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위
1. 고대 중국
태위는 삼공(三公)의 하나로 고대 중국에서 군사 부문을 담당한 재상이다. 현대의 국방부장관에 해당하지만, 당시에는 주로 문신(文臣)이 임명되었으며 실권이 없는 명예직이었다.
삼공(三公)의 하나로 전한기에는 태위(太尉)[1] , 후한 시기에는 사마(司馬)라 칭해졌다. 사도(司徒), 사공(司空)과 함께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는 관직으로서 주로 군사 방면을 담당했다. 녹봉은 4천 2백 석이었다가 후한 말기에 대사마(大司馬)로 명칭이 바뀌고 나서 1만석으로 올랐고 실질적인 승상(丞相) 예우를 받았다. 태위로 유명한 인물은 양수의 아버지 양표가 있으며, 이각이 황제를 겁박해 대사마의 자리를 얻었다. 가후, 만총과 사마의, 등애도 태위였다.
1.1. 사례
가후·종요 등은 위(魏)의 태위였다.
동탁이 황자 유협을 황제로 앉히고 스스로 태위의 자리에 올랐었다.
2. 고려
고려에서 임금의 고문 역할을 하던 국가 최고 명예직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