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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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시초
2.1. 교주 김기순의 종교적 배경
2.2. 아가동산의 시작
3.1. 어처구니 없는 행각
3.2. 노동 착취와 범죄
4. 만행의 끝, 그러나…
4.1. 재판과 가벼워진 처벌
4.2. 아직도 떵떵거리는 이유
4.3. 아가동산 해체 이후 이교부의 행보
5. 여담


1. 개요


1982년에 김기순이 창시한 대한민국의 사이비 종교.

2. 시초



2.1. 교주 김기순의 종교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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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는 김기순이라는 자로, 1940년 일제강점기 당시 경상남도 부산부(현 부산광역시) 태생으로 본래는 1978년, 전라북도 익산[1]의 '주현교회'라는 개신교 계열 사이비 종교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주현교회는 이교부라는 사람이 이끄는 교회로, '삭발교'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 기이한 별칭에 걸맞게 이 주현교회에서 일어난 일도 참으로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교인들을 폭행은 물론 명색이 교회라는 건물 안에서 예배 중에 신도들과 함께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껴안고 춤추는 '''나체 댄스 사건'''을 일으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것이다.
이교부는 당시 "어렸을 적 다니던 교회의 목사를 본받고자 특유의 스님 같은 차림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나체 춤을 춘 것으로 물의를 빚으면서 말 그대로 개망신을 당했다. 거기에 충고하러 온 동료 목사를 폭행하는 사건을 일으킨 것이 결정적인 사유가 되어 구속되었다.[2] 그리고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고, 1981년, 출소 후 주현교회를 해산하였다.

2.2. 아가동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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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당시 아가동산의 정문 입구. 사건 취재를 위해 언론사 차량이 정차돼 있다.
1982년 경기도 이천군[3][4] 대월면 대대리, 도리리 일대의 땅 4천 평 남짓을 구입해 '아가농장'이라는 것을 세워 신도들을 모아 아가동산이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이 때 주현교회의 해산으로 갈 곳이 없어진 이교부의 신도들까지 빼내면서 덩치를 불려나갔다.
이런 설립 과정에서 김기순은 멀쩡히 살아 있는 이교부의 영혼을 자기가 계승했다는 주장까지 하며, 자신을 이교부의 진짜 후계자로 자처하였다. 이러한 행각은 이교부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이교부가 출소한 후에도 과거 서로 돕고 지내던 이교부와의 사이도 원수지간이 된다.[5] 김기순은 '갈 곳 없는 신도들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고 떡 장사, 어묵 장사, 음반 장사 등으로 땅을 샀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이 정도 장사로 어떻게 4천 평을 샀을지는...

3. 기행악행



3.1. 어처구니 없는 행각



  • 광란의 집단의식: 1996년에 MBC에서 단독입수 보도한 아가동산 내의 아스트랄한 기행들.
실제로 교주 김기순은 자신을 '아가야'라고 지칭하며 꽃가마를 타고 나타나거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각을 보이곤 했는데 이건 뉴스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위 링크를 참고할 것. 뉴스 스샷 참고~~아가동산인데 아가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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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동산은 얼핏 보면 일반적인 개신교 종파 같지만, 실체는 개신교에서 예수만 빼고 그 자리에 자신을 대입한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였다. 예를 들면 찬송가에 나오는 예수 혹은 예수의 상징을 '아가' 혹은 '아가야'라는 말로 치환해서 김기순 자신을 찬송하게 만들거나 기성 종교에 대한 무차별 비난으로써 자신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6] 이 종교의 교리는 일단 김기순은 신이고, '''3살짜리 아기'''이기 때문에 김기순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으며 이걸 '''아가야 법'''이라고 부르며 신나라에서는 이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상당히 해괴한 주장이었다..

