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
'''山水畵'''
자연의 경치를 그린 동양화.
1. 상세
예로부터 동양은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산봉우리, 강 등의 자연물을 자주 묘사했다. 특이한 점은 실제 자연을 그리기보다는 상상 속의 자연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 도가의 신선사상이 유행하여 그림을 통해 산수를 많이 표현했다. 남북조시대부터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산수화에 관한 이념으로 시각적 감상보다 심적 감상을 중시하는 와유 사상(臥遊思想)이 생겨났다. 그리고 북송 때에는 산수화가 회화의 주류가 되었다.
한국에서 산수를 그리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이다. 초기의 산수화는 그림이 다소 비현실적이었지만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남북조시대 회화의 영향을 받아 사실적으로 발전했다. 고구려의 무용총, 덕흥리고분 등에 그려진 수렵도의 배경이 산수화에 해당된다. 백제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산수화가 없지만 산수문전, 산수 문양 등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 또한 산수화를 그렸을 것이라 추정된다. 신라는 기미년명(己未年銘) 순흥(順興) 읍내리 고분 벽화에 산수화가 남아있다.
고려시대에 산수화는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상상의 자연을 표현한 산수화가 아닌 실제 경치를 담은 실경산수화도 그리기 시작했다.[1] 조선시대에는 구불거리는 산등성이를 특징으로 한 이곽파 화풍과 북송의 원체화풍, 명나라의 절파 화풍으로 나뉘었다. 이곽파 화풍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있다. 조선 중기에는 절파 화풍이 유행하다가 후기에는 남종화풍과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의 영향을 받은 진경산수화풍이 유행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산수화는 화가의 개성과 현실적 시각을 담은 작품들을 통해 재해석되었다.
현대에도 산수화가 많이 그려지지만 서양식 화풍으로 그려진 작품들은 산수화 대신 풍경화라는 이름이 붙는다.
2. 산수화로 유명한 화가
2.1. 중국
2.2. 한국
[1] 북송에서 전파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