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부
1. 개요
'''사진신부'''(寫.眞.新.婦)는 하와이 이민 1세대 한국인 남성들이 한국에 있는 여성의 사진을 통해 신부들을 데리고 온 것을 말한다. 하와이 정부는 이 당시 '사진결혼법'이 합법화였기 때문에, 이로 인해 젊은 여성들이 결혼 이민을 오게 된 것이다.
2. 상세
사진신부의 대다수는 경상도 출신이었다. 다만 사진신부로 온 여성들은 하와이가 지상의 낙원이라는 중매쟁이의 달콤한 말에 속아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신랑이 신부를 불러들이기 위해 나이를 속이거나, 사진을 젊게 조작하였다.[1] 당연하지만, 신부 측에서도 사진 조작을 많이 했다. 어차피 하와이가 지상낙원이건 아니건 여자 쪽도 빨리 혼처를 구해야하니, 남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이 정도는 당연히 했을 것이다[2] . 하와이에 온 사진신부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10년에서 1924년 사이에 약 6백 명에서 1천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4년 미의회는 동양인배척법(Oriental Exclusion Act)을 통과시키면서 더 이상 사진신부는 미주지역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3. 긍정적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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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지역의 한인 사회는 남초였다. 더구나 동양인과 미국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금혼법이 있었기에, 미국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그러나 사진신부를 통해 한인 사회는 성비 균형을 맞추었다.
4. 부정적인 평가
신랑의 나이와 외모 혹은 하와이에 가면 공부시켜 주고 세 끼 꼬박꼬박 먹을 수 있다더라는 감언이설에 속은 여성들은 죽을 때까지 고국에 갈 수 없었다.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가정폭력 등을 호소할 수 없었다. 관련 창작물로는 이금이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 있다
[1] 당시에도 사진을 조작하는 기술이 있었다.[2]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미국인편에 의하면, 이중에서 가장 황당무계한 사례는 '''남의 사진을 도용한 경우'''였다고 한다. 미국에 살던 한국인 남성들이 사진으로만 본 아리따운 여성에 반해서, 그 사람을 초청했더니 생판 다른 얼굴의 못난이가 온 것이다(...). 당연히 사기쳐서라도 애써서 미국까지 온 여자를 차마 되돌려보낼 수 없으니, 낙장불입으로 그냥 결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