3.2. 노동 착취와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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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마을이라고 썼지만 절대로 자발적 협업하는 곳이 아니다.'''
아가농장은 전형적인 노동착취[7]형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농장관리, 장부관리, 의료관리, 학생관리, 세무관리 등 관리직을 놓고 철저하게 공동체 생활 및 공동작업으로 운영되어서 신도들은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장에서 CD 및 테이프를 만들며 일하는 식으로 원치 않는 투잡을 뛰었다. 물론 거기서 번 수익이 어디로 갔을지는... 지금도 신나라네이처팜이라고 아직도 이천 도리리일대에 있다. 외부에서 파는 채소에 독이 들어있다고 신도들을 현혹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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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의 실체와 범죄 행위를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사악한 웃음으로 보인다.
당연하지만 과로로 죽는 사람도 수없이 있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폭행 및 살인, 암매장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재판에서 폭행과 살해 부분이 무혐의로 밝혀졌다고 하지만 피해 받은 사람들이 증언도 하였던 것으로 봐서는 정말 폭행과 살인이 없었는지는 여전히 진위가 의심스럽다.
특히 이 곳에서 신도 3명을 살해한 것이 발각되었는데 1987년에는 7살이었던 최 모 군이 교주 김기순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 굶기고 마구 때려서 죽게 했으며 21살이었던 강 모 씨도 교주의 아들과 사귄다는 이유로 타살당했고 과수원 관리 책임자였던 윤 모 씨도 교주의 말을 잘 안 듣는다며 살해당했다. 결국 이 추악한 사실이 밝혀져 핵심 간부 4명이 구속되었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 참고.
교인들에게는 1년에 딱 4번 휴가를 줬는데, 신정, 광복절, 크리스마스, 그리고 '''교주 생일'''이었다고 한다. 교주 생일에 쉬는 이유는 교주 김기순을 우상으로 하는 연극을 상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연히 주말도 일한다. 그리고 텔레비전, 신문, 외부출입, 가족면회 등 바깥소식을 접하는 건 아예 금지되었다. 가족도 김기순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유로 다 흩어놓고[8], 부부끼리 동침도 금지, 신도들이 데리고 간 아이들도 대부분이 중졸 정도의 학력에 병역까지 고의로 면탈하도록 종용했다고 한다[9][10]
또 김기순은 지상천국을 세운답시고 신도들의 재산 50억 원 정도를 강제로 빼앗기도 했으며 김기순의 은신처에 있는 금고에 만원권 지폐로 헌금 7억 원과 1996년 당시 환율로 1600만원 상당의 달러가 보관 중이었다.
이러한 반인륜적 착취 끝에 6년 만에 4천 평이었던 땅이 13만 평으로 대략 32배나 늘어났지만... 악행과 고혈 위에 쌓은 그 권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4. 만행의 끝, 그러나…



4.1. 재판과 가벼워진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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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경 아가동산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30여명의 前 신도들이 검찰에 진정서를 내면서 그 정체가 밝혀졌다. 그리고 1997년 김기순에게는 사형을 구형했으며 나머지 간부들은 중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그 사이 노동법 개악반대 총파업, 한보사태, 김현철 스캔들, 황장엽 탈북 등 숱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며 아가동산은 점차 잊혀졌고, 그해 5월에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당시 신도 사체 암매장 혐의자였던 굴삭기 기사 윤씨가 진술을 번복한 사실이 밝혀져 검찰의 무리수 의혹이 퍼져나갔다.
결국 주범 김기순은 조세 포탈, 횡령 등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4년, 벌금 56억 원을 선고받았고 그나마도 무혐의 처분과 함께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신도 살해와 폭력은 위와 같은 이유로 무혐의로 재판 결과가 나왔으나 아직도 이에 대해 증거하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기에 이에 대해선 뭔가 의심스럽다는 평이 많다. 또한 그간 사람들을 착취하고 중노동시킨 죄과에 비해서는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며, 과거 아가동산의 노동력 착취 피해자들은 이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여하튼 김기순이 신도들의 노력을 훔쳐 세운 아가동산은 김기순이 구속되고 난 후 그 세가 약해지기 시작, 결국 와해되어 1998년 출소 후 김기순은 교주로써의 권력을 잃고 초라한 모습으로 종교계를 떠난다. 그렇게라도 인과응보격으로 쓸쓸히 살다 죽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4.2. 아직도 떵떵거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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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건재한 신나라레코드.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다. 올림푸스 간판이 있는 이유는 올림푸스 AS센터가 이 건물 2층에 입주해 있기 때문.
'''뻔뻔스럽게도 김기순은 출소 후 아직도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아가동산 간판을 내리고 마지막 남은 사업체인 '''신나라레코드'''를 요긴하게 잘 운영해가며 몰래 잘 먹고 잘 살고 있던 것이다.[12] 이런 사실을 아는 과거 아가동산의 피해자들은 "교주 김기순이 그간의 악행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도 모자라 석방 후 '''죄값도 치르지 않고 세상을 조롱하듯 부를 누리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 게다가 사건 이후 인력들이 전부 떠나간 아가동산을 '''신나라네이쳐팜'''이라는 일반 개인 농장으로 바꾸고 추가로 운영하며 재정을 더욱 불리고 있다.
원래 신나라레코드 자체가 '''아가동산의 계열사'''로 설립되었고, 아직도 운영 중이며 용산이나 센트럴시티[13] 등지에 지점을 갖추고 있다. 거기다가 '''아주 잘 나가고 있으며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음반 판매 매장'''이다. 참고로 여기는 '''아직도''' 아가동산 명의로 된 회사다. 전술했듯 과거 아가동산의 교주였던 김기순은 현재도 신나라레코드의 회장으로 재임 중이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여전히 떵떵거리며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우선 아가동산의 명목상 대표 이사는 신옥희라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신옥희는 사건 당시 아가동산의 경리 담당으로 김기순의 동생 뻘 측근 중 한 명이었다고.
이 '신나라'라는건 신난다 → 신나라가 아니라 아가동산의 교리였던 '신의 나라'라는 뜻의 신(神)나라다.[14] 신나라 미디어 홈페이지에 가면 ''''노래, 춤, 웃음'''의 나라 신나라' 라는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아가동산의 교리에 의하면 성부, 성자, 성령이 각 노래, 춤, 웃음이라고 한다.

