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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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6년대에 만들어진 가곡으로 홍난파가 편찬한 "통속창가집"을 통하여 발표된 '''추색'''(秋色), 그리고 '추색'의 가락에 다른 노랫말이 붙은 '''내 고향을 이별하고'''와 '내 고향을 이별하고'를 북한에서 개작한 '''사향가'''. [3]
2. 상세
본래 '''추색'''은 '가을 정취'라는 제목 그대로 가을의 정취를 노래한 서정적인 곡이며, 원곡보다 원곡의 선율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만든 '''내 고향을 이별하고'''가 더 많이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가장 많이 불린 곡이기도 하며, 슬픈 이별의 노래라서 그런지 옜날에는 죽은 사람을 위한 장송곡으로도 많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노랫말을 추가한 것이 북한에서 부르는 '''사향가'''이다.
2.1. 작사/작곡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이 노래를 직접 만들었다고 주장을 하며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둔갑해 격상을 시켜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한제국군악대 시위연대 에서 플루트를 연주한 정사인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내 고향을 이별하고'''의 노랫말은 구전된 것으로 작사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2.2. 공연
사향가는 2000년에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울 KBS 홀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을 때 이 노래를 주제로 한 박민혁 편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바이올린 독주가인 정현희의 독주 및 협연으로 연주되기도 했다.
2.3. 음반 발매
'''내 고향을 이별하고'''는 1990년에 '''내 고향'''이라는 제목으로 겨레의 노래 1집[4] 에 수록되었다.
북한에서 개작한 '''사향가'''는 2005년에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 계열 음반사 신나라레코드의 북한 관현악 작품집 CD '임진강'에도 이 곡을 주제로 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연주가 수록되었으며, 금강산가극단 남성성악곡집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 4번 트랙에 남성 합창 형식으로도 수록이 되어있다.
3. 기타
- 실제로 북한에서 불리는 사향가에서는 원곡에는 없는 만경대 같은 단어가 들어가 김일성이 지은 것처럼 왜곡된 형태로 되어 있다.[5]
- 특히 이 곡은 김일성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어린 김정일을 재울 때 불러 준 노래라고 선전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TV를 통해, 만경대라고 하는 초가집으로 된 김일성 생가를 볼 수 있는데, 만경대가 방영될 때 언제나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곡이 바로 이 곡이다.
4. 가사
4.1. 내 고향을 이별하고[6]
4.2. 사향가
5. 해당 곡 영상
여기서 소개하는 영상은 모두 북한에서 개작한 사향가이다.
5.1. 원곡
5.2. 기악작품 편곡
- 김영규 편곡 관현악 버전 - (공연:조선국립교향악단, 지휘:김주혁)#
- 박민혁 편곡 바이올린 협주곡 버전 (연주:뉴욕 우륵 교향악단, 지휘:리준무) - #
- 박민혁 편곡 바이올린 협주곡 버전(연주:미상) - #
6. 관련 문서
[1] 겨레의 노래에 수록된 버전이다. [2] 하단 참조[3] 이 항목에는 '''추색''', '''내 고향을 이별하고''', '''사향가'''의 설명이 혼재되어있다. 혼란을 막기 위해 본래의 사향가는 '''내 고향을 이별하고'''로, 북한에서 개작한 사향가는 '''사향가'''로 칭한다. [4] 1990년에 김민기가 총감독한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서 만든 프로젝트 음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처럼 여러 편을 낼 계획으로 제목에 1집을 붙였으나, 1집만 내고 끝났다. 내 고향은 작사자 미상에 정사인 작곡으로 되어있으며 노래는 김소정 할머니와 가수 서인석이 불렀다. 음반에 첨부한 안내문에는 북한에서 이 노래를 의도적으로 개작하여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이라는 노랫말을 넣었다는 내용도 있다.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내 고향은 28분 5초부터. [5] 북한에서 지난 90년대 발간된 북한의 음악잡지에는 김일성 주석의 부인인 김정숙이 사향가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6] 겨레의 노래에 수록된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