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음공주

 

山陰公主
446년 ~ 465년
1. 개요
2. 30명의 남첩
3. 근친상간의 혐의와 미수
4. 최후
5. 자녀
6.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유송(劉宋)의 공주효무제와 문목황후(文穆皇后) 사이의 장녀로 부마도위 하집(何戢)에게 출가했다.
또한 전폐제 유자업의 누나며 이름은 유초옥(劉楚玉)이다. 어머니인 문목황후 왕씨가 미인이라 그녀 역시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2. 30명의 남첩


그녀가 중국사에서 유명한 이유는 그녀의 '''음란함''' 때문으로 그런 음란함은 미남으로 알려진 남편 하집(何戢)을 두고서도 남동생 유자업에게 부탁해서 '''30명의 남총을 거느렸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회계군장공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일찍이 황제에게 말하기를 "첩(妾)과 폐하는 남자와 여자여서 비록 다르지만 함께 먼저 돌아가신 황제에게서 몸을 의탁하여 낳았습니다. 폐하께서는 육궁(六宮)[1]

에 있는 궁녀가 1만여 명을 헤아리나 첩은 오직 부마 한 명이니 일이 아주 공평하지 못합니다." 황제는 마침내 공주를 위하여 면수(面首)[2]를 좌우에 30명 두었는데, 작위를 회계군장공주(會稽郡長公主)로 끌어올리고 등급을 군왕(郡王)과 같도록 하였다.

- 자치통감


3. 근친상간의 혐의와 미수


또 전폐제와도 근친상간을 저지르기도 하였다고 전해지지만 막장이던 남북조시대에서 후임황제나 후임국가가 정통성을 위해 더욱 막장으로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이건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외에도 '''고모부 이부랑 저연이 잘생겼기 때문에 그를 원하여''' 남동생 전폐제의 도움을 받아 뜻을 이루려 하였으나[3] 저연이 완강히 거부함에 따라 실패하여 미수에 그치었다.
여담으로 말하면 전폐제도 남편 하매가 있는 고모 신채공주(新蔡公主)[4]를 겁탈하여 자기의 후궁 귀빈 사씨[5]로 삼았으니 남매가 참 비슷하다. 참고로 유자업의 이 내용 역시 자치통감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부랑(吏部郞) 저연(褚淵)[6]

의 외모가 아름다웠는데, 공주가 황제에게 가서 자신을 시중들게 해 달라고 청하자 황제가 그것을 허락하였다. 저연은 공주를 10일간 시중들었는데 갖은 핍박을 당하였고 스스로 죽기를 맹세하고서야 마침내 모면할 수 있었다.

- 자치통감


4. 최후


이후 남동생 전폐제가 숙부 상동왕(湘東王) 유욱(劉彧)의 사주를 받은 환관 수적지(壽寂之)에 의해 살해된 이후에 상동왕 유욱이 황제가 되어 송 명제(明帝)가 되었고 이로 인해 그녀 역시 음란함을 죄로 물어 죽음을 당하였다. 이때 또 다른 남동생인 예장왕 유자상(劉子尙)도 죽었다.
'''공주가 데리고 살던 30명의 남첩들은 공주의 무덤에 순장되었다. 당시 공주의 나이는 만 19세에 불과했다.'''

5. 자녀


위키백과에 따르면 자녀로 부마 하집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하언, 딸 하정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녀의 딸 하정영(何婧英)[7]은 유송에 이어진 남제의 전폐제(前廢帝) 울림왕 소소업황후가 되었으나 '''소소업의 측근 양민과 부부처럼 지내는 등''' 모친과 마찬가지로 음란함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남편 소소업이 소란의 반란으로 죽음을 당한 뒤 울림왕비로 격하되었으나 살아남았다.

6. 대중매체에서


대중매체에서는 성인 웹툰 '봉수황(鳳囚凰)'이 그녀를 바탕으로 그려졌으나 중국웹툰이다보니 야한 장면은 기대하지 않는것이 좋으며 내용은 산음공주로 빙의한 여주가 역사를 어느정도 알고 있어서 머지않아 공주가 동생과 함께 비명횡사 하는것을 알고 살아남기 위해 날 잡아서 도주하려고 하면서 자신을 도와줄만한 사람을 찾는등 궁중암투+생존물인 작품이다.
소설을 토대로 만든 한 동명의 드라마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배우 관효동이 산음공주 역할을 맡았으나 원작이 타임슬립이라면 여기서는 중국의 검열에 걸릴것 같아서 쌍둥이처럼 생긴 사람이 공주역을 하는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원작이 끝나지 않아서 드라마에서는 초반은 유송편 중후반의 경우 원작과는 다른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는데 북위를 배경으로 했으며 등장인물의 위치가 변한 상황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1] 후비가 거처하는 궁전을 이른다.[2] 얼굴이 예쁘고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남자를 뜻한다.[3] 전폐제는 누이인 산음공주가 저연을 사모한다는 말을 듣고는 웃으면서 "나는 너를 도와서 그를 불러줄 수는 있다. 그 다음의 일은 네 재주껏 해봐라."라고 말하며 저연을 불러서 궁궐로 들어오게 했고, 궁중에서 잠을 자도록 했다. 그 사이에 산음공주가 저연을 유혹해 보라고 대놓고 멍석을 깔아준 것(...)#[4] 문제 유의륭의 딸이자 효무제의 여동생, 이름은 유영미이며 당시 그녀의 나이는 서른에 가까웠지만 볼이 발그레한 미인이었다고 한다.[5] 정실인 하영완(헌비라 불리다가 유자업의 즉위 이후 헌황후로 추존)이 황태자 시절 죽어 처음부터 황후가 비어 있어 황후로 삼으려 했으나 고모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이후 노도경의 딸이 황후(그녀의 이름은 노영완이며 전폐제의 할머니이자 효무제 유준의 모친인 효무소태후 노혜남의 친척)가 된다. 참고로 귀빈은 유송의 후궁 서열에서 귀비 다음으로 2번째인 지위이다. 또한 이들의 부황인 효무제 유준 역시 남군왕 유의선의 딸들, 그러니까 사촌여동생들을 후궁으로 들이는 과정에서 그 중 하나를 성을 은씨로 바꾸고 귀비로 삼은 전례가 있다.[6] 유초옥의 고모가 되는 남군공주(南郡公主)의 남편, 위키백과에는 남군헌공주라고 되어 있다.[7] 공식 기록에는 그녀의 딸로 기재되어 있으나 하집의 송씨의 딸이라는 기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