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름)

 


1. 개요
2. 자의 명명법
2.1. 복자와 형제 관계에 따른 법칙
2.2. 자와 휘를 연관지어 짓는 법칙


1. 개요


字. 한국어로는 '자' 라고 읽고, 중국어 병음은 zi이고, 일본어로는 'あざな'라고 한다.
대한민국, 중국, 일본 등의 한자문화권에서 성년이 되었을 때 성인으로 예우해서 부를 수 있도록 지어주는 새 이름. 이 관습은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시대까지 유지되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앞뒤로 소멸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어서, 오늘날에도 양반가문의 종손을 자처하는 유림들은 쓰기도 한다. 꼭 종손이 아니더라도 뼈대 있는 가문이다 싶으면 1950년대생에게서도 가끔 찾아볼 수 있다. 근데 족보에 올라가 있기만 하고 실생활에서는 안 쓸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항렬자를 맞추기 위해 족보에는 항렬자를 넣은 이름을 올려놓되 자의 형식을 빌려 다른 이름을 같이 적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족보상에 자로 기록된 이름만 쓰고 주민등록상의 이름도 자로 해 놓고 족보에 올라간 이름은 안 쓴다.
고대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피휘의 관습이 있어 부모나 주군, 스승 등의 한정된 손윗사람이 아니면 타인을 함부로 날 때부터 붙여진 이름인 명(名)으로 부르는 것은 큰 결례였기 때문에[1][2] 성인이 되면 어느 정도 격식을 차려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인 자를 윗사람이 지어줬다.[3] 그래서 격식을 차려 부르는 이름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Courtesy name이라고 번역된다. 사서오경 중 《예기》에서는 남자는 스물이 되면 자를 가졌고, 여자는 열다섯이 되면 자를 가진다고 한다.[4] 명(名)은 부모, 군주, 스승 등의 명백하게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름이고, 자는 동료나 동년배가 사용하기 때문에 명을 격식을 차리는 이름이고 자를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이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니다. 자는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추고 상대를 높이는 뜻이 있지만 명에는 그런 뜻이 없다. 상대를 명으로 부르는 것은 대놓고 상대방에게 하대를 하는 것이다. 때문에 함부로 명을 부르면 안 되는 것이다.
단, 격식을 갖추어 사용하는 이름이라고 해도 자는 어디까지나 동료나 상관 아니면 동년배 정도만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었으며 자식, 신하 등 아랫사람이면 부모, 군주의 자를 부를 수 없었다. 다만 대체로 아내가 남편에게 존대하기는 하는데 적어도 《한서》에서는 남편의 자를 부르는 여성들이 있으므로 부인이 남편의 자를 부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오류이다. 예컨대 진삼국무쌍에서 황월영이 제갈량에게 '공명님'이라고 부르거나 하는 건 오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 존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칭으로도 쓰면 안 된다. 가령 조조나 유비는 자칭할 때 "나 조조가~", "나 유비가~"하는 식으로 명(名)을 사용해야지 "나 조맹덕이~". "나 유현덕이~" 하는 식으로 자를 자칭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5] 그랬다간 자아도취 나르시시즘 환자 같은 말투가 된다. 위서 무제기에 보면 조조 스스로가 "너희들이 조공(曹公)을 보고 싶은가? 나 역시 사람일 뿐이다. 눈이 4개도 아니고 입이 두 개도 아니나 다만 지모가 많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조공(曹公)'은 존대의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이때는 자신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논지를 강조하기 위한 반어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특수한 용법을 가지고 보편적으로 자신에게 존칭을 사용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비슷한 예로 장판 전투에서 장비가 위군에게 "내가 바로 장익덕이다. 앞으로 나와 생사를 가름하자!"고 외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역시 적군을 도발하기 위한 특수한 경우다.
꼭 성과 자를 붙여부르는 것은 아니라서 자만 단독으로 부를 때도 있다. 정사 삼국지나 한서, 후한서 등에서도 성 안 붙이고 자만 불러서 말한다. 그 유명한 논영회 때 조조가 유비에게 원소를 '원본초'라고 하지 않고 그냥 '본초'라고 쓰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게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고 후한말쯤에 허사진등이 없는 자리에서 그를 '진원룡'이라고 부르는 거나 진등이 유비가 없는 자리에서 유현덕을 공경한다고 쓰거나 원소가 유비를 서주목으로 인정할 때 '유현덕은 고아하고 신의가 있으며...' 하는 식으로 가끔 쓰일 뿐이다.
성명과 자를 붙여서 쓰는[6] 경우는 '''일반적으로 없다.''' 삼국지 인물들을 풀네임+자 로 쓰는 건(관우 운장) 주로 일본판 매체에서 온 경우가 많다.[7]한자 4글자인 이름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친숙해서 널리 퍼진 것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코에이 삼국지 등 대부분의 일본 삼국지 매체에서는 성명+자 표기가 널리 쓰였고, 이것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한국에서도 간혹 성명+자 표기를 쓰는 경우가 생겼다. [8]
정리하자면, 내 부모, 군주, 스승[9] 정도쯤 되는 윗사람(공식 문서 상에서 지칭할 때 포함)은 나를 이름으로 부르고[10], 동급의 사람(친구나 친지 또는 윗사람이 친근하게 대할 때 포함)은 나를 자로 부르며, 아랫사람(실지로 아랫사람이 아니더라도 존중을 담는 경우 포함)은 나를 존칭으로 부른다. 삼국지의 유비를 예로 들자면, 헌제처럼 윗사람은 유비라고 부르고, 동급인 다른 군주들은 '현덕'이라 부르며, 아랫사람은 유예주, 유좌장군(예주 자사 및 좌장군을 제수 받은 적이 있으므로)이나 연의에서처럼 유황숙이라고 부른다. 현덕공이라고 자에 높임말을 쓰는 것은 오류이다. 윗사람이거나 친구라면 현덕이라 부르고, 아랫사람이면 직책 이름으로 유예주라 부르거나 그냥 유 공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편지에서는 족하라고 부른다.
자를 짓는 방법은 여러 가지고 또 스승이나 부모, 지인이 지어주는 것도 있으며 친구와 우정으로 짓는 경우도 있다(일설에는 주유제갈근은 상대의 이름에서 각각 따서 제갈근은 주유의 '유(瑜)'를 따서 자유, 주유는 제갈근의 '근(瑾)'을 따 공근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여하간 자가 겹치는 경우도 있는 등 그 시대에 자를 짓는 방법은 매우 한정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항적[11]이나 유방[12]처럼 후한 이전에는 자가 한 글자인 경우도 있었다.
중국사의 몇몇 인물은 이름보다 자로 더 유명한 경우가 종종 있다. 관중, 오자서, 항우, 소정방, 나관중, 장제스 등. 조자룡이나 제갈공명도 자가 유명한 케이스지만 이들은 삼국지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본명이 조운, 제갈량인 것도 꽤 알려진 편이다.

