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image]
''' SK 와이번스'''
'''SK WYVERNS'''
'''창단'''
2000년 3월 31일(23주년)
'''법인 설립'''
2000년 3월 22일(24주년)
'''법인 매각'''
2021년 3월 5일(예정)[1]
'''법인명'''
에스케이와이번스㈜[2]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자회사
'''사무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618 (문학동)[3]
'''모기업'''

'''연고지'''
[image] '''인천광역시''' (2000~)[4][5]
'''구단주'''
최창원[6][7]
'''사장'''
민경삼
'''단장'''
류선규
'''감독 '''
김원형
'''주장'''
이재원
'''영구결번'''
'''26 박경완'''
'''홈구장'''
숭의야구장 (2000~2001)
'''인천SK행복드림구장''' (2002~)[8][9]
'''2군 구장'''
SK 퓨처스파크
''' 마스코트'''
[image]
'''아테나'''와 '''와울'''[10]
'''킷 스폰서'''

'''워드 마크'''
[image] | [image]
'''홈페이지'''
| | |
| | |
'''공식 APP'''
|
★★★★
'''최종 우승 ''' (4회)




2007년
2008년
2010년
2018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 (3회)
2007년, 2008년, 2010년
'''포스트시즌 진출''' (12회)
'''한국시리즈'''
2003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8년'''
'''플레이오프'''
'''2003년''', '''2009년''', '''2011년''', '''2012년''', '''2018년''', 2019년
'''준플레이오프'''
'''2003년''', 2005년, '''2011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
2015년, 2017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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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승률'''
'''.659'''
2008년 126경기 83승 43패
'''최저 승률'''
'''.338'''
2000년 133경기 44승 86패 3무
'''최다 승'''
'''88승'''
2019년 144경기 88승 55패 1무
'''최다 패'''
'''92패'''
2020년 144경기 51승 92패 1무
'''최다 관중'''
'''1,069,929명'''
2012년[241]
'''최소 관중'''
'''84,563명'''
2000년[242][코로나19]
'''최고 FA 계약'''
'''6년 106억원'''
2019년 최정

'''후신'''
(가칭) 신세계 일렉트로스[11]
1. 개요
2. 상세 내용
2.1. 색상 일람
2.2. 역대 구단 BI
2.3. 역대 마스코트
3. 팀의 특색
3.1. 최전성기 - 벌떼야구
3.1.1. 저평가된 타선
3.2. 두번째 전성기 - 홈런공장
3.3. 사건사고의 강도가 낮았던 구단
3.4. 날씨에 따라 요동치는 순위표
3.5. 일 잘하는 프런트
3.7. 팬덤 성향
3.7.1. 비인기 구단
3.7.2. 온라인상에서의 취급
3.8. 선수 영입 스타일
3.8.1. FA에서의 스타일
3.8.3. 외국인 용병 영입
3.9. 빈약한 내야 센터라인
4. 팀의 역사
4.1. 창단 과정에서 인천의 노력
4.2. 강병철 감독 시대 (2000~2002)
4.3. 조범현 감독 시대 (2003~2006)
4.4. 김성근 감독 시대 (2007~2011)
4.5. 이만수 감독 시대 (2011~2014)
4.6. 김용희 감독 시대 (2015~2016)
4.7. 트레이 힐만 감독 시대 (2017~2018)
4.8. 염경엽 감독 시대 (2019~2020)
4.9. 김원형 감독 시대 (2021~)
4.9.1. 신세계그룹으로의 매각 (2021)
5. 주요 기록
5.1. 역대 감독
5.2. 시즌별 일람
5.3. 역대 개인 성적
5.3.1. 통산 성적
5.3.2. 단일 시즌
6. 선수단
7. 홈구장
8. 논란
8.1. 인천야구 정통성 논란
8.2. 프런트와의 갈등
9. 기타
10. 지역 연고 학교
11. 응원
11.1. 응원단
11.2. 응원가
11.3. 연고지 지명 강조 응원구호의 원조
12. 역대 캐치프래이즈
13. 네임드 팬
14. 같이보기
1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패기의 SK! 승리의 와이번스! '''
2000년 창단 당시부터 유지해 온 구단 공식 슬로건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홈구장은 미추홀구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SK행복드림구장이다.
2000년 3월에 창단했으며 2020년 기준 창단 20주년을 맞이하였다. 2018년에 창단 19년차에 접어들면서 1982년부터 1999년까지 18년간 인천에 있었던 삼청태현을 제치고 인천에 가장 오래 연고를 둔 프로야구단이 되었다.[12] 모기업은 SK그룹, 구단주는 최창원.[13]
20년의 역사 중에 12번의 KBO 포스트시즌 진출과 8번의 KBO 한국시리즈 진출,[14] 4번의 KBO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KBO 리그의 신흥 강호 구단으로 역대 한국시리즈 승률 3위와 KBO 포스트시즌 승률 2위 및 6년 연속 KBO 한국시리즈 진출 등[15] 가을 야구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와이번(wyvern)은 서양 문화에 등장하는 비룡으로 몸에 날개가 달려 있고 화살촉 모양의 꼬리가 달렸다고 한다. 과거 MBC 청룡의 마스코트였던 동양 문화 속의 상상 동물 과는 다소 다르다. 여러 장르에서 상징으로 널리 쓰이는 드래곤, 용에 비해 판타지 장르가 아니면 잘 등장하지 않아서 인지도는 낮은 편. 미국인 중에도 이 단어를 모르는 이들이 꽤 많았는데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개막이 지연되고 그에 대한 대체재로 KBO 리그가 미국으로 생중계될 때 '와이번스'라는 구단 이름이 알려지자 "저 단어는 생소하다. 무슨 뜻이냐"고 묻는 반응이 많았다.

2. 상세 내용


창단 순서로 따졌을 때 KBO 리그의 제 9번째 구단이다. 2021년 기준 감독은 김원형으로, 역대 감독 계보는 강병철(2000~2002)[16] - 조범현(2003~2006) - '''김성근(2007~2011)'''[17][18] - 이만수(2012~2014) - 김용희(2015~2016) - '''트레이 힐만(2017~2018)'''[19] - 염경엽(2019~2020)[20][21] - 김원형(2021~) 이다.
사실 영어 발음으로는 "와이번'''즈'''"가 맞지만, 구단은 "와이번'''스'''"라고 불러줄 것을 권하고 있다. 따라서 "SK 와이번즈"라고 쓰면 '''틀린 표현'''이다. 다만 외래어 표기법은 와이번스다. /z/로 발음되어도 s로 끝나면 '스'로 쓰게 되어 있으니까. 같은 맥락으로 "KIA 타이거즈"도 "기아"라고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치 않으며[22] 타이거스가 아닌 타이거즈가 정식명칭이다.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는 "타이거즈"라 불리는 걸 원치 않고 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역시 타이거즈라고 밝히지 않고 타이거스라고 한다. 즉 각팀의 영문표기와 상관없이 자국에서 사용하는 발음을 정식명칭대로 불러줘야한다.
상징 마스코트는 '비룡(Wyverns)'. 대표 응원가는 '연안부두'. '비룡'이 된 이유는 연고지인 인천에 '비룡'의 이름을 딴 것이 많기 때문. 옛 용정리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말이 있어 '비룡리'로 불렸다가 이게 '독정리'와 합쳐서 '용정리'가 되었고, 광복 후에는 현재의 '용현동'이 되었다. 인하대학교 캠퍼스에 비룡탑이 있고 인하대역 인근에 비룡삼거리가 있는 것도 이 지역의 원래 이름이 비룡리였기 때문이다.[23]
과거 야구 갤러리에서는 구단을 부를때 '''슼[24], 스크, 주유소'''[25] 정도의 단어를 썼다. 2008년 이후에는 성적이 좋을 때만 생기는 전형적인 양산팬들 때문에 개념팬들까지 '''솩'''[26]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두산과 함께 한국시리즈 우승후보로 빠지지 않는 팀이고 플레이오프 진출은 2016년과 2017년을 제외하곤 늘 해왔던 팀이라 가을 야구 전문 구단다운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2000년 팀 창단 이후 2020년까지 21번의 시즌 동안 SK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던 해는 2000, 2001, 2002, 2004, 2006, 2013, 2014, 2016, 2020년 등 총 9번이다. 그나마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던 꼴찌팀을 새로운 팀으로 다져가던 과정이었기에 가을야구에 나가지 못했던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4번(2007년, 2008년, 2010년, 2018년) 하였는데 준우승은 4번(2003년, 2009년, 2011년, 2012년)이나 하였다. 특히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KBO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SK와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가 세운[27][28]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은 2024-03-29 20:58:35 이 시간 현재까지 KBO 리그 단일 구단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출전 기록으로 남아 있다.[29]
2007년2008년에 한국시리즈를 연이어 우승하며 역대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룬 4번째 구단이 됐다.[30] 또한 2008년에는 126경기 체제 기준 페넌트레이스 시즌 최다승[31] 기록을 수립했고 2009년 8월 25일 문학 두산전부터 2010년 4월 2일 문학 한화전까지 무려 '''22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2024-03-29 20:58:35 이 시간 현재까지 '''KBO 리그는 물론 아시아 프로야구 리그 사상 단일 구단 최다 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32] 국내 최다 프로 연승 기록도 이거다.
연고지는 한반도 서쪽에 자리잡은 인천광역시이지만, 올스타전에서는 동군이다. 이는 빙그레 이글스(現 한화 이글스) 창단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의 성적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에 빙그레를 서군에 넣었고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될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동군에 넣은 게 쌍방울 해체 후에도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 2014년 시즌을 끝으로 동서군으로 팀을 나누는 방식이 사라질 예정이라 나머지 수도권 4개 구단과 엮이는 것이 유력해 보였는데, 결국 동서군 구분이 각각 드림 올스타(구 동군)와 나눔 올스타(구 서군)로 이름만 바뀐채 유지되기로 함에 따라 올스타전에서 두산·롯데·삼성·kt와 한 팀으로 엮이게 되었다.

2.1. 색상 일람


  • 2006년 CI 변경 이후로는 SK스포츠 소속팀들의 상징색은 모두 동일한 빨강-주황 컬러를 사용한다. 즉 여기 있는 색상값은 SK스포츠 산하 팀들이 모두 공유하는 색상이라는 뜻이 된다.
[image] SK 와이번스의 색상 일람
상징색
Pantone
CMYK
RGB
(헥스 코드)
Red
'''Pantone 186c'''
'''C0 M100 Y81 K4'''
'''R234 G0 B44 '''
(#ea002c)
Orange
'''Pantone 158c'''
'''C0 M61 Y97 K0 '''
'''R255 G122 B0 '''
(#ff7a00)
'''Pantone 137c '''
'''M45 Y97 K4 '''
'''R255 G140 B10 '''
(#ff8c0a)
Black
'''Pantone Black 6c '''
'''K100 '''
'''R0 G0 B0 '''
(#000000)
Gray
'''Pantone Cool Gray 6c '''
'''K35 '''
'''R166 G166 B166 '''
(#a6a6a6)
'''Pantone Cool Gray 2c '''
'''K10 '''
'''R230 G230 B230 '''
(#e6e6e6)
Gold
'''Pantone 873c '''
(Alternate Color)
(Pantone값만 있음)
Silver
'''Pantone 877c '''
Beige
'''Pantone 468c '''

2.2. 역대 구단 BI


SK 와이번스의 엠블럼 변천

[image]
[image]
[image]
'''2000년~2005년'''
'''2006년~2019년'''
'''2020년 '''
팀의 상징색은 파랑색[33](2000년~2005년) - 빨강색(2006년~2019년) 순이다. 팀의 상징색이 이렇게 바뀐 것은 팀의 모기업인 SK텔레콤의 역사와 연관이 깊다. 창단 첫 해인 2000년부터 2005년까지 SK텔레콤의 CI 색상은 파랑색이었고 자연스럽게 야구단의 상징색도 파랑색이었다. 와이번스와 더불어 SK텔레콤이 함께 운영하던 서울 SK 나이츠 농구단도 창단 첫 시즌부터 2005~2006 시즌까지 파랑색을 상징색으로 썼다. 그러다가 SK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빨강색을 CI 상징색으로 바꾸면서 야구단과 농구단의 상징색이 모두 빨강색으로 바뀌었다.
창단 당시부터 2005 시즌까지 썼던 푸른색 원형 구단 로고에는 야구공이 그려져 있었으나, 2006년 변경된 BI는 특이하게도 원형 로고를 가진 구단들 중 유일하게 야구공이 그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다른 국내 프로야구팀들과는 다르게 워드마크가 아닌 모자 로고만 들어가 있다.
2019년 11월 12일 2020 시즌 팀 창단 2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위해 구단 로고를 변경한다고 한다. 2020년 1월 8일 구단 로고가 유출됐고 1월 20일 공식으로 공개됐는데 바뀐 BI에 대해서는 혹평이 난무한다. 특히 2015년에 공개된 SK 와이번스 2군 구장인 강화 SK 퓨처스파크의 공식로고와 배색, 이미지등 거의 똑같다는 점에서 20주년 기념 CI라면서 디자인 돌려막기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image]
[image]
''' SK 퓨처스 파크 로고'''
''' SK WYVERNS 로고'''
2021년 1월 19일자 류선규 단장 인터뷰에 따르면, SK 퓨처스 파크 로고 결정 이전에 이미 구단의 현 BI가 결정되어 있었고, 퓨처스 파크가 그 로고를 따라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만, 그 때 당시 구단 성적이 좋지 않아서 미루고 있었을 뿐이라고. 또한, BI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을 인지를 하고 있으며, 로고 변경 가능성을 언급했다. 단,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확답은 줄 수 없다고 한다. 만에 하나 변경되더라도 22 시즌부터 적용 가능하다고. 스포티비 인터뷰 선수단 유니폼부터 문학구장 전광판 등등 교체비용이 상당하기에 구단 BI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음에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듯하다. 팀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1년밖에 안 된 로고를 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교체하기에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2021년 야구단이 매각되며 진짜 1년밖에 안 쓰게 되었다.

2.3. 역대 마스코트


[image]

창단부터 2005년까지 사용한 '''비룡'''[34]
[image]

BI 교체 이후 2006 시즌의 '''비룡'''
[image]

2007 시즌부터 사용된 '''와우''' & '''팬토'''
[image]

2009년 팬페스트 행사에서 공개된 '''와우''' & '''윙키'''
[image]
[image]

2012 시즌 전 공개한 '''윙고'''
2012년을 앞두고 새 마스코트를 발표했다. 그런데 우주복 마스코트 못지 않은 최악의 마스코트가 등장했다. '''비룡은 어디 가고 웬 개미핥기냐'''라고 하면서 까이고 있다.
[image]
[image]
더 큰 문제는 이게 MLB 필라델피아 필리스 마스코트 필리 패나틱(Philly Phanatic)과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마스코트인 슬라이리를 그대로 가져다 베낀 수준이라는 것. 위의 그림에서 털 색깔만 초록색으로 바꾸고 유니폼만 갈아입히면 딱 나오는 수준. 게다가 저 색상을 바꾼 이미지로 구글 유사 이미지 검색을 돌리면 자동으로 Phillie Phanatic으로 인식해서 검색을 수행해 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원래 이름인 '윙고' 대신 모두들 '''솩우튀김'''으로 부르게 되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필리 패나틱과 슬라이리는 모두 세서미 스트리트의 제작사에서 만든 마스코트이기 때문에 형제이지만 윙고의 경우 연고를 알 수 없다. 외관만 비슷한 거지 완전히 남이다.
결국 좋은 소리 못 듣는 걸 구단쪽에서도 인지한 건지, 어정쩡한 타협안으로 '''여캐인 윙키는 내버려두고 와우만 짜르는 걸로 결정되었으나''' 그냥 셋 다 마스코트로 쓰기로 한 모양.
[image]

2016년 공개한 마스코트 '''아테나'''와 '''와울'''
2016년 새로운 마스코트를 공개했다.그리스 신화의 그 아테나가 맞다. 연고지 및 구단명과 아무 상관 없으면서 동시에 표절 논란까지 있었던 윙고보다는 낫지만, 이쪽도 연고지와 구단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동일하다. 새로운 마스코트의 시구
공개 하루만에 미화짤이 나왔다

3. 팀의 특색


전력에 대한 특성을 먼저 나열하고 기타 특성은 뒷부분에 서술한다.

3.1. 최전성기 - 벌떼야구


삼청태현 시절 때도 그랬지만 대대로 인천 연고팀은 허약한 타력을 준수한 투수력으로 상쇄하던 팀 컬러를 갖고 있었다.[35] 이 때문에 오랫동안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됐던 인천 연고팀의 팀 컬러 별칭은 '''짠물야구'''였다. 현대 유니콘스의 뒤를 이어 인천에 자리잡은 SK 역시 선발과 계투 모두 자원이 풍부한 걸로 유명했다. 다만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창단 직후의 SK는 쌍방울의 처참한 기반을 물려받은 탓에 제대로 된 투수가 거의 없었다. 재정난 탓에 계속 선수를 팔아먹으며 연명하던 쌍방울은 기존 투수진은 물론이고 2차 1픽 신인 마일영까지 현대 유니콘스에 팔아먹었기에 2000년 창단 당시 SK에 제대로 된 투수라고는 이승호, 김원형, 오상민2001년에 영입된 외국인 에르난데스 뿐이었다. 게다가 김원형은 1999시즌 여름 장종훈의 타구에 얼굴을 맞아 1년간 개점휴업 상태였다.(2000년 2승 13패 다패왕) 결국 초대 강병철 감독은 몇몇 투수에게 큰 부하를 걸 수밖에 없었다.[36]
SK 초창기 에이스인 이승호채병용은 팀을 위해 자신의 팔을 바쳤다. 이 2명이 자신을 희생한 덕분에 정대현, 윤길현, 제춘모, 엄정욱, 신승현 등은 별 혹사 없이 갈고 닦을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1년 조웅천인천으로 돌아온다.[37] 후임 조범현 시절에는 강병철이 남기고 간 토대에 정우람윤길현이 1군 레귤러로 완전히 자리잡고 김원형의 부활과 신승현의 각성, 전 소속팀에서 방황하던 위재영의 영입과 초고교급 투수로 불리던 송은범의 입단 등이 이뤄졌다. 그리고 SK의 전성기를 이끌어 갈 에이스 김광현2007년 데뷔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들을 이어받아 우승을 일군 감독이 김성근으로 이른바 벌떼야구라 불린 불펜야구를 KBO의 트렌드로 만들며 1121로 승승장구했다. 이 시기 불펜야구로 인해 SK 투수들은 보직을 옮겨다닌 예가 정말 많았다. 송은범(선발-계투), 전병두(선발-계투), 고효준(선발-계투), 채병용(선발-계투), 정대현(롱릴리프-셋업-마무리) 등등. 한마디로 필승조와 추격조의 구분이 모호했다. 그나마 이 중 정대현은 덜 구른 편.[38]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후 후임 이만수는 김성근 시대에는 중용받지 못했던 윤희상박희수를 중용하고 박정배, 전유수, 최영필 등을 영입해 어느 정도 손실을 메워내어 2007시즌부터 2012시즌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3회 우승, 3회 준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주축 투수들의 부진과 이탈이 맞물려 영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2015년부터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2017년에 이르러서는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투수들은 김광현채병용 정도만 남고 다 이탈했지만[39] 투수 성적은 나쁘지 않다.
다만 과거의 불펜야구는 완전히 탈피했다. 지금의 SK는 선발과 타선은 나쁘지 않으나[40] 불펜이 약한 팀으로, 손혁 코치도 이에 대해 신경쓰고 있다. 2019년부터는 '서태훈 트리오'로 서진용, 김태훈, 하재훈 셋이 불펜 필승조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나 2020년에는 셋 다 나란히 망해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SK 와이번스는 굉장히 투수들을 잘 키우는 팀인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메릴 켈리김광현, 일본 프로야구 명문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거액을 받고 입단한 앙헬 산체스는 SK에서 급성장한 케이스로 꼽히고 박정배, 진해수 등 SK에 오기전엔 그저 그런 투수들이었거나 방출된 선수들이 SK에서 믿을만한 불펜 투수들로 성장했으며 박희수, 윤희상, 박종훈, 서진용, 김태훈처럼 신인 지명 후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마운드의 주축으로 성장한 사례가 있다. 여기에는 과거 김상진 코치나 손혁 코치의 지도력 덕분이라는 해석도 있다.

3.1.1. 저평가된 타선


과거의 인천 야구팀들은 전체적으로 타선이 약했다. 하지만 SK는 타선이 약한 팀은 결코 아니었다. 타자 코칭과 유망주 보는 눈은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던 강병철 시기에는 최정 이전 SK 구단 사상 최고의 장타자였던 이호준성영재와 트레이드해 영입하고 이진영, 채종범을 성장시켰으며 삼성과의 트레이드로 정근우 이전 SK 2루를 책임진 정경배가 영입되고 조동화, 이대수를 테스트해 신고선수로 받아들이고 투수로 지명한 김강민을 외야수로 전향시켰다. 이진영, 김강민, 조동화는 SK의 전성기를 설명할 때 빼놓아선 안되는 선수들이다.
후임 조범현 시기에는 FA로 박경완김재현이, 트레이드로 박재홍이 영입되고 이재원이 지명받았으며 정근우, 최정, 김강민, 조동화, 박재상 등 전성기의 주축이 될 야수들이 1군에서 경험을 쌓으며 향후 치고 나갈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걸 이은 김성근 시절에는 거포가 즐비한 타선은 아니지만 일발장타를 갖춘 타자들과(박정권, 이호준, 김재현, 박경완 등) 빠른 발을 가진 중거리 타자들이(정근우, 김강민, 조동화, 박재상 등) 두루 포진해 '''지뢰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2009년에는 타율-홈런-타점 모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벌떼야구'''로 불리는 투수진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바람에 공격력은 다소 묻히는 편.

3.2. 두번째 전성기 - 홈런공장


타자 친화적인 홈구장과 장타 포텐셜을 갖춘 야수들, 구장에 맞게 장타에 포인트를 둔 코칭을 바탕으로 KBO 최고의 홈런공장이 되었다. 2016년 탈쥐 듀오와 각성한 86억 거포[41]의 활약에 힘입어 '''21경기 연속 홈런'''[42]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2017시즌에는 정의윤최승준이 부진한 대신 한동민, 김동엽, 제이미 로맥이 홈런 레이스에 가담해 무시무시한 홈런페이스를 뽐내고 있다.[43] 더 무서운 것은 중심타자만 홈런을 잘 치는 것이 아니라 리드오프와 하위타선에도 펀치력을 갖춘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2017시즌 트레이드로 합류한 포수 이홍구와 힐만 감독 재임 이후 중용받고 있는 외야수 정진기, 베테랑 내야수 나주환 등 이다.
그러나 이 공포의 뻥야구에도 문제점이 있는데 '''홈런 많이 친다고 반드시 점수 많이 나고 전체 타선이 강한 게 아니기 때문.''' 예를 들어 팀 홈런 2위, 팀 OPS 3위를 차지한 2016시즌 SK타선의 타점과 득점은 9위였다. 클린업의 최정과 정의윤이 67홈런을 합작했음에도 그랬다. 그해 테이블세터로 나선 이명기, 조동화, 고메즈의 출루율이 전부 3할 중반을 못 넘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장타가 더욱 효과를 보려면 앞에 주자가 쌓여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2017시즌에도 팀 출루율은 최하위권이다. 김성근 시기에는 신인 야수들이 전혀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만수 시기에 이명기, 김성현 등에게 기회를 주며 육성해 김용희 시기 희망을 보나 싶었으나 꾸준한 모습을 보여 주진 못했다. 그래도 2017년 KIA 타이거즈에서 준족의 노수광을 데려왔고, 2군에서도 최항 등의 젊고 빠른 선수들을 발굴하는 것에 성공하면서 테이블 세터의 부재도 조금씩 해결되고 있었고 2018년에는 노수광한동민이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정근우의 이탈 이후로 최고의 테이블세터진이 완성됐다!
[image]
야덕일지에서의 패러디 원본

3.3. 사건사고의 강도가 낮았던 구단


KBO 리그의 다른 팀들이 크고 작은 범죄 혐의로 사회적인 논란이 된 바 있지만 유독 SK만큼은 선수단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만한 범죄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고 이재원, 박종훈 등 다수 선수들이 팬 서비스에 대체로 후한 편이며[44] 지역 사회 안에서 미담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깨끗한 구단 이미지가 돋보였다. 물론 사건사고가 아예 없는 구단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김성근 감독의 재임 시절 경기 내적으로 더티한 플레이가 문제가 되었지, 경기 외적으로 일으킨 사건사고는 그 수준이 다른 구단보다 경미했다. 자세한 사건사고의 역사는 해당 문서 참조.
특히 9개 구단이 관련된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 당시에도 SK만큼은 전 구단중 유일하게 이 파문에 연루되지 않았고 그동안 승부조작이나 음주운전, 도박 등의 범죄를 저지른 선수가 없어 "클린구단", "클린슼" 등의 이미지가 심어졌다.
선수단의 사건사고가 유독 적은 것에는 이런저런 영향이 있겠지만 SK 선수들이 유독 유흥 문화보다는 PC 게임 문화에 깊이 빠진 덕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김광현이나 최정[45] 등 팀의 리빙 레전드는 익히 알려진 게임 마니아이며 이들의 영향을 받은 덕분인지 다른 선수들, 특히 미혼의 어린 선수들이 게임을 즐긴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송도신도시, 관교동, 문학동, 구월동 인근의 PC방에서 SK 선수들을 자주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2019년 초 미국으로 돌아간 메릴 켈리와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애리조나에도 PC방 있냐?"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그러나 2019년 강승호가 SK 구단 20년 역사상 최초로 음주운전을 적발당하며 클린구단 이미지가 크게 무너졌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팬들도 클린구단 언급은 꺼리는 편. 게다가 2020년 7월 2군 관련 사건도 터지면서 안그래도 무너진 이미지에 확인사살을 가했다. 임의탈퇴로 방출 수순을 밟을것으로 예상된 강승호도 복귀를 시키기까지 하며 이미지는 더더욱 나락으로...
그러다 강승호는 SK로 FA 이적한 최주환의 보상 선수로 12월 20일, 두산 베어스로 유니폼을 갈아 입었다.

