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苞 사마포'''
|
'''최종직위'''
| 태위(太尉)
|
'''성씨'''
| 사마(司馬)
|
'''휘'''
| 포(苞)
|
'''자'''
| 중성(仲成)
|
'''생몰 기간'''
| ?년 ~ 115년 6월 2일
|
'''고향'''
| 연주(兗州) 산양군(山陽郡)
|
'''태위 재임기간'''
| 114년 9월 13일 ~ 115년 6월 2일
|
[clearfix]
1. 개요
후한의 관료. 자는 중성(仲成) 연주 산양군 출신
2. 생애
사마포는 본래 대사농(大司農)을 역임하고 있었다.
114년 9월 7일
태위(太尉)
이수(李脩)가 면직되자 9월 13일 태위로 승진되었다.
사마포는 태위면서도 무명옷을 입고 조식을 하였으며, 처자식들을 관사에 들여보내지도 않았다.
사도(司徒)
양진(楊震)과 함께 환관
번풍(樊豊)에게 모함받아 중상을 입고서 몇번씩이고 낙향을 부탁하였다.
결국 상처가 악화됐는지, 115년 6월 2일 죽고 말았다. 7월 28일 후임으로
마영(馬英)이 태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