회의 비극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회는 보상심리를 전제하에 개념이 형성되어왔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본능을 감추고 내면에 가면을 써야하는 존재로서 인식하며 살아가기에 사회 활동에 있어 어떤 사례로든 몰래 차별이 이루어 질 수 있다. 당장 집단 따돌림의 예시만 봐도 사회 인식은 항상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 문제되어 왔지만, 한편으론 만나면 이득이 없거나 기분나쁜 사람을 조롱하거나 기피시하며 따돌리기도 한다. 일종의 선민사상이자 개인주의의 영향이 강하며 심각하면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원인은 사람의 한계는 '''자신의 이익만 충족시키면 개념 자체가 상실하게 되며 남들의 못난 부분을 무시하거나 기만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5] 이는 사실 수련회나 MT 등의 모임에서 무선적으로 조별 배치가 이루어졌음에도 이를 바탕으로 조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6] 이런 경우 보통은 우익 권위주의(right-wing authoritarianism)라는 개념과 쌍으로 엮어서 취급한다. 그리고, 사회적 지배 경향은 성격심리학에 존재하는 다른 개념인 지배 특질(dominance trait)과는 다르므로 주의. 이쪽은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을 은연중에 찍어누르려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7] 예를 들어, 경찰들은 부적응이 심하고 사회성이 낮은 사람들을 내심 범죄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연쇄살인에는 경찰들이 의존하는 연쇄살인범들의 프로필이 정리되어 있는데 특징이 사회 부적응자들에 대한 저격이나 다를 게 없다. 다음 출처에서도 경찰청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자 대부분이 사회 부적응자라고 한다.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63761 [8] 기만적인 히틀러는 반유대주의를 드러내기 전부터 이미 끔찍한 반유대주의자였지만 그의 사상을 몰랐던 주변 유대인들에게 오히려 인기가 있었다. [9] 이는 망상에 의한 차별보다 더 심각할 수 있는데, 경험에 의한 차별은 뛰어난 사람들조차 극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뛰어난 남성들과 그렇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경험을 통해 여성을 열등하다고 여기게 된 사람은 망상으로 멸시하는 사람보다 일반적으로 더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10] 많은 사람들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나, 태생적인 시민이 아닌 사람들, 즉 귀화자들은 어마어마한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특히 귀화자들은 종종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문제를 직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대한민국은 없으나 미국만 해도 귀화자에게는 정/부통령 피선거권을 박탈한다. 말레이시아는 이보다 더해서, 지방자치단체장까지도 막으며 심지어 국가대표로 뛰지도 못하게 한다.[11] 이건 아예 생물학적 차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