2. 자의 명명법


자를 짓는 법에는 법칙이 없다. 따라서 어떤 자를 짓느냐는 전적으로 짓는 사람의 재량이지만, 몇 가지 통례가 있다. 한국의 자와 중국의 자는 각 나라별로, 시대별로 취향, 유행, 사조 등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전해왔다. 이 또한 일정한 법칙은 없고, 사례들을 통해 유형화할 수는 있지만 일일이 열거하자니 문서가 지나치게 길어지므로 굳이 여기 적지 않는다. 정 궁금한 사람은 여러 가문의 족보를 볼 것. 아래 예시는 거의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을 예로 든 것이지만, 후세 사람들의 자를 보면 또 느낌이 다르다.

2.1. 복자와 형제 관계에 따른 법칙


일반적으로 자는 복자(두 글자)로 지어진다. 다만 항적 같은 경우처럼 신나라(新) 이전까지는 한 글자로 짓는 경우도 흔했고, 후한대부터 복자가 정석이 된다. 형제의 서열에 따라 특정한 글자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름에 '원(元)'이나 '백(伯)', '맹(孟)'이 들어가면 맏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한 번 '사마씨' 일가의 예를 들어 보자.
삼국지》에서 위나라 사마의의 자가 중달(仲達)인데, 그의 형인 사마랑은 자가 백달(伯達)이다. 그리고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부의 자는 숙달(叔達)이다. 여기서 각각 백달, 중달, 숙달의 '백, 중, 숙'에서 '백'은 맏이, '중'은 둘째, '숙'은 셋째를 뜻한다. 자세한 내용은 백중숙계 문서를 참조.
때로는 자를 지을 때, 문중의 같은 세대에서 글자를 공유하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자(子)". 이 외에도 예(禮) · 사(士) · 세(世)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원소의 아들들은 "현(顯)"을 사용했으며(원담: 현사, 원희: 현혁, 원상: 현보) 손권의 모든 아들들(손등: 자고, 손려: 자지, 손화: 자효, 손패: 자위, 손분: 자양, 손휴: 자열, 손량: 자명)과 조조의 아들 중 다섯은(조앙: 자수, 조비: 자환, 조창: 자문, 조식: 자건, 조준: 자안) "자(子)"를 사용했다.[13]