3.4. 날씨에 따라 요동치는 순위표


대프리카에 사는 푸른 사자네가 여름만 되면 펄펄 날아다니는 것과 달리 이 팀은 희한하게도 '''매년 여름만 되면 성적이 안 좋아진다.'''[46]선두권이나 상위권을 달리던 팀이 갑자기 3연패 이상의 장기 연패를 당하고 중위권으로 떨어지는 일이 많았고 원래 성적이 안 좋았으면 더 떨어졌다. 이것은 전성기 때는 물론 초창기 청색 유니폼 시절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47] 특히 전성기 때는 4~5월에 왕창 승수를 벌어놓고 7월에 이를 까먹은 뒤 8월 이후[48] '''날씨가 서서히 선선해지면''' 귀신같이 팀이 제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즉, 선선한 봄~초여름에는 상위권 팀, 무더운 한여름~초가을에는 중하위권 팀, 다시 선선해지는 가을에는 다시 상위권 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49]
실제로 2011년에는 7월 초순에만 7연패를 당한 적이 있고[50] 그 다음 해인 2012년에는 2006년 이후 8연패라는 거대한 기록을 세우며 6위로 급락한 역사가 있다. 승패패승패패 루틴이 극에 달했던 2013년에도 7월을 말아먹으며 가을야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고 2014년에는 그보다 더한 추락을 경험하며 2005년 이후 9년 만에 8위로 떨어지는 대참사를 경험했다. 2015년 7월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데 3연속 역전 스윕패를 먹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나타내며 월간 승률 5할을 밑돌았다. 2016년도 홈런만 그저 뻥뻥 쳐댔을 뿐 선발진이 줄줄이 무너지며 월간 승률 4할을 겨우 채웠다. 그리고 2017년에는 후반기를 시작하자마자 7연패를 거하게 먹어버리며 6위로 추락했다.
이 팀이 여름마다 퍼지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선수들의 부상이 여름에 유독 몰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선수들의 실력이나 체력 문제보다는 운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경기 도중 예상치 못한 부상을 입기 때문. 2009년에 박경완이 6월 말 부상을 입고 시즌아웃된 것을 필두로 매년 여름만 되면 윤희상[51], 김광현, 최승준, 이재원, 한동민 등 많은 선수들이 돌아가며 부상을 당해 팀 전력 저하 현상이 나타난 것이 '여름 위기설'의 이유라면 이유다.
둘째로는 투수진의 과부하 내지는 집단 부진을 꼽을 수 있다. 다만 전성기 때는 김성근 감독이 워낙 투수들을 막 굴리다보니 선발, 중간, 마무리 할 것 없이 체력 부족을 호소하며 털리는 경우가 잦았다고 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이상하게 투수진의 집단 부진이 뚜렷해졌다. 선발이 잘 던지고 타선마저도 잘 터진 경기에서 불펜이 말아먹는 일이 잦아졌는데 2017년 7월이 유독 그렇다. 다만 이 가설은 시즌이 더 지난 이후인 가을에 투수들이 살아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게다가 2019년 8월에는 그 반대로 선발은 잘 던지나 타격의 부진으로 경기를 지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두 달이 넘는 제법 긴 시간 동안 왕창 승수를 깎아먹음에도 SK가 상위권~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봄과 가을의 대단한 활약이 있기 때문이다. 시즌이 시작하고 초여름 때쯤까진 1위를 달성하진 못해도 3~4위과 제법 게임차가 나는 2위를 유지하고,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만 되면 망한줄로만 알았던 시즌도 귀신같이 5할 본능을 느끼고 쭉쭉 치고 올라간다. 특히 SK가 가을에 치고 올라가는 것은 전부터 유명한데, 상세 내용은 가을슼 문서 참고.
2013~2017년에는 초반에 치고 올라가며 1등을 견제할 유일한 팀으로 2~3위 최상위권에 속해있다가, 여름이 시작되며 기세도 꺾이고 멀게만 느껴졌던 4~5위에 안착하더니, 여름이 끝날때쯤 되니 밑바닥도 얼마 남지 않은 7~8위까지 떨어졌다가, 가을이 되니 야금야금 승수를 쌓아올리며 5~6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시즌이 매년 반복되며 솩갤에서 이를 두고 2475라는 말을 만들었다. 2013~2017년 SK의 한 시즌을 네 글자로 정확히 압축한 단어이다. 그러나 정작 이 단어가 만들어진 것은 2018년 중후반기인데, 단어가 만들어진 이후로는 단어대로 시즌이 진행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32221, 11123, 9999...

3.5. 일 잘하는 프런트


일차적으로는 SK구단을 위한, 전체적으로는 한국야구의 활로가 될 수 있을 '스포테인먼트' 사업을 제창하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문학구장 문서에서 알 수 있듯 홈구장의 리모델링은 연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SK팬들이 매년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올해는 또 어디를 고칠까?"'''[52] 더불어 스쿨데이, 반려견 출입을 허용하는 도그데이, 불금데이, 토요일 불꽃놀이 등 다양하고 이색적인 행사를 많이 개최해오고 있다. 다른 구단들이 주말 빅 매치 위주로 홈경기 이벤트를 편성하는 데에 반해, SK와이번스는 평일경기를 포함한 모든 경기에 팬들이 (원정팬에도 이벤트 참여가 매우 오픈되어있음) 직접 그라운드에 내려와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이벤트가 넘쳐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처음 방문한 타팀 팬들은 경기 승패와 상관없이 우선 빅보드의 크기에 놀라고, 경기전부터 끝까지 쉴새없이 진행되는 이벤트와 컨텐츠에 또 한번 놀라면서 돌아가곤 한다.
2010년을 전후하여 프랜차이즈 선수들을 많이 놓쳐서 짠돌이 구단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상술한 스포테인먼트 사업의 스케일이나 2014년도에 FA선수 5명을 모두 잡은 점을 고려하면 재정은 확실히 부유하다. 사실 떠난 선수들에게도 넉넉하게 금액을 제시하긴 했다. 더 많은 금액을 써제낀 구단이 있었을 뿐. (근데 선수들이 이적한곳만 보면... 한화,LG,NC,롯데 밖에 없다) 그리고 2018년 시즌 종료 후에도 최정, 이재원과 재계약을 이뤄냈다.[53]
이렇게 넉넉한 재정을 보유할 수 있는 이유는 모기업이 탄탄하기 때문. SK그룹이 SK 텔레콤이나 하이닉스, SK 이노베이션등 순익이 탄탄한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다.[54] 또한 홈구장인 인천SK행복드림구장 일대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구단에서는 문학구장의 세계구급 시설을 바탕으로 한 이벤트를 통해 구단 자립을 실현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정우람을 96억(84억+한화로부터 12억 보상금)에 팔고 그 정도의 돈을 들여서 미친 크기의 전광판을 지었고, 아시아 프로야구장 중 가장 넓은 크기의 전광판을 보유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냐면 주변 아파트에서도 전광판 그림이 보일 정도. 그리고 이벤트로 여기서 영화를 상영했는데 대박이었다.
2017년 4월 6일 공시된 SK 와이번스에 대한 감사 보고서에는 구단의 총자산이 133억 원으로 나오며 이는 1조 원 가량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인터넷 소문과 배치되며, 구단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유동성 만기 보유증권을 포함해서 2016년도 기준으로 8억 원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확인되었다.
차입을 하지 않는다는 말 역시 맞지 않으며 재무상태표상에는 2016년도 단기차입금 77억, 2015년도 단기차입금 10억 원이 존재하며 유동성장기차입금과 장기차입금에 대해서는 아래의 주석 8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모회사인 SK텔레콤으로부터 차입한 것이 확인되었으며, 구단의 총부채 규모는 177억으로 현재 구단의 자본현황은 자본잠식 상황으로 확인되었다.
손익계산서상 매출 역시 와이번스 구단의 2016년도 매출액은 429억이나 이중 상당액은 광고수입으로 262억을 기록했으나 계열사의 광고수입에 204억 원이라는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는 것으로 확인되며 그 중 172억은 모회사인 SK텔레콤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빅보드 역시 사업비 70억 중 절반인 35억은 인천시에서 부담했다.#
즉 다른 대기업 야구단과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일을 잘하는 프런트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평가는 다르다. FA를 몇 년째 사오지 않으면서 키움처럼 돈 없는 것도 아닌 구단이 왜 돈을 아끼냐는 의문이 늘어나는 중. 또 이와는 별개로 마케팅팀 중 디자인과 상품 파트가 악명이 높다. 항상 상품이 나올 때 마다 가장 먼저 까이는 게 디자인팀이니 말 다했다.

3.6. 한나쌩, 기상바


'''년도'''
[image]
'''SK 와이번스'''
[image]
'''한화 이글스'''
'''상대우위'''
2000년
9승 9패 1무
9승 9패 1무
동률
2001년
10승 9패 1무
9승 10패 1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2년
8승 10패 1무
10승 8패 1무
한화 이글스 우위
2003년
9승 9패 1무
9승 9패 1무
동률
2004년
9승 10패 0무
10승 9패 0무
한화 이글스 우위
2005년
11승 8패 0무
8승 11패 0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6년
10승 8패 1무
8승 10패 1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7년
11승 5패 2무
5승 11패 2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8년
10승 8패 0무
8승 10패 0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9년
15승 4패 0무
4승 15패 0무
SK 와이번스 우위
2010년
11승 7패 1무
7승 11패 1무
SK 와이번스 우위
2011년
12승 7패 0무
7승 12패 0무
SK 와이번스 우위
2012년
14승 5패 0무
5승 14패 0무
SK 와이번스 우위
2013년
11승 4패 1무
4승 11패 1무
SK 와이번스 우위
2014년
9승 6패 1무
6승 9패 1무
SK 와이번스 우위
2015년
9승 7패
7승 9패
SK 와이번스 우위
2016년
5승 11패
11승 5패
한화 이글스 우위
2017년
11승 5패
5승 11패
SK 와이번스 우위
2018년
11승 5패
5승 11패
SK 와이번스 우위
2019년
12승 4패
4승 12패
SK 와이번스 우위
2020년
11승 4패 1무
4승 11패 1무
SK 와이번스 우위
<rowcolor=#373a3c> '''총 전적'''
'''218승 144패 9무'''
'''144승 218패 9무'''
'''SK 와이번스 우위'''
[image]
한화 이글스 상대로 매우 강하다. 2020년 종료 기준 통산 218승 144패로 '''통산 승률 6할'''(.602)을 기록하고 있다. 창단년도에도 한화 제외 전구단 상대 열세를 기록하고도 유일하게 동률을 기록했던 팀이 한화였다. 2000~2004년까지는 한화 상대 45승 47패 3무 .489로 한화가 약간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05년부터 승리를 따내기 시작하더니 2005년~2015년 '''11년 연속으로 상대전적 우세를 따냈다.''' 2016년 끄동님의 저주와 영감님의 잘린 직장 한풀이로 인해 5승 11패로 13년만에 상대전적 열세를 내줬으나[55] 17년부턴 다시 승리를 따내는 중. 2005년~2020년 16년 동안 상대전적 열세를 내준 것은 단 한 번밖에 없고, 그 외에는 매년 상대전적 우세를 기록하고 있다. 무려 동률도 없이!
SK 창단 이후부터 한화가 부진했던 것이 이런 상대전적의 원인중 하나이다. 이글스의 전성기는 비록 우승은 하지 못해서 콩그레 이미지였지만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던 1990년대인 반면 2000년대, 특히 2000년대 중후반부턴 매우 부진했기 때문. 이를 증명하듯 팀 순위 자체가 2007년 이후로는 매년 SK 와이번스는 한화 이글스 위에 있었다.
신기하리만치 한화 상대 강세를 보이는 것은 SK가 나락으로 추락한 2020년에도 그대로여서, 전 구단 상대 매우 열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화 상대로는 11승 1무 4패라는 평년 SK의 대 한화전 성적을 내고 있다. 한화가 2020시즌 많이 부진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신기할 정도. 만약 서로의 상대전적을 제외한다면 한화는 SK보다 승률이 높다...[56]
선수들 중에서도 한화 상대로 특히 강세를 보이는 선수가 있는데 바로 박종훈. 2016년까진 오히려 한화전 상대 매우 부진하였으나 2017년부턴 SK 강세의 중심으로 활동중이다. 2020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박종훈은 한화 상대 15연승을 진행중인데, 이는 '''단일 팀 상대 연승 2위기록'''에 해당한다.[57]
'''년도'''
[image]
'''SK 와이번스'''
[image]
'''KIA 타이거즈'''
'''상대우위'''
2000년
8승 11패 0무
11승 8패 0무
해태 타이거즈 우위
2001년
7승 12패 0무
12승 7패 0무
KIA 타이거즈 우위
2002년
7승 12패 0무
12승 7패 0무
KIA 타이거즈 우위
2003년
10승 9패 0무
9승 10패 0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4년
10승 9패 0무
9승 10패 0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5년
10승 8패 1무
8승 10패 1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6년
7승 11패 1무
11승 7패 1무
KIA 타이거즈 우위
2007년
10승 7패 1무
7승 10패 1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8년
14승 4패 0무
4승 14패 0무
SK 와이번스 우위
2009년
7승 10패 2무
10승 7패 2무
KIA 타이거즈 우위
2010년
14승 5패 0무
5승 14패 0무
SK 와이번스 우위
2011년
8승 11패 0무
11승 8패 0무
KIA 타이거즈 우위
2012년
11승 7패 1무
7승 11패 1무
SK 와이번스 우위
2013년
7승 8패 1무
8승 7패 1무
KIA 타이거즈 우위
2014년
8승 8패
8승 8패
동률
2015년
6승 10패
10승 6패
KIA 타이거즈 우위
2016년
8승 8패
8승 8패
동률
2017년
7승 9패
9승 7패
KIA 타이거즈 우위
2018년
5승 11패
11승 5패
KIA 타이거즈 우위
2019년
7승 8패 1무
8승 7패 1무
KIA 타이거즈 우위
2020년
7승 9패
9승 7패
KIA 타이거즈 우위
<rowcolor=#373a3c> '''총 전적'''
'''178승 189패 6무'''
'''189승 178패 6무'''
'''KIA 타이거즈 우위'''
반면 SK는 이상하리만치 KIA만 만나면 피터지게 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 절정을 찍은 것이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과 2017년의 7월 5일 경기로, 이 날 두 팀은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남겼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자는 나지완채병용으로부터 '''9회말 끝내기 홈런을 쳐내 그 경기는 물론 2009 시즌 전체를 끝내버렸고''', 후자는 무려 '''11점 차를 뒤집고 17점을 내고도 KIA 타이거즈가 패배'''한 경기이다. 현재 SK는 2012년 이후부터 KIA 상대로 한 번도 상대전적 우위를 점한 적이 없다. 총 상대전적에서도 약간 밀리는 모습인데, 특히 우승 시즌인 2018년마저 KIA에게는 5승 11패로 크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2019년에는 양 팀간 전력차가 심하게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1위를 질주하던 SK가 7~8위에서 허우적거리던 KIA에게 상대 전적이 밀렸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기상바 이미지와는 달리, 통산 타이거즈 상대 전적은 평범한 편이다. VS 타이거즈 승률 .481, VS KIA 승률 .490으로 .520인 통산 승률과 유의미하게 차이가 나진 않는다. 오히려 상대승률 .463을 기록중인 두산 베어스와 상대승률 .431을 기록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현대 유니콘스에게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위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전성기 때, 엘롯기 슬레이어 시절에 KIA상대 승률을 미친듯이 벌어놓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3.7. 팬덤 성향


주요 팬 베이스는 연고지인 인천광역시[58] 인천 주변의 부천시[59], 시흥시[60], 안산시[61], 김포시[62] 일대이며, 서울에도 경인선 라인의 구로구, 영등포구, 금천구를 중심으로 작게나마 팬층이 존재했지만 이후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히어로즈 팬덤으로 다소 많이 넘어간 듯 보인다. 광명시 야구팬들도 이와 같은 이유로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울특별시송파구와 인근의 성남시에도 LG 트윈스두산 베어스가 있지만 형제 농구단모기업의 힘으로 SK스포츠단의 팬이 있는 편이다.
모기업인 SK그룹과 프리미엄 스폰서인 SK텔레콤의 힘 덕분에 연고지가 아닌 지역에도 팬들이 꽤 있다. 특히 전통의 서울 연고팀 LG 트윈스두산 베어스가 점령한 서울특별시송파구와 인근의 성남시 등 서울 동부권에도 SK를 응원하는 팬들이 숨어있다. 서울 동부권의 경우 KBL의 스포테인먼트로 신 흥행구단으로 등극한 형제 농구단 서울 SK 나이츠의 팬들이 모기업을 따라 SK 와이번스의 팬이 되는 경우가 있는 편이다. 실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서울 잠실야구장의 응원석 한쪽은 SK그룹 고유색인 붉은색으로 채워진다.[63]경기도 이천시SK하이닉스 공장의 영향으로 SK를 응원하는 팬들이 상당수다.
또한 인천광역시 관내 인하대학교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도 팬이 많이 있는 편이다. 2013년에는 문학구장에서 '연세대학교의 날' 등 대학과 제휴해 특별행사를 많이 개최하기도. #
그리고 흥미롭게도 인천과는 한참 먼 전주시군산시전북 지역에도 은근히 팬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 이는 2000년 와이번스 창단 당시 주축 선수들을 막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들로 구성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살펴보면 최태원, 조원우, 김기태, 김원형, 박경완, 조규제, 이진영 등 과거 쌍방울을 빛냈던 선수들이 SK의 초창기 시절에도 꾸준히 활약했으며 이승호, 정대현(이상 군산상고), 박정권, 신승현, 최경철(이상 전주고) 등 쌍방울 레이더스가 지명한 전북지역 고교선수 출신이나 선수들 또한 은근히 많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시대가 흐르면서 쌍방울 레이더스가 지명했거나 신고선수로 영입했던 선수는 2019년 은퇴한 박정권을 마지막으로 모두 사라졌다. 2000년 드래프트 지명자 중에서 1차 지명자였던 이승호는 팀의 암흑기 시절 에이스로 활약하다 4년간 부산·경남팀을 돌았고 2016년 SK로 돌아왔지만 과거의 영광을 다시는 보여주지 못하고 은퇴했다. 2라운드 픽이었던 엄정욱은 2000년대 초중반 광속구를 뿌리며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2015년 시즌 후 조용히 은퇴해 유소년 야구 지도자가 되었고 11라운드 픽이었던 김명완도 한때는 SK의 에이스로 활약하다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고 2017년 시즌 후 조용히 은퇴했다. 지명선수 외에는 신고선수로 들어와 꾸준히 SK에서 뛰었던 조동화와 SK에서 시작과 끝을 같이 한 이대수가 있었는데 둘 다 2018년 시즌 후 은퇴했다. 그리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유니폼을 실제로 입고 뛰었던 마지막 현역 선수 1999년 1차 지명자 이진영도 201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군산을 비롯한 전라북도 일대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서 전북지역 팬의 열기도 사실상 희미해졌다고 볼 수 있다.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된 지도 20년이 넘었고 쌍방울에서 뛰었던 현역 선수도 이진영의 은퇴를 끝으로 모두 사라졌다. 더구나 시간이 흐르면서 끝까지 쌍방울을 응원하던 팬들도 현재는 대부분 같은 호남 연고팀인 KIA 타이거즈나 지리적으로 가까운[64] 한화 이글스 팬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쌍방울의 향수 때문에 현재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팬들의 숫자는 많이 줄었다.
심지어는 롯데 자이언츠의 간판으로 알려진 팀의 초대 강병철 감독과 외부 첫 FA 영입의 김민재 선수의 출신인[65] 부산광역시에도 소수의 팬이 있는 편이다.
그래도, 전국에서 SK그룹을 조금 알고 있는 팬들은 가끔씩 어웨이에서도 응원을 해주는 편이다.

3.7.1. 비인기 구단


창단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SK 와이번스에 꾸준히 따라붙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있다면 바로 "비인기 구단"이라는 멸칭이다. 인기 구단을 조사하는 설문조사에서도 여전히 하위권에 랭크돼 있으며 댓글이나 경기 영상 조회수 등에서도 다른 구단에 밀리곤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눈에 보이는 SK의 인기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기 구단 KIA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 서울의 LG 트윈스두산 베어스, 긴 역사를 자랑하는 삼성 라이온즈와 충청도를 기반으로 탄탄한 팬덤을 자랑하는 인기가 올라간 한화 이글스 등과 비교할 때 떨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SK에 대한 인기도가 다른 구단보다 부족해보이는 것은 기존 구단들에 비해 비해 역사가 짧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SK는 기존 원년 구단이 운영 19년차를 맞던 2000년에 창단됐다. 팬들의 충성도는 원년부터 이어져 온 인기구단의 아성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또 기존 야구팀이 없던 곳이 아니라 원년부터 뛰던 인천팀 현대가 막 떠난 자리에 연고지를 정했기 때문에 인천시팬들은 여전히 현대를 응원하거나 야구를 그냥 안보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66] 게다가 쌍방울을 인수했다면 연고지는 달라졌지만 기존 쌍방울 팬들이라도 일부는 응원해줄 수 있는데 선을 확실히 긋고 신생팀으로 창단했으니 다른 지역에서도 응원해줄 이유가 없었다. 그것을 떠나서도 애초에 1982~1999년까지 삼청태현의 관중이 많지 않았다. 인천은 수도권 대도시 중에서도 서울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주민들의 원래 출신지역도 다양해 관중동원이 용이한 환경이지만 야구장 시설이 워낙 작고 열악해서 관중동원은 잘해도 중위권, 쳐지면 하위권이었다.[67]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주 인기가 없는 팀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한 사실이다. 정확히 정의를 한다면 '''팬덤 성향이 인기 구단처럼 강하지는 않으나'''[68] '''연고지 인천광역시에서는 단연 사랑 받는 구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2000년 창단 초창기에는 연고지 기반이 약해 연고지인 인천시민들로부터도 외면 받았지만 현재는 인천SK행복드림구장 관중석의 절반 이상 정도는 스스로 너끈히 채울 수 있는 팀으로 성장했다. 물론 만원사례를 기록하려면 아직까지는 티켓파워가 있는 한화 이글스KIA 타이거즈[69], 혹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LG 트윈스두산 베어스[70] 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SK 팬들의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일부에서는 "수도권 원정 구장 관중석도 제대로 못 채우는 팀이 어떻게 인기 구단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원정구장에서도 홈구장 만큼이나 열렬한 티켓파워를 뽐내는 팀보다 그러지 못한 팀이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71]
홈 관중 수의 변화는 꾸준한 성장의 증거가 여럿 나타난다.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점으로 SK에 대한 인천지역 야구팬들의 호감이 늘기 시작했고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에 따른 야구붐의 영향으로 관중 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특히 팀 역사상 가장 압도적 시즌으로 기록된 2010년 전반기에는 팀 창단 최다 기록인 9회 매진을 기록을 달성하고 한때 관중 동원 수 1위를 달리기도 했다. 이 시기 원년구단인 두산 베어스도 구단 역사상 최다인 9회 매진을 똑같이 기록했는데, KBO 원년멤버이자 창단 29년차 구단과 후발 주자이자 10년차 구단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임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인천 팬들은 현대를 완전히 잊고 SK를 받아들인 듯 하다. 이 선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산만큼은 아니여도 여성 팬이 매우 많다. 2011년 시즌 이후 관중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었지만 2012년 시즌에는 9월 15일 KIA전에서 마침내 한 시즌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72] 100만 관중 돌파 기념 불꽃놀이 영상.
2018년에는 전년대비 22%의 평균관중 증가율을 기록하며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에 이은 3위의 평균관중을 찍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졌다. 매경기 호쾌한 장타가 뻥뻥 터지는 팀 컬러,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준수한 성적,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관중 친화적인 홈구장, 스포테인먼트[73]를 내세우며 일 잘하는 프런트가 좋은 시너지를 나타내면서 팬을 끌어들였는데 특히 여성과 가족 단위 관중이 전체 관중 증가율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눈에 띄는 신장세를 보였다. 여담으로 응원가와 구호가 따라부르기 쉽고 재밌어서 귀에 쏙쏙 박힌다는 의견이 많다. 이로 인한 라이트팬의 유입도 쏠쏠한 듯 하다.
2019년에는 리그의 전반적인 관중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작년 업셋 우승과 시즌 초중반 1위를 고수하며 평균 관중수 13,652명을 기록, 관중수 부문 리그 3위를 유지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관중 동원에서 큰 성과를 거둔 SK 프런트이고 꾸준히 상위권 성적과 팀 컬러를 유지한다면 홈구장도 자력으로도 매진시킬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의외로 비호감 이미지가 있는 편이다. 윤길현의 최경환 빈볼 사건과 욕설 파문, 채병용의 조성환 광대뼈 함몰 빈볼 시비와 김성근의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전병두 혹사, 김광현 147구 벌투, 그리고 언론플레이 때문에 어느 정도 공공의 적, 비호감 이미지가 있는 편이'''었'''다. 허나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8년만의 우승을 14.5게임차를 뒤집고 만들어내 어느 정도 사라진 이미지.
여담으로 한국 프로야구 1억번째 관중이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나왔다. 관련기사 SK 팬인 친구를 따라온 원래 야구 팬도 아니었던 소년이라 SK로선 1억번째 관중과 함께 새로운 팬을 얻게 된 셈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1억번째 관중사건 문서 참조.

