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스 우르디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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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디나란은 나시오날에서 14년간 뛰며 총 318경기에 참가하였다. 124골을 넣었으며 5차례 우승을 차지하였다.
1923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이때는 벤치에서 모든 경기를 지켜보았다. 다음 대회에서부터 그가 나섰으며 이 대회에서도 손쉽게 우승을 차지하였다. 올림픽에서도 그는 주전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활약했다.[3]
초대 월드컵에서는 처음에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고, 첫 경기 페루전 이후로는 계속 벤치를 지켰다.
아웃사이드 포워드가 주 포지션이었으며 완성된 선수였다는 평이 전해진다. 다재다능함을 무기로 모든 공격 위치에서 플레이 할 수 있었고, 빠르고 정확하며 기술을 갖춘 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표팀에서는 그가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별로 없어서 그의 기록이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 편이다.
1. 생애
1.1. 선수 생활
1.1.1. 클럽
우르디나란은 나시오날에서 14년간 뛰며 총 318경기에 참가하였다. 124골을 넣었으며 5차례 우승을 차지하였다.
1.1.2. 국가대표
1923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이때는 벤치에서 모든 경기를 지켜보았다. 다음 대회에서부터 그가 나섰으며 이 대회에서도 손쉽게 우승을 차지하였다. 올림픽에서도 그는 주전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활약했다.[3]
초대 월드컵에서는 처음에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고, 첫 경기 페루전 이후로는 계속 벤치를 지켰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아웃사이드 포워드가 주 포지션이었으며 완성된 선수였다는 평이 전해진다. 다재다능함을 무기로 모든 공격 위치에서 플레이 할 수 있었고, 빠르고 정확하며 기술을 갖춘 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표팀에서는 그가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별로 없어서 그의 기록이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 편이다.
3. 뒷이야기
4. 수상[4]
4.1. 클럽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5회: 1919, 1920, 1922, 1923, 1924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3회: 1921, 1929, 1931
4.2. 국가대표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우르디나란은 나시오날의 원 클럽 맨이므로 팀 이름의 기입은 생략했다.[3] 다만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라이벌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 재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했다.[4] 우르디나란은 나시오날의 원 클럽 맨이므로 팀 이름의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