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등
陳登
? ~ 208년 이후[1]
1. 개요
후한 말의 호족. 서주의 관리. 자는 원룡(元龍). 진규의 아들.
진규-진등 가문은 서주에서 잔뼈가 굵은 중요 호족 세력이라고 한다. 원술이 인질로 잡으려 했던 진응은 그의 동생이며, 그 밖에도 여포에게 포로로 잡혔던 동생이 세 명 있었다.
진등은 역사와 연의에서는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정사 삼국지에서는 서주에서 활동한 사람이라 그런지 여포전에 전기가 부속되어 있다.
2. 정사
2.1. 초기 생애
어려서부터 세상을 바로하고 백성을 구제할 뜻이 있었다. 25세에 벼슬길에 올라 광릉군 동양현의 현장이 되어 선정을 펼쳤다.
선주전에 따르면 도겸이 죽으면서 미축에게 유언하여 유비에게 서주를 양도하려고 한다. 유비가 거절하자 진등도 사신으로 와서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달라고 청하나 유비는 또 거절하며 수춘의 원술이 명문가이니 차라리 그에게 양도하라고 한다. 진등은 원술은 교만한 자라서 서주를 다스릴 만하지 못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융도 유비가 서주를 맡을 것을 권하니 유비가 그제서야 받아들인다. 헌제춘추에 따르면 진등 등이 원소에게 사자를 보내 유비가 새로운 서주 자사가 되었다고 알리자 원소가 긍정한다.만약 사군(使君, 주자사에 대한 경칭)이 제 청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저 진등도 사군의 뜻에 따르지 않겠습니다.
2.2. 여포 토벌의 첨병
여포가 유비의 뒤통수를 치고 서주의 주인이 되자 진규, 진등 부자도 여포의 영향력하에 있게 되었다. 여포가 서주목이라는 지위를 요구하려고 진등이 여포의 사신으로 허도에 왔을 때, 조조는 진규의 관질(官秩)을 2천 석으로 올리고 진등에게 광릉 태수의 벼슬을 내리고 은밀히 병사를 모아 조조군에게 내응하도록 했다.
여포는 아무것도 이루고 오지 못한 진등에게 다음과 같이 화를 낸다.
그러나 진등이 태연하게 천천히 여포를 깨우치듯이 말하자 여포는 화를 풀었다.경의 부친(진규)이 내게 조공(조조)과 협력하길 권하여 공로(원술)와의 혼사도 끊었소. 내가 구하던 것은 지금 하나라도 얻은 것이 없는데, 경의 부자는 나란히 지위가 오르고 권세가 중해졌으니 경이 나를 팔아먹은 것이오! 경이 나를 위해 말했다면, 그 말이 무엇이었소?
진등은 광릉에서도 선정을 펼쳤고 그 위신(威信)으로 해적 설주가 귀부해오기도 했다. 만 1년이 되는 날에 이르기 전에 공로를 달성하고 백성들이 경애하니 진등이 "이제 가히 쓸 만하다."고 말했다.제가 조공을 만나 이르길, '장군을 대우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호랑이를 기르는 것과 같아 응당 고기를 배불리 먹여야 하니, 배부르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해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공이 이르길, '경의 말과 같지 않소. 비유하자면 매를 기르는 것과 같아서 배가 고프면 부릴 수 있으나 배가 부르면 날아가 버릴 것이오.'라 했으니, 그 말이 이와 같았습니다.
진등은 조조가 여포를 공격할 때 내응하여 선봉에 섰다. 한편 여포도 진등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었는지, 그의 세 아우를 하비성에 인질로 잡고 있었는데 이들을 인질로 화친을 요구해도 진등은 듣지 않았다. 나중에 여포의 부하 장홍(張弘)이 여포가 패배하면 벌을 받게 될까 두려워 진등의 아우들을 데리고 도망쳐서 아우들은 살아났다. 여포가 패배한 후에는 그 공로로 복파장군이 되었다.