3.7.2. 온라인상에서의 취급


나무위키나 네이버 댓글 등에서의 SK 팬들을 보면 선수에 대한 비판 및 비난이 다른 팀에 비해서는 잘 안 달리는 편이다. 즉 오랫동안 두고 보다가 오랫동안 꾸준히 못하는 선수가 되어서야 비판 및 비난이 올라오는 편이지, 몇 경기~몇 주 정도 못 하는 것 가지고는 아직까지 두고 보자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대니 워스만 해도 거의 한 달 동안 못 나오는 와중에도 큰 비난이 달리지 않았다. 물론 5월이 되도록 못 나오자 그제서야 Worse하다느니 등등의 비판이 달리긴 했지만... 서진용의 경우도 나쁜 말이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달릴 때마다 칼같이 지워지다가, 블론세이브가 적게 나오는 해의 블론세이브 1위를 찍는 선수의 기록을 시즌 개막 1달만에 찍어 버리자 그제서야 조금씩 비판이 등장하였다.[74] 참고로 서진용이 마무리를 겨우 1달 반 했는데 블론세이브 4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선수에 대한 나쁜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물론 모든 팬이 이러지는 않기에 이런 믿음의 야구에 반발하여 '''못하고 불성실하며 불친절한 선수도 모두 빨아줘야 하냐'''는 팬과 '''직접 뛰는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선수를 까냐, 이래놓고 잘하면 빨아댈거면서 냄비근성 그만 보여라''' 하면서 팬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있다.
다른 팀 소속이었던 션 오설리반, 다린 러프, 이대호, 임창용, 대니돈, 박광열 등의 선수들이 시즌 극초반에 부진했던 것 때문에 나무위키에 온갖 비판과 비난이 달렸던 것과 비교하면...[75][76]
SK 와이번스 갤러리는 예외로 다른 팀의 팬덤과 반응이 비슷하다.

3.8. 선수 영입 스타일


신인드래프트에서 SK의 가장 큰 특징은 진상봉 스카우트그룹장의 픽을 봐도 어느 정도 검증된 해외파 선수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점이 있다.[77] 2014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정영일이 입단 후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해외파 선수가 참가하는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중하위 라운드에서 해외파 선수를 지명하고 있으며, 2018년 드래프트로 하재훈, 트레이드로 남태혁을 영입하기도 했다.[78] 물론 해외파라고 해도 모두 KBO에 와서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KBO와 MLB는 수준차가 있는 리그이므로 해외에 나갈 정도면 기본적으로 야구를 잘 했던 선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아예 해외파 선수를 단 한 명도 지명하지 않았다.
또한 인재영입 기조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세이버메트릭스와 데이터분석을 통한 선수영입 및 팀 운영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구단 행사에서도 수학지식과 통계 등을 강조하면서 세이버메트릭스의 중요성을 야구팬들에게 설파하기도 한다.
구단에서는 외부 FA시장에 대하여 매우인색하다.
내부육성을 강조하는 편인데 2군선수들 중 성적이 비교적 뛰어나다 생각드는 선수도 한 두시즌 1,2군에서 경기를 치르게 한 뒤 군 복무를 이행시키는 팀이다.

3.8.1. FA에서의 스타일


2000년대 초중반엔 영입이 활발했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턴 외부 영입보단 재계약 위주로 가고 있다. 2021년 FA를 기준으로, SK가 외부에서 선수를 영입한 횟수는 6번이다.
'''연대'''
'''이름'''
'''영입 연도'''
'''원소속팀'''
'''계약'''
2000년대
김민재
2002년
롯데 자이언츠
4년 10억
박경완
2003년
현대 유니콘스
3년 19억
김재현
2005년
LG 트윈스
4년 20억7천만
2010년대
조인성
2012년
LG 트윈스
3년 19억
임경완
2012년
롯데 자이언츠
3년 11억
2020년대
최주환
2021년
두산 베어스
4년 42억
'''SK가 19년동안 외부 영입으로 지출한 금액은 총 79억 7천만원. 2013년부터 1군에서 뛴 팀이 2014년 FA에서 두 명을 영입하며 사용한 금액인 80억원보다도 덜 썼다는 이야기이다. SK처럼 소극적인 두산 베어스장원준 1명을 영입하며 든 금액보다도 적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알았겠지만, 2000년대에 영입한 세 명은 모두 SK의 레전드로 군림하였다.[79] 그 후 2005년 이후 2012년까진 영입이 없다가 2012년 드디어 두 명에게 30억원을 쓰며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그 둘은 전년도에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80] 둘 다 나이가 37살로 매우 많았다. 게다가 둘 다 본인은 재계약을 맺고 싶었지만 팀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은 잉여 신세였다. 그마저도 임경완정대현과 트레이드에 가까웠다.
이후 다시 한 번 오랫동안 지갑을 닫다가 무려 8년 만인 2020년 최주환에게 팀 역사상 외부 FA 역대 최고액인 42억을 썼다.
여기서 볼 수 있듯, SK의 외부 출신 선수 영입은 매우 소극적이다.
그렇다면 내부 선수 재계약은 어떨까.
'''연대'''
'''이름'''
'''FA 연도'''
'''계약'''
2000년대
김원형
2002, 2007년
4년 14억[81], 2년 7억5천만[82]
조웅천
2004, 2008년
3년 8억, 2년 8억
조원우
2005년
2년 4.5억
위재영
2006년
3년 8억[83]
박재홍
2006년
2+2년, 총 30억[84]
정경배
2006년
3년 16억[85]
박경완
2007년
2년 10억[86]
이호준
2008년
4년 34억[87]
김재현
2009년
1년 7억
2010년대
박재홍
2010년
1년 8억
이승호
2012년
2년 2억
최정
2015, 2019년
4년 86억[88], 6년 100억[89]
김강민
2015년
4년 56억[90]
조동화
2015년
4년 22억[91]
나주환
2015년
1+1년 5억5천만
이재영
2015년
1+1년 4억5천만
박재상
2016년
1+1년 5억5천만
박정권
2016년
4년 30억
채병용
2016년
2+1년 10억5천만
김광현
2017년
4년 85억[92]
정의윤
2018년
4년 17억[93]
이재원
2019년
4년 69억
2020년대
김강민
2020년
1+1년 10억
김성현
2021년
2+1년 11억
SK가 19년동안 내부 재계약으로 지출한 금액은 2019시즌까지 옵션 미포함 '''총 539억원. 외부 FA 영입으로 지출한 금액의 7배가 넘는다.'''[94] 외부 영입보단 내부 재계약을 선호하는 SK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90억 이상을 지출한 적은 2019년 최정이 유일하다.[95] [96] SK 프런트의 능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018년엔 40억 이상이라면 안 잡는 게 맞다는 팬들의 의견이 있던 정의윤을 무려 29억이고 심지어 옵션을 제외한 보장금액은 겨우 '''17억'''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잡으며 준척급 FA 선수들의 기준을 마련했다. 해당 시즌 FA에 대형 [97]가 세명이나 있어서 정의윤이 큰 관심을 못 받을 것 같자 SK가 그냥 싸게 후려쳤고, 정의윤이 어쩔 수 없이 계약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옵션을 4년 연봉 총합과 같게 해 놓으면서 앞으론 옵션을 많이 걸어서 먹튀들이 생기지 않고 안정성 있게 계약하려는 좋은 모습도 보여준다.

2020년 12월 10일(목), 최주환(32) 선수와 4년, 총액 42억원(계약금 12억원, 연봉 26억원, 옵션 4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2011년말 임경완. 조인성과의 FA 계약 이후 9년 만의 외부 FA영입이자 구단의 외부 FA 계약 중 최고 금액(종전 2004년 김재현 4년 총액 20.7억)이다.
마지막으로 외부로 수출한 선수는 어떨까. 2019년 FA 전을 기준으로, SK가 재계약에 실패한 선수는 총 9명이다.
'''재계약 실패'''
'''이름'''
'''FA 연도'''
'''이적팀'''
'''계약금'''
투수
이승호
2012년
롯데 자이언츠
4년 24억+옵션 4억
정대현
2012년
롯데 자이언츠
4년 36억+옵션 6억
윤길현
2016년
롯데 자이언츠
4년 38억
정우람
2016년
한화 이글스
4년 84억
타자
김민재
2006년
한화 이글스
4년 14억
이진영
2009년
LG 트윈스
4년 44억
이호준
2013년
NC 다이노스
3년 20억
정근우
2014년
한화 이글스
4년 70억+옵션 7억
정상호
2016년
LG 트윈스
4년 32억+옵션 2억
18년동안 SK를 나간 선수들의 계약금은 옵션 미포함 '''362억. FA로 영입한 선수 총 금액의 4.54배다.''' 주요 수출팀은 롯데와 한화[98]. 특히 롯데 자이언츠는 SK에서 영입한 선수 세명이 모두 불펜 투수인데[99] 롯데로 가서 하나같이 망했고[100] 롯데는 SK의 호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정상호는 LG에 있던 4년 동안 sWAR 합계 마이너스 0.4점대[101]라는 대참사를 쓰면서, LG 이적 이후 홍현우를 이어 LG 타자 사상 최악의 먹튀가 되었다.
2010년대부터 정대현, 정근우, 정우람 등 SK를 나간 선수가 입을 털 때가 가끔 있다. 재계약을 맺은 최정의 "그냥 SK를 떠나기 싫었어요"와 자기 "가슴엔 언제나 SK" 라고 말한 채병용이 있고, 재계약에 실패했어도 이적 후 그 전 팀에게 예의를 베푼 윤길현은 정반대.

3.8.2. 사서 쓰기 보다는 바꿔 쓰기


SK는 상술했듯 외부 FA를 통한 전력 강화에 소극적인 대신 팀 전력이 완성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은 물론 신흥 강팀의 반열에 오른 201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타팀과의 트레이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성사시켜 왔다. 메이저리그와는 달리 KBO리그는 한정적인 선수층으로 인해 선수를 선뜻 내어주기 어렵고 부메랑을 맞을 가능성도 크기에 트레이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SK는 다른 팀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행보를 걷고 있으며 트레이드로 온 선수가 한국시리즈 우승 및 정규시즌 호성적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톡톡히 보는 중.
[image]
위 표는 트레이드를 통해 SK를 오간 선수들의 WAR 득실표인데(현금 및 무상 트레이드는 표에서 제외되었다.), 2012년부터 2020년인 현재까지 무려 '''9년 연속'''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을 알 수 있다.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화려한데 창단 초기 암울한 타선에서 중심 타자로 군림한 이호준부터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박재홍과 (현금 트레이드라 이 표에는 없지만) 김경기, 조웅천도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다. 나주환, 전병두김성근 감독 시절 팀의 세차례 우승에 공헌한 주축 선수.
가장 최근인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트레이드로 온 노수광강승호가 큰 역할을 했다. 노수광은 중요한 한국시리즈 무대를 앞두고 넘어져 부상을 당해 우승반지를 끼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 강승호는 한국시리즈 6차전 투런 홈런은 물론 시리즈 내내 안정적 수비를 보여주며 이적 몇개월 만에 우승반지의 주인공이 되었다. 비록 2019년 팀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대형사고를 치며 임의탈퇴 신세로 전락했지만 이 때의 강승호가 우승의 주역이었음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 김택형도 포스트시즌 위기상황마다 호투하여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종욱 역시 2019년 WAR 2.26에 팀내 유일한 3할타자로 팀을 1년 내내 먹여살렸다. 이렇듯 여러 차례의 트레이드를 하면서도 대부분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그 폭이 크지 않았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KIA와의 2대2 트레이드 정도가 대표적인 루징 트레이드로 꼽히나, 이 경우는 SK, KIA 두 팀이 동시에 망했기 때문에 내상은 적은 편이다. 2019년에도 정규시즌 첫 트레이드의 주인공이 되며 주목을 받았고 감독 염경엽과 단장 손차훈 모두 트레이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크고 작은 트레이드가 꾸준히 이루어졌다. 2019년에도 박승욱을 대신해 정현이 영입되었는데, 정현은 SK 이적 후 2년 연속 타율 2할도 못 넘는 타격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102] 그 탓에 2017 시즌부터 주전에 걸맞지 않은 타격과 수비를 보여주고 있는 김성현이 억지로 주전 기용되는 악순환이 2020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103]


3.8.3. 외국인 용병 영입


2015년부터 용병 영입 스타일을 보자면, '''실력보단 인성'''이라 할 수 있다.
  • 20홈런, 10승 이상이거나 당해년도 sWAR 3 이상은 볼드체
  • 부상으로 방출된 선수는 💀, 부진으로 방출된 선수는 ☆, 특이 케이스로 방출된 선수는 #
  • 당해년도 sWAR 음수는 ★
  • 10경기 미만을 뛴 선수는 기울임체
연도
최초 용병
대체 용병

투수
타자
투수
타자
2000년

[104]
#[105]
빅터 콜
하비 풀리엄
'''틸슨 브리또'''
2001년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틸슨 브리또'''
호세 에레라

2002년
페르난도 에르난데스[106]
'''호세 페르난데스'''
💀[107]
다니엘 매기[108]
💀
제프 잉글린[109]
2003년
트래비스 스미스
'''에디 디아즈'''

2004년
호세 카브레라
틸슨 브리또[110]

2005년
💀


넬슨 크루즈[111]
''론 차바치''[112]

2006년

#[113]
💀
호세 카브레라[114]
제임스 세라노[115]

2007년
'''케니 레이번'''
'''마이크 로마노'''

2008년
케니 레이번
💀

[116]
에스테반 얀[117]

2009년
☆★


카도쿠라 켄[118]
'''게리 글로버'''

2010년
'''카도쿠라 켄'''
게리 글로버

2011년

게리 글로버

브라이언 고든[119]

2012년
마리오 산티아고


데이브 부시[120]

2013년
'''크리스 세든'''
''더그 슬래튼''[121]

조조 레이예스[122]

2014년[123]

#[124]
#[125]
트래비스 밴와트[126]

2015년
'''메릴 켈리'''
트래비스 밴와트💀
'''앤드류 브라운'''
크리스 세든[127]

2016년
'''메릴 켈리'''
☆★
'''헥터 고메즈'''
브라울리오 라라☆★[128]

2017년
'''메릴 켈리'''
'''스캇 다이아몬드'''
💀

'''제이미 로맥'''[129]
2018년[130]
'''메릴 켈리'''
앙헬 산체스
'''제이미 로맥'''

2019년
'''앙헬 산체스'''
#[131]
'''제이미 로맥'''
헨리 소사[132]

2020년
💀
리카르도 핀토
'''제이미 로맥'''

''타일러 화이트''[133]
2021년
윌머 폰트
아티 르위키
제이미 로맥

2014년엔 실력이 검증된 선수들 위주로 계약을 하였다. 작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던[134] 조조 레이예스와 먼저 재계약을 하였다. 작년 다승왕 크리스 세든이 일본으로 진출하게 되자 2014년 AAA에서 방어율 1.17로 엄청난 활약에 메이저리그에선 2이닝 7실점 경기 전까진 3점대 초반의 방어율로[135] 한국에 오기 전엔 많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로스 울프와 계약을 하였다.
타자 용병은 전년도에 275만 달러를 받고 MLB 통산 135홈런을 때려낸, MLB 경력만큼은 지금까지의 용병중 Top3 안에 드는 '''루크 스캇'''을 영입하게 된다. 조조 레이예스크리스 세든이었다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래도 '''경력만큼은''' 뛰어난 용병 3명을 뽑으며 SK의 2014시즌에 대한 기대를 높이게 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하니 웬걸.''' 유일한 재계약 멤버는 차근차근 먹튀 테크를 밟다가 박석민에게 고의성 다분한 헤드샷을 맞추고 퇴장당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퇴출당하고, 트리플 A 방어율 1점대 초반 특급 투수는 방어율 5.12를 기록하다 계투 전향 이후 좋은 모습을 보여주나 했지만 아들 문제[136]로 팀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고, '''MLB 135홈런 타자는 먹튀짓만 하다 감독한테 욕을 하고 퇴출당하게 된다.'''
그나마 집안 사정으로 팀을 나간 로스 울프는 팬들도 이해가 된다는 의견이 많았고, 구단에선 "We miss you, Wolf"라는 플랜카드를 경기장에 걸어놓았으나... '''후에 진실이 밝혀졌다.''' 미국에서의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이만수 감독이 자신을 마음대로 불펜 기용을 했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결국 좋은 이별이 되지 못하였다. 사상 초유의 용병 3명 모두 퇴출을 겪은 SK. 이로 인해 용병은 실력과 돈이 아니라 인성이 중요하단 것을 깨닫게 된다.[137]
그 이후론 좋은 용병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대표적으론 2014년 대체용병 트래비스 밴와트는 '''11경기 9승 1패''' 방어율 3.1로 승리요정이 되고, 메릴 켈리는 2015년~2017년 평균이닝 190이닝에 2017년엔 탈삼진왕까지 거머쥔다. 2014년 용병의 수모를 겪고 뽑힌 용병들중 흑역사를 제외하고 보자면, [138]

  • 트래비스 밴와트 : MLB 경력 없음. KBO 경력(SK만) 2년간 23경기 평균자책점 3.6 14승 4패 106삼진
  • 메릴 켈리 : MLB 경력 없음[139]. KBO 경력 4년간 119경기 729.2이닝 평균자책점 3.86 48승 32패 641탈삼진-2017시즌 삼진왕
  • 크리스 세든 : MLB 경력 10년간 24경기. KBO 복귀 후 경력 2년간 26경기 136이닝 평균자책점 5.2 12승 10패 110삼진[140]
  • 앤드류 브라운 : MLB 2007년 지명 후 타율 0.220 14홈런. KBO 경력 1년 타율 0.261 28홈런 5도루 121안타
  • 헥터 고메즈 : MLB 타율 0.181 1홈런. KBO 경력 1년 타율 0.283 21홈런 16도루 129안타
  • 스캇 다이아몬드 : MLB 평균자책점 4.37 18승 12패[141]. KBO 경력 1년 24경기 134.1이닝 평균자책점 4.42 10승 7패 59삼진 1무사사구 완봉승[142]
  • 제이미 로맥[143] : MLB 통산 27경기 타율 .167 0홈런. 2016년 NBP 타율 0.113 0홈런. KBO 경력 2년 1032타석 타율 0.286 74홈런 6도루 254안타[144].
'''실력을 보고 뽑은 선수들보다도 실력이 좋다.''' 게다가 이들 모두 인성 논란은 없고, 오히려 인성이 좋다는 말만 많은데, 밴와트의 경우 자신에게 타구 부상을 안겨준[145]오정복으로 가게 되자 오정복이 미안해하고 있을 때, 너가 없었다면 이 좋은 팀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다독여 주었다. 켈리의 인성은 워낙 유명하니 더 말하자면 입이 아프고, 브라운은 KBO에 오게 되자 최대한 한국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며 선수들과 친하게 지냈다. 세든도 인성이 좋다. 고메즈는 비록 실력은 그저 그러한 수준이지만, 수비력에선 그다지 좋지 못했지 인성만큼은 좋은 것으로 유명한 선수다. 특히나, 전임 감독 김용희 감독이 많이 기용을 했었다.
로맥의 경우 한창 자신이 부진할 때 타격코치의 말도 잘 들어주며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SK가 실력보단 인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2017년엔 인성 좋은 선수가 실력도 좋다는 것이 리그 전체에 퍼지고 있기에[146] 앞으로도 인성이 좋은 선수들 위주로 용병을 뽑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에도 메릴 켈리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들어온 브록 다익손이 SK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구속이나 이닝 소화 능력에서 문제를 보이면서 구단의 판단에 따라 시즌 도중 교체됐다. 교체된 선수는 KBO 리그 장수 외국인 투수 중 1명인 헨리 소사. 다익손은 방출 일 주일 후 롯데 자이언츠로 재취업에 성공했으나 롯데의 엄청난 삽질에 고통받는 중. 그리고 켈리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2020년, 6년 전 아니 그 이상으로 외국인 농사는 폭망했다. 닉 킹엄은 부상으로 단 2경기를 뛰고 의료관광을 하다가 돌아갔고, 그 선수를 대체한 타일러 화이트 역시 9경기만에 부상을 입고 시즌 아웃되었다. 리카르도 핀토는 나오는 날마다 털리며 무려 방어율 6점대에 15패, 믿을 수 없는 성적을 보여줬다. 그나마 로맥이 전반기에 애매했지만 후반기에 잘해줘서 전원이 망하진 않았다. 이 시즌 로맥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 선수가 sWAR이 음수였고, 이 것은 2020년 팀의 역대급 추락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됐다. SK는 이례적으로 2021년 외국인 구성을 정규리그 종료 다음날 발표한 것을 보면 이 시즌 외국인 농사가 얼마나 실패인지 드러난다.

3.9. 빈약한 내야 센터라인


역대 2루수 기록
역대 유격수 기록
정근우를 제외하면 내야 센터라인을 몇년 동안 잘 지켜준 선수가 없다. 더 문제는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것. 2019시즌 유격수는 실책왕, 2루수는 팀 2루 WAR이 음수를 찍을 정도로 내야 센터라인이 처참하게 무너진 상태에서 2020 FA 시장에 오지환, 김선빈, 안치홍이라는 수준급 내야 센터라인 매물들이 나왔으나 미적지근한 반응만을 보인 채 정근우 이후로 김성현만을 키워낸 육성능력을 믿고 시즌에 들어갔다. 신인 선수들을 막 박아보다가 시즌 중후반쯤 다시 김성현이 주전이 되는 것은 거의 연례행사.
트레이 힐만 감독 시절에는 박승욱을 키우려는 시도를 했고, 센터라인 강화를 위해 문광은을 내주며 강승호를 데려왔다. 다만 2018시즌 이후, 강승호는 범죄를 저지르고 박승욱은 kt로 트레이드되며 순식간에 내야 자원 둘이 사라져버렸다. 남아 있는 2루 자원중 유망주인 김창평은 아직 프로 무대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부상까지 겹쳐 한발 물러나있는 상황이다.
나주환의 노쇠화와 김성현의 유격수 복귀가 불안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2019 시즌은 직전 시즌까지 2루수로 출전했던 강승호를 유격 백업으로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상술했듯 범죄를 저지르며 사라져버렸고, 유격 백업이 없어지자 2루자원인[147] 박승욱을 kt wiz에 내주며 유격자원인 정현을 데려왔다. 하지만 정현은 건강 문제 등으로 0할을 치며 망해버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주환에게 은퇴권유를 한 후 현역연장 의지를 보이자 무상 트레이드를 시키면서 전력에 손실이 생겨버렸다.[148] 최항은 2017년 제대 후 타격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더니 2018년까지도 활약을 이어갔으나 염경엽 감독 체제에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선수 본인도 부진과 부상으로 이전까지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외에도 박성한, 안상현, 최경모, 유서준 등이 번갈아가며 키스톤을 맡았지만 확실한 1군 레귤러로 출전한 선수는 전무하다. 2021시즌엔 이제야 FA로 2루수 최주환을 영입하며 2루수는 걱정이 덜해졌지만 여전히 유격수는 타격이 좋지 못한 박성한과 공수주 모두 좋지 못한 김성현만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4. 팀의 역사



4.1. 창단 과정에서 인천의 노력


전라북도 연고의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모기업인 쌍방울이 자금난에 처하면서 구단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1999년 시즌을 끝으로 구단 운영 포기 의사를 밝히게 된다. 그러나 쌍방울 야구단을 인수하겠다는 기업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KBO는 쌍방울의 해체를 결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는 프로야구의 주무부처라고 할 수 있는 문화관광부를 통해 쌍방울의 뒤를 이어 8번째 구단(구단 순서로는 9번째 구단)을 운영할 만한 대기업을 물색하게 된다. 그리고 5대 그룹(현대그룹, 삼성그룹, LG그룹, SK그룹, 롯데그룹) 중에서 유일하게 프로야구단이 없던 SK그룹에 야구단 창단을 제안하게 된다.
손길승 당시 SK 회장은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149] 프로야구단 창단 제안을 받고 고심하다가 2000년 2월 1일 미국 출장에 앞서 야구단 창단에 나서겠다는 뜻을 언론에 공식적으로 밝힌다.[150] 이후 SK그룹은 프로야구단 창단의 3대 원칙을 제시하게 된다.

* 퇴출된 쌍방울 레이더스의 인수는 거부한다.

* 선수단은 쌍방울 선수단을 개별 계약으로 영입하고 기존 구단으로부터 선수를 지원 받는다.

