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파라
1. 소개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스캇 베이커와 더불어 삼성 라이온즈의 첫 외국인 선수였다.
2. 선수 경력
2.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
1995년 LA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데뷔해 2년간 47경기에 등판해 6승 10패 5.5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평범한 선수였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던 당시 한국리그는 마이너리그 죽돌이들이나 오는 것이었고, 콜업이 한번도 없는 선수도 흔해서 메이저 콜업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능력이 뛰어난 편이었기 때문에 2년간 47경기나 등판한 파라는 매우 우수한 경력을 지닌 선수로 평가받았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투수진 보강 차원에서 1998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때 삼성이 1라운드에서 뽑았다. 원래 선발 투수로 기용하려 했지만 마무리 김태한이 입대하면서 삼성은 호세 파라에게 마무리 투수를 맡겼다. 150km/h대의 빠른 공을 던졌지만 빠른 공을 받쳐 줄 변화구가 없었고,[1] 당시에는 삼성 불펜이 허약해 8회부터 파라가 투입되는 일이 많았는데, 1이닝 이상을 소화하다 보니 체력적인 문제로 9회가 되면 난타를 당하곤 했다. 파라의 강속구를 살려보고자 삼성이 시즌 후반에는 선발로 급 전향시켜 기용하기도 했으나 결국 파라는 마무리로 시즌을 마쳤다.[2]
1998년 파라의 정규시즌 성적은 7승 8패 19세이브로 세이브 6위였기에 삼성은 처음엔 파라와 재계약을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태도를 바꿨고 뜬금없이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적료를 받고 파라를 보냈다. 이는 삼성이 파라와 재계약을 하기는 싫었으나 두산이 파라를 영입하려 했기에 비수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일본으로 보낸 걸로 추측된다.
2.3. 이후
1999년 2승 3패 6.32의 평균자책점으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요미우리에서 방출되었고 이후 피츠버그, 대만 퉁이 라이언스, 애리조나에서 활동하다가 2002년 시즌 중반 6월 중순 한화 이글스가 댄 세라피니의 대체선수로 영입했다. 이때는 불펜으로만 나오면서 31경기에서 3승 1패 4세이브를 거두었다. 하지만 6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2004년에는 뉴욕 메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승격되기도 했다. 2005년 오릭스 버팔로즈에 입단했는데 이 시즌에는 개막 이후 첫 승리를 거두는 등 초반에는 순항했으나 6월 교류전 때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다. 결국 이탈 후로 1군에 돌아오지 못하고 8경기(7선발) 33이닝 4승 2패 ERA 4.09라는 기록을 남긴 후 8월에 방출되었고 이후 은퇴했다.
3. 기타
운전할 때 맨발로 하는 걸 즐겼다고 한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5. 관련 문서
[1] 한국에 와서 커브볼을 배웠다는 얘기가 있었다.[2] 결국 삼성은 마무리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이듬해 팀의 프랜차이즈 양준혁을 해태 타이거즈의 임창용과 트레이드한다. 그리고 서정환 감독은 트레이드로 온 임창용을 중무리 투수로 철저하게 혹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