2.3. 주변인들을 평가하다
진교전에 따르면 당시 광릉 태수였던 진등이 진교에게 공조(功曹) 직책을 맡긴 뒤 그를 허창으로 보내면서 허창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듣고 오라고 한다. 진교가 돌아와서 말한다. "모두 당신이 오만하고 자긍심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진등이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진등은 "자질구레한 사람들까진 말 안했고 내가 이렇게 많은 이들을 공경하는데 무엇이 교만하단 말인가!"라며 평상시 생각과 행동이 이와 같았고 진교를 깊이 존경하고 친구처럼 대했다.진기, 진심 형제: 내실이 청정하고, 화목하며 덕행이 겸비되어 있다.
화흠: 연못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며 예법이 있다.
조욱: 몸을 깨끗이 닦고 추악함을 가슴 아파하며, 식견이 있고 뜻 있는 마음이 있다.
공융: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강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탁월하다.
유비: 재지가 출중하고 왕패의 재력을 갖고 있다.
2.4. 손책/손권군을 격파하다
연의에는 나오지 않으나, 손책의 대군을 막은 적도 있다. 진등은 예전에 손책이 격파한 진우의 조카로 예전에 진우가 손책에게 당한 것을 갚고자 했다. 진등은 몰래 인수를 엄백호의 잔당에게 주었다.[2]
손책은 군사를 보내 광기성(匡琦城)에서 진등을 공격했는데 그 깃발과 갑옷이 땅을 뒤덮을 정도였다. 진등의 수하들은 모두 적군이 아군의 10배나 되니 성을 비우고 피하면 적군은 물에 익숙한 자들이라 육지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어 곧 철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등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성문을 닫고 지키며 밤새 형세를 관망하다가 날이 새자 기회를 잡고 손책군을 급습해서 패퇴시켰다. 진등은 승세를 타고 추격해서 수많은(萬.이 표현에 대해서는 하단을 참조.) 병사를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았다.
그 후 손권은 대군을 일으켜 진등에게로 향했다. 진등은 자신의 병사로 대적할 수 없다고 여겨 공조(功曹) 진교에게 명령하여 조조에게 구원군을 요청한다.
진등은 몰래 성 밖 멀리 떨어진 곳을 군영의 처소로 삼고 땔나무를 많이 베어오게 하여 땔나무 묶음을 간격을 두고 가로와 세로로 여럿 세워뒀다. 밤이 되자 땔나무 묶음에 불을 일으키고 성 위에서 경축하고 환호하니 마치 대군이 도착한 것처럼 보였고 손권군이 놀라서 도망가는 사이에 진등은 군을 이끌고 추격해 다시 수많은(萬) 적을 참수했다. 다만 이 기록들은 모두 선행행장 기록이라 곧이곧대로 믿기엔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술한다.
진교전에 손권이 진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과장성 기록만 배제하면 손권군[3] 과 진등과의 마찰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손권군을 격파한 공으로 동성 태수[4] 로 진급하여 진등이 떠날 때, 백성들과 관원들, 노약자들은 포대기에 업은 채라도 진등을 뒤따르려 했으나 진등이 이들을 타일러 돌아가게 하였다.
2.4.1. 기록의 신빙성
진등과 손씨세력 간의 전투는 <여포전>과 <손책전>의 서술이 다르다. <손책전>에 주석으로 달린 <강표전>에서는 손책이 진등을 토벌했다 나오며 이동평에서도 증험이라고 덧붙였다. 그와는 반대로 <여포전>에 주석으로 달린 <선현행장>에서는 진등이 손책을 격파했다고 나온다. 배송지는 원래 손책이 단지 진등을 치려는 것에서 그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조조를 치기 위한 군대를 일으킨 것은 맞고 첫 타겟이 진등이었다고 설명한다. 배송지는 이후 <손책전>에 손책이 이렇게 진등과 붙으려고 하던 차에 사냥을 하다가 허공의 문객들이 손책을 암살했다고 주석으로 남겼는데, 이렇게 서로 전투 중에 대치하다가 손책의 갑작스런 암살로 흐지부지 되었다는 게 좀 더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손책/손권 군과의 전투에서 진등이 각각 1만 명을 죽이고 사로잡았다/1만 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이는 손가의 동원병력을 생각해 봤을 때 각각 1만 명씩 전사했으면 손가 세력은 바로 괴멸 상태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지나치게 과장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기록 자체를 신뢰한다고 해도 萬은 '많이'라는 뜻의 수사적 의미의 단어로도 쓰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수사적인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도 피해가 1만 명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진수의 삼국지 본전과 다른 배송지 주 기록과 진등의 <선행행장>은 유달리 이질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선행행장>의 기록을 부정하는 의견도 많은 편이다. 《자치통감》에도 진등의 손책/손권군 격파에 대한 기사는 싣고 있지 않다.