* 새 구단의 연고지는 수도권 도시로 한다.[151]

KBO는 1989년 이후 11년 만에 다시 7개 구단 체제로 리그가 운영된다면 3연전 기간 동안 짝꿍이 없는 1개 구단이 무조건 쉬어야 하는 파행이 우려됐기에[152] 어떻게든 8개 구단 체제를 꾸려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SK의 구단 창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KBO는 SK 측의 희망 사항을 되도록 많이 들어주는 방향으로 전향적 행보에 나섰다. 그런데 SK가 옛 쌍방울의 연고지였던 전라북도 연고권 승계를 거부하고[153] 수도권 연고지 희망을 고수함에 따라 연고지 문제로 인해 창단 논의가 무려 한 달을 질질 끌게 된다.
KBO는 SK의 수도권 진입을 허용하고 SK에게 연고지 일부를 내주는 구단에게는 서울이나 다른 수도권 도시의 연고권을 개방하도록 한다. SK는 신생팀으로써 흥행에 유리한 서울특별시를 원하지만 신생팀에게 서울 연고권을 허가해 줄 경우 기존 구단 반발이 예상되었고 KBO 또한 반대하였기에 수도권에 창단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154] 그러자 KBO는 SK의 연고지를 경기도 수원시로 하고[155] 한국야구위원회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다음날 정기총회에서 지역연고는 수원시로 한다고 결정되었다. 하지만 당시 창단 당시에는 지역 연고제가 아닌 광역 연고제 시절이었고 SK만 광역 연고가 배제되었던 것이다. SK는 다른 구단처럼 (현대-인천.경기.강원) 식의 광역 연고도 포함해 달라고 항의하였고 SK그룹은 (SK-수원.경기도) 광역 연고를 희망하며 확정이 된다면 더 이상 서울 언급을 하지 않겠다고 어필하였다. 이렇게 될 경우 자신의 광역 연고를 잃게 생긴 현대 유니콘스서울특별시 연고 이전 야욕을 드러내며 KBO에게 으름장을 내놓으며 강력히 반발하였고 현대 유니콘스서울특별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현대의 재계 라이벌 삼성 라이온즈가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SK그룹팀 창단이 확실해진 시점에서 인천광역시와 협의도 없이 야반도주로 수원으로 이전하였다[156] 결국 KBO는 2000년 3월 15일에 SK의 연고지를 인천으로 결정하고[157]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택한 현대는 서울의 새 홈구장 마련이 끝나는 2001년 전반기까지 수원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기로 했다.
SK 구단 창단의 최대 걸림돌이던 연고지 문제가 해결되자 나머지 창단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 프런트는 고용을 그대로 승계하되 구단 해체로 웨이버 공시 처리된 쌍방울 선수단은 개별 계약으로 입단 절차를 밟았다. SK 측이 최초 요구했던 선수 지원은 창단식 직전에 이뤄졌는데 '''강병규''', 권명철, 장광호, 송재익, 김종헌 등이 SK로 이적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직전 시즌 13승을 찍고 SK로 온 강병규를 빼고는 기존 소속팀에서도 한물 간 선수였거나 1.5군급 선수들에 불과했기에 SK의 전력 증강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마저도 강병규는 시즌 후 태업을 일삼다가 결국 은퇴하게 된다.
2000년 3월 20일 구단 명칭을 현재의 '''SK 와이번스'''로 결정하고 신임 감독에 강병철 전 한화 감독을 선임했다. 당초 김준환 쌍방울 감독의 승격도 검토됐지만 창단 과정에서부터 SK 측이 쌍방울과의 단절을 희망했던 만큼 경험 많은 외부인을 원했던 SK 고위층 뜻에 따라 강병철 감독이 선임됐다.[158] 창단 절차를 모두 마친 SK 와이번스는 3월 31일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공식 창단식을 갖고 힘찬 첫 발을 내딛게 된다.

4.2. 강병철 감독 시대 (2000~2002)


롯데 자이언츠에서 두 차례 우승을 맛봤던 베테랑 지도자 강병철 감독의 지도 아래 새롭게 창단된 팀이었지만 창단 첫 해 SK에 대한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개별 계약 과정으로 선수단을 재편했지만 누더기처럼 헐거워진[159] 옛 쌍방울 선수단 대부분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1년 전 시즌 97패를 찍었던 옛 쌍방울 레이더스의 전력과 큰 차이가 없었다. 더구나 신생팀 전력 지원의 일환으로 각 구단이 보낸 선수들도 전력 증강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결국 시즌 초반부터 독보적이고 압도적인 꼴찌를 달려야 했다. 쌍방울과 계약했던 외국인 선수들도[160] 기량을 보고 영입했다기 보다는 그저 싼 값에 데려온 선수의 경향이 강했던 만큼 전반기 도중 외국인 선수 전원을 교체했고[161] 인천 연고팀으로서의 이미지 정착을 위해 자타공인 인천야구의 슈퍼스타로 불리던 김경기현대 유니콘스로부터 데려오고 미완의 대기였던 이호준해태 타이거즈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등 각고의 노력도 했다. 그래도 창단 첫 해 꼴찌의 수모는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에 세운 시즌 44승과 0.338의 시즌 승률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악의 시즌 기록이다.[162]
처참했던 팀 성적만큼이나 고역스러웠던 것은 지역민들의 철저한 무관심과 냉대였다. 프로 원년인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부터 인천 연고팀으로서 자리를 굳건히 했던 현대 유니콘스연고지 이전은 인천지역 야구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1군 엔트리는 물론 코칭스태프까지 인천고, 동산고, 제물포고 등 인천지역 학교 출신 인사가 즐비했던 팀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직전 해까지 회색 유니폼을 입고 인천에 원정을 왔던 전북 출신의 옛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을 홈팀으로 맞이하자니 팬들 입장에서는 멘탈 붕괴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 당시 인천의 야구팬들은 낯익은 선수단을 따라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하는 팬, 낯설지만 그래도 인천의 새 식구가 된 SK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팬, 그리고 아예 '''야구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린 팬'''으로 나뉘었다. 그 결과 창단 첫 해였던 2000년 한 해 동안 숭의야구장을 찾은 총 관중 수는 고작 8만4563명에 불과했다. 이는 경기당 평균 1281명으로 숭의야구장 좌석 점유율이 10% 남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창단 2년차였던 2001년에는 LG와의 개막전에서 창단 첫 숭의야구장 홈경기 만원사례를 기록하고 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산뜻하게 출발했지만 그래도 2000년과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 전력 앞에 절망해야 했다. 그나마 외국인 투수 틸슨 브리또가 발군의 실력으로 타선을 이끌었고 외국인 선발투수 페르난도 에르난데스가 선발로만 무려 233이닝을 던지는 괴력 피칭을 선보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래도 1년 전보다는 전력이 조금 나아졌고 리그 수준이 전반적으로 평준화된데다[163] 롯데 자이언츠가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명목상 순위에서 롯데에 1계단 앞서는 7위였을 뿐 실질적으로는 공동 꼴찌나 다름없었다. SK가 롯데보다 1승을 더하고 롯데가 4무를 한 탓에 승차 없이 승률에서 SK가 0.001 (1리) 앞서면서 7위를 했다.
세 번째 시즌인 2002년은 확실한 변화의 해였다. 1982년부터 30년간 인천 연고팀의 홈구장으로 쓰였던 낡고 좁은 숭의야구장을 벗어나 당시 KBO 리그의 최신식 경기장으로 각광을 받던 문학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겼기 때문이다. 한화와의 시즌 홈 개막전에서 인천야구 사상 최초로 단일 경기 입장 관중수가 2만명을 넘어섰고 1년 내내 새 구장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164] 창단 첫 해 한 시즌 누적 관중의 5배에 육박하는 관중 증가세를 기록하며 1996년 이후 6년 만에 인천 연고팀 시즌 홈 관중 40만명 시대를 다시 열게 된다.
선수단 전력에도 변화를 줬다. 구단 창단 이후 최초의 외부 FA 영입으로 내야수 김민재를 영입했고 쌍방울 시절부터 전천후 좌완으로 뛰었던 오상민과 팀 내야진의 주축인 틸슨 브리또삼성 라이온즈에 내주고 과거 쌍방울 시절 락커룸 리더였던 김기태, 베테랑 포수 김동수, 인천 출신 2루수 정경배, 과거 OB의 에이스였던 김상진, 경험 많은 좌완 김태한, 우완 유망주 이용훈을 받아오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된다. 다만 이 중에서도 SK에서 그럭저럭 굵직한 활약을 펼친 선수는 2009년까지 멤버로 뛰었던 정경배나 현역 말년을 불태운 김기태 정도 뿐이다. 김동수는 1년 뒤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해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고 김태한과 김상진은 2003년을 끝으로 은퇴했으며[165] 이용훈은 부상으로 신음하다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다.
이러한 변화에도 선수단 내에 뿌리 깊게 박힌 패배주의와 팬들의 거듭된 냉대에 부딪혀[166] 결국 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그나마 2001년보다 1계단 올라간 6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강병철 감독이 계약 기간을 1년 남겨둔 시점에서 사퇴하게 된다.
강병철 감독이 재임했던 3시즌은 창단 후 단 한 시즌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고 줄곧 하위권에 머물렀기 때문에 구단 역사에서 흑역사로 치부될 수 있는 기간일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구단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점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 구단 고위층에서 애초부터 옛 쌍방울 레이더스의 색채를 지우고자 했던 만큼 쌍방울의 전력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데 성공했다. 물론 김원형, 최태원, 조원우 등 쌍방울의 주축 선수 일부는 여전히 SK에서 활약했지만 이들마저도 없었다면 SK의 초창기는 더 암울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강병철 감독 재임 시기의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어린 선수들의 성장이다. 강병철의 양아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린 선수들을 지나치게 중용하던 그의 용병술은 SK 시절에도 여전했다. 그 결과 쌍방울의 마지막 1차지명 신인이던 이진영을 주축 타자로 성장시켰고 해태에서 온 이호준을 팀의 굳건한 4번타자로 각성시켰으며 채종범을 붙박이 주전 외야수로 성장시키는 등의 성과를 냈다. 실제로 이진영이호준은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고 채종범 역시 SK 초창기 시절 없어서는 안될 핵심 전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과오도 있었다. 강병철의 대표적 과오로 꼽히는 투수 혹사. 군산상고 에이스 출신으로 창단 첫 해 SK 마운드의 유일한 희망이자 SK 초대 에이스였던 이승호선발, 중간, 마무리 할 것 없이 무지막지하게 굴렸고[167] 외국인 에이스였던 페르난도 에르난데스의 어깨를 있는대로 갈아버렸으며 감독 재임 마지막 해에 입단한 신인 투수 채병용을 51경기 141이닝동안 투입하는 혹사를 자행한다. 결국 이승호와 채병용은 부상에 신음해야 했고 에르난데스는 얼마 못 가서 결국 선수 생활을 접게 된다. 또 어린 선수들을 중용한 나머지 베테랑 선수들을 괄시한 것도 강병철 시대의 과오라면 과오다. KBO 리그 사상 최초로 1000경기 이상의 연속 출장 기록을 세운 철인 최태원의 연속 출장 기록을 중단시켰고 연고지 인천의 슈퍼스타인 김경기를 사실상 은퇴시킨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무시했다.

4.3. 조범현 감독 시대 (2003~2006)


강병철 감독이 물러난 후 SK는 은퇴 후 야인으로 지내던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고자 노력했으나 무위로 돌아갔고 결국 삼성 라이온즈에서 배터리 코치를 맡았던 조범현을 2대 감독으로 영입한다. 이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인재 등용이었는데 SK 구단에서 신임 감독을 선임하려고 할 때 프런트 전 직원에게 어떤 감독이 현재 구단에 가장 적당하겠느냐는 추천을 권장하자 가장 많은 표가 나온 사람이 조범현이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당시 구단 프런트 수장인 안용태 사장이 "조범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프런트가 추천하는 인물이니 그냥 해보자"면서 과감하게 임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안용태 사장은 그룹 인사에 따라 구단을 떠나게 된다.
조범현 감독이 부임하면서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당시 FA로 나온 포수 중 최대어였던 '''박경완의 영입'''이었다. 조범현박경완은 이미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부터 사제지간으로 두터운 인연을 지니고 있었고[168] 박경완 스스로도 "인생의 은사님인 조범현 감독님 때문에 SK로 간다"고 말할 정도로 박경완의 SK행은 당연한 일이자 상당한 파격이었다. '''그리고 박경완의 영입은 훗날 SK의 최전성기의 주춧돌이 되는 신의 한 수가 된다.'''
최고 포수 박경완을 영입한 SK는 2003년 일대 돌풍을 일으킨다. 그 해 5월 초부터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가더니 결국 창단 후 처음으로 시즌 중간순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다만 선수단의 체력 부진과 부상 등이 겹치면서 7월 이후 하락세를 탔고 결국 한화 이글스와 막판 4위 경쟁을 하다가 턱걸이로 4위에 올라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의 새 역사를 쓰게 된다. 이 당시 리드오프 조원우가 공격의 첨병으로서 제 역할을 했고 강병철 전 감독이 중용했던 이진영이호준의 기량이 만개했으며 전천후 외국인 내야수 에디 디아즈가 공수에서 발군의 활약을 했고 마운드에서는 원조 에이스 이승호, 외국인 투수 트래비스 스미스, 2년차 채병용, 베테랑 김원형 등이 선발진에서 받쳐줬으며 조웅천이 구원왕에 오르는 등 투타의 조합이 어느 정도 맞는 모습을 보였다.
창단 처음으로 올라간 포스트시즌에서는 그야말로 돌풍의 연속이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삼성 라이온즈를 2승 무패로 눌렀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전통의 강호이자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KIA 타이거즈를 3승 무패로 셧아웃시키며 창단 4시즌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영광을 안았다. 현대 유니콘스와 맞붙었던 한국시리즈에서는 극강의 슈퍼 에이스 정민태를 넘지 못하면서 3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현재보다 미래가 더 주목받는 팀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며 앞으로를 기약하게 했다.
그러나 2004년에는 기존 선수들의 줄부상과 부진이 겹쳤고 기타 파동으로 인한 이적 이후 마무리 투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이상훈이 시즌 초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팀의 운용 계획이 모조리 꼬여버렸다. 결국 5위로 떨어지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2005년은 다시 찾아온 우승의 최적기였다. 세대를 아우르는 인천야구의 아이돌 박재홍을 트레이드로 영입했고 외부 FA 자원이던 김재현을 영입했다. 신인 중에서는 유망주였던 최정이 이 때 입단했다. 타선에서는 이진영, 이호준, 박경완의 기량이 불을 뿜고 있었고 마운드에서는 토종 원투펀치 김원형신승현의 건재와 정대현, 위재영, 조웅천의 완벽한 계투진 덕에 2년 만에 다시 투타의 균형이 맞았다. 전반기에는 다소 부진했으나 후반기 최고 승률을 기록하며 믿을 수 없는 진격의 행보를 이어나갔고 결국 정규리그 마지막날까지 삼성 라이온즈에 뒤진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문제는 후반기 막판에 전력이 뒷걸음질 쳤다는 점인데 결국 이 문제가 정규리그 마지막날 대형 사고로 터지고 만다. 2005년 시즌 홈 최종전이었던 LG전에서 이겼다면 2위를 확정짓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이 경기를 이기지 못하면서 두산 베어스에게 2위 자리를 내주며 3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탓에 선수단의 분위기는 바닥을 기었고 결국 그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 2승 3패로 패퇴하고 만다.[169]
2006년은 SK그룹의 CI 변경으로 푸른색의 팀 컬러를 붉은색으로 바꾸는 대대적 변화가 단행됐지만 선수단은 2005년 추락의 참사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야심차게 영입했던 일본인 타자 시오타니 가즈히코가 한국 생활에 대한 회의감과 때마침 찾아온 손가락 골절상으로 팀을 떠났고 이후 영입한 외국인 선수들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6위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조범현 감독도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후 SK는 조범현과 결별하는 대신 조범현의 은사를 신임 감독으로 영입한다. '''그리고 이후 SK는 KBO 리그의 신흥 강호로 자리매김한다.'''

4.4. 김성근 감독 시대 (2007~2011)


2006년 10월 SK 구단은 제3대 감독으로 김성근을 영입한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LG의 구단 운영 철학과 김성근의 야구 철학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LG 트윈스에서 해고됐고 이후 치바 롯데 마린스 순회코치로 일본에 머물며 이승엽을 지도했던 김성근을 감독으로 데려온 것은 SK 구단의 운영 방향이 당장의 성과를 내야 하는 "윈 나우"를 지향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성근이 당시로서는 김응용, 김영덕, 강병철과 더불어 KBO 리그에서만 통산 700승 이상을 거둔 베테랑 감독이고 중하위권에 머무르던 팀의 성적을 단기간에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확실히 일가견이 있었던 만큼[170] 그의 능력을 믿은 것이다. 전임 감독이었던 조범현김성근으로부터 야구를 배웠던 만큼 전반적인 팀 컬러는 조범현의 야구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조범현의 야구관은 김성근의 야구관에서 파생됐다고 봐야 하는 만큼 더 원론적인 데이터 야구와 스몰볼이 도입됐다고 볼 수 있다.
김성근은 감독 부임 이후 자신과 인연이 있던 가토 하지메를 투수코치로 데려왔고 가토 코치의 니시테츠 라이온즈 시절 동료인 오오타 다쿠지 코치와 수비 전담 지도자인 후쿠하라 미네오 코치도 함께 영입하는 등 일본인 코치들을 잇달아 영입한다.[171] 아울러 본인의 수제자들로 구성된 이른바 '김성근 사단'이 대거 SK 코칭스태프로 들어오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이 2군 감독을 맡았던 계형철.
김성근의 감독 선임과 더불어 이름값 높은 코치 1명이 더 들어왔는데 199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쫓겨나다시피 은퇴한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코치로 활동했던 이만수였다. SK는 KBO 리그 지도자 경력이 일천한 이만수를 1군 수석코치로 데려왔는데 애초에 이만수를 데려올 때부터 차기 감독감으로 미리 점지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돌았다. 이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는 일화가 있는데 이만수의 수석코치 취임식을 감독 취임식에 준하는 수준으로 별도 개최한 점이다. 이 자리에는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은 감독 김성근도 단상에 같이 앉아있었다. 이 당시 이만수 수석코치는 거창한 취임 소감을 밝히기도 했는데 김성근 감독이 바로 옆자리에 있는 와중에 "팀을 바꿔가도록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1군 선수단의 총책임자인 감독이 이미 있는데 수석코치가 팀의 방향 개편을 언급한 것은 훗날 두 지도자 간의 갈등이 예고된 것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든 김성근 감독과 이만수 수석코치 체제로 1군 선수단이 개편됐고 강력한 담금질이 시작된다. 이 당시 SK 선수단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창학 야구장과 일본 고치현오키나와현에서 훈련을 이어갔는데 익히 알려진 김성근 감독의 훈련 방식대로 어마무시하게 굴려졌다. 공포의 펑고로 불리는 수비 연습이 유명해진 것도 이 때부터였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신진급 선수들이 대거 기회를 얻게 되는데 소위 최전성기 외야 3인방으로 불리는 김강민, 조동화, 박재상 등이 대표적이었다. 신진급 선수들이 기회를 얻고 성장한 반면 김재현은 커리어 사상 최악의 부진을 면치 못했고[172] 박재홍플래툰 시스템의 희생양이 돼 1군과 2군을 들락날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2007년 시즌 초부터 선두를 달리기 시작한 SK는 단 한 명의 개인 타이틀 수상자를 내지 못했지만 팀 구성원 전체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토털 베이스볼과 김성근 특유의 데이터 야구가 들어맞으면서 두산 베어스를 4.5게임차로 제치고 '''창단 첫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거둔 시즌이었지만 이 과정에서도 순탄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재일 한국인 출신인 김성근을 비롯해 일본인 코치들이 다수 지도한 탓에 "SK의 야구가 일본야구를 지향하는 것 아니냐", "SK의 야구는 너무 재미가 없다", "김성근 야구는 너무 얄밉고 인간미가 없다"[173] 등의 비판이 잇따랐다. 특히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이 논란이 커졌는데 SK 2루수 정근우가 주루 플레이를 펼치던 두산 이종욱의 다리를 잡은 것이나 SK 채병용안경현, 김동주와 연이어 벌인 빈볼 시비가 결정적이었다. 안팎의 논란이 있었지만 SK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2패를 먼저 하고도 4연승으로 시리즈를 뒤집으며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자 '''인천 연고팀의 통산 2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2007년은 성적에서도 빛난 한 해였지만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마케팅의 새로운 한 획을 그은 해라고 볼 수 있다. 2007년 시즌 시작에 앞서 신영철 사장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스포테인먼트"'''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을 들고 나왔다. 단순히 야구장에서 야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야구장 안팎에 예능적 요소를 가미해 팬들이 즐겁게 야구장에서 한바탕 놀다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는 것이 당시 구단의 방향이었다. 그래서 이 당시 구단 프런트가 했던 말 중에 하나가 "우리의 라이벌은 다른 구단이 아니라 에버랜드롯데월드 같은 테마파크가 돼야 한다"였다.[174] 그러면서 문학야구장 3루 내야석 위에 가로전광판을 달고[175] 야구장 내에 에어바운스 놀이터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아울러 경기에서 승리했을 경우 단순히 그라운드 시상식에서 그쳤던 수훈선수 격려를 확대했는데 수훈선수를 응원단상으로 초청해 팬들과 함께 인터뷰하고 때로는 선수들로부터 노래를 듣거나 춤을 같이 추는 일도 있었다. 현재는 인천SK행복드림구장 주말 홈경기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토요 불꽃축제'''도 이 해부터 자리잡은 전통이다. SK의 승패 여부와 관계없이 홈팀 팬과 원정팀 팬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불꽃놀이를 정례화해[176] 팬들을 야구장으로 불러모으게 하는 효과를 냈다.
스포테인먼트 캠페인의 정점을 찍은 것은 '''이만수 수석코치의 팬티 세리머니'''였다. 이 당시까지 문학야구장 개장 이후 정규시즌 홈경기 만원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2006년에는 만원을 기록한 경기가 단 한 경기도 없었고 2005년에는 KIA 타이거즈와의 개막전이 유일한 관중 만원사례 경기였다. 이에 안타까움을 나타낸 이만수 코치가 2007년 4월 29일 문학 LG전에 앞서서 "앞으로 열리는 10번의 홈경기 안에 만원사례가 된다면 '''내가 팬티만 입고 야구장을 뛰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게 됐고 10번째 홈경기인 2007년 5월 26일 문학 KIA전에서[177] 만원사례를 달성하게 된다. 약속대로 이만수 코치는 이날 5회말이 끝나고 22명의 팬들과 함께 엉덩이가 밖으로 드러난 듯한 디자인의 팬티를 입고 야구장을 한 바퀴 돌았다. 이 장면은 미국의 유명 스포츠 잡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도 소개될 정도로 화제가 됐다.
SK의 성적이 급상승하고 관중을 야구장으로 유입하고자 한 눈물겨운 마케팅은 결국 관중 폭발이라는 성과로 돌아왔다. 2007년의 SK는 1994년 태평양 돌핀스가 세웠던 인천 연고팀 단일 시즌 최다 관중 기록(47만6277명[178])을 13년 만에 깨고 65만6426명의 관중을 야구장으로 불러들여 역대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로 시즌 평균 관중 1만명대 시대를 열었다.
2008년은 와이번스의 구단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전성기 중 한 해였다. 이른바 '지지 않는 야구'의 완성이었는데 2007년의 우승 전력이 그대로 있었고 2007년 한국시리즈를 통해 각성한 2년차 에이스 '''김광현'''이 그야말로 슈퍼 에이스 역할을 하며 정규시즌 MVP에 오르는 등 팀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를 낸 해였다. 물론 빈틈은 있었다. 2007년 17승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던 케니 레이번이 처절하도록 운이 따르지 않은 탓에 5승짜리 투수로 전락했고 또 다른 외국인 투수는 1년 내내 없었다고 할 정도로 함량 미달의 선수들이 연달아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4번타자 자리도 1년 내내 공석이었다. 이호준이 무릎 수술의 여파로 거의 1년을 통으로 쉬었다. 이 자리에는 박재홍, 김재현 등 기존 선수들이 들락날락해야 했다.
외국인 선수 기용이 쉽지 않았고 팀의 주포마저도 사라진 상황에서 SK가 거둔 2008년 시즌 전적은 무려 83승 43패. 126경기 체제에서 83승을 거두고[179] 승패마진이 무려 +50이 될 정도로 압도적인 시즌이었다. 또 이 해 정규시즌 최종 승률 0.659는 2024-03-29 20:58:35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와이번스 구단 역대 통산 단일시즌 최고 승률 기록이자 126경기 체제에서 거둔 KBO 리그 사상 최고 시즌 승률 기록이다. 이 때 SK팬들이 경기를 볼 때 느낌은 '''5점차 6점차로 뒤지고 있어도 이길거 같고 어차피 경기는 이기는 거니까 스탯이나 챙겨보자.'''
1년 내내 월간 승률이 6할을 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정규시즌을 보내고 맞은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줬으나 2007년과 마찬가지로 2차전부터 4경기를 내리 이기며 4승 1패의 성적으로 '''창단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자 해태 타이거즈(1996~1997), 현대 유니콘스(2003~2004), 삼성 라이온즈(2005~2006)에 이어 통산 4번째로 '''통합우승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180]
2009년 이후의 시즌 내용은 별도의 문서가 있으니 2009년, 2010년, 2011년의 문서를 참조해보자.