4.3. 아가동산 해체 이후 이교부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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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동산과 관련이 많던 이교부의 본거지인 주현교부 구건물
참고로, 앞서 구속되어 출감 이후 15년 동안 밑준비를 하던 이교부는 아가동산이 와해되자마자 '주현교부'라는 사이비 종교를 또 설립해서 아가동산 신도들을 흡수했다. 실제로 이교부는 같은 사이비 종교 교주이면서도 아가동산이 와해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탈자들을 데리고 검찰에 출두해서 증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순수한 정의를 위해서가 아닌 김기순의 아가동산을 해산시키고 신도들을 전부 흡수하려는 치졸한 목적이었다. 이교부는 김기순과 척을 진 후 아가동산을 내분시키거나 아가동산이 자멸할 경우 신도들을 전부 끌어가기 위해 작정하고 벼르고 있던 것이었다.
주현교부는 2010년대 들어서도 익산시에서 운영되고 있긴 하는데, 현대 종교에 따르면 종교적인 활동은 줄어들었다고 하고, 오늘날에는 노인들이 모여서 식사하거나 친목 모임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교리가 사이비이기는 해도 지역 사회에서 크게 물의를 빚는 일이 없이 그냥 저냥 잘 운영되는 듯 하다. 월간 <교회와신앙> 97년 2월 호에 주현교부와 아가동산 관련으로 간략한 역사가 있으니 궁금한 위키 유저는 참고해 보자. 주소. 2020년에는 옛 건물을 헐고 신축한다. #.
사족으로, 아가동산과 주현교부 모두 원 안에 십자가가 있는 상징을 쓰고 있다.

5. 여담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강민구 검사[15]는 이 사건을 주제로 하여 2003년에 <뽕나무와 돼지똥>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근데 김기순은 오히려 이걸 명예훼손이라고 고소했다(…). 당연히 기각되었고 책은 쉽게 구할 수 있다.
과거 게임챔프의 아가박이라는 필명의 기자가 있었는데 이 기자의 엽서코너 이름이 아가동산이었다.[16]

육군부사관학교 뒷문에 아가동산 비석이 있다.(...) 어째서 거기 있는지는 불명.

[1] 당시는 이리. 1995년에 익산군과 이리시가 통합되어 현재의 익산시가 되었다.[2] 출처: 참조.[3] 현재의 이천시. 사건이 알려지던 1996년 3월에 시로 승격.[4] 웬만한 이천 주민들에게도 '''안 좋은 쪽'''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참고로 지금은 네이쳐팜으로 이름이 바뀐 채 농장만 남아있다. 신나라레코드 소유의 농장이다. 다음 로드뷰[5] 결국 이후 이교부는 아가동산 사건 재판 당시 피해자들을 위해주는 척 하며 아가동산 신도들을 전부 인수해가고 아가동산을 와해시키는 것으로 김기순에게 복수한다.[6] 일설에는 "아름다운 노래"라서 아가(雅歌)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7] 이 역시 김기순은 이스라엘의 키부츠 같은 협업마을이라는 주장을 했다. 물론 이스라엘의 키부츠는 이곳처럼 노동착취를 하는 곳이 아니다. 노가다로 유명한 소련 콜호스나 북한 협동농장도 저 정도까진 아니었다.[8] 심지어는 '''호부호형까지 금지'''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저씨라고 부르고, 어머니는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남인 것처럼 대하게 했다고 한다.[9] 하늘나라에선 배운 놈이건 못 배운 놈이건 평등하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그 평등이 다 못 배우고 다 괴로운 평등이라서 문제.[10] 이런식으로 병역을 피했다해도 형법상으로는 병역기피로 간주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된다. 저딴 수용소에서 수년을 사느니 차라리 2년 가까이 고생하고 오는게 나을 것이다.[11] 형사소송에서 소송을 받게 된 자는 '''피고인'''이 맞다. [12] 수많은 아이돌들이 데뷔하고 활동하면서 음반 시장 자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13] 현재는 철수된 상태이다[14] 이런 이유로 몇몇 회사(주로 일화 및 센트럴 시티는 통일교, 윤선생 영어교실은 여호와의 증인 등)들은 사이비 종교에 돈 대주는 것 같다고 기피되는 일이 많으며, 실제로 개신교계에서는 이런 업체들에 대한 불매를 권고하는 경우가 많다. 뭐 신나라 같은 경우는 해당사항이 아니라는 듯. 한때는 압구정동의 모 예배당 건물 지하에 신나라레코드 매장이 들어와 있었으니 아이러니. 아가동산 문제가 불거지자 '저희 OO교회는 아가동산과는 관계없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기도 하였다.[15] 현재 법무법인 진솔 변호사. 2016년 9월 현재 TV조선강적들에 고정 게스트로 나오고 있다.[16] 당시 챔프 기자 중 한 명이 아가박과 모 RTS 게임으로 대전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아가박이 공격은 안 하고 자기 진영에 틀어박혀서는 건물만 열심히 짓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본 상대 기자가 경악하면서 말하기를 '''"아니 게임에 아가동산을 건설하겠다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