2.2. 자와 휘를 연관지어 짓는 법칙


자와 휘는 서로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휘(이름)를 대신해서 지은 것이 자이므로, 그 사람을 나타내는 식별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14]
  • 조운(趙雲)의 "운"과 자룡(子龍)의 "룡"이 대표적인 예. 「虎嘯風冽龍興: 호랑이가 포효하며 바람은 세차고, 용이 일어나 구름에 미친다」(왕포[王褒]의 글)라 하듯이, 과 구름은 필수 세트인 것 같다. 이것은 육손(陸遜)의 손자 육운(陸雲, 자는 사룡[士龍])에게도 해당이 된다.
  • 제갈근(諸葛瑾)의 자는 자유(子瑜)인데, 근유(瑾瑜)는 매우 아름다운 옥의 이름이다. 한 단어를 두 글자로 나눠서 한 자는 이름자에, 다른 한 자는 자에 쓴 것. 또 주유(周瑜)의 자는 공근(公瑾)인데, 역시 같은 글자들을 쓴다. 이름과 자에 쓴 글자의 위치만 뒤바뀌어 있다.
  • 제갈량(諸葛亮)의 자인 공명(孔明)은 매우 밝다는 뜻이고, 이름인 량(亮) 또한 밝다는 뜻, 구체적으로는 어둠 속에서 비추는 밝은 빛을 의미한다.
  • 사마의의 3남 사마량(司馬亮)은 제갈량과 같은 이름자를 쓰지만 자는 자익(子翼)인데, 익(翼)은 날개라는 뜻이지만 돕는다는 뜻도 갖는 글자며 량(亮)도 밝다는 뜻과 돕는다는 뜻을 모두 가진다. 즉 제갈량과 사마량은 같은 이름자를 쓰지만 전자는 밝다는 뜻으로, 후자는 돕는다는 뜻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자를 참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의 자는 사원(思遠)이다. 이름인 "첨(瞻)"은 바라보다/우러러보다/멀리 보다 등의 의미이고, 자인 사원은 역시 멀리까지 생각하고 내다본다는 뜻이다.
  • 헌제 유협(劉協)의 자는 백화(伯和)이다. 伯은 백중숙계 항렬에 따른 것이라 별 의미 없고[15] 和는 이름인 協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두 글자 모두 '화합한다'는 뜻이 있으며, 또한 두 글자를 합치면 '화협(和協)'이라는 한 단어가 된다.
자와 휘의 변(邊: 한자의 왼쪽 부수)이나 방(旁: 한자의 오른쪽 부수)을 일치시키는 경우도 있다. 부수가 같으면 자연히 비슷한 뜻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유(姜維, 자 백약[伯約])는 자와 휘의 변이 糸로 일치하고, 우번(虞翻, 자 중상[仲翔])은 자와 휘의 방이 羽로 일치한다. 또, 구슬 옥(玉)변은 고귀하고 청결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즐겨 사용된다. 주유(周瑜, 자 공근[公瑾])와 제갈근(諸葛瑾, 자 자유[子瑜])은 자와 휘가 겹쳐 같은 구슬 옥 변 한자를 쓰고 있다.
휘의 변이나 방만 바꾸어 자로 삼는 경우도 있다. 비의(費禕, 자는 문위[文偉])가 대표적인 예.
같은 계통으로, 휘를 간략히 한 형태가 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화타(華佗)의 자 원화[元化]의 化는 佗에서 갓머리를 뺀 꼴이다. 진도(陳到, 자는 숙지[叔至])도 같은 예이다.
공자방(公子魴)[16]의 자 자어(子魚)는 魴의 부수 魚만 남긴 꼴이다. 같은 부수를 쓰는 글자도, 휘를 간략히 한 형태에도 해당하는 꼴이다.
또한 등애처럼 책에서 따온 휘와 자의 조합도 있다. 비문에 적힌 「文爲世範, 行爲士則: 글[文]은 세상의 모범[範]이며, 실천은 선비[士]의 규칙[則]이다」에서 따와 이름을 등범(鄧範) · 자를 사칙(士則)으로 지었지만, 문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등애(鄧艾)로 개명했다고 한다.