4.5. 이만수 감독 시대 (2011~2014)






김성근 감독 재임 중 SK는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1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거두고 5시즌 동안 무려 372승을 거두며 리그의 강호로 군림하게 됐다. 이 때문에 김성근 감독의 시대는 영원할 것 같았지만 이미 구단 안팎에서는 김성근 감독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었다.[181]
김성근 감독과 구단은 결국 2011년 시즌 초부터 재계약 문제를 두고 갈등을 벌였다. 구단은 김 감독 측이 이미 몇 차례나 재계약 협상을 미뤄왔다고 언론에 터뜨렸고[182] 김 감독 역시 "재계약은 구단의 결정 사항이지만 나도 팀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며 맞섰다. 결국 2011년 8월 17일 김 감독이 "2011시즌이 끝나면 구단을 떠나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고 다음날인 8월 18일 김성근 감독을 바로 경질해버렸다. 이후 SK 구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만수 2군 감독을 1군 감독대행으로 발탁했다. 구단 측은 여전히 부인하고 있지만 2007년 이만수를 수석코치로 영입할 당시 차기 감독감으로 이미 낙점돼 있었다는 이야기가 이때 또 다시 주목을 받았다.
결국 이만수 감독대행은 2011년 잔여 시즌을 모두 치른 것을 넘어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게 됐다.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나가서 KIA 타이거즈에 3승 1패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에 3승 2패로 이기면서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만수 본인으로서는 역대 KBO 리그 감독대행 중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감독대행이 됐다.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에 막혀 우승에 실패하게 된다.
SK 구단은 큰 고민 없이 이만수 감독대행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팀을 이끌어 갈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이만수의 야구관은 김성근의 야구관과 대척점에 있었다. 일본식 스몰볼과 데이터 야구를 신봉하던 김성근 전 감독과 달리 이만수 감독은 미국에서 배운 빅볼을 앞세웠는데 사실 감독대행 시절부터 무수한 욕을 먹었다. 이 당시 김성근 감독만을 무한으로 신봉하는 일부 극성팬을 중심으로 이만수 감독에 대한 비판이 거셌는데 서투른 투수교체나 언론 인터뷰, 과도한 리액션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을 것이 있다는 속담을 증명하듯 여전히 강한 전력을 보유하던 SK는 2012년에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KBO 리그 사상 최초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물론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삼성 라이온즈에 막혀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안 끝날 것 같았던 팀의 전성기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2013년과 2014년은 별반 차이 없이 그저 그런 수준의 야구에 머무르면서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다만 이것이 모두 이만수 감독만 탓할 것은 아닌 것이 김성근 전 감독이 무리하게 선수를 끌어 쓴 혹사의 여파로 선수단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고 외국인 선수들 역시 밥값을 해준 선수가 없기도 했다. 결국 화려한 성적 뒤에 몇 년 간에 걸쳐 곪아왔던 문제들이 이때 한꺼번에 모두 터지면서 팀의 성적도 급전직하하고 말았다. 결국 2014년 시즌 후 이만수 감독 스스로 구단을 떠나게 된다.

4.6. 김용희 감독 시대 (2015~2016)





4.7. 트레이 힐만 감독 시대 (2017~2018)





4.8. 염경엽 감독 시대 (2019~2020)




트레이 힐만 감독이 가정 사정으로 퇴임하자 단장이었던 염경엽이 새로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면서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김동엽을 삼성으로 보내고 넥센에서 고종욱을 데려오는 등 선수단 재편에 나섰다. 염경엽의 야구는 빅볼 대신 스몰볼 야구에 가까웠는데 공인구 반발력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정경배 코치 등이 지도했던 홈런 스윙 대신 밀어치기를 장착했다. 결국 2018년 홈런 1위 장타율 2위 OPS 2위였던 타선이 불과 한 해만에 홈런 3위 장타율 6위 OPS 6위로 주저앉았다.[183]
그렇다고 염경엽이 생각했던 안타를 쳐 점수를 만드는 팀이 되었냐면 당연히 아니다. SK는 시즌 막바지 까지 타자들이 못치니까 서태훈으로 대표되는 주력 투수들의 팔을 갈아내면서 1위를 유지했으나 결국 이 방식에도 한계가 드러나 밑에서 바짝 추격하는 두산에 달아나기 위해 이겨도 모자랄 판에 6연패라는 큰 충격이 다가왔으며 이는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때 한화한테 이기고도 팀이 2위로 떨어지는, 팬들한테는 정말 충격적인 결과가 되었다. 타선 부진은 계속 이어졌고 키움 히어로즈와 만난 플레이오프 때도 망가진 투수진과 형편 없는 타선 때문에 0승 3패로 광탈하며 최종 순위는 3위까지 추락했다.
이처럼 팀이 망가진 것에는 새로 선임한 김무관 타격코치의 지도가 선수들과 잘 맞지 않았고 김무관 코치 해임 후 배터리코치 경험밖에 없는 박경완 수석코치와 주루코치로 시즌을 준비했던 박재상 코치에게 타격 지도를 일임하면서 타격 이론에 미숙했던 코치들이 선수들의 부진을 잘 수습 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시즌 종료 후 SK 출신이자 타격에 일가견이 있던 이진영을 타격코치로 선임하며 2019년 시즌을 망친 타선을 수습할 수 있을지가 관건.
2020년은 창단 첫 해인 2000년을 빼고는 가장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팀 마운드의 묵직한 원투펀치였던 에이스 김광현앙헬 산체스가 팀을 떠나고 하재훈, 한동민 등 주력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신음했으며 타격 실력 배양을 위해 데려온 이진영 코치도 메인 타격코치 경력은 일천했던지라 지도에 큰 혼란을 겪었다. 시즌 초부터 거하게 10연패를 찍으며 최하위권으로 내려가더니 결국 반등하지 못하고 9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설상가상으로 염경엽 감독은 시즌 도중 실신해버리며 팀을 불명예스럽게 떠나고 말았다. 최악의 부진을 겪은 시즌이었지만 그 와중에 최정제이미 로맥 등 30홈런 선수 2명을 배출하는 것을 비롯해 여전히 홈런구단의 이미지는 잃지 않았다. 다만 역대급 불방망이를 가진 팀이 나오면서 타격의 팀이라는 타이틀은 희미해졌다.

4.9. 김원형 감독 시대 (2021~)



2021년 시즌을 앞두고 와이번스 구단의 문화를 잘 알고 있는 민경삼 사장, 류선규 단장, 김원형 감독이 새로 선임되면서 2018년까지 뽐냈던 팀 컬러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가 주목되고 있다. 우선 류선규 단장이 "홈런군단으로서의 팀 컬러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고 잠실에서 20개 이상의 홈런을 칠 정도로 장타력과 정교함을 동시에 갖춘 내야수 최주환을 영입하는 등 홈런군단 이미지 회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4.9.1. 신세계그룹으로의 매각 (2021)




5. 주요 기록



5.1. 역대 감독



[image]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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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초대'''
'''2대'''
'''3대'''
'''4대'''
'''5대'''





강병철
조범현
'''김성근 / ★★★'''
이만수
김용희
'''6대'''
'''7대'''
'''감독대행'''
'''8대'''





[image]
'''트레이 힐만 / ★'''
염경엽
박경완
김원형


'''SK 와이번스 역대 감독'''
'''순서'''
'''이름'''
'''재임기간'''
'''전적'''
'''승률'''
'''비고'''
초대
강병철
2000년 ~ 2002년
399전 165승 8무 226패
0.422

2대
조범현
2003년 ~ 2006년
518전 257승 18무 243패
0.514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 & 한국시리즈 진출
'''3대'''
'''김성근'''
2007년 ~ 2011년[184]
611전 372승 13무 232패
0.622
인천 연고팀[A] 출신 첫 감독
'''2007 KBO 리그 통합우승 V1
2008 KBO 리그 통합우승 V2
2010 KBO 리그 통합우승 V3'''
KBO 역대 정규시즌 최다연승 (2009~2010, 22연승)
SK 감독 최고 승룰
4대
이만수
2011년 ~ 2014년[185]
429전 213승 11무 205패
0.510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5대
김용희
2015년 ~ 2016년
288전 138승 2무 148패
0.483

'''6대'''
'''트레이 힐만'''
2017년 ~ 2018년
288전 153승 2무 133패
0.535
창단 첫 외국인 감독
'''2018 한국시리즈 우승 V4'''
7대
염경엽
2019년 ~ 2020년[186]
191전 100승 1무 91패
0.510
인천 연고팀[A] 선수 출신 첫 정식감독
SK의 정규시즌을 치른 마지막 감독
구단 단장 출신 감독
감독대행
박경완
2020년
96전 39승 1무 56패
0.411

8대
김원형
2021년
-[187]
SK의 마지막 감독
SSG의 첫 감독
  • SK 와이번스의 역대 감독으로는 초대 강병철부터 현 감독인 김원형까지 총 9명의 감독들이 있다. 굵은 글씨는 우승 감독.
  • 감독 대행 체제로 시작해서 정식 감독이 될 때까지 그 사이의 전적도 포함.
  • 신기하게도 쌍방울 시절 마지막 감독으로 선임된 김준환 감독도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SK의 수석코치가 됐는데, 김원형 감독 역시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새로운 팀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5.2. 시즌별 일람




5.3. 역대 개인 성적


팀 역사상 최고의 통산 성적과 단일 시즌 최고의 기록을 정리한 문단이다.

5.3.1. 통산 성적


'''SK 와이번스 투수'''
부문
이름
기록
팀 소속 시즌
'''등판경기'''
정우람
600경기
2004~2015
'''선발등판'''
김광현
276경기
2007~2019
'''완투'''
이승호
11완투
2000~2011
2016
'''완봉'''
김광현
3완봉
2007~2019
이승호
2000~2011
2016
'''평균자책점'''[188]
김광현
3.27
2007~2019
'''승리'''
김광현
136승
2007~2019
'''패전'''
김광현
77패
2007~2019
'''세이브'''
정대현
99세이브
2001~2011
'''홀드'''
정우람
128홀드
2004~2015
'''이닝'''
김광현
1673.2이닝
2007~2019
'''탈삼진'''
김광현
1456개
2007~2019
'''실점'''
김광현
691실점
2007~2019
'''자책점'''
채병용
625자책점
2002~2019
'''피안타'''
김광현
1577개
2007~2019
'''피홈런'''
채병용
161개
2001~2019
'''볼넷'''
김광현
646개
2007~2019
'''사구'''
박종훈
124개
2010~
'''SK 와이번스 타자'''
부문
이름
기록
팀 소속 시즌
'''출장경기'''
최정
1781경기
2005~
'''타율'''[B]
이진영
0.304
2000~2008
'''출루율'''[B]
최정
0.389
2005~
'''장타율'''[B]
최정
0.525
2005~
'''타석'''
최정
7276타석
2005~
'''타수'''
최정
6103타수
2005~
'''안타'''
최정
1762안타
2005~
'''2루타'''
최정
325개
2005~
'''3루타'''
조동화
30개
2000~2018
'''홈런'''
최정
368개
2005~
'''타점'''
최정
1180타점
2005~
'''득점'''
최정
1102득점
2005~
'''도루'''
정근우
269도루
2005~2013
'''볼넷'''
최정
773볼넷
2005~
'''사구'''
최정
272개[189]
2005~
'''삼진'''
최정
1373개
2005~
'''병살타'''
이재원
129개
2006~

5.3.2. 단일 시즌


'''SK 와이번스 투수'''
부문
이름
기록
해당 시즌
'''등판경기'''
정우람
85경기
2008
'''선발등판'''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34경기
2001
'''완투'''
이승호
6완투
2001
'''완봉'''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2완봉
2001
채병용
2002
이승호
2003
신승현
2005
'''평균자책점'''
김광현
2.37
2010
'''승리'''
케니 레이번
17승
2007
김광현
2010
2019
앙헬 산체스
2019
'''패전'''
리카르도 핀토
15패
2020
'''세이브'''
하재훈
36세이브
2019
'''홀드'''
박희수
34홀드
2012
'''이닝'''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233.2이닝
2001
'''탈삼진'''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215개
2001
'''실점'''
리카르도 핀토
121실점
2020
'''자책점'''
리카르도 핀토
111자책점
2020
'''피안타'''
메릴 켈리
205개
2016
'''피홈런'''
김기덕
27개
2000
이승호
2001
채병용
2014
'''볼넷'''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134개
2001
'''사구'''
박종훈
25개
2017
'''SK 와이번스 타자'''
부문
이름
기록
해당 시즌
'''출장경기'''
정의윤
144경기
2016
김성현
2019
'''타율'''
정근우
0.350
2009
'''출루율'''
김재현
0.445
2005
'''장타율'''
최정
0.684
2017
'''타석'''
정의윤
616타석
2016
제이미 로맥
2018
'''타수'''
정의윤
576타수
2016
'''안타'''
정의윤
179안타
2016
'''2루타'''
최정
33개
2012
박정권
2014
'''3루타'''
이진영
8개
2002
노수광
2018
'''홈런'''
최정
46개
2017
'''타점'''
한동민
115타점
2018
'''득점'''
최정
106득점
2016
'''도루'''
정근우
53도루
2009
'''볼넷'''
박경완
94개
2004
'''사구'''
박경완
27개
2010
'''삼진'''
최정
129개
2018
'''병살타'''
이재원
22개
2015

5.4. 역대 유니폼


'''2020년부터 착용하는 유니폼. 사진 왼쪽부터 홈, 얼트, 주중 원정, 주말 원정 유니폼'''

20년의 역사 속에서 유니폼이 꽤 자주 바뀌었다. 현재의 홈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상하의 모두 기존 유니폼의 라인을 없앤 심플한 디자인으로 구단 로고를 부각시켰다. 유니폼 뒷면의 선수 이름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제거했다가 2019년 이후 선수 이름을 다시 붙이기 시작했다. 원정 유니폼은 2015년부터 사용 중인 회색 상하의와 2020년부터 다시 사용하는 붉은색 상의/흰색 하의가 있다. 주중 경기에서 회색 유니폼을 입고 주말 경기에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다.
얼트 유니폼 중 '인천군 유니폼'은 매주 일요일 홈 경기마다 입으며[190] 연고지인 인천광역시 지역 팬과의 교감을 위해 인천군 유니폼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미색 바탕에 연고지 지명인 인천을 유니폼 전면에 새겼다.[191] 과거 실제 인천군 유니폼에는 인천의 영문 표기를 INCHUN이라고 삽입했으나 2015년부터 입는 인천 유니폼의 로마자 표기는 현행 로마자 표기법에 맞게 ''''INCHEON''''으로 넣었다.
부작용으로 그린 스포츠 유니폼은 새마을 유니폼이라고 까이기도 했다.

5.5. 관련 기록




6. 선수단










6.1. 영구결번


[image]
'''SK 와이번스 영구결번'''
No.26 박경완
현재 SK 와이번스의 영구결번으로는 박경완의 등번호 26번이 유일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 백스크린 뒷쪽에 야구공 모양의 영구결번 기념 조형물이 있다.[192]
일각에서는 인천 야구를 빛낸 슈퍼 스타인 박재홍의 등번호 62번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박재홍은 전성기가 현대 유니콘스 시절[193][194]이었고 은퇴 당시 SK 구단과의 결별 과정이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국 영구결번이 되지는 않았고[195], 이후 한동민이 그의 등번호를 물려받으면서 SK 좌타 거포 외야수의 계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박경완 이후의 영구결번 후보로는 최정김광현이 유력하다.[196] 둘 다 SK 와이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타자/투수이며, 타 구단의 영구결번급 선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커리어를 보유했고, 20대 초반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4번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이끈 주역들이기도 하다. 최정은 2차 FA에서 '''6년 계약'''을 체결했고, 김광현도 포스팅 제도를 통해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면서 KBO 리그 복귀 시 원 소속 구단인 SK에게 4년간 보유권이 생기기 때문에 두 선수 모두 원클럽맨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최정과 김광현의 영구결번은 별 문제가 없는 한 확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김성근 감독의 38번도 영구결번될 뻔했었다. SK 프런트 측에서 V3의 업적을 기리는 차원에서 먼저 제안해 몇 차례 의견을 나눴으나 재계약 관련한 갈등 끝에 결별한 김성근 감독이 거절해서 성사되지는 않았다.

6.1.1. No.26 박경완


[image]
'''SK 와이번스 No.26'''
'''박경완 (朴勍完 / Park Kyung-oan)'''
2014년 3월 10일, 박경완의 등번호인 26번을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 '''SK 와이번스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 박경완은 원클럽맨은 아니지만 창단 초기부터 팀을 이끌면서 2000년대 후반 SK의 V3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구단의 첫 영구결번을 받게 되었다.

6.2. 임시결번



6.2.1. No.29 김광현


[image]
'''SK 와이번스 No.29'''
'''김광현 (金廣鉉 / Kim Kwanghyun)'''
현재 임시 결번인 SK 와이번스의 29번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광현이 2007년 SK에 입단 후 2019년까지 사용했던 등번호이다. 김광현은 KBO에서 뛴 13년동안 1673이닝 136승 77패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하면서 최정과 함께 소속팀인 SK 와이번스를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 총액 800만불의 계약에 합의하며 메이저 리그에 입성했다. SK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선수단 내에서 김광현이 사용했던 29번을 비워두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하며 이후 자연스럽게 임시결번이 되었다.

6.3. 은퇴식


SK 와이번스는 원년 구단이 아닌 2000년에 창단된 구단인 만큼 창단 초기에는 은퇴 직전에 놓여있던 베테랑 선수들의 은퇴식을 많이 열어주는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팀의 역사를 이어가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에게 은퇴식을 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197]
[image]
'''SK 와이번스 역대 은퇴식'''
<^|1> {{{#!wiki style="margin: 0 -10px -5px"
[ 펼치기 · 접기 ]

'''꺼벙이 김성래'''
1984년 삼성 라이온즈 데뷔,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 이적, 2000년 8월 13일 은퇴식[243]

'''미스터 인천 김경기'''
1990년 태평양 돌핀스 데뷔, 2000년 SK 와이번스 이적, 2002년 4월 9일 은퇴식[244]

'''철인 최태원'''
1993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04년 4월 4일 은퇴식[245]

'''왼손의 신사 김기태'''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02년 SK 와이번스 이적, 2006년 4월 8일 은퇴식[246]

'''강철허리 조웅천'''
1989년 태평양 돌핀스 데뷔, 2001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0년 3월 28일 은퇴식[247]

'''인천의 아들 정경배'''
1996년 삼성 라이온즈 데뷔, 2002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0년 3월 28일 은퇴식[248]

'''캐넌히터 김재현'''
1993년 LG 트윈스 데뷔, 2005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1년 10월 1일 은퇴식[249]

'''어린왕자 김원형'''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12년 4월 8일 은퇴식

'''리틀쿠바 박재홍'''
1996년 현대 유니콘스 데뷔, 2004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3년 5월 18일 은퇴식

'''포도대장 박경완'''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 데뷔, 2003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4년 4월 5일 은퇴식[250]

'''좌완 파이어볼러 전병두'''
2003년 두산 베어스 데뷔, 2008년 SK 와이번스 이적, 2016년 10월 8일 은퇴식[251]

'''아트스윙 박재상'''
2001년 '''SK 와이번스''' 데뷔, 2017년 9월 9일 은퇴식[252]

'''가을동화 조동화'''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 멤버, 2018년 9월 8일 은퇴식

'''Rising Star 윤희상'''
2004년 SK 와이번스 입단, 2020년 10월 30일 은퇴식[253]

'''천하무적 박정권'''
2004년 SK 와이번스 입단[254], 2021년 은퇴식 예정[C]

'''버팀목 채병용'''
2001년 SK 와이번스 입단, 2021년 은퇴식 예정[C]

'''바키투심 박희수'''
2006년 SK 와이번스 입단, 2021년 은퇴식 예정

구단 특성상 차후 리빙 레전드로 평가받는 '''김광현'''과 '''최정'''은 은퇴식은 물론 영구결번 헌액의 가능성이 있고 최전성기 때 외야 3인방의 최후 현역 선수인 김강민, 팀의 전성기가 지나간 이후 팀을 굳건히 지킨 박희수 등에게도 꽤 큰 규모의 은퇴식을 해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포함시키긴 애매하지만 팀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에 공헌을 하고 최전성기 SK 와이번스의 클린업으로 활약하던 NC 다이노스 소속 내야수 이호준도 마지막 인천 원정 때 구단에서 조촐한 은퇴 기념 행사를 챙겨주기도 했다.[198]
[image]
[image]
인천 고별전에서 SK 와이번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이호준의 모습

7. 홈구장


  • 인천SK행복드림구장 (메인 홈구장, 2002 ~ )
  • 수원 야구장 (이전 제 2구장, 2000 ~ 2014)[199]
  • 숭의야구장[200] (이전 홈구장, 2000 ~ 2002)
2014년부터 인천 문학운동장의 시설에 대한 운영 및 관리를 수행하는 위탁 운영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이 아니라 야구장을 포함한 경기장 전체(박태환수영장 제외)이다.''' 경기장 일부에 대한 관리를 위탁한 사례는 있었지만 모든 시설에 대한 관리를 위탁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한다. 덕분에 SK 프론트 입장에서는 경기장 전역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7.1. 인천SK행복드림구장



'''전세계 스포츠 경기장 전광판 크기 9위를 기록하고 있는 행복드림구장의 빅보드[201]'''

7.2. SK 퓨처스 파크



2006년까지는 용현동 SK에너지 저유소 내에 SK 와이번스 2군 연습구장인 "SK 드림파크"를 사용했으나[202] 연습구장이 위치한 용현동 일대가 재개발 지구로 정해진 터라 2007년 철거됐다. 드림파크가 철거된 후에는 2군 경기장을 숭의야구장으로 잠시 옮겼지만 그 숭의야구장마저도 헐리면서 결국 송도 LNG 기지 내에 위치한 열악한 야구장을 2군 임시 경기장으로 쓰게 되었다.[203] 특히 야구장 바로 옆에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시설이 있는데 이 시설에는 나오는 악취 때문에 경기가 중단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빈번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강화군 길상면 길상종합운동장 옆 부지에 새로운 2군 전용 연습구장이 지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으나 인천광역시와의 부지 매매 관련 협의가 잘 안 되었는지 한동안 건축은 커녕 삽질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송도 야구장을 임시 2군 경기장으로 매우 불편하게 사용하고 있다가 드디어 인천시와의 부지 협의가 끝났고 2013년 4월 첫 삽을 떴다. 새 연습구장은 일단 2014년 내에 완공 예정이라고 발표했었으나 결국 2014년을 넘겨서야 완공됐다.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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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까지 공정률이 30%에 불과해 팬들의 걱정이 많았으나 이후 작업 속도를 내면서 공사를 시작한 지 정확히 2년이 된 2015년 4월 1일 SK 퓨처스 파크 개관식이 거행되었다. SK 퓨처스 파크는 8만6762m²(2만6245평)의 대지에 주경기장, 보조경기장, 수펙스돔(실내훈련장), 패기관(숙소) 등 4가지 주요 시설로 이뤄졌다. 주경기장(2군 훈련과 경기 전용)과 보조경기장(재활·잔류·육성군 전용) 모두 실전을 치를 수 있는 규모로 조성됐다. 실내훈련장은 투수와 야수 시설을 분할해 건립됐다. 에너지 효율과 친환경,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신경을 썼다. 또 숙소는 37개 객실 모두를 1인 1실로 만들어 어린 선수들 위주로 수용할 계획이다.

