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화가)
1. 개요
조선 후기의 화가. 호는 겸재, 본관은 광주.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출생하였다.
2. 특징
우리 나라 고유의 진경 산수화 화풍을 창시했고 뛰어난 진경 산수화로서 명성을 날린 노론 계열 화가이다. 진경 산수화란 실제 경치를 화폭에 옮기는 화풍이다. 이전의 산수화는 전통적으로 중국과 사대 관계 영향으로 대개 중국적 도상, 중국 고사에 나오는 인물, 장소, 실제 중국 명승지 등을 상상해서 그렸다.[1] 물론 이전 세대에 한반도를 소재로 한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선의 그림처럼 주류로 내세워지지 못했으며 정선은 하나의 화단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정선의 진경 산수화는 '우리 강산, 우리 것도 충분히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특징으로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다 풍경을 실감나게 과장시킨다는 점에서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3. 여담
정선은 여행을 즐겼기에 금강산 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가 특히 유명하다. 작품은 대부분 간송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간송미술관은 DDP에서 진경 산수화 소장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정선 생가의 터가 경복고등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다.
영조의 왕자 시절 그림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덕으로 만년에 명예직이기는 하지만 종2품까지 승진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서도 거의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였다.[2]
[1] 상상해서 그린 이유는 단순히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 시험이나 장사 등의 이유로 이동하려고 해도 공권력이 빈약했기에 맹수나 도적들을 쉽사리 볼 수 있었던데다가 당시에는 비행기, 자동차, 철도 등 고속 교통 수단이 없던 때였고 말과 마차를 타면 그나마 빨리 이동을 할 수 있었기는 했지만 말 값이 싸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가 이용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컸다. 이렇게 국내 여행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는데 하물며 외국으로 나갔다오면 아무리 필담을 할 수 있다해도 문맹률이 높던 시절인지라 아무나 필담으로 소통하지는 못했던데다가 비용은 비용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들었으니 위험성은 훨씬 컸다.[2] 정선은 관직 생활을 음직으로 시작했기 때문인데 음직으로 관직으로 올라온 자는 과거 시험을 통과한 자들에 비해 올라갈 수 있는 품계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음서나 과거 제도 항목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