[1] 한국에선 지금도 아랫사람은 이름으로 불러도 윗사람은 관계나 직급으로 부르지 이름을 바로 부르는 건 실례가 된다. 그리고 아랫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허물없는 관계가 아니라면 성인의 경우 함부로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2] 사실 서양에서도 친한 사이가 아니면 이름을 부르는 건 실례다. 성으로 호칭하는 건 동서양 막론하고 공통된 인식.[3] 자를 짓는 사람은 아버지, 친척 어른,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친족이 아니면서 아버지뻘 이상이 되는, 면식이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4] 의외로 여자도 자를 가졌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여성의 경우 이름도 기록에 남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 자는 더욱더 알려지지 않았다 보니 생긴 오해인 듯하다. 실제로는 상술했듯 여성도 성인식 때 자를 갖도록 되어 있었고, 매우 드물지만 여성의 자가 알려진 사례가 없지도 않다. 채염의 자는 '소희'(문희로 널리 알려졌지만 진나라 때 사마소를 피휘하느라 그렇게 된 것), 하후휘의 자는 '원용', 신비의 딸은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자는 '헌영'이었다.[5] 단 하나의 예외로 (朕)이 있다는 설도 있지만 은 그저 특수한 1인칭일 뿐 존칭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6] 예를 들면 조조 맹덕(曹操 孟德)이라고 부르는 것 등[7] 다만 성명과 자를 아울러 언급하는 것은 호칭으로 쓰지는 않지만 비석 등에서는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그대로 부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보 전달 목적이기 때문이다. 비석을 세우는 데 기여한 사람의 명단을 적을 때, 대부분 관직-이름-자 순서대로 붙여 쓴다. 이름과 자 사이에 '字' 자를 적어 구별해 놓는 경우도 있는데, 일본판 매체에서 이런 식의 표기가 널리 발달한 것은 이 당시 일본판 매체가 정보 전달의 성격도 같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8] 다만 이는 코에이 삼국지가 삼국지 4 파워업키트를 기점으로 인물 열전이나 아이템 설명을 내부 컨텐츠로 끼워서 보여주게 되었고, 7에서는 명승고적 등까지 소개를 하는 등 게임 자체가 정보 전달의 목적도 같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정규 시리즈 한정으로는 성명과 자를 붙여서 장수정보를 표기하기 시작한 시리즈가 일본 문화 개방 이후 발매된 시리즈인 삼국지 7부터였다는 점인데, 그 전 시리즈에서는 자를 따로 표기했다. 전 시리즈를 다 돌아보면 삼국지 영걸전의 맨 처음 전투인 사수관 전투부터 관우화웅에게 일기토를 걸어버리면 관우운장이라는 말이 나온다.[9] 논어를 보면 공자는 항상 제자들을 명(名)으로 부른다.[10] 명백한 윗사람이라 하더라도 부모, 군주, 스승이 아니라면 나이가 많고 관직에 오른 경우 함부로 명(名)을 부르면 결례다. 공직 생활을 하는 관료라면 관명(官名)으로 불러야 한다. 부모, 군주, 스승이라면 상대의 지위가 아무리 높아져도 명을 불러도 결례가 아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11] 이름은 적(籍), 자는 우(羽)[12] 이름은 방(邦), 자는 계(季)[13] 조충은 '창서', 조우는 '팽조', 조표는 '주호'로 "자(子)"를 안 썼는데(나머지는 자가 미상이다.), 어머니가 달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조준은 적처 소생도 아니다 보니, 이 규칙이 그리 엄격하게 적용된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지어주는 사람 마음대로이다.[14] 특히 선진 시기에는 거의 모든 자가 이 법칙을 따른다. 중유(仲由)의 자가 자로(子路)인 것, 염경(冉耕)의 자가 백우(伯牛)인 것 등이 있다.[15] 다만 차남인데 伯을 쓴 이유는 불명. 자를 가질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이 죽고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16] 동주 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선봉으로 서서 전사하고 초군을 승리로 이끌어 오나라 배 여황을 탈취했다. 그러나 공자 광(후의 합려)이 꾀를 내서 배는 도로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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