8. 논란



8.1. 인천야구 정통성 논란


인천팬들을 끌어들이려는 일환에서 2002년 8월 24일8월 25일에 과거 인천을 연고로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다. 하지만 인천을 버리고 떠났다고 해도 삼미 슈퍼스타즈의 '''공식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수원을 연고로 한 채로 '''멀쩡하게 살아있었던''' 관계로 이벤트 이름도 꿈★의 이벤트[204]가 되었으며, 결국 가슴의 별에는 삼미 로고의 S 대신 SK가 박혀있는 유니폼으로 대신했다.
2008년 태평양 데이에서는 현대도 없어졌고 태평양 돌핀스의 모기업이었던 태평양도 회사명을 아모레 퍼시픽[205]이라고 바꿨기 때문에 태평양 로고를 붙이고 경기를 했다. 그런데 이 때의 상대는 '''현대 유니콘스를 정신적으로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우리 히어로즈'''였다. 여기에 SK가 KBO에만 행사의 사전 협의를 하고 히어로즈 측에는 통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과거에 같은 한 팀을 응원했던 히어로즈들과 SK팬들 사이에서 더욱 깊은 갈등과 대립을 낳고 말았다. 2002년과 달리 삼청태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인수한 팀도 없었기 때문에 물론 법적으로 태평양과 히어로즈의 연계성은 없으므로 SK가 히어로즈 측에 통보를 할 의무는 없었으나 그 당시 히어로즈 덕아웃에는 태평양 시절부터 팀의 부침을 지켜봐 왔던 이숭용전준호가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전준호는 "우리의 과거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 라며 씁쓸해했다.
2008년 태평양데이 같이 연고팀을 떠나보낸 팬을 위해 정착팀이 옛 연고팀의 유니폼을 입는 행사가 다른 리그에서도 종종 있었는데, 그 중 태평양데이와 가장 유사한 사례는 시애틀 매리너스가 옛 연고팀 시애틀 파이러츠의 유니폼을 입은 행사이다. 시애틀 파이러츠는 밀워키로 연고를 이전하고 밀워키 브루어스로 구단명을 바꾸고 현재도 존재하는 구단이다. 밀워키 브루어스도 행크 아론을 기념하기 위해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유니폼을 입는데, 이 구단 역시 연고를 이전하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구단명을 바꾸고 현재도 존재하는 상태이다. 또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사라진 옛 니그로리그 연고팀 블랙삭스의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또 과거 브루클린에서 연고를 이전한 LA 다저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우처럼 연고지 이전 전의 기록들을 모두 인정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히어로즈의 정당성을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메이저리그 두 팀과는 달리 연고지 이적 과정에서 벌어진 잡음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삼청태현과 완전히 다른 팀이므로 문제가 있다.
2009년 9월 이 문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데, 바로 히어로즈 프런트에서 과거 히어로즈의 전신이 된 팀, 그러니까 '''삼청태'''까지 포함해서 유니폼 모양의 LED 뱃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언론에서 떠들 정도로 사태가 크진 않았지만 이미 양측 팬들간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 '''인천'''을 이은 팀과 '''사람'''을 이은 팀 간의 싸움에서 과연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인천 출신의 유명 유격수투수는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또한 정민태의 경우, 현대가 해체되기 전인 2007년 무렵에 SPORTS 2.0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천 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문제는 SK와 키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이며,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동안 대립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양보를 하더라도 골수 팬들은 인정을 안 하는 상황이 분명히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간혹 SK 와이번스의 창단을 놓고 현대처럼 쌍방울 레이더스를 버리고 연고이전했다고 까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이 경우는 인천을 둘러싼 연고이전과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물론 이것마저 문제 삼으면 할 말은 없다. 이외에도 꼴찌를 밥먹듯이 하거나 우승하고 잘나가나 싶더니 뒤통수 치고 떠나버렸던 인천 연고 야구팀들의 역사 탓에 여러 가지로 말이 많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SK의 프론트는 '''쌍방울과의 단절과 동시에 인천 연고를 강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SK에서 의도적으로 쌍방울의 역사와 단절한 것은 '''전주 출신의 야구팀이 인천 연고를 주장하는 개족보'''가 생기게 된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모양새는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어차피 SK가 연고지를 전주에 둘 마음이 없었던 만큼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일단 SK가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해서 얻는 장점이 적었다. 쌍방울 레이더스가 우승을 한적도 없고 인기팀도 아니었다. 전북, 전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팀을 인수하여 연고지 이전해서는 '이제부터 인천팀'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아예 인천을 연고지로 둔 신생팀을 창단하면서 인천 마케팅을 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구단 응원 문구가 '''인천 SK'''다. 연고지 이름이 들어가는 구단은 SK와 2019년부터 창원 NC 파크의 개장으로 인해 '''창원 NC'''를 쓰고 있는 NC 다이노스밖에 없다. 가끔 롯데 자이언츠도 홈경기 한정으로 부산 롯데를 가끔 쓰는 일이 있지만.[206] 또한 1986년 이후 사라졌던 유니폼 상의 전면에 지역명을 표기한 것 역시 SK였다.[207] 그런데 조금 다르게 보면 문제가 생긴다. 비록 인천 연고의 현대 유니콘스가 이사를 갔다고 해도 멀쩡히 존재하고 리그에서 같이 뛰고 있었기에, 신생팀이 인천 야구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시비가 붙는 것만큼은 반드시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2012년 3월, '''현대 유니콘스의 모기업'''이었던 하이닉스는 SK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만약 현대 유니콘스가 인수전까지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었다면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를 망설였거나 과거 프로농구 때처럼 두 개의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게 되는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참고. 당연하지만 SK가 현대 유니콘스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하이닉스를 인수한 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

8.2. 프런트와의 갈등


대한민국 최고의 프런트는 아닐지라도 일 괜찮게 하는 프런트인데 김성근 때문에 안 먹어도 될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초대 강병철 감독과 후임 조범현 감독 모두 아주 좋은 성적이 아니었음에도 임기를 채우고 원만하게 물러났으며, 연봉 협상에 대한 잡음이 거의 없고, '''심지어 김성근의 깽판질도 4년 넘게 참아줬다.''' 하지만 김성근 야신거품이 한화에서 벗겨지기 전까진 이런 부분에 대해 인정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성근이 불펜혹사와 비매너, 더러운 야구로 최전성기 내내 악명을 떨쳤는데 팬들은 '''감독님이 언론과 친밀하지 않아 비난에 가까운 기사가 쏟아지는데 이거 보호 안 해주고 뭐 하냐며''' 프런트를 깠다. 김성근이 한화 감독이 된 이후 노리타를 제외한 팬들이 모두 실감했듯이 그게 보호하려 한다고 보호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보호해야 될 사안도 아니었지만 그 땐 그랬다. 애초에 김성근이 언론과 친밀하지 않다는 거부터 김성근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라 통했던 헛소리.[208]
2011년 7월 29일에 구단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폐쇄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 페이지로 대체했을때도 엄청나게 욕을 먹었고 동년 8월 17일자로 김성근 감독이 자진 사퇴를 선언했을 때도 분명히 김성근이 구단을 엿먹인 상황이었지만 김성근 비판하는 팬은 한 사람도 없었고 프런트가 모든 욕을 먹었다.
급기야 노리타들은 '''문학구장 소요 사태'''를 일으켜 구단에 수천만 원의 손해를 입히고, SK 와이번스 프런트 퇴진 운동까지 벌어는 희대의 깽판을 저질렀다. 박종윤박희수를 바꿔오려던 트레이드를 저지하고, 김성근이 혹사로 망가뜨린 전병두의 재활을 지원하는 등 유능하고 무능하고를 떠나서 옳은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그게 제대로 평가받는 건 김성근 거품이 꺼지고 난 다음에나 가능했다.
FA에도 기민하게 대처하여 2013년 정근우가 구단의 제시액을 걷어차고 한화로 이적할 무렵엔 정근우가 70억을 걷어찼다라고 발표해 갈팡질팡하던 SK 팬덤의 공격목표를 친히 지정해 주는 한편, 다른 구단이 정근우에게 최소 70억 이상으로 베팅할 수 있도록 밑밥을 깔아주는 역할을 했다. 2014년에는 이만수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최정, 김강민, 조동화를 잔류시킨 다음에 중요도가 떨어진 나주환이재영을 내놓음으로써 확실하게 매듭지었다. 2015년에는 박정권, 채병용은 잡고 정우람, 정상호, 윤길현은 내보내 비난받았으나 시즌 들어가고 그 선수들 성적 나온 거 보고 나선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209]
계약기간 지켜주는 건 이만수나 김용희도 마찬가지라서 2015 시즌 종료 후 잠시 김용희 감독 경질설이 돌았지만 코칭스태프 개편안에 관해 선을 그으며 임기를 지켜줬다. 결국 김성근 빼곤 다 좋게 좋게 이별했다. 후임 인선도 매끄럽게 해서 16년 말에 감독면접을 거쳐 트레이 힐만 감독을 비롯해 차기 코칭 스태프 조직을 끝내놓고 17년 1월 염경엽 단장 영입으로 화룡 점정을 찍었다. [210]
용틀임마당 없앴다고 지적받는 소통 부분은 SK 와이번스 트위터/페이스북이 메시지도 받아주고 더욱 활발한 소통을 하기 시작하고 결정적으로 '플레이 위드'의 등장으로 '이미 용틀임마당의 대체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최소한 소통 안 하는 프런트는 아니다. 그리고 용틀임마당 폐쇄가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인지도 의문이다. 삼성사자후LGI love Twins, 롯데갈매기 마당, KIA호랑이 사랑방 등 다른 팀의 공홈을 살펴보면 '''건전하게 돌아가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인신공격성 글이 올라오는 건 기본이고 좆문가질에 연령대 높은 이용자들도 여럿 있다 보니 지역주의에 기반한 글들도 굉장히 많이 올라온다. 엠팍처럼 선비질이란 비아냥을 먹더라도 규제를 통해 과격한 언사를 거르는 것도 아니고(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디씨처럼 처음부터 그런 걸 상정하고 노닥거리는 곳도 아니다 보니 상태가 굉장히 안 좋다. 엠팍같은 곳에서야 우리 용틀임마당은 그냥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고 미화하는 사람들도 나오지만 그럼 '''김성근 재계약하라고 글 도배한 건 누구문학 야구장혼자 불탔단 말인가?'''

8.3. 사건 사고




9. 기타


  • 견제 응원이 없기로 유명했었다. 2007년까지는 견제구호[211]가 있었으나 2008년 윤길현 욕설 사건 이후 김성근 감독의 의견으로 타 팀 선수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없앴다고 한다.[212] 김성근 감독이 기자들과 대화 중 "일본에서는 내야에서는 조용하게 야구보는 사람들이 오고 외야에서 주로 응원을 하는데, 그 이유가 투수들 집중을 깨지 않기 위함이다. 응원하는 건 좋지만 투수 견제구호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투수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말 한마디를 한 이후로 SK 팬들이 자발적으로 견제 응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2011년 8월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이후 김성근 팬덤을 중심으로 한 SK 팬층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견제 응원이 부활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시즌부터 견제 응원이 부활했다.[213]
  • 타팀팬들이 SK를 비하하는 명칭으론 기본적으로 이 있고[214] 여기게 다양한 접두어,접미어를 붙이는데 접두어로는 대표적으로 10, 접미어론 충(蟲)이 자주 쓰인다. 이중 충이란 명칭이 SK 고유의 별칭(물론 안좋은 쪽으로)이라 이해하면 된다. 벌레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2007 코시의 정근우의 다리잡기, 2008 시즌 윤길현 사건, 이기고 있는 9회말 2아웃에서 투수교체 등등으로 지저분하게 야구한다는 의미. 여기에 야구본지 얼마 안되는 티 팍팍내던 SK팬[215]들을 조롱하는 의미도 있다. 이른바 2008년부터 야구본 놈들, 즉 베이징 뉴비.[216]
  • 충이라 불리는 이유를 몇가지가 더 꼽아볼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다음과 같은 이유는 절대로 아니다. 원문
각 팀을 가리키는 비하적 표현이 없지는 않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를 중심으로 확산된 별명이기는 하지만 SK 와이번스를 ‘충’, 두산 베어스를 '범죄두', 한화 이글스를 '꼴칰', LG트윈스를 ‘헬쥐’ 혹은 '조작쥐'로 일컫는 식이다. '''‘충’은 SK의 우리말 발음에서 비롯됐고''', (이하 생략)
SK의 우리말 발음이 어떻게 충으로 연결되는지는 오로지 저 글을 쓴 기자 자신만이 이해할 것이다. 다만 충이 아닌 을 대입하면 맞는 말이긴 하니 슼이 아닌 충으로 잘못 적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 슼충의 어원은 팀이 한창 잘나가던 2007년 김성근 감독 특유의 완벽주의와 승부에 대한 집착이 타 구단 팬들의 반감을 사서 구단의 마스코트인 '비룡'을 비하하며 '이런 쫌생이 야구를 하는 팀은 비룡이 아니라 지렁이 같은 놈들이다'라고 깎아내리는 과정에서 지렁이=미물=벌레=蟲의 과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 최근에는 같은 기업 게임단과 같이 구단에서 '슼', '스크'라는 명칭도 쓰는 듯하다. 'ㅅㅋ'도 구단 영상에서 쓰이는 중.
  • 이란 별칭은 야구판에선 와이번스 이외의 타팀에겐 잘 안 쓰이지만, 야구판을 벗어나서 xx충이란 별칭이 붙으면 xx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인간 이란 의미로 종종 사용된다. 최근엔 이 게임에서 가장 널리 쓰인다.
  • 그리고 SK 프런트가 2014년부터 문학야구장 위탁 관리전권을 인천시로부터 위임받으면서 야구팬들이 미래의 비전으로써 바라던 구단이 직접 야구장을 관리하는 꿈과 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팬들도 프런트를 욕하는 와중에 이 일만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점점 더 발전하고 프런트에서 말해오던 볼파크로써 달라지는 문학야구장을 기대해보자. 그리고 2015 시즌 개장을 앞두고 엄청난 개보수가 이루어 졌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 문서 참조.
  • SK그룹 계열사 중 코원에너지서비스, 부산도시가스의 모기업인 SK E&S라는 회사가 있는데, 정작 이 팀 홈구장이 있는 곳은 삼천리 공급권역이다. 창단 당시 연고지를 획정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된 것.
  • 여담으로 위탁관리전권과 관련해서 사건이 하나 있었다. 2014년 2월 6일 기사에 따르면 구단 사무실이 위의 위탁 전권과 관련해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구단측과 인천시 공무원간의 유착 혐의를 수사한다고 한다. 그리고 4월 8일 수사결과로 인천시 당국과 SK 구단 사이의 유착혐의는 없는 것으로 최종결론이 났고 유착혐의와는 별도로 구단 전직 임원 A와 응원대행업체 사장 B의 횡령 사실이 드러나 입건되었다.
  • 2016년부터 kt wiz 2군이 수원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야구장을 떠나 익산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1군과 2군의 연고지가 같은 유일한 구단이 되었다. 강화군인천광역시 소속이기에 가능한 일. 그러나 NC 다이노스가 2019년부터 NC 다이노스 2군의 홈 경기장을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마산 야구장으로 바꾸면서 1군과 2군의 연고지가 같은 유이한 구단이 됐다.
  • 유튜브에 투수들의 불펜피칭 영상을 많이 올린다. 쑈께이라고 소리지르는 불펜포수 아재(가 아니라 포수 겸 코치 허웅)의 고함이 일품.
  • 현재 KBO 역대 구단 중 삼성 라이온즈 상대 승률이 가장 높은 구단이다. 2020년까지 370전 179승 183패 8무로 승패마진이 불과 -4.[217] 현대의 기록은 공식적으로 한 팀인 삼청태현의 기록을 합산할 시 삼성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기 때문에, 결국 삼성 상대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은 SK가 된다.
  • 반면 2013년 1군에 합류한 NC 다이노스를 상대로는 2017년까지 5년 내내 우위를 점해보지 못했다. 2013년 6승 10패로 밀렸고, 2014년에는 8승 8패로 동률을 맞췄으나 2015년 5승 1무 10패, 2016년 6승 10패로 털렸고 2017년 전반기까지 6승 3패로 선방하다가 후반기 마산 3연전에서 역스윕을 당했다. 그리고 9월 마산 2연전 시리즈를 모두 내주면서 7승 9패로 열세로 마감했다. 그리고 양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처음 붙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SK가 5:10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NC 다이노스 감독 김경문이 두산 베어스 시절 SK 와이번스에 깨져 번번히 우승을 놓쳤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어쩌면 통쾌한 복수일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우승 경험이 없기에 완벽한 복수라고 하긴 좀 뭐하다. 하지만 2018년에는 창단 첫 10위를 기록한 NC 상대로 11승 5패로 우위를 점했다. 2019년에도 9승 7패를 기록했으나 2020년에는 2승 14패로 처참하게 깨졌다.
  • KBO 한국시리즈 한정으로 3차전 만큼은 절대 지지 않는 팀이다. 문학에서 열린 200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1승 1패 후 현대 유니콘스에 역전승을 거뒀고 잠실에서 열린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격렬한 벤치 클리어링 끝에 두산 베어스에 대승을 거뒀으며 또 잠실에서 열린 2008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최정의 홈런을 앞세워 두산 베어스에게 이겼다. 문학에서 열린 2009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2년 전처럼 또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박정권의 홈런에 힘입어 KIA 타이거즈에게 승리했다.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선발투수 이승호구원투수 이승호의 호투에 힘입어 삼성 라이온즈에게 이겼다. 2011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송은범의 호투로 삼성 라이온즈에 승리를 거뒀고 2012년 한국시리즈/3차전삼성 라이온즈 수비진의 실책 연발로 승리했다. 2018년 한국시리즈 3차전은 메릴 켈리의 호투와 제이미 로맥, 이재원의 홈런에 힘입어 두산 베어스에 승리했다.
  • KBO 리그에서 유일하게 사이클링 히트와 인연이 없는 팀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선수도 없고, 허용한 기록도 없는 유일한 팀이다.
  • 모자 로고가 청주 우암초등학교 야구부의 모자랑 똑같다. 색만 다르고 글자만 그대로 똑같은 셈.
  • 은근 대형 선수를 뽑아갈 기회를 놓친 드래프트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으로 2014년 드래프트의 김하성 거르고 ~[218]유서준이 유명하다.[219] 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뽑는 2차 드래프트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잠재력이 있는 내야수들이 있어도 뽑아놓고 별로 안 쓰거나, 아니면 아예 뽑지를 않았거나, 심지어는 다른 팀에 넘겨버렸던 등 여러 삽질이 있다. 이 때문에 서른을 넘긴 김성현나주환이 여전히 주전 키스톤 콤비로 활약하는 등 내야진의 세대교체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나마 트레이 힐만 체제에서 박승욱박성한이라는 신예들이 발굴되었고, 강승호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등 점점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부분. 그리고 2018년에 열린 드래프트에서는 유격수 자원으로 고교 유격수 최대어인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김창평을 영입하였고, 2019년 시즌 중 트레이드로 백업 유격수 및 2루수 자원인 정현을 영입하는 동시에 안상현을 유격수로 출전시키는 중이다.
  • 이외에 신인선발에서도 인천팜 출신들을 놓치기도 하는데, 2011년에 열린 드래프트에서는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이현호를 놓치고 정보가 없었던 서진용을 뽑아서 까인 적도 있으며 2016년에 열린 드래프트에서는 김혜성을 거르고 KT와 가까운 곳 학교이원준을 뽑아서 김혜성이 '동산고 홀대의 희생양'으로 불리는 계기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서진용이 2017, 2018년부터 불펜 핵심으로 활약하며 까임이 줄어든 편.[220]
  • 여타 수도권 구단과는 달리 아이돌 시구를 잘 안 하는 편인데[221], 설현이 2015년 시구할 때[222] 그 SK가 웬일이냐고 야구팬들이 놀라기도 했다. 후술될 유명인 팬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SK는 막내구단인 KT를 제외하면 국내 모든 구단 통틀어 유달리 유명인사나 연예인 팬이 없기로 유명하다. 그래도 뜻 깊은 시구는 자주 하기 때문에 팬들이 시구로 불만을 갖거나 하진 않는다.
  • 게임에서 은근 취급이 안 좋은 팀이기도 하다. 마구마구 초창기 오프닝에서는 당시 현존 팀 중 유일하게 등장하지 않았으며 게임빌 2012 프로야구에서도 라이선스는 못 땄을 지언정 다른 팀들이 실제 모델이 된 팀의 엠블럼이나 유니폼을 어느정도 본딴 것에 비해 sk가 모티브가 된 인천 돌핀스는 혼자만 생뚱맞은 유니폼과 엠블럼으로 등장했다. 한국 프로야구 2002라는 게임 오프닝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sk 팬이라면 조금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어째선지 이 중 단 하나도 이슈화되지 못했다.
  • SKT T1의 영향인지는 몰라도[223] 선수들 중 리그 오브 레전드 등 게임이 취미인 선수가 있다. 그 선수가 김광현, 최정. 선수들이 송도 PC방에서 많이 목격되는 편.
  •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의 서지민이 이 구단의 팬이다.
  • 구단 공식 유튜브의 영상 퀄리티가 좋은 편인데, 특히 썸네일 및 자막의 퀄리티가 호평을 받고 있다. 경기 하이라이트는 방송사 하이라이트를 편집하여 Wmoment로 올라오고, 직캠은 '슼케치'라는 제목으로 올라온다. 또한 선수 인터뷰도 충실히 올라오고, 행복드림구장 시설, 이벤트 및 먹거리도 상세히 소개해주는 편.
  • 2020년 9월 21일, 2021 KBO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 지명을 코로나19로 인해 사무실에서 화상으로 진행했는데 SK 와이번스만 화질이 깨지고 연결 자체도 심하게 불안정해서 SK브로드밴드 인터넷의 품질이 처참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LG 트윈스kt wiz는 문제가 없었다. 과거 T1에서도 SK브로드밴드 인터넷을 사용했으나 경기 도중 장애가 발생해서[224] KT로 변경하였다.
  • 1990년대 후반부터 SK그룹의 회장은 최태원이었지만 본인이 직접 구단주를 맡은 적은 없으며, 창단 초창기부터 구단주를 맡았던 사람은 SK그룹 회장과 SK텔레콤 명예회장을 지낸 손길승 씨였다. 이후에는 구단주 대행 체제로 이어졌는데 SK텔레콤 조정남 전 부회장과 SK텔레콤 사장 출신인 정만원 부회장이 구단주 대행을 맡았던 적이 있다. SK 와이번스 최후의 구단주였던 최창원 부회장은 SK가스와 SK케미칼의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막내 아들이다. 그래도 학창시절부터 야구에 심취한 열혈 야구팬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야구와 관련되어 있지 않은 구단주는 아니다. 이와는 별개로 최태원 회장은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야구장을 찾아 일반석에서 임원들과 팀을 응원했으며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는 헹가래도 받았다. 참고로 최태원 회장은 SK스포츠 팀 중 여자 핸드볼팀을 제외한 어느 구단에서도 구단주를 맡지 않고 있다. 축구단SK에너지 대표이사, 농구단게임단SK텔레콤 대표이사, 남자 핸드볼팀SK하이닉스 대표이사가 구단주다.

10. 지역 연고 학교


과거에는 인천+경기+강원 이란 프로야구 최대 팜을 보유하는 것에 비하면 스카우트 능력은 극악이란 평가가 다수였다.[225][226][227] 허나 2010년 시즌부터 전면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어 지역연고제를 활용하기가 힘들어졌다. 당장 전면 드래프트 도입 후 시행된 세 차례의 드래프트에서 인천 출신 선수는 고졸, 대졸을 막론하고 단 1명만 지명되었으며 그마저도 입단 1년 만에 방출되었다. 그래도 2010년 드래프트에선 좋은 투수들을 잘 뽑았다는 평.[228]

11. 응원



11.1. 응원단



[image]
'''2020 시즌 SK 와이번스 응원단 '''
'''응원단장'''
정영석
'''장내 아나운서'''
곽수산
'''치어리더'''
김도아[230], 김맑음, 박한솔, 박현영, 배수현, 안이랑[231], 오지연, 오채현, 유보영, 이다연, 이미래, 이지현

11.2. 응원가




11.3. 연고지 지명 강조 응원구호의 원조


다른 구단이 '최강OO'[232] 형태로 구단의 응원구호를 오랫동안 밀어왔던 것과 달리 SK는 창단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인천광역시 연고팀 = SK"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응원구호로 '''"인천 SK"'''를 꾸준히 강조해왔다. 물론 여기에는 어쩔 수 없었던 사연이 있었다. 창단 초창기 인천 연고에 대한 SK의 기반이나 인지도가 워낙 빈약했고[233] 기존 인천 연고팀상처뿐인 야반도주 이후 인천야구의 새로운 정통성을 잇는 확실한 인천시민의 팀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하는 처지였기에 "인천 SK" 구호를 유독 강조했다.[234]
그런데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SK 외에도 구단의 응원구호나 응원가에 지역명을 넣어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 홈경기에 한해 "부산 롯데"라는 구호를 응원가에 넣고 있고 신생구단인 NC 다이노스는 2019년 이범형 응원단장 부임 이후 "창원 NC" 응원구호를 사용하고 있다. 수원의 kt wiz는 별도의 응원 구호는 없지만 평소 구단명을 언급할 때 수원을 강조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잦다.[235] 여기에 창단 이후 "무적 LG"를 고수하던 LG 트윈스도 "서울 LG"[236]라는 구호를 넣기 시작했고 "최강 두산"을 쓰던 두산 베어스도 일부 응원가에서 "서울 두산"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KBO 리그 내에서 지역명을 강조하는 응원구호로는 SK가 확실히 원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SK도 2010년대 초부터 "인천 SK" 외에 "투혼 SK"라는 응원구호를 선보인 적이 있었지만[237]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결국 응원구호가 등장하는 모든 샘플링 음원에 "인천 SK"라는 구호가 들어갔다. "투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불꽃'''투혼''' 인천 SK"로 사용한다.

