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친 사건

 


1. 개요
2. 사건의 배경과 과정
3. 관련 문서


1. 개요


1982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중국계 미국인인 빈센트 친이 공장에서 해직당한 2명의 미국 백인에게 살해당한 사건.

2. 사건의 배경과 과정


당시 일본의 경제적 급성장과 막대한 무역 적자 등으로 미국인들은 경제적 패권의 지위를 일본에게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으며 그로인해 반일감정이 일어났으며[1] 특히 일본산 자동차가 미국으로 대량 수입되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의 입지는 좁아져만 갔다. 디트로이트는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인종적 반감의 화약고였고 미국 국내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의 침투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하락을 가속화 시킴에 따라 근로자들은 그 책임으로 일본을 지적하였고 일부 국수주의 단체들이 일본산 자동차를 때려부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에서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1982년 크라이슬러 공장 감독관인 에벤스와 해고된 의붓아들인 니츠는 빈센트 친이 다가오는 결혼식에 앞서 친구들과 함께 총각파티를 하고 있던 지역 술집 밖에서 빈센트 친과 시비가 붙었다. 그들은 빈센트 친이 일본계가 아닌 중국계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 자동차의 침투와 관련하여 빈센트 친을 '''일본인으로 단정하여''' 빈센트 친을 붙잡고 공격하면서 "너같은 XX 때문에 우리가 실직했다"고 말하며 인종차별적 폭언을 사용하며 방망이로 머리를 강타하여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혔다. 빈센트 친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뇌손상으로 절명하였으며 유언은 '''"이건 공평하지 않았어"''' 였다. 그러나 이들은 약간의 벌금형만 받고 풀려났고 이 일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커다란 반발을 샀다.[2]

3. 관련 문서



[1] 이때는 미국의 뒷골목에는 일본인들을 겨냥한 '''"너희 나라에 다시 핵폭탄을 떨어뜨리기 전에 빨리 미국에서 꺼져라!"'''라는 낙서까지 적힐 정도였다. (출처: 거리로 나온 넷우익/ 야스다 고이치 저/ 후마니타스)[2] 이 중 1명은 나중에 인터뷰에 나와 자신의 죄를 시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