2.5. 죽음
이렇게 유능한 진등도 최후는 매우 독특했다. 화타전에 따르면 진등은 평소 회를 즐겨 먹었는데 어느 날부터 가슴에 통증이 생기고 속이 편치 않아 화타에게 치료를 받았다. 화타가 준 탕약을 먹자 구토를 함과 동시에 붉은 색을 띤 벌레가 몇 되나 나왔다고 한다. 화타는 진등에게 말하길, "3년 안에 재발할 것이나 뛰어난 의사가 있으면 치료할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3년 후에 진등은 같은 증상을 보였고, 화타는 이미 조조에게 찍혀서 처형당해 이 세상에 없었던 뒤라 결국 38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5]
묘사로 보아 진등의 질병은 기생충(간흡충) 감염으로 추정되며 생선회를 좋아해서 지나치게 자주 먹은 탓에 기생충에 감염되었고 화타의 처방으로 증상이 호전되었으나 식습관이 고쳐지지 않아 재발한 것으로 보인다.[6] 또는 화타가 재발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라든지 뛰어난 의사가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봐서는 간흡충으로 인해 이미 간암이 발병한 상태였을 수도 있다.[7]
진등 사후에 조조는 매번 장강에 이를 때마다 진등의 계책을 쓰지 않아 손권이 세력을 키워버렸다고 탄식하였으며, 조비는 진등의 생전의 공을 추념하여 진등의 아들 진숙을 낭중으로 삼았다.
3. 평가
훗날, 배송지는 진등과 장홍을 묶어서 "진등, 장홍은 아울러 웅기와 장절을 지니고 있었으나, 진등은 수명이 다해 요절하면서 공업을 다 이루지 못했고, 장홍은 약한 군사로 강한 군사를 대적하여 열렬한 뜻을 세우지 못했으니, 애석하도다!"라고 평했다.
유비는 유표에게서 천하인을 논할 때 진등에 대하여 이렇게 평했다. "만약 원룡(진등의 자)처럼 문무와 담지(담력과 포부)를 갖춘 자는 응당 고대에서 구할 뿐, 창졸간에 그와 비견될 자를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즉, 실제 역사 속의 진등은 당대에 손꼽히는 영웅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진등도 진교전에 따르면 유비는 패왕의 재력이 있어 존경한다고 얘기한 바 있으니, 정말 서로가 서로를 깊히 흠모한 셈.
정사에서 진등은 결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능력 면에서는 문무지용(文武知勇)을 겸비하였으며, 백성들을 인자하게 보살펴서 인덕(仁德)에서도 이름이 높고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널리퍼졌으니 실로 당대에 손꼽히는 호걸이었다고 할 만하다. 삼국 정립보다 훨씬 이전에 죽은 사람인데도 삼국시대의 3개의 제국의 모든 창업군주들이랑 깊은 인연이 있는것도 흥미로운 점. 연의에서는 유비를 호의적으로 평가한 정사에서의 행적 때문인지 유비의 조력자처럼 등장하지만, 정사를 전체적으로 보면 유비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가졌던 것과 별개로 그저 서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며 살아간 인상이 더 강하다. 즉 난세를 살아간 지역 호족의 전형이라 할 만한 인물.
4. 연의
정사에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연의에서의 이미지는 아버지 진규와 콤비로 등장하여 유비를 도와주다가 이후 유비와 헤어지는 1회성 조연 이미지가 강하다.
이전에 서주를 다스리던 도겸이 죽고 유비가 서주의 대권을 쥐자 진등은 유비 밑에서 중용되어 모사와 문관으로서 활약한다.
