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미국인

 


1. 개요
2. 역사
3. 미군에서
4. 역사적 추이
5. 아시아계에 대한 편견
6. 함께 보기


1. 개요


Asian-American. 아시아 혈통의 미국인을 말한다.
인구는 2017년 기준, 약 2241만명으로 미국 인구의 6.9% 수준.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인종 그룹이다.
아시아라고 싸잡아 표현하지만 한중일 등의 동아시아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시아[1], 그리고 인도, 파키스탄 등의 남아시아는 유전적, 문화적으로 매우 다른 지역들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루어진 주먹구구식 지역 나누기와 인종 분류를 이치에 맞지 않는 걸 알면서도 현대에도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미국 정부 기관에서도 이들을 Asian으로 묶어 인구 통계를 내고 있다.#
서남아시아(아랍이나 이란), 중앙아시아도 '아시아'에 들어가지만 미국에서는 이쪽 지역 출신은 아랍계, 이란계 미국인 등으로 따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 Asian이라고 하면 서남아시아인을 주로 의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 역사


1635년에 동인도인 한 명이 제임스타운에 왔다. 1790년대부터 인도인들의 미국 이민이 시작됐다. 1763년에는 스페인의 배를 탄 필리핀인들이 표류하다가 루이지애나 세인트말로에 정착하기도 했다. 전원 남자라 케이준(cajun)[2]이나 미국 원주민과 결혼해 자식을 낳았다. 1778년에는 중국인 선원들이 하와이에 오기도 했다. 이들은 정착해 하와이인과 결혼했고 현재 7세대까지 내려오기도 한다. 하와이엔 19세기부터 한국인[3]들과 중국인, 일본인들이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왔다. 필리핀인들도 하와이에 오기도 했지만 소수였다. 지금은 미국 대륙의 아시아계 중에서 중국계와 인도계와 필리핀계가 다수이다. 하와이의 경우에는 인구 구성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계이고, 그 중 일본계와 필리핀계가 다수이다.
중국인들은 19세기 초반부터, 일본인들은 19세기 후반부터 미국 본토로도 이주했다. 본국이 가난하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저임금 노동자로 온 그들은 주로 미국 본토의 철도 공사장에서 일했다. 이들은 숫자는 많진 않았지만 서부에 집중됐고 그 때문에 아시아계들에게 미국이 먹힐지도 모른다며 서부 지역 백인들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그 때문에 20세기 초에 들어서 아시아계의 이민이 제한된다.
1898년에 하와이가 미국 연방에 가입하면서 거기 살던 수천의 아시아계들도 자동으로 미국인이 된다. 이는 1898년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중국계 미국인이 제기한 소송을 받아들인 미국 연방대법원이 수정헌법 14조에서 미국에서 태어난 누구든 인종에 상관없이 미국인이라고 규정한 것을 인용한 때문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미국 의회는 1880년대부터 아시아인의 이민을 억제했고 194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런 제한은 1920년대에 쿼터제로 이어졌는데 아시아인들은 쿼터를 받지 못 했다. 그러다가 1965년에 미국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아시아인들은 미국으로 많이 들어오며 한국계들도 대다수가 이 이후에 넘어간 사람들이다. 베트남계들도 대다수가 이때 난민으로 들어왔다.
현대 아시아 이민자들의 특징은 과거의 이민자들과는 달리 이미 본국에서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2009년에 아시아 이민자는 연간 이민 유입자에서 히스패닉을 제치기도 했고 현재에도 엄청난 수의 이민자들이 오며 히스패닉과 1,2위를 다투고 있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에 아시아계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현재도 히스패닉과 1,2위를 왔다갔다 한다. 2050년대에 흑인들의 인구를 앞지를거라는 전망이 크다. 아시아계의 61% 이상이 대학 학사 이상이다. 미국에 인도인 이민자 의사가 47,581명이나 되며 필리핀인 의사도 2만명, 파키스탄인 의사가 1만명, 한국중국도 5천명, 일본인 의사는 1천명 정도 된다. 앤드루 양 같은 미국 대통령 선거 도전자도 드물게 등장하고 있다.

