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콜

 

[image]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1'''
1. 개요
2. 선수생활
2.1. 메이저리그 시절
2.2. 한국 프로야구 시절
3. 은퇴 후
4. 연도별 성적


1. 개요


SK 와이번스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했던 전직 야구선수.
야구선수로서는 드문 러시아 국적 소유자인데, 시에라리온 태생의 아버지가 의학을 배우러 소련 레닌그라드로 유학을 갔다가 그곳 여성과 관계를 맺어 태어났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야구를 배운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소련 출신으로는 역사상 유일하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선수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 선수생활



2.1. 메이저리그 시절


메이저리그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서 뛰던 선수로, 1992년 피츠버그서 8경기 2패만 기록한게 유일한 메이저리그 기록.

2.2. 한국 프로야구 시절



2.2.1.


1998년 크보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되었고 당시 평가전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 조 스트롱, 호세 파라, 마이크 부시 등과 함께 최대어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을 받았으나, 호기롭게 45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을 요구했고 결국 당시 돈을 잘 쓰지 않는 롯데는 그와 계약하지 않고 2라운드에서 지명한 내야수 덕 브래디와만 계약을 했다.[1] 결국 콜은 대만 프로야구라뉴 베어스[2]로 가고, 한국과의 악연(?)은 끝나는 줄만 알았는데...

2.2.2. SK 와이번스 시절


http://cfile223.uf.daum.net/image/220AF64654DB2DDA12F619

2000년,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혼즈와 뮬렌을 방출한 SK하비 풀리엄과 함께 콜을 영입한 것, 그렇게 그는 다시 한 번 한국에 왔고, 데뷔전에 152km까지 나가는 구속을 선 보이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직이 불명확할 정도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긴 했지만, 2000년에 8승 10패 2세이브에 '''방어율 6.14'''를 기록하며 결국 풀리엄과 함께 시즌 이후 퇴출[3]되었다.[4] 그 후.......

2.2.3. 두산 베어스 시절


http://cfile206.uf.daum.net/image/266A764953CB0BC126EF3E
2001년, 다시 대만에서 뛰던 콜은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밟게 된다. 셰인 베넷을 방출한 두산 베어스가 대체 선수로 그를 영입한 것. 이후 그는 그해 두산 소속으로 5승 9패 ERA 5.04를 기록했으나,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으로 두산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재계약에 성공했고, 이듬해인 2002년에는 12승 6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거두던 그는 시즌 막판 가벼운 부상을 갖고 2군으로 내려갔는데, 이것은 시작이었다. 그는 퓨처스리그에서 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이후 그는 엔트리서 제외되어 재활군에서 있다가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3. 은퇴 후


이후에는 2003년 러시아 야구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했고, 2007년에는 북미의 독립리그인 노스이스트 리그에 참가했다. 아들인 빅터 콜 주니어가 2016년까지 리버티 대학교[5]에서 좌완투수로 활동했다고 알려졌으나 그 이후의 소식은 없다.

4. 연도별 성적


<color=#373a3c> 역대 기록[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0
SK
37
114⅓
8
10
2
1
6.14
116
12
78
5
71
1.7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1
두산
21
119⅔
6
9
0
0
5.04
115
9
56
4
95
1.43
2002
27
157
12
6
0
0
4.01
152
11
73
8
114
1.43
<color=#373a3c> '''KBO 통산'''
(3시즌)
85
391
26
25
2
1
4.95
383
32
207
17
280
1.51
[1] 당시 용병 드래프트에서 연봉 상한선이 12만 달러였기 때문에 무슨 소린지 할 수도 있는데, 간단하다. 뒷돈 달라는 소리. 그 때나 지금이나 대외금액대로 돈 주는 구단 아무데도 없다.[2] 현재의 라미고 몽키스[3] 퇴출이라기 보다는 정확히 말해서 괜찮은 성적보다는 신통치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는 뜻.[4] 하지만 이 때는 SK 투수 중에 제대로 밥값하는 선수는 신인인 이승호 한 명뿐일 정도로 투수진이 막장 그 자체. 그 이승호도 노예로 3년간 굴렸다가 뒤에 작살이 나버렸다가 다시 재기를 했다.[5] 윗 문단에 작성 된 같은팀 동료가 될 뻔 했던 덕 브래디의 모교이기도 하다.[6]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