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선
徐宣
(? ~ 236)
1. 창작물에서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로 자는 보견(寶堅).
광릉군 해서현 사람으로 전란을 피해 강동으로 갔는데, 이 때 그는 손책의 초빙을 거절하고 본군으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과 명성은 비슷하지만 성격은 크게 다른 진교와 함께 진등 밑에서 요직을 맡는다.
해서와 해포의 백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위미와 양습이 밤에 서선의 집으로 도망쳐 오자 이들을 호송해 둘의 목숨을 구해준다. 조조는 호질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게 했는데, 호질이 병력이 적어서 밍기적거리고 있자 이를 본 서선은 호질을 질책하고 지금의 형세를 설명해 그에게 나아가 싸우게 하니 호질은 진군해 적을 무찌른다.
조조가 그런 그의 소식을 듣고 불러서 사공연속으로 삼고 동민, 발간령으로 임명하며, 그 후 제군태수로 승진하고 중앙으로 들어가 문하독이 되었다가 211년에는 조조를 따라 수춘으로 가게 된다. 이 때 마초가 서량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 때문에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가게 되자 조조는 관속을 보고
그러고는 서선을 좌호군의 직책으로 남겨 군사를 통솔하게 했으며, 후에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다시 돌아오자 서선은 승상동조연이 되었고 지방으로 나가서는 위군태수가 되었다.지금 나는 원정을 가야만 하는데, 이곳이 평정되지 못했으니 후에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오. 응당 청렴하고 공정하며 덕이 있는 사람을 뽑아 이곳을 진무하고 통솔하도록 해야만 하오.
220년 조조가 죽자 신하들은 궁전 안으로 들어와서 상을 발표했는데, 그 때 어떤 사람이 여러 성의 군수를 교체시키고 조씨와 동향인 초, 패 사람을 기용해야 한다고 말하니 서선이 엄한 목소리로
그 말을 들은 조비는 서선을 사식지신(社稷之臣)이라 칭찬했으며, 조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어사중승으로 승진하고 관내후의 작위를 받는다. 그 후 조비의 오 정벌을 따라 광릉으로 갔다가 거기서 조비의 배는 폭풍을 만나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서선은 뒤에 떨어져 있는 것이 싫다면서 '''파도를 타고''' 앞으로 돌진해 제일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기이함을 보여준다. 이런 행위를 눈 앞에서 직접 본 조비는 그의 용기를 칭찬하며 상서로 승진시킨다.지금 국가는 통일되었고 사람들은 각기 충성을 다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초, 패 사람만을 기용해야 하는가? 이것은 각 성을 지키고 있는 장수들의 마음을 싸늘하게 하는 것이다.
226년에 조예가 즉위하자 서선은 진양정후로 봉해지고 식읍은 2백호가 되는데, 이 때 환범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서선을 추천한다
조예는 이 말에 서선을 좌복야로 임명하고 후에는 시중광록대부의 직책까지 더했으며, 조예가 허창으로 갔을 때 서선은 수도의 일을 총괄해 조예가 돌아오자 상서의 담당자가 문서를 조예에게 올린다. 조예가 이걸 보고는 조서를 내려 자신이 보고 있는 문서와 서선이 보는 문서가 뭐가 다르냐며 문서를 볼 생각을 비치나 결국 보지 않는다.신이 듣건대 제왕께서 인물을 기용하실 경우에는 시대를 헤아리는 유능한 인재를 임명하고 천하를 쟁탈하는 시대에는 책략을 우선으로 하며, 천하가 평정된 이후에는 충의를 제일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진문공은 구범의 계책을 사용했지만 옹계의 정의로운 말을 칭찬했고, 고조는 진평의 지혜를 사용했지만 어린 군주를 주발에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사사로이 상서 서선을 살펴보았는데, 사람됨이 충의롭고 성품은 돈후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유달리 청결하고 전아하며 세속에 구애되지 않고, 확고해 움직이기 어려우며 국가에 대한 절의가 있고, 주와 군의 장관을 역임하면서 모두 그 직무를 빛냈습니다. 지금 복야의 직책이 결원이니 서선에게 이 일을 대신 관장하도록 하십시오. 책임이 무거우니 서선보다 적임자는 없을 것입니다.
한 번은 상방령에서 기물을 함부로 만들었다가 매질을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었는데, 서선이 상소를 올려 형벌의 가혹함을 진술하고 궁전을 세워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 것을 간언한다. 조예는 모두 직접 조서를 내려 그의 의견을 칭찬하고 장려하면서 모두 다 받아들인다.
그러던 어느 날 서선이 조예를 찾아와 말한다.
그러면서 병을 핑계로 관직을 떠나기를 청하나 조예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서선은 236년에 서민들이나 입는 베로 만든 옷인 포의를 입히고 눈으로 보기에도 조잡한 두건인 소건으로 상복을 하라고 유언을 내린 다음 죽는다. 시호를 정후라 하고 아들 서흠이 뒤를 잇는데 조예가 조서를 내려 그의 행위를 칭찬한다.예의 규정에 의하면 일흔 살에는 응당 관직을 떠나야만 합니다. 지금 저는 이미 88세가 되었으니 떠날 수 있습니다.
서선은 성실하고 겉과 속이 곧고 바르며, 세 조대를 지나며 관리 생활을 했고, 공명하며 엄정하고 나의 보좌를 맡은 절조가 있으니 국가의 주석 같은 신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항상 그로 하여금 삼공의 직무를 담당하도록 하려고 했는데, 관직에 오르게 하지도 못하고, 안타깝게도 그는 세상을 떠났구나! 기를 거기장군으로 추증하고, 공작의 예로써 장례를 지내도록 하라.
진수는 오랜 기간 자리에 있으며 강인하고 과단성이 있어 그들의 직책에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평했다.
1. 창작물에서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42, 무력 41, 지력 69, 정치 84, 매력 72이며 일러스트는 죽간 한 개를 왼손으로 들고 있으면서 나머지 죽간들을 품고 있다. 개성은 침착, 진흥, 주의는 왕도, 정책은 삼령오신 Lv 4, 진형은 학익, 전법은 업화, 혼란, 친애무장은 진등, 혐오무장은 손책, 진교다. 생년은 167년, 몰년은 236년까지 되어있다. 여담으로 서황과 같은 성을 가진 무장 중에서 정치력이 제일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