3. 미군에서


필리핀계 미국인들의 진출이 빠른 편이라 미국 독립 전쟁 당시에 이미 미군에 협조한 필리핀인 선원이 있었다. 군인으로서 최초 기록은 1812년 미영전쟁앤드류 잭슨 휘하에서 활동한 마닐라맨이 있다. 본명은 알려지지 않은 편. 태평양 전쟁 전역에서 호세 칼루가스 상사[4]명예훈장을 수훈 받았으며, 가장 높은 계급까지 올라간 인물로는 더글라스 맥아더의 부관으로 재직한 빈센트 림 미 육군 준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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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인 가운데는 미국인 아버지에게 입양된 조지프 피어스 상병(Corporal Joseph Pierce)이 남북전쟁 당시에 북군으로 첫 참전했다. 이 사진은 게티즈버그 기념관에도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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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첫 장관급 장교가 된 인물은 중국계 아버지와 하와이계 어머니의 혈통을 지닌 앨버트 리먼(Albert Lyman, 1885-1942)이다.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고 대령으로 있던 당시에 진주만 공습을 겪었다. 1942년에 전쟁에서 사망하기 며칠 전에 준장으로 진급해 최종계급은 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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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에서 첫 제독에 오른 아시아계는 리먼과 마찬가지로 중국계 아버지와 하와이계 어머니의 혈통인 고든 청훈(Gordon Chung-Hoon, 1910-1979)[5]이었다. 1934년에 미국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애너폴리스를 졸업한 첫 아시아계였는데 미국 흑인조차 첫 해사 졸업생인 웨슬리 브라운[6]이 1949년에 나왔으니 그가 얼마나 혹독한 생도 생활을 겪었을지는... 최종 계급은 해군 소장이었다. 1959년에 퇴역했다.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가운데 그의 이름을 딴 배가 있다.
일본계의 경우 2차 세계대전 당시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에 의해 차별 당하기도 했으나 33,000명의 일본계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미군에 입대해 참전하여 활약했으며, 백인 다음으로 많은 명예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아시아계 중 유일하게 4성 장군을 배출하기도 했는데 하와이 이주 일본계 혈통으로 미국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에릭 신세키제대군인부 장관, 일본 태생 혼혈(모계 쪽)로 태평양 함대 사령관 및 태평양통합전투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해리 해리스주한미국대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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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외에도 현 3성장군이자 전 미 그린베레, ISA, 중부 특수전사령부의 엘리트 지휘관이었던 마이클 K. 나가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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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의 경우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계 부대를 지휘한 김영옥 대령을 위시하여 약 800명이 참전해 활약했다. 오늘날에는 MAVNI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미군에 자원입대하고 있었다.[7], 매년 미국 삼군 사관학교나 ROTC로 많은 한국계 장교들이 탄생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은 미 해병대 출신으로 미 태평양 특수작전사령관, 미 해병대 특수작전 사령관에 임명된 대니얼 유 소장이다. 1984년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졸업, 1985년에 사관후보생(OCS) 과정을 통해 미 해병대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네이비 씰그린베레와 같은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에서도 적지 않은 수의 아시아계들이 요원 및 대원 혹은 지휘관으로써 활약하고 있다. 특수부대 요원들은 현역 시절엔 '''신분 기밀''' 상태인데다가, 은퇴 후에도 비슷한 일을 하거나 조용히 살아가길 바라기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기 쉽지만, 위에도 언급된 현 2성장군이자 미합중국 해병특수작전사령부의 사령관인 대니얼 유, 현 3성장군이자 전 미 그린베레, ISA의 엘리트 지휘관이었던 마이클 K. 나가타, 당장 미국 최고의 특수부대라 불리는 델타포스의 창설기 멤버 중 하나이며 현재 노익장으로 유명한 필리핀계인 애드 부가린, 현재 전술사격 분야에서 이름 날리며 방송, 매스컴에 출연하는 '투 람'과 '마이크 글로버', 네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촬영 중 전사자로 유명한 최규혁, 영화 론 서바이버로 유명한 레드윙 작전의 전사자로 실리콘벨리에 동상까지 제작 된 제임스 서(서상갑), 현재 한국계 최초로 달에 갈 계획인 NASA의 우주비행사이자 의사이며 전직 엘리트 네이비 씰 요원이었던 조니 김 등 알려진 인물만 해도 의외로 상당히 많다.
이 문단에 서술된 것은 극히 일부이며, 이 외에도 상당히 많은 아시아 계열들이 미군에서 활약 중이다.

