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국
1. 고구려에 합병된 국가
'''沸流'''
건국년도 미상 ~ 서기 37년 고구려에 복속
고구려가 최초로 복속한 국가이자 고구려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송양이 다스리던 나라. 동명성왕이 "비류수에서 채소가 떠내려 오는것을 보고 강 상류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았다(王見沸流水中 有菜葉逐流下 知有人在上流者)"라는 기록으로 보아 비류수의 상류에 위치한 국가로 추정되는데, 송양이 "과인이 바다의 한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군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寡人僻在海隅 未嘗得見君子)"라는 말도 같이 있어서 바닷가이면서 강의 상류인 지역에 위치한듯 보인다. 또한 채소가 떠내려왔다는 것을 보면 농사를 지었는듯 하다.
삼국사기와 구삼국사 모두 송양이 "여러대 왕 노릇을 했다."라며 비류국이 고구려가 건국되기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등장하나, 건국년도가 언제인지는 알수가 없다.
고구려에 편입되어서 후에 비류국의 땅은 되찾은 땅이라는 의미에서 다물도(多勿道)라 이르게 되었고, 비류나부(다른 이름으로는 연노부)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에 편입된다.
비류와는 '''의외로 관계가 있다.''' 비류의 어머니인 소서노가 비류수 인근의 졸본성 출신이기 때문. 참고로 비류수 인근이라는 표현은 현대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닌 문헌에서 졸본성을 설명할 때 나오는 표현이다. 사실 기록에서 보면 알겠지만 초기 고구려가 비류수 하류에 있지 않았다면 동명성왕이 비류수에서 채소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비류국에 찾아갈 수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왕께서) 비류곡(沸流谷)에 있는 홀본 서쪽 산에 성을 쌓아 수도를 건설 하셨다.'''
광개토대왕릉비 비문 중
1.1. 역대 국왕
1.2. 둘러보기
2. 백제에 합병된 국가
'''沸流國'''
온조왕(溫祚王)의 형인 비류가 세운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위치는 미추홀[1] 로 현재의 인천광역시이다. 인천 문학산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축조한 산성이 남아 있는데 동사강목,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등의 옛 문헌에는 이 성이 비류의 옛 성이고, 성 안에 비류정(沸流井)이라는 우물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온조와 같이 남하한 비류가 건국했다고 전해지나 땅이 습하고 물이 짜 편히 살 수 없어 위례성으로 돌아가보니 번성하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 후회하며 죽었다고 한다.
인천에 있던 미추홀이 같은 부여계 유이민들이 건국한 한성(온조)백제와 훗날 통합되면서 형제 설화로 발전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비류국이 삼국사기의 공백지역인 충청도에 계속 존재하다가 광개토왕의 원정 때 무너져 한성백제에 흡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백제 건국신화는 비류국을 흡수한 한성백제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애초에 '백제'는 본래 이름이 '십제'였고, 기록상에는 비류가 세운 나라가 망하면서 '백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백제'라는 국명마저도 '온조왕'과 깊이 연관된 이름이기 때문에, 비류를 지도자로 하던 정권 혹은 비류를 기원으로 하는 나라가 있다면 국명은 애초에 백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2.1. 역대 국왕
2.2. 유사역사학에서의 악용
재야사학자 김성호의 주장을 추종하는 유사역사학자들은 위의 내용을 창조적(...)으로 개조하여 '초기 백제의 실체는 비류백제라 카더라' 하면서 일본 천황가의 근원으로 엮어놓았고, 이것은 고스란히 이름이 비슷한 만화가 김산호의 작품인 대쥬신제국사의 판타지적 설정으로 이어져 형민우의 태왕북벌기에도 반영되었다. 하지만 구라임이 너무나 명백하여 지금은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1] 고구려에서는 매소홀현(買召忽縣)이라 불렀고, 신라에서 이를 소성(邵城)이라고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