유비가 황제의 조서에 의거하여 원술을 치기 위해 서주를 비운 사이, 장비에게 서주의 수비를 맡기면서 진등에게 보좌역을 맡긴다. 이 와중에 장비는 술잔치를 벌이다가 술을 거부하던 조표에게 곤장형을 내리고, 이때 진등이 말리지만 장비는 '문관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무시한다. 결국 조표는 자신의 사위인 여포를 끌어들여 유비의 뒤통수를 치고 서주를 빼앗게 한다. 이에 진등은 여전히 여포 밑에서 신하 노릇을 하면서 겉으로 여포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속으로는 아버지 진규와 힘을 합쳐 여포를 파멸시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먼저 원술과의 정략결혼을 거부한 여포에 의해 아버지 진규와 함께 조조에게 사신으로 보내졌는데, 여포의 바람과는 달리 조조와 내응하기로 말을 맞춘다. 이에 조조가 벼슬을 내리자 돌아왔을 때 여포가 "나에게 서주목 관직을 달랬지 누가 네 배만 채우랬냐?"라고 따졌고, 진등은 "그건 조승상이 여포 형님을 굶주린 매로 만들어 원소나 유표 같은 다른 잡놈들을 잡아먹게끔 한 겁니다."라고 거짓부렁을 펼쳐 넘어갔다.
그러나 원술의 정략결혼 제안을 거부한 일 때문에 원술이 군사를 일으켜 서주를 침공하였고, 이에 여포가 진궁의 제안을 따라 진규, 진등 부자의 목을 쳐서 화해를 구걸하려 하자, 진등이 나서서 계책을 내어 결국 원술의 군사를 물리친다. 그리고 이 와중에 과거 헌제를 호송한 공이 있었던 양봉, 한섬이 원술을 배신하도록 회유하였고, 이 둘을 서주에 남긴 뒤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여포를 제거할 생각도 했었으나 진규가 이 둘이 오히려 여포를 도우면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서 이도와 낭야에 보낸다.
이후, 진규 - 진등 부자는 매일 여포와 술잔치를 벌이고 아첨하며 여포를 주지육림에 빠지게 만들어 모사 진궁의 간언도 듣지 않으려 하는 똥별로 타락시킨다. 그러다가 조조가 쳐들어오자 거듭 잘못된 간언과 계책을 올려 여포를 손해보게 만들고 여포 수하 사람들을 서로 이간질시키며, 마침내는 여포의 부하들을 속여 여포의 명령을 거짓으로 전달하여 서주성을 빼앗아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는 진규 - 진등 부자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여 상으로 그들의 녹봉과 식읍을 크게 늘려주었다.
여기까지는 연의와 정사에서의 모습이 비슷하나, 이후에는 약간 다른 성격의 인물들로 묘사된다. 흔히 알려져 있는 연의에서의 진등은 이후 조조보다는 유비에게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 정사에서는 조조 밑에서 일하는 충실하고 능력있는 지방 관리였다.
연의에서는 여포가 패망한 뒤 조조는 차주를 보내 서주를 다스리게 했는데, 유비가 조조를 속이고 허도에서 도망쳐 서주를 다시 찾으려 쳐들어오자, 진등은 차주에게 유비를 거짓으로 속여 죽이자고 계책을 냈지만, 속으론 유비와 친하였기에 몰래 밤에 성을 나가 유비에게 계책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계책을 내어 관우가 자신을 장료라고 속이고 성 앞으로 가서 차주더러 성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이에 차주가 속아 성 밖으로 나가자 진등은 성문을 잠그고 차주를 들여보내지 않았고, 관우는 차주를 곧바로 죽였다.[8] 그리고 진등은 유비를 성 안으로 맞아들여 서주의 새로운 주인이 되게 하였다.