4. 역사적 추이


구분
한국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
일본계 미국인
인도계 미국인
베트남계 미국인
필리핀계 미국인
1850년대
-
'''4,018'''
-
-
-
-
1860년대
-
'''34,933'''
-
-
-
-
1870년대
-
'''63,199'''
55
-
-
-
1880년대
-
'''105,465'''
148
-
-
-
1890년대
-
'''107,488'''
2,039
-
-
-
1900년대
-
'''89,863'''
24,326
-
-
-
1910년대
462
71,531
'''72,157'''
2,545
-
160
1920년대
1,224
61,639
'''111,010'''
2,507
-
5,603
1930년대
1,860
74,954
'''138,834'''
3,130
-
45,208
1940년대
1,711
77,504
'''126,947'''
2,405
-
45,563
1950년대
-
117,629
'''141,768'''
-
-
61,636
1960년대
-
237,292
'''464,332'''
-
-
176,310
1970년대
69,130
435,062
'''591,290'''
-
-
343,060
1980년대
354,593
'''806,040'''
700,974
361,531
261,729
774,652
1990년대
798,849
'''1,645,472'''
847,562
815,447
614,517
1,406,770
2000년대
1,076,872
'''2,432,585'''
796,700
1,678,765
1,122,528
2,364,815
2010년대
1,423,784
3,347,229
763,325
2,843,391
1,548,449
'''3,416,840'''