12. 역대 캐치프래이즈


  • 2000 : 패기의 SK! 승리의 와이번스!
  • 2001 : 불 같은 패기! 끝없는 감동! SK와이번스!
  • 2002 : 패기의 SK! 팬과 함께 우승 영광!
  • 2003 : 세계로 가는 인천! 우승을 향한 SK!
  • 2004 : 정상을 향한 무한비상! SK와이번스!
  • 2005 : 구도 100년! 챔피언 원년! 인천 SK!
  • 2006 : 우승을 향한 행복날개! SK와이번스!
  • 2007~2008 : Fan First! Happy Baseball!
  • 2009 : 야구장으로 소풍가자
  • 2010 : 'Go Green! Enjoy Baseball!'
  • 2011 : 두 드림! SK 와이번스! 레츠 고 V4!(Do dream! SK Wyverns! Let's go V4!)'
  • 2012~2014 : 터치 와이번스! 고 브이 포!(Touch Wyverns! Go V4!)
  • 2015 : One Team One Spirit
  • 2016 :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New Start, New Challenge)
  • 2017 : 따뜻한 울림, 뜨거운 질주
  • 2018 : 다함께 더높이
  • 2019 : 열광, 자부심, 그리고 2019
  • 2020 : 강한 기본, 투혼의 SK

13. 네임드 팬


와이번스 구단이 2000년에 창단하여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기존 인천지역 팬들도 원래 있던 삼청태현의 팬이라서 SK로 이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은 인천광역시 출신이거나 인천광역시에 거주 중인 인사들이 와이번스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13.1. 인천광역시 출신


  • 염경환
    - 이 사람도 삼청태현 시절부터 골수 야구팬이다. 2010년에는 SK 와이번스 편파방송 캐스터를 맡기도 했다.
  • 힙합 그룹 리듬파워(보이비, 행주, 지구인)
    - 그룹 멤버가 모두 인하부고 출신이다. 방사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같은 인천 출신인 라임어택의 피쳐링을 받은 "인천 상륙 작전"이라는 곡을 내기도 했다. 특히 행주의 가사 내용은 야구와 관련한 내용으로 빗댄 것이 많고[238], 앨범 커버 자체가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누구하나 빠짐없이 잘생겼다 리듬파워' 라는 앨범에서는 대놓고 SK 모자도 나온다. 또 다이나믹 듀오의 "만루홈런"을 리믹스한 "만루홈런 인천 Remix"에는 씨잼이 참여했으며, 원래 가사인 "I'm feeling like 이대호"에서 이대호 대신 김경기를 넣었고, 가사 내용도 인천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2016년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초청돼 시구와 특별 공연을 했다. 여러모로 덕력도 비범하고 성공한 덕후도 되었고, 아마 최근 시점에서 제일 잘 알려진 SK팬이 아닐까 싶다. 2018년 KBO리그 홈 개막 2연전 마지막 날인 3월 25일 리듬파워가 만들어 공식적으로 쓰이는 응원가를 직접 선보였으며, 세 멤버가 시구를 동시에 하는 코믹한 상황도 연출했다. 1회초가 끝났을 때 SK 응원단상에서 공연도 했었다.
  • 구혜선
    - 부평여고 출신. 201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시구도 한 바 있다. 여담으로 이 4차전을 끝까지 다 보고 갔다는데, 팀은 8대 4로 패배. 답답해하면서 오징어를 씹는 모습이 중계석에 포착되기도 했다. SK가 직접 초청한 것은 아니지만[239] 2018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도 문학구장 마운드에서 시구를 했다. 그리고 이 때는 SK가 이겼다.
  • 홍인규
    -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들과의 문학 직관 사진을 종종 게시한다. 다만 생계형 개그맨인지라 다른 팀 시구도 거절하지는 못하는 듯.
  • 이혁재
    - 인천고-인하대 출신. 2000년대 초중반 자신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구단 공식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 정인영
    - 연수여고 출신. '야구여신'이라 불리며 야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중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응원팀을 밝히지 않았지만 야구 프로그램을 그만 둔 후에는 고향팀 SK를 응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유승호
    -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고양시로 이사를 갔다. SK 와이번스가 파란색 유니폼을 입던 2006년 이전에도 한 번 시구한 경력이 있으며, 2008년 어린이날에도 시구를 했었다. 여담으로 이 날은 SK와이번스 도그 미르가 처음으로 문학구장에 등장한 날.
  • 2012 런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김장미
    -최정의 열렬한 팬임을 자부했고 SK 시구도 하고 싶다고 인터뷰 한 바 있다. 실제로 2012년 8월 경 성사될 수 있었으나 일정의 충돌로 현재까지 보류가 되고 있는 듯.
  • 은서(우주소녀)
    - 팬싸인회에서 자신이 SK 와이번스의 팬임을 밝힌듯 하다. 인천광역시 출신이라 연고지를 따라서 팬이 된 듯 하다. 링크1 링크2
  • 민경욱
    - KBS 앵커 출신이며, 연수구 을에서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민경삼 사장과는 사촌 관계이며, 21대 총선 낙선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는 와중에도 페이스북에 "부정선거 때문에 잠깐 신경을 안 썼더니, 왐마, SK가 꼴찌여? 응원을 시작해야 되겠네"라고 SK를 응원하는 글을 올린 적도 있다. #
  • 케이(러블리즈)
    - 러블리즈 멤버, 2019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축하 무대 후 시상자로 나와서 인천의 딸이라서 SK 와이번스에서 시구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13.2. 비인천광역시 출신


  • 노라조조빈
    - 2010년 천하무적 야구단 방영 당시 SK 와이번스 팬이라 말했으며, 2016년 SK 와이번스 홈경기에서 시구까지 하며 확인사살. 이게 직간접적인 이유일지는 모르겠으나 SK 응원가에는 유독 노라조의 노래가 많다. [240]
  • 제시
    - 시구 경력도 있고,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땐 방에 SK 유니폼 등이 여럿 보였다.
  • 이채영
    - '와이번스 걸' 출신 답게 SK팬이다. 그는 와이번스 걸 활동이 종료된 후,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이에 두산으로 응원 팀을 바꾼 게 아니냐는 의혹이 생겼고, 이채영은 "팀과 상관없이 야구 자체를 좋아해서 보러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 만화가,스트리머 이말년
    - 본래 전주 출신이고 원래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팬이라 SK를 응원한다