5. 아시아계에 대한 편견



제작 버즈피드.
긍정적인 편견과 부정적인 편견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그나마 긍정적인 편견은[8] 수학을 잘 한다, 학구열이 히스패닉의 번식율(…) 같이 높다, 별다른 사고 안 치고 생활이 모범적이다 등이 있다. 쉽게 말해 아시아인은 똑똑한데다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인데, "미국 경찰은 흑인과 대화할때는 권총 손잡이를 잡고 대화하고, 백인과 대화할때는 진압봉 손잡이를 잡고 대화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과 대화할때는 한손에는 도너츠 다른 한손엔 커피를 들고 대화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치안을 유지하는 미국의 공무원들 사이에선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법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을 좋게 본다. 실제로 아시아계가 미국 경찰과 맞닥뜨렸을 때 허튼 짓 안하고 경찰의 지시에만 잘따르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부정적인 편견들의 경우 주로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일반화를 하는 것이 많은데, 이미 몇백 년 전에 사라진 문화임에도 아직도 그런 문화가 존재하는 줄 아는 것도 매우 흔한 편견이다. 또한 뒤늦게 이주한 집단이라는 특성상 적응하면서 애로사항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먼저 이주하여 자리잡은 인종 집단에 의해 생긴 편견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도 많다. 또한 소수인종이라는 특성상 쉽게 일반화의 대상이 되었고, 서구권과는 이질적인 문화를 보유했던 아시아계 특성상 편견의 대상이 되기는 쉬웠다. 그리고 아시아라는 범주가 너무 넓으면서 애매했고, 서로 이질적인 지역들을 하나의 지역으로 보았기에 온갖 편견이 뒤섞이게 되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보수적이라는 편견도 있는데, 1960-70년대에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혹은 어릴 때 이민 간 아시아계는 꽤 보수적이어서 공화당 지지자가 다수였고, 성 소수자에 친화적인[9] 민주당은 싫은데 그렇다고 공화당을 지지하자니 이민 및 소수자 문제가 걸려있어서[10] 민주당 지지성향도 강한 편이었다. 그러다 세대가 바뀌면서 1980-90년대 이후로 태어난 젊은 아시아계 중에선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이런 편견은 많이 희석됐고, 정당 지지도 2018년 선거 출구조사 기준으로 민주당이 압도적이다.[11] 문신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었지만 젊은층은 잘만 하고 다닌다. 하지만 젊은층들 사이에서도 혼전임신만큼은 극도로 보수적이라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혼후임신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기성세대 아시아계 미국인 중에서는 공화당을 지지해야 주류 사회에 합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었다. 그래도 젊은층은 진보적으로 바뀌고 있고 아시아계의 인권에 더 신경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보수적인 기성세대가 워낙 정정하다보니 미국내에서 보수적인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다. 그리고 어퍼머티브 액션에 하도 시달린 탓에 아시아계 부모들은 이 어퍼머티브 액션의 '어'만 얘기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라 이걸 폐지하려고 하는 공화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대선 때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에서 아시아계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 기어이 어퍼머티브 액션를 폐지시켰다. 비아시아계들은 이 결과에 멘붕이었다고... 어퍼머티브 액션 자체가 더이상 필요없는 제도라는 의견은 꾸준히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시아계 부모들은 오로지 자녀의 대학입학에만 집착하는 이기주의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다만 1960년대나 70년대도 아니고 흑인이 대통령도 하는 시대에 흑인, 히스패닉이면 백인보다 SAT 점수 300점 이상, 동양인 대비 400점 이상 낮아도 같은 확률로 입학 가능한 특별 대우를 받던 인간들이 명백히 소수인종이면서도 백인에 비해 오히려 입학에 차별을 받던 동양인들이 그 차별을 철폐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비난이다. 지금이야 전문직을 가지고 있던 아시아인들이 다수 이민해오고, 몇 세대 전에 이민해온 아시아인들이 근면, 성실하게 일해서 소득이 높아도, 1940년도까지만해도 미국 아시아인의 평균 소득은 오히려 흑인보다 더 낮았고, 아시아인의 이민도 엄청나게 제한되었는데다가 그걸 좀 완화해준 것도 1년에 100명 정도 쿼터제로 받아준 정도였다. 아시아인이라고 차별을 안 받은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1960년도 전까지는 차별적인 이민법으로 인해 아시아인이 미국에서 극소수였다는 것이 백인은 물론 흑인보다도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었다는 증거이다. 애시당초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시아계 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에 상당히 포진해있고, 어퍼머티브 액션 수혜자들의 성적이 너무 저조하고 드랍아웃률이 높아서 오히려 어퍼머티브 액션이 없는 편이 흑인이 변호사가 되는 등 고학력 업종에 이바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아주 많다.#
스티브 아오키의 조카이자 플러스사이즈 모델인 나탈리 누텐붐은 자신은 아시아계이기도 하지만, 키도 덩치도 크기 때문에 '조그맣고 귀엽고 마른 아시아인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편견에는 북미 지역의 매우 높은 비만율이 한몫했을 것이다. 2012년 연구에 따르면 북미 지역의 과체중 인구는 73.9%이었고, 아시아 지역의 과체중 인구는 24.2%이었다.# 또한 일찍부터 근력 운동(웨이트 트레이닝)이 일상에 스며든 미국인들에게 있어, 그렇지 않은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의 체격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을 것이다. 이런 편견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도 자유롭지 않다. 왜냐면 2세대도 1세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기 때문이다. 운동이 생활의 일부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과 그렇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은 운동을 접하고 하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계 동물보호 운동가는 협회 모임에서 아시아인은 동물을 너무 막 대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흑인 운동가도 그런 편견을 토로한 적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현대산업의 동물 학대 정보를 접한 후 육류 및 가죽 소비를 직접 줄이는 경우는 흑인 집단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서구 동물권 운동가들 사이에서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생각보다 굉장히 만연한 편인데, 이는 중국의 동물 보호법이 워낙 변변찮고 정부는 화장품 동물 실험 등을 강제하는데다 대륙의 스케일이 커서인지 SNS 등에 중국발 동물 학대 영상이 압도적으로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일부 서양인들은 중국인들이 동물 학대를 밥 먹듯이 일삼는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도 있다. 비건 채식주의자이자 동물권 활동가인 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 모리세이는 중국인을 '(인간이 아니고 더 하등한) 인간 아종들'이라고 표현(subspecies)하기도 했다. 때때로 한국이나 일본개고기포경 문제로 싸잡아 까인다. 동물보호는 보호대로 하되 이런 인종차별적 시각은 교정하는게 맞다.

6. 함께 보기



[1] 동남아시아는 이들끼리도 또 지역에 따라 외양 차이가 좀 난다. 자세한건 동남아시아인 문서 참조.[2] 프랑스령에서 살던 프랑스 혈통의 이민자들이다.[3] 거의 20세기 직전에 왔다.[4] 추후 대위까지 진급[5] 이름 표기가 이런 건 지금의 병음 표기와는 다른 우정식 병음표기를 사용한 탓으로 보인다.[6] 입학생으로는 6번째이다.[7] 이는 여타국적 외국인들 중 가장 많은 숫자였는데 2016년 6월 이후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8] 다만 쓸데없는 기대감 혹은 스테레오 타입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편견도 무조건 좋은건 아니다.[9] 본인들이 호모포비아임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무슬림계 미국인들, 바이블벨트 지역 출신의 미국 백인들, 미국 흑인들과는 달리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대놓고 증오발언은 안한다. 개신교의 비율이 높은 한국계 미국인들은 한인교회 특유의 폐쇄성때문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대부분은 성 소수자와 젠더 이슈 자체가 시기상조라며 아예 언급 자체를 꺼리거나 타인이 성 소수자인 건 상관없는데 내 가족이나 주변인들만 아니면 된다 등 전반적으로 무관심하다. 근데 비아시아계 성 소수자에 대해서는 걔들은 그럴 수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정작 아시아계 성 소수자한테는 어떻게 '''아시아계가 성 소수자일 수가 있냐'''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아시아계들중에서 성 소수자에 친화적인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고 세대교체의 영향으로 그 비율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백인이나 히스패닉에 비해서는 여전히 드물고 실제 성 소수자의 비율 역시 현저하게 낮다. 여담이지만 히카루 술루 역으로 유명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도 영화에 간헐적으로라도 등장하는 동성애자가 주로 백인 남성뿐인 고정 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술루의 남편을 일부로 아시아계로 설정하였다고 언급하기도.[10] 공화당의 반이민적인 여러가지 정책들 중에 외국인들이 미국에서 더 일자리를 얻기 힘들게 만들려는 시도드림액트 법안 철폐 등이 있다. 샐러드 볼(Salad Bowl)로 대표되는 미국 구조 특성상, 본인은 겪지 않더라도 이런 반이민적인 정책으로 불이익을 보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히스패닉 못지 않게 이민 문제에 굉장히 예민하다. 공화당도 바보는 아니라서 조지 W. 부시 시절만 해도 친이민적인 정책을 어필하고 비백인들에게도 신경썼으며 실제로 이 때까지만 해도 아시아계 공화당 지지자들이 꽤 있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고 나서는 그런 거 없다.[11] 다만 아시아계중에서도 베트남계 미국인은 공화당 지지자가 압도적이다. 베트남계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밀려나 도미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적으로 반공주의자가 되어서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점차 통일 베트남에서 온 이민자들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반공적인 색채가 좀 옅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굳건하다. 한국계도 반공주의자가 꽤 있지만, 그것보다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과거에만 해도 공화당 지지자가 상대적으로 많았으나,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2세~3세가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민주당으로 크게 기울어진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