14. 같이보기



15. 둘러보기







[1] 2021년 2월 23일 본계약 체결 이후 구단 운영 주체는 SK에서 신세계로 전환되었으나 회계 처리는 3월 5일 완료되고#, 류선규 SK 단장은 "3월 5일을 인수를 끝내는 '딜 클로징'으로 잡고 있다. 그 날짜를 기점으로 그때까지 SK 와이번스고, 그 다음 신세계 야구단이 되는 쪽으로 얘기를 하고 있다"라고 했으므로 3월 5일이 SK 와이번스 종료일이자 법인 매각일으로 볼 수 있다.[2] SK그룹 산하 스포츠단 브랜드인 SK스포츠 내의 프로팀은 프로야구팀 SK 와이번스와 프로축구팀 제주 유나이티드, e스포츠팀 T1만 법인으로 설립되어 있다. 나머지 프로팀인 서울 SK 나이츠는 별도 법인이 아닌 SK텔레콤 내에서 관리되고 있다.[3]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 2층,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구단 사무실이 홈구장 밖에 있다. 다만 주소상으로는 주경기장과 야구장이 같은 곳이다. 이에 대한 에피소드로 2021년 1월 새로 이적한 최주환이 시무식 참석 차 사무실을 방문하였는데 워낙 멀어서 직원들과 인사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날짜를 물어서 방문하였다고 한다.#[4] 도시 연고로는 인천광역시이며, 광역 연고로는 김포시, 부천시, 광명시, 시흥시, 안산시 등 인천과 인접한 수도권 서부 지역을 kt wiz와 함께 맡고 있다. 경기도 북부 지역도 SK의 광역연고에 끼우기도 한다. 다만 팬 베이스는 서울 서부가 주축인 키움 히어로즈와 살짝 겹친다.[5] 과거 광역 연고제 시절 인천 연고팀의 연고지 범위는 인천광역시를 넘어 경기도강원도, 이북5도까지 아우르는 수준이었다. 1차 지명 신인 우선지명 연고지도 인천, 경기, 강원지역 이었다. 현재는 인천광역시 내 3개 고등학교(인천고, 동산고, 제물포고)와 경기도 내 일부 고등학교(성남시-야탑고, 구리시-인창고)에 대해 SK가 우선 지명권을 갖고 있다. 경기도 지역의 지명권은 수원시 연고 팀인 kt wiz와 분할해서 보유하고 있는 상태.(수원의 두 학교(유신고, 장안고)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 중 SK가 성남 야탑고구리 인창고를 지명 대상 학교로 택했고 신규 창단 팀들은 적절히 갈라서 1차지명 대상에 넣었다.)[6]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막내 아들이다. 현재 SK가스와 SK케미칼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야구에 심취한 열혈 야구팬이라고 알려져 있다. SK와이번스가 신세계그룹에게 매각되면서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며.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후 야구단의 구단주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맡을 것으로 예상.[7] 와이번스 창단 이전인 1990년대 후반부터 SK그룹의 회장은 최태원이었지만 본인이 직접 구단주를 맡은 적은 없다. 창단 초창기부터 구단주를 맡았던 사람은 SK그룹 회장과 SK텔레콤 명예회장을 지낸 손길승이다. 이후에는 구단주 대행 체제로 이어졌는데 SK텔레콤 조정남 전 부회장과 SK텔레콤 사장 출신인 정만원 부회장이 구단주 대행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래도 최태원 회장은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야구장을 찾아 일반석에서 임원들과 와이번스를 응원하곤 한다. 2007년2008년 우승 때는 헹가래도 받았다. 참고로 최태원 회장은 SK스포츠단 6개 중 여자 핸드볼팀을 제외한 어느 구단에서도 구단주를 맡지 않고 있다. 축구단SK에너지 대표이사, 농구단게임단SK텔레콤 대표이사, 남자 핸드볼팀SK하이닉스 대표이사가 구단주다.[8]문학야구장. 2015년 3월 31일자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9] 구장 이름이 이름이니만큼 새로운 팀명이 정해지면 바뀔 예정이다.[10] 아테나의 상징 중 하나가 올빼미.[11] KBO 가입 절차상 가칭이며, 구단명 최종 확정 전까지 선수단은 SK 와이번스로 활동한다. MBC 청룡의 사례처럼 구단명이 바뀌어도 역사가 승계되던 것과 마찬가지로 SK 와이번스의 역사까지 승계된다.[12] '''해체 후 재창단'''이라는 방식으로 야구단을 만들었는데 SK가 이 방식을 활용한 후 정확히 8년 뒤에 서울 히어로즈가 해체 후 재창단 방식으로 팀을 만들었다. 2000년 1월 당시 법정 퇴출(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하지 않고 순수 신생팀에 준하는 형식으로 창단했다. 따라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역사를 SK 와이번스가 계승하지 않는다.''' 이 때 KBO가 해체된 쌍방울 선수들이 타 구단으로 개별 계약을 맺고 흩어지지 않도록 보류권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다수 선수들이 신생팀 SK에서 뛸 수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2000년에 창단하자마자 바로 1군 리그에 참가하는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신생팀 드래프트를 통해 기존 구단에서 각 2명의 선수를 지원받았고, 외국인 선수도 3명을 영입해 출전시키는 혜택도 받았다.[13]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은 SK그룹 내에서도 지배구조가 사실상 분리되어 있는 SK가스를 지배하고 있다. 다만 구단 지분은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이 모두 보유하고 있다.[14] 원년 이후에 창단한 팀 중에서는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 기록을 갖고 있다. SK보다 한국시리즈에 더 많이 진출한 삼성(18회), OB-두산(14회), 해태-KIA(11회)는 모두 원년 구단이다.[15] SK 와이번스 외에 삼성 라이온즈(2010~2015), 두산 베어스(2015~2020) 등 세 팀만 세운 기록이다.[16] 2002 시즌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자진 사임.[17] 2007, 2008, 2010 한국시리즈 우승[18] 2011 페넌트레이스 도중 경질. 당시 이만수 2군 감독이 감독 대행으로서 2011 시즌 잔여 경기를 지휘했다.[19] 2018 한국 시리즈 우승[20] 2020 시즌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자진 사임.[21] 2020 시즌은 염경엽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인해 감독 수행이 불가능해지자 6월 25일부터 8월 31일까지 박경완 감독대행 체재로 시즌 운영을 했다가 염경엽 감독이 복귀했지만 9월 6일 또 다시 건강이 악화돼 응급실로 이송됐고 결국 남은 시즌도 박경완 수석 코치가 지휘하게 되었다.[22] 이 쪽은 "기아"라는 단어가 굶주림을 뜻해 과거 해태의 가난한 이미지가 연상된다고 해서 영문 표기를 쓰고 있다.[23] 인하대역 비룡삼거리 서쪽 지역에는 SK에너지의 저유소가 있었고 이 저유소 부지 내에 와이번스 2군 연습구장이었던 SK 드림파크가 있었다. 정말 우연하게도 비룡리라고 불렸던 동네에 비룡을 마스코트로 삼은 야구단의 연습장이 있었던 셈. 드림파크는 2007년 철거됐고 현재는 그 자리에 인천 SK 스카이뷰 아파트가 들어섰다. 참고로 SK 드림파크 철거 이후 와이번스 2군숭의야구장과 송도 LNG 야구장을 전전해야 했고 2015년 4월이 되어서야 강화군번듯한 연습구장을 갖게 됐다.[24] 슼이라는 표현은 구단에서도 써먹고 있다. 별다른 애칭이 없던 구단의 공식 유튜브 계정 명칭에 팬들이 즐겨부르던 '''슼튜브'''가 붙은 것이 대표적 사례.[25] 모기업이 정유사업을 관할하는 SK에너지가 아니라 SK텔레콤임에도 주유소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모기업 SK의 이미지와 과거 유니폼이 주유소 알바생들이 입는 유니폼같다고 해서 입은 오명이다. # 진짜 주유소로 볼 수 있는 쪽은 제주 유나이티드.[26] 두산이 최악이다를 줄여서 돡이라 불렀는데 그것을 응용한 것.[27] 삼성은 2010년 한국시리즈부터 2015년 한국시리즈까지 6년 연속 KS 무대를 밟았다. 이 기간 중 4회 우승, 2회 준우승. SK 와이번스는 3회 우승, 3회 준우승을 기록했다.[28] 두산 베어스는 2015년 한국시리즈 부터 2020년 한국시리즈 까지 6년 연속 KS 무대를 밟았다. 3회 우승, 3회 준우승을 기록.[29] 4위 기록은 해태 타이거즈(1986년~1989년)의 4연속 진출.[30] 역대 한국시리즈 2년 이상 연속 우승 사례는 해태(1986-89년, 1996-97년), 현대(2003-04), 삼성(2005-06년, 2011-14년), 두산(2015-16년) 등 총 5개 구단만이 이룬 업적이다.[31] KBO 리그 단일 시즌 순수 최다승은 2016년 두산 베어스의 93승.[32] 아시아 프로야구 리그 사상 단일 시즌 단일 구단 최다 연승 기록도 SK가 보유하고 있다. 2009년 8월 25일 문학 두산전부터 9월 26일 문학 두산전까지 '''19연승'''.[33] 파랑색이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상징 색 파랑보다는 조금 짙은 남색에 가까운 색상이다. 주니치 드래곤즈LA 다저스의 파랑색과 비슷한 파랑.[34] 2000년대 중반 용돌이, 용순이로 이름이 바뀐 적이 있다.[35] 투고타저를 넘어 투신타병의 팀 컬러가 절정에 다다랐던 팀이 태평양 돌핀스였다.[36] 소수의 멀쩡한 투수에 의존해야 하는 당시 팀 사정도 있었지만 강병철의 야구 역사에는 특정 투수의 혹사 사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에는 최동원염종석이 그랬고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에는 구대성을 엄청나게 굴렸다.[37] 리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KBO가 마련한 신생팀 전력지원책의 일환으로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팀(현대 유니콘스)에서 보호선수 20명 외 1명, 준우승팀(두산 베어스)에서 21명 외 1명을 현금 트레이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 조웅천과 같이 현대에서 넘어온 선수가 조규제였고 두산에서 온 선수는 강혁이었다.[38] 김성근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이러한 투수운용은 장기적으로는 팀 투수진에 크나큰 독이 되고 말았다. 야인으로만 죽 살았다면 모르겠지만, 김응룡도 살리지 못한 팀으로 간 후에야 이러한 점이 드러났으니 참으로 씁쓸한 단면.[39] 이승호(은퇴), 정대현(롯데 자이언츠로 FA 이적 이후 은퇴), 정우람(한화 이글스로 FA 이적), 윤길현(롯데 자이언츠로 FA 이적), 송은범(KIA 타이거즈, 이후 한화 이글스로 FA 이적), 고효준(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이후 롯데 자이언츠), 전병두(부상으로 인한 은퇴) 등.[40] 2019년 시즌 초반에는 김무관 전 1군 타격코치의 책임론이 일었는데, 박경완 수석코치의 타격코치 겸임 이후에는 후반기 타격이 영 좋지 않다.[41] 참고로 김성근 시절에는 다운스윙을 하지 않아 혼나곤 했는데, 이만수 시절 메이저식 어퍼스윙을 장착하고 나서야 홈런에 눈을 뜬 것이다. 본인 스스로 홈런왕이 된 것은 이만수 덕이라고 하며 직접 밝힌 내용.[42] 2016년 6월 14일 대구 삼성전~7월 9일 인천 kt전. 이 기간 중 무려 39개의 홈런이 쏟아졌고 그 중 3분의 1인 13개를 최승준이 몰아쳤다.[43] 개막 이후 57번째 경기인 2017년 6월 7일 문학 넥센전에 한동민이 홈런을 치면서 시즌 팀 홈런 갯수가 무려 100개를 넘어섰다. 이는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빠른 시점에 팀 홈런 100개를 돌파한 것이며 역대 단일시즌 팀 홈런 최고기록(213개)을 세웠던 2003년의 삼성 라이온즈(58경기 만에 팀 홈런 100개)보다도 1경기가 빠른 페이스다. 그야말로 역대급 팀 홈런 페이스.[44] 역설적으로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이 김성근이라고 한다. 2007년 구단이 스포테인먼트 정책을 강조하자 사인이나 사진 촬영을 거부하면 벌금을 내도록 선수단 규정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45] '''2015년 팀이 포시 떨어진 다음날''' 리그 오브 레전드를 켜서 야스오게임을 고의로 던져서 살짝 논란이 되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도박 사건이 터지며 "사고치는 것보단 게임 던지는 게 차라리 낫다"라는 반응도 나왔다.[46] 20년째 비슷한 사례가 매년 5월만 되면 방망이 대신 삽으로 야구했던 두산 베어스오월두산 [47] SK의 첫 번째 가을야구 진출 시즌이었던 2003년에도 4~6월에 선두로 치고 나가며 승승장구했지만 역시나(!!!) 7월에 폭망하면서 결국 그 해 정규시즌을 4위로 마감해야 했다. 그래도 특유의 가을본능이 이 때부터 발휘된 모양인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KIA 타이거즈를 연달아 무패 스윕으로 제치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48] 정확히는 광복절 직후부터[49] 그래서 그런지 가을과 관련된 선수들의 별명이 많다. 가을동화, 가을거지 등[50] 이 당시 SK의 7연패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록이었는데 김성근 감독의 SK 부임 이후 최다연패 타이기록이었다.[51] 2014년 부상에서 복귀했는데 바로 타구에 손가락을 맞아 시즌아웃된 것도 여름이다.[52] 마지막으로 고칠 만한 것이 3루 띠전광판의 교체라는 의견이 나왔는데... 진짜로 전광판을 고쳤다.[53] 이 때문에 두산 베어스 팬들이 매년 스토브리그 때마다 재정사정이 넉넉한 SK를 부러워한다.[54] 키움을 제외한 타 구단은 1년에 150억~200억 정도의 적자를 보며, 이를 메꾸기 위한 차입으로 연 200억 정도가 들어간다. 삼성은 삼성카드, 두산은 두산중공업, NC는 NC소프트에서 돈이 들어가는 식. 한때 흑자를 보기도 한 롯데의 경우도 매년 롯데제과를 통해 130억원이 광고비 명목으로 지원되고 있다. 2009년부터 10억원 가량 흑자를 꾸준히 본것도 170억원의 수익과 더불어 계열사 광고 130억원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55] 이때 SK는 장민재에게만 5승을 헌납했다.[56] 참고로, SK는 이 시즌 상대전적 2할 미만(압도적 열세)의 팀이 무려 '''3팀'''(NC 2승 14패, kt, LG 3승 13패)이나 있다. [57] 1위은 선동열의 롯데전 상대 20연승.[58] 인천 연고지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던 창단 초창기에는 지역민들에게도 찬밥대우를 받는 비인기 구단이었다. 그러나 구단 측에서 지역 친화적 마케팅을 꾸준히 펴 나가고 성적 또한 꾸준히 좋아지면서 팬들의 시각도 달라졌다. 충청과 호남 출신 인구가 많이 섞여 있기에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처럼 인천시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현재 인천에서는 가장 압도적 지지를 받는 구단이 SK다.[59] 부천시는 최근 들어 근처에 고척 스카이돔이 인접해 있는 키움 히어로즈와 팬덤이 조금씩 나뉘었지만, 그래도 SK 와이번스의 팬이 더 많다. 여전히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은 부천에서 가까운 데다가 쌍방울 시절부터 팬들이 많았기 때문. 또한 수도권 전철 1호선서울 도시철도 7호선이 인천까지 다니기 때문에 교통편도 문제가 없다.[60] 2012년 수인선, 2018년 서해선 개통으로 접근성이 나아지고 있다.[61] 김광현의 고향이며 시흥시와 마찬가지로 수인선 개통으로 야구장과의 접근이 수월해졌다.[62] 인천 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되면서 검단 지역을 통해서 접근하기가 쉬워졌다.[63] 물론 서울에 거주하는 팬들이 잠실 3루석을 전부 채울 정도로 많지는 않다. 대부분은 서울과 이동이 용이한 인천광역시 거주 홈팬들의 원정 직관이다. SK그룹 계열사 임직원들이 관람하기도 한다.[64] 전주↔광주, 전주↔대전의 거리는 대전이 조금 더 짧다. 실제로 전주 야구장을 기준으로 자동차를 운행한다고 봤을 때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까지 거리보다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까지 거리가 조금 더 가깝다.[65] 김민재를 따라 SK팬이 된 이들 중 다수는 여성 팬들이다. 현역 시절 김민재의 부산지역 여성 팬덤이 꽤 막강했다고 전해진다.[66] 실제로 인천야구의 코어 팬들이라고 할 수 있었던 도원전사 중 상당수가 현대의 연고지 이전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다. 큰 문제는 이들 중 아예 야구에 대한 환멸을 느껴 '''야구를 끊어버린 팬들'''의 숫자 또한 상당했다는 점이다.[67] 숭의야구장의 관중 수용 규모는 최대 12,000명이었다. 과거 126경기 체제에서 홈 63경기 전체가 매진된다고 해도 전체 홈 관중이 756,000명 수준에 못 미친다. 게다가 삼청태현의 역대 성적을 보더라도 1983년, 1989년, 1994년, 1996년, 1998년을 뺀다면 대부분의 시즌을 하위권에서 보냈기에 관중동원이 잘 될래야 잘 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참고로 삼청태현 시절 인천 연고팀의 단일 시즌 홈 최다 관중 기록은 1994년 태평양 돌핀스의 476,277명이었고 이 기록은 13년 뒤인 2007년 SK에 의해 깨진다.[68] 페넌트레이스 때만 보더라도 1루 응원지정석을 빼면 선 채로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의 숫자는 확실히 적다. 조용히 앉아서 응원하다 득점 상황이 나오면 그제서야 열광하는 정도의 팬들이 꽤 많다. 때문에 극성스럽다고 여겨질 정도의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팬들과 비교한다면 정말 얌전한 편. 물론 가을야구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1층부터 4층까지 열렬히 응원하는 SK 팬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69] 인천광역시의 출신지별 인구 구성을 볼 때 충청도전라도 출신 인구가 매우 많다.[70]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 인근에 있고 인천SK행복드림구장을 지하철로 오갈 수 있는데다 두 팀 모두 팬들의 충성도가 남다르다.[71] 수도권 이외 구단 중 한때 인기 구단으로 분류됐던 삼성 라이온즈도 현재는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에 티켓파워가 확실히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아직 팬층이 두텁지 못한 창원의 NC 다이노스도 창원을 벗어나면 원정 팬들을 많이 끌어모으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서울특별시에 연고를 둔 3개 구단 모두 자력으로 자신들의 홈구장을 매진시킬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데다 이들 팀도 지방 원정 경기를 가면 응원하는 직관 팬의 숫자가 홈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72] 인천 연고 프로스포츠 팀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73] 특히 먹거리가 충실해 베어스포티비에서도 중계하기도 했다.[74] 거기다가 서진용은 시즌 초반에 비해서 실력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불펜들이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이 줄어들고 칭찬이 늘어나고 있다. SK 팬덤의 성향을 알 수 있는 좋은 예.[75] 다른 선수들은 그냥 반등의 기회 없이 꾸준히 못하거나 반등하는 듯 하다가 도로 추락했기 때문에 냄비라고 보기 어렵지만, 다린 러프의 경우는 초반 한 달을 제외하면 꾸준히 잘했는데 그 초반 한 달 동안 발디리스보다 못하다느니 등의 온갖 개쌍욕을 먹었다.[76] 심지어 모 팀의 경우는, 에이스 투수가 포스트시즌에서'만' 못한다는 이유로 나무위키에 먹튀 항목에 당당히 올라가고(현재는 지워진 상태) 당연히 할 줄 알았던 재계약에도 실패했으나(그 선수가 상위 리그로 간 것도 아니다. 그 선수는 그 후로 마이너리그와 중남미, 대만을 전전하고 있다.), SK 팬들은 켈리가 두 번의 와일드카드전에서 모두 크게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두 경기 못한 건데 왜 까냐는 반응이 대세이다.[77] 그러나 김성민을 떠나보내야 했던 적도 있다. 대신 받아온 선수가 김택형.[78] 남태혁의 경우에는 1루, 지명타자 중복자원을 영입했다고 팬들의 반발이 상당했다.[79] 일례로 마구마구에선 세 명이 모두 SK 소속 레전드카드가 있다.[80] 조인성 타율 0.267 15홈런 2도루, 임경완 방어율 3.42 15홀드[81] +옵션 3억[82] +옵션 1억[83] +옵션 9천만[84] +옵션 2억[85] +옵션 1억5천만[86] +옵션 2억[87] +옵션 4억[88] 이후 옵션 4억이 추가로 있다고 밝혔다.[89] +옵션 6억[90] +옵션 4억[91] +옵션 2억[92] 옵션 미공개[93] +옵션 12억. 공개된 옵션금액중엔 가장 크다.[94] 반면 SKT T1은 2018년 한국시리즈와 LCK 종료 이후 기존 스쿼드를 핵폭탄급으로 깨부수면서 외부 FA를 영입하고 페이커에게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 수준의 연봉을 제시했는데, 이에 SK 와이번스 팬들은 아쉬워하면서 T1은 반년 부진에 FA 현질하냐고 푸념하기도 했다.[95] 최정 역시 4년 계약으로 따지면 70억 수준이다.[96] 물론 김광현의 옵션 포함가까지 다 합치면 90억은 넘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97] 그리고 민병헌은 구매는 정답이나 가격이 오답이라고 평가받았다.[98] 한화는 정우람이 제 역할을 잘 해주긴 했는데, 4년 84억이라는 연봉 부담 때문에 오버페이라고 평가받는 측면이 있었으며 결국 2번째 FA에서는 다운된 금액으로 재계약했다. 그리고 정근우는 한화에서 완벽한 몸값을해주며 클래스를 입증했다[99] 이승호의 경우 롯데의 출혈은 적었고, 대신 잔여연봉을 지급했던 NC 다이노스 사상 최초의 먹튀로 전락했다.[100] FA는 아니지만 이정담도 망했다. 반면 작은 이승호의 보상선수로 와서 SK를 거쳐 두산으로 온 허준혁은 두산이 잘 써먹는 중. 무엇보다 두산은 이미 박정배를 두상바로 키운 전적이 있다.[101] sWAR, 수비RAA를 제외한 WAR 모두 마이너스 0.4다.[102] 다만 전정신경염 때문에 겪은 부진이라 충분히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103] 이에 SK 팬들은 FA 외부영입 및 젊은 선수 기용 최우선 순위로 유격수 포지션을 꼽고 있는 중이다.[104] 태업 의혹이 있다.[105] 방출당할 정도로 부진하지 않았지만, SK는 마이너 시절 사이클링 홈런을 친 경력이 있는 혼즈를 장타를 보고 뽑았는데 원하는 만큼 장타력이 나오지 않아서 방출했다.[106] 시즌중 롯데로 트레이드[107] 스프링 캠프 도중 부상으로 시즌 전 방출[108] 에르난데스의 대체용병[109] 러핀의 대체용병[110] 삼성 이적 후 SK와 재계약[111] 카브레라의 대체용병[112] 산체스의 대체용병[113] 야수보다는 투수가 급하다고 판단한 SK가 카브레라를 재영입하기 위해 방출했다.[114] 피커링의 대체용병[115] 시오타니의 대체용병[116] 쿠비얀의 대체용병. 케니 레이번의 한국 이름에서 한글자만 빼면 똑같다.[117] 레이의 대체용병.[118] 존슨의 대체용병[119] 매그레인의 대체용병[120] 로페즈의 대체용병[121] 심리적 문제로 비시즌 은퇴함에 따라 계약해지를 했다.[122] 슬래튼의 대체용병[123] 구단 역사상 최초로 처음에 뽑은 용병 세명 모두 퇴출. 이 년도의 실패를 겪고 이후부터는 용병을 실력이 아닌 인성 위주로 뽑게 되었다. 2014년 1년을 버리고 미래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좋은 실패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124] 부진하던 와중 계투로 몇경기 나와 좋은 성적을 보였으나 아들의 건강 문제로 고국으로 복귀 후 돌아오지 않으며 방출. 이후 이만수감독의 고용에 대해 비판했다.[125] 감독과 언쟁 후 방출[126] 레이예스의 대체용병[127] 밴와트의 대체용병[128] 세든의 대체용병.[129] 워스의 대체용병[130] 구단 역사상 최초로 3명의 용병 모두 방출 없이 시즌 종료. 세 용병의 성공에 힘입어 팀은 8년만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후 용병중 한명은 MLB 직행, 한명은 재계약으로 대활약 후 NPB 진출, 한명은 재계약에 성공하며 구단 역사상 최장수 용병으로 남게 되었다. 역대급으로 용병농사가 성공한 시즌.[131] 방출당할정도로 부진하진 않았으나 이닝을 많이 못 소화하고 구속이 기대보다 저조해서 우승을 노렸던 SK는 육성형으로 영입한 다익손을 방출하고 윈나우를 할 수 있는 용병을 영입했다.[132] 다익손의 대체용병[133] 킹엄의 대체용병[134] 당시엔 용병의 계약금이 정해져 있어서 2013년엔 그 정도 금액에 적당한 실력이였다.[135] 시즌 방어율 4.15다. 털린 경기를 포함해도 나쁘지 않은 성적,[136] 이건 어쩔 수가 없었는데, 아들이 실어증자폐증에 걸렸다고 한다.[137] 울프의 당시 성적을 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138] 워스의 경우는, 흑역사라고 보기에는 SK에게 제이미 로맥을 추천한 장본인이라서 까방권을 갖췄다. 인성 역시 좋았다는 평이 다수.[139] 지명은 받았지만 주로 마이너에 있었고, 마이너에서 중상위권의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ML 승격이 계속 밀렸다[140] SK 최초의 외인 다승왕[141] 기록상으론 좋아 보이지만 2012년 평균자책점 3.57 12승 9패를 찍은 이후 꾸준히 하향세를 타더니 2014년엔 트리플A 평균자책점 최하위를 기록했다. 최하 2등은 노폭전드.[142] SK 역대 3번째, SK 용병 최초.[143] 금지어의 대체용병[144] 역대 최저타석 30홈런.[145] 이 부상으로 밴와트는 SK에서 퇴출당했다.[146] 링크가 걸린 선수 모두 한때 KBO에 적응을 잘 못 해서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때가 있었던 선수들이지만, 타격코치의 조언도 잘 듣고 감독의 말도 잘 들으며 실력도 KBO 탑급이 된 선수이다.[147] 2018년까진 유격수로 주로 출전했으나, 습관탈구로 유격수비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2루수로 포지션 전향을 했다. kt위즈 이적 후엔 1루와 2루수로만 출전중.[148] 이 선택은 염경엽 전 감독의 실책이라는 의견이 많다. 2020시즌 젠가식 트레이드의 시작점이 이곳이었기 때문. 오히려 염경엽 체제 하에서는 주전 경쟁조차도 어려워보였던 김성현이 시즌이 진행될 수록 발전한 기량을 보여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나주환이 있었다고 해도 2020시즌 극적인 추락을 막기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노쇠화로 인해 수비범위가 점점 좁아지며 2루/유격을 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을 잃어버렸고, 2019시즌엔 타격마저 완전히 망해버렸기 때문. 실제로 나주환은 2019년 유격수 수비를 단 1이닝도 보지 않았고, KIA로 이적한 후에도 유격수는 커녕 2루수비도 단 1이닝밖에 맡지 않으며 앞으로도 3루수 고정에 1루도 가끔씩만 출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SK엔 이미 최정이라는 초대형 선수가 3루를 버티고 있고, 1루에도 로맥이 있기에 나주환이 있었어도 최정과 로맥의 백업 선수 이상의 롤을 기대하긴 힘들었을 것.[149] 스포츠 관련 주무부처 장관이기도 했지만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김대중 정부의 실세로 불리던 인물이었다.[150] 기사에도 나오지만 손길승 회장은 "사회적 여망에 부응하고자 야구단을 창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정부나 사회 안팎에서 SK가 야구단을 창단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니까 들어주겠다"라고 볼 수 있다. 결코 SK가 스스로 나서서 창단에 나선 것이 아니다.[151] SK 측이 KBO에 신생구단 가입 신청서를 처음 냈을 때 써냈던 희망 연고지는 서울특별시였고 이후에 조정 과정을 거쳐 경기도로 바뀌었다. 그러다 결국 현재의 인천광역시로 연고지를 확정하게 된다.[152] 홀수인 9구단 체제로 운영됐던 2013년과 2014년에 1개 구단이 쉬어가는 기형적 리그 형태가 드러났다. 이는 10번째 구단인 kt wiz가 창단되면서 해소된다.[153] 이 때문에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옛 쌍방울의 향수 때문에 SK를 응원하는 팬들과 인근 지역의 팀(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으로 팬고이전 하면서 SK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팬들이 공존한다. 특히 SK가 일방적으로 쌍방울의 모든 권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쌍방울이 비참한 종말을 맞았고 전북야구의 맥이 끊겼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154] 이는 SK가 SK그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수원시를 염두에 둔 판단이었는데 당시 수원시에서는 야구 인프라 투자 및 발전 방향에 대해 설명하라는 태도를 보였고 현대를 떠나보내고 뒤늦게 정신 차리고 적극적으로 신 구장 이용 혜택 및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겠다고 구애하는 인천시와 정 반대였다. [155] 수원은 SK그룹의 창업 지역이기도 했다. 최종건 창업주-최종현 2대 회장 형제와 최종건의 아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최종현의 아들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SK 오너 일가의 출신지역도 모두 수원이다. 더구나 SK 오너 일가의 본관 역시 수원이다.[156] 이 당시 엄청난 파장이 있었고 연고 이전 결정에 대해서 팬들에 심한 반발을 예상하여 당시 팀의 광역 연고지였던 수원으로 급하게 이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57] 이 당시 인천광역시 측에서 SK에게 구애를 하기도 했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을 떠나면서 생기는 지역민의 반발도 고려했고 머지 않아 새 야구장이 문을 여는 만큼 SK에게 새 구장 이용에 대한 혜택을 주겠다고 나서면서 SK의 인천행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후 인천시는 구장 이용의 혜택 일부로 새 야구장 내부의 매점 운영권을 SK 측으로 넘겨주게 된다.[158] 김준환 전 감독은 2000년 1군 수석코치로 팀에 남았지만 2000년 시즌 후 팀을 떠나게 된다.[159] 해체 당시 쌍방울 선수단은 정상적인 1군 선수단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구단 운영난의 여파로 김기태, 조규제, 박경완, 김현욱 등 주축 선수들이 거액의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부자 구단에 팔려나갔고 주전 선수들의 잇단 이탈에 기존 선수들도 크게 동요했다. 여기에 팀의 젊은 주포였던 심성보는 이 무렵부터 지병인 당뇨병의 여파로 기량 쇠퇴의 비운을 맞게 된다.[160] SK 최초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 훗날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는 헨슬리 뮬렌이다.[161] 이 당시 데려온 선수 중 한 명이 삼성 라이온즈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 중 한 명인 틸슨 브리또였다.[162] 창단 이후 최악의 시즌으로 전락한 2020년에 하마터면 이 기록을 깰 뻔했다. 시즌 최소승 기록과 최저승률 기록은 남아 있지만 최다패 기록(86패→92패)은 2020년에 경신하고 말았다.[163] 이 당시 4위 한화 이글스와 최하위 롯데 자이언츠의 승차가 불과 2경기였다.[164] 문학야구장이 문학경기장역 인근에 있다는 점을 내세워 인천지하철공사 측과 공동 마케팅에 나서는 한편 동인천, 주안, 부평 등 인천지역 주요 부도심 지역과 야구장을 잇는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등 팬들의 야구장 접근성을 높이는데 노력했다.[165] 그나마 김상진은 은퇴 후 SK에서 코치로 일하면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166] 40만명 이상의 관중을 야구장으로 불러 모았지만 어디까지나 새 구장 개장에 대한 효과로 관중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여전히 인천지역에서 "우리 지역 연고팀은 어디인가"를 꼽는 질문에서 SK는 단 한 번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실제로 이 시절 SK 응원석보다는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등 인기 원정팀 응원석의 관중이 더 많은 날이 부지기수였고 한일월드컵의 여파로 야구 인기 자체가 바닥으로 추락했기에 SK에 대한 인천 팬들의 관심은 여전히 차가웠다고 볼 수 있다.[167] 강병철의 재임기였던 3년간 투구이닝이 무려 503이닝에 이른다. 특히 2001년에는 무려 220⅔이닝을 소화하며 14승을 따냈지만 이 때의 혹사가 이승호의 선수 생명을 단축시키고 만다.[168] 쌍방울 시절 박경완의 투수 리드 사인을 대놓고 무시한 투수들을 향해 배터리코치였던 조범현이 하이킥을 날렸다는 이야기나 박경완의 전주 자택 인근으로 아예 이사를 간 조범현이 거의 매일 저녁마다 불러내서 박경완의 입에서 욕이 나오도록 지옥훈련을 시켰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169] 2005년의 이 참사는 14년 뒤인 2019년에 더 큰 역대급 대참사(...)로 업그레이드돼 돌아오고 만다.[170] 만년 꼴찌였던 태평양 돌핀스를 일약 정규시즌 3위로 끌어올렸고 하위권에 머무르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공포의 돌격대로 만든 성과를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 SK는 두 팀과 모두 연관이 있었다. 태평양의 연고지였던 인천광역시를 연고하는 팀이었고 그가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지도하던 선수 중 일부가 여전히 SK에서 뛰고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박경완.[171] 가장 큰 오해가 김성근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아들인 김정준을 전력분석원으로 고용했다는 이야기인데 김정준은 아버지 김성근이 SK로 오기 훨씬 전인 2003년에 SK로 입사했다. 다만 아버지 김성근과 아들 김정준이 비슷한 시점에 그만 둔 적이 있기는 하다. 2002년 아버지가 LG에서 해임되자 본인도 LG를 떠났고 2011년 SK를 떠나자 본인도 SK에서 짐을 쌌다.[172] 다만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정규시즌의 부진을 정면으로 뒤엎는 성과를 보이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MVP가 된다.[173] 자세한 이야기는 막걸리 야구 문서 참조.[174] 공교롭게도 훗날 이 구단을 인수하게 되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신세계와 이마트의 경쟁 상대는 롯데가 아니라 야구장과 테마파크가 돼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175] 프로 스포츠 경기장에 최초로 도입된 띠 전광판 설치 사례였다.[176] 물론 초기에는 "실컷 경기에서 져놓고 누구 좋으라고 폭죽을 쏘는 것이냐"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177] 애초부터 이날을 D-Day로 잡았다는 시각이 많았다. 이 당시 SK의 순위는 단독 선두였고 관중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토요일 오후 홈경기였으며 압도적 티켓파워를 뽐내는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였기에 매진의 가능성이 애초부터 예고됐었다.[178] 다만 여기에는 당시 제2 홈구장수원야구장의 입장 관중 수도 일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인천야구장에만 입장했던 관중은 40만명대 초반이거나 30만명대 후반으로 볼 수 있다.[179] 현재까지도 126경기 체제에서는 시즌 최다승 기록이 2008년 SK의 83승이다.[180]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에 상당한 어드밴티지를 주는 KBO 리그 환경상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동시에 석권한 통합 우승 사례는 꽤 많다. 그러나 2시즌 이상 연속으로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동반 우승을 거둔 팀은 현재까지도 해태, 현대, 삼성, SK 뿐이다. 삼성은 2005~2006년 2연패 이후 2011년부터 무려 4년간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동반 석권한 역사가 있다.[181] 2009년 한국시리즈 패배 후 신영철 당시 사장이 언급했던 이른바 막걸리 야구 발언 파동이 어찌 보면 '김성근 회의론'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182] 당시 구단 사장이었던 신영철SK텔레콤 홍보실장 출신이었기에 언론 대응에 매우 능한 사람이었다.[183] 공인구가 문제면 리그 전체적으로 장타가 줄어들면 줄어들지 상대적인 순위에서 폭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184] 2011 시즌 중 경질. 잔여 경기는 이만수 감독대행[A] A B 태평양 돌핀스[185] 2011 시즌 중 감독대행 포함[186] 2020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자진사퇴[187] 감독 선임은 SK 시절에 완료됐지만 SK 와이번스의 이름으로는 실제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신세계그룹에서 창단할 신생팀에서부터 전적이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188] 1000이닝 이상[B] A B C 1000경기 이상[189] KBO 리그 통산 역대 1위[190]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키움 히어로즈, NC 다이노스와 함께 선데이 유니폼을 보유한 팀 중 하나다. 과거에는 롯데 자이언츠도 선데이 유니폼을 활용했으나 2018년 유니폼을 변경하면서 선데이 유니폼을 없앴으나 2020년부터 부산 광안대교 유니폼을 매주 일요일 홈 경기마다 입으면서 사실상 선데이 유니폼을 다시 부활시킨 샘이된다.[191] 팀의 연고지 지명이 전면에 삽입된 유니폼을 정기적으로 입고 뛰는 구단은 SK 외에도 일요일마다 '서울 유니폼'을 입는 LG 트윈스가 있다. 아울러 삼성 라이온즈가 비정기적으로 착용하는 1982년 후기리그 버전 올드 유니폼에도 대구라는 이름이 삽입돼 있고 롯데 자이언츠가 팬사랑 페스티벌 때 착용하는 유니폼에는 부산(울산 홈경기 때는 울산)이라는 지역명이 써 있으며 kt wiz가 화성문화제 즈음마다 입는 '정조대왕 유니폼'에도 수원이라는 이름이 써 있다.[192] 야간 경기에는 조명이 들어온다.[193] SK에서는 2009년부터 쭉 하향세[194] 사실 KT가 현대를 해체 후 재창단 방식으로 인수하기 직전이었을 때 박재홍을 영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박재홍이 현대의 상징이었기 때문인데, 만약 KT가 야구단을 창단해서 박재홍을 영입했다면 그 팀에서 영구결번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KT는 야구단 창단을 철회했고 센테니얼이 현대의 선수단과 프런트를 승계해서 히어로즈를 창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뒤 KT는 2013년에 수원을 연고로 한 KT 위즈를 창단하며 정식으로 KBO 리그에 합류한다.[195] 그래도 은퇴식은 SK 프런트가 배려를 해준 덕에 나름 화려하게 진행됐다.[196]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함에 따라 그의 등번호였던 29번은 2020년 현재 임시결번 상태로 사실상 영구결번의 수순을 밟고 있다고 봐도 좋다.[197] 이 중 몇몇 선수는 김성근이 무슨 은퇴식을 치뤄주냐며 비난했던 쌍방울 출신이 더러 있다.[198] 같은 해 은퇴를 선언한 이승엽이 은퇴투어를 진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호준에 대해서도 마지막 원정 방문경기 후 은퇴를 기념하는 이벤트를 소소하게 해줬는데 SK 구단 주최의 이벤트 규모가 가장 컸다.[199] 인천·경기 지역 연고팀인 SK 와이번스는 과거 인천 야구팀이었던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에 이어서 제 2구장으로 수원 야구장을 두게 되었지만, 현대 유니콘스가 SK에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수원 야구장을 사용하게 되면서 2008년까지 사용하지 못했었다. 이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면서 창단 8년만에 제 2구장을 돌려받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SK가 수원 야구장에서 1년에 9경기 정도의 홈 경기를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기존 현대 팬과의 갈등을 생각한 수원시시설관리공단이 허락을 하지 않았던데다가 인천 연고를 강조하는 구단의 성격상 수원에서 홈 경기를 치르겠다면서 '인천 SK'를 외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기 때문이었다.[200] 현재는 폐장됐고, 그 자리에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홈구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지어졌다.[201] 야구 경기장으로 한정시에는 전세계 1위이다.[202] 드림파크 시절에 성장했던 선수들이 훗날 최전성기의 주축이 되는 조동화, 박재상, 김강민 등이다. 現 인천광역시수산기술지원센터 부지가 당시 연습구장의 중견수 위치다.[203] 송도 LNG 구장이 얼마나 낙후됐던 곳인지는 2011년 5월 방송된 다큐멘터리 3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 방송 당시 SK 선수였던 신인 투수 임정우가 야구장 안팎으로 날아드는 파울볼을 잡는 볼보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204] 별이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2002 월드컵 4강전 당시 붉은악마의 카드섹션 문구였던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205] Pacific이 영어로 태평양이라는 뜻이므로 사실상 같은 회사다.[206] LG 트윈스는 무적 LG, 키움 히어로즈는 히어로즈, 현대 유니콘스는 막강 현대, 확실한 응원 문구를 정하지 않은 kt wiz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최강 OO를 쓴다.[207] 여담으로 과거에는 여러 구단들이 연고지역명을 유니폼의 어깨 부분에 광고와 같이 달았다. 마지막까지 유지했던 건 유니폼에 대구를 새겨 넣었던 삼성이었는데, 2013년부터 대구 마크를 제외시켰다. 대신 들어간 건 삼성화재.[208] 이 당시 SK 팬들이 원수 취급했던 사람들이 민훈기, 스포츠동아 김영준, 최민규 기자 등이다.[209] 정우람은 마무리가 81이닝을 던지는 혹사를 당한 탓도 크다만, 아무래도 이별 과정이 좋지 못하여 팬덤 내에서도 '그 XX' 정도로만 언급되는 편이며, SK와 한화 경기가 있을 때 나오면 팬들이 욕하는 정도.[210] 다만 염경엽은 평가가 2019년 시즌을 거치고 포스트시즌 조차도 말아먹으면서 평가가 크게 떨어졌다. 애초 감독이 존경하는 사람처럼 혹사를 한 것도 있고...[211] 구체적으로 "야! 그러면 안되지이~" 라는 구호를 외쳤다.[212]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견제구가 들어오면 투수가 아닌 자기팀 주자에게 뛰어! 라고 외친다.[213] (삐빅!) 쩔어! x3 '쩔어'는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인천 방언 중 하나다.[214] 두산베어스의 비칭인 '돡'과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졌다. 즉, "스크(SK)가 최악이다" = '스악' = '솩'.[215] 이 이미지는 최근 여성팬들이 급증한 두산에 넘어갔다. 이른바 얼빠천국[216] 2008년부터 야구 봤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한국야구사로 보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전승 금메달을 달성하면서 야구 보기 시작했다는 것, SK로 한정하면 그해 SK가 한국 야구사에 남을 강팀의 족적을 남기면서 유입된 쪽이란 것. 어느 쪽으로든 기본적인 규칙도 모르는, 한마디로 양산형 팬이란 의미. 그 뒤 시간이 오래 지나 이들도 2020년 기준 13년차 팬이 되었다.[217] 삼청태현히어로즈의 경우처럼 쌍방울과 SK는 공식적으로 다른 구단이기 때문에 전적을 별개로 계산한다.[218] 이건욱은 kt wiz 우선지명에서도 노릴 정도로 2014년 드래프트 대상자 중에서도 최상급의 유망주였다. 이건욱 외의 인천팜 1차 지명 유력후보는 인하대의 박민호와 야탑고의 이승진이었다. 김하성은 안중에도 없었단 소리. 키움 히어로즈가 육성을 잘 한 케이스로 봐야 올바르다.[219] 그나마 저건 1차 지명이었기 때문에 2차 지명에서 김하성을 데려올 기회가 있었지만, 정작 2차에서는 김하성을 거르고 박규민유서준을 골랐다. 그러나 박규민은 고질적인 부상으로 2018년을 마지막으로 방출됐고, 유서준과 이건욱도 각자의 자리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SK가 놓친 김하성은 키움 히어로즈의 핵심 내야수로 맹활약하고 있으니 SK 팬들의 속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으로 망가져가고 있다.[220] 인천팜은 최근 두산 베어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치국.[221] 사실 2018년부터는 프로스포츠 리그 최초로 구단 자체 보이그룹 레드몬스터도 두는데, 이 때문에 서진용이 경기에서 삽질하면 야구 때려치고 레드몬스터 신멤버로 가입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222] 시구지도를 이례적으로 투수가 아닌 야수 박정권이 맡았다.[223] 그래서 페이커가 시구를 하기도 했다.[224] 하필이면 그날 비가 왔다고 한다.[225] 이 지역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투수천국"'''으로 널리 불렸다. 프로 초창기 임호균최계훈을 비롯해 박정현, 정민태, 김홍집, 위재영, 김수경 등 인천 연고팀에서 에이스 노릇을 해온 투수들이 여럿 등장했다. 요 근래에는 국가대표 에이스급 투수인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등이 배출됐다.[226] 현재 강원도 영서 지방은 춘천시(춘천고 해체, 강원고), 원주시(원주고) 한화 이글스 팜으로, 영동 지방은 강릉시(강릉고), 속초시(설악고) 삼성 라이온즈 팜으로 편입되었다.[227] 여담으로 SK는 신인 지명이 아닌 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2차 드래프트에서도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다.[228] 대표적으로 1픽인 문광은과 2픽인 박종훈이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다. 문광은은 2015년 전반기에 터지나 싶더니... 결국엔 2018년 LG 트윈스로 이적했고, 박종훈은 처음에는 웨시퍼라 불리며 SK 스카우터들의 영 좋지 않은 능력을 보여주는 예시로 쓰이다가 제구력이 안정된 후에는 SK의 주축 선발 투수로 발돋움했다. 2018년에는 국가대표로 차출되기도 했다![229] 다만 부천고등학교kt wiz의 팜으로 넘어갔다.[230] 김경아에서 개명[231] 안주연에서 개명[232] 최강OO의 형태가 아닌 경우로는 "무적 LG"를 쓰는 LG 트윈스나 "막강 현대"를 썼던 현대 유니콘스 정도가 있다.[233] 앞서 서술된 것처럼 창단 첫 해인 2000년의 경우 SK를 새로 창단된 인천 연고팀이 아니라 해체된 전북 연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유산 정도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234] 다만 한계도 있었는데 "인천 SK" 구호를 유독 강조한 탓에 인천 이외 지역으로 외연 확장에 다소 실패했다는 점이 지적된다.[235] 이쪽 역시 과거 현대가 수원시민들에게 제대로 외면받은 것을 반면교사로 연고지 밀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236] 다만 LG의 경우엔 두산과 달리 예전부터 응원가에 서울 LG라는 표현을 자주 썼고, 부르기도 했었다.[237] 연고지 외 팬을 끌어들이자라는 취지로 비인천 팬이 건의했었다.[238] 예를 들면 "86 Tiger, No KIA Just 와이번스, 치고 또 달려 이 분위기를 달궈, 잔챙이들 긴장해둬 바짝, 발빠른 근성 내 flow는 언제나 두발짝, 다시 또 들어선 타석 터지는 문학 함성, 홈런보다 더 값진 번트로 흐름을 탔어" 같은 가사[239] 한국시리즈의 시구자는 KBO에서 직접 선정.[240] 9회말 2아웃, 고등어, 해피송, 슈퍼맨의 '오늘도 달리고달리고달리고달리고' 부분에서 따온 도루 응원가 등. 의외겠지만, "왼쪽~ 오른쪽~ 워어어~ 투! 혼! S! K!" 이 응원가도 노라조의 '꿀 한 통 설탕 한 스푼' 이란 노래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