후에 조조가 유비를 격파하고 또다시 서주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죄를 보면 조조가 진등을 진작에 죽였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진등은 여전히 서주에서 벼슬을 유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를 볼 때, 연의에서 나타난 저러한 박쥐같은 모습은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의외로 자신을 엿먹인 가후를 중용하고 장수에게도 딸을 시집보내 주던 조조의 모습을 보면, 대인배적인 태도를 진등에게도 보여주었을 가능성도 있다.[9]
조조에게 의탁한 이후의 삶은 나오지 않았으며 위에서 언급한 사망 장면이 각색되어 화흠이 화타를 조조에게 추천하는 과정에서 언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5. 미디어 믹스
원래 민간에서의 이미지는 일단 유비에게 일시적으로나마 도움을 주기는 했고[10] , 여포와 조조에게 투항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는지라 그리 나쁘지 않고 상당히 괜찮은 편[11] 이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여포의 이미지가 상승한 데다가, 온갖 계략을 꾸미는 모습이 현대의 연의의 독자들에게 완전히 소인배의 이미지로 심어지는 바람에 실제의 모습보다 크게 손해를 보고 있다. 특히 연의 한정으로 여포의 충신인 진궁과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모습은 어쩔 수 없다. 진궁은 조조에 비해 약소세력인 여포를 위해 현실적이고 득이 될만한 헌책만 하여 어떻게든 상황을 호전시키려고 하지만 진규, 진등 부자는 여포에게 술이나 먹이면서 진궁을 비꼬기만 하는 모양새니... 많은 각색물에서는 연의의 이미지를 '좀 더 비꼬아서' 최악으로 만들어놓는 경우가 너무 많다.[12] 실제 진등에게는 참 안타까운 노릇이다. 특히 정사 드립하면서 진등을 연의 기준으로 까버리는 작품이 너무 많다. 어찌되었건 창작물에서는 어리석은 여포가 내통자인 진규, 진등 부자만 총애하며 자신을 해치려는 계책까지 순진하게 다 믿는 모습을 보이니 속이 터지는 사람이 많을 수 밖에...
5.1. 삼국지톡
진등(삼국지톡) 문서 참조.
5.2.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image]
아버지 진규와 함께 여포 밑에 있으면서도 조조, 유비와 내통하여 그를 패망으로 이끈다. 나중에 다시 유비에게 협력하지만 유비가 조조에게 패해 달아나자 바로 조조에게 전향한다.
5.3. 삼국지평화
조조에게서 빠져나와 관우에게 의탁하는 전개가 되었다.
5.4.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정사의 내용을 어느 정도 반영하였는지, 문관에 가깝긴 하지만 무력은 60대에 통솔도 80 정도이기 때문에 다용도로 굴릴 수 있다. 단 문관치고 매력은 높지 않은 편.
삼국지 3에서는 육지25 수지18 무력27 지력70 정치73 매력75에 야망4 운9 냉정11 용맹2라 아주 훌륭한 문관으로 상업투자에 아주 좋다.
삼국지 6에서는 가끔 나타나는 화타가 "진등님의 위 속에는..."이라는 대사를 한다.[13]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9/65/80/81의 만능형 장수. 제사, 투석, 조영, 파괴, 혼란, 덫, 매도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84/63/80/82/59에 특기가 12개.(상업, 징병, 화시, 일제, 은밀, 반목, 저지, 유인, 위압, 반박, 명사, 간첩) 내정에선 상업 셔틀로 쓰면 되고, 전장에서 효용도가 꽤나 좋다. 기본 통솔이 84인 데다가 지력도 80이라 턴이 빨리오고 행동력도 높은편 인데 써먹을 특기도 화시, 일제, 은밀, 반목, 유인 등 쏠쏠한 특기들. 서주의 유지인지라 당연히 명사 특기는 덤이니 직접 플레이 할 때도 도적은 설전으로 발라먹으면 되기 때문에 플레이하기에 무난한 캐릭터. 여담으로 초상화가 더 콰이엇과 닮은 꼴이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79/64/81/80/61에 특기는 궤계. 진등다운 특기라고 볼 수 있으나, 특기의 성능은 미묘하다. 기본 능력치가 좋고 병과 적성은 극/노 A에 병기 S라 도겸군에서는 에이스로 활약하며, 유비군이나 조조군에서도 적성을 살려 활약할 수 있으나 짧은 수명이 걸림돌이다.
삼국지 12에서 79/64/81/80으로 전작에서 매력만 삭제. 전법이 매복의 독이라서 매우 쓸만하다. 지력이 높았지만, 10에서 보유했었던 군사 특기가 없는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다. 도겸군이라면 필시 백성의 진정으로 아군 능력치를 올릴 때 진등의 지력부터 올리게 될 것이다. 여포군이나 유비군이여도 충분히 1인분을 해 내는 편이다. 다만 괴수들이 즐비한 조조군에 합류한 시나리오에 가서는 다소 묻히는 편이고, 그나마도 수명 때문에 금방 죽는다. 초반에 열심히 키워서 굴려주자. 일러스트는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정황상 여포에게 거짓 간언을 하여 현혹할 때 모습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친애 무장란에 유비가 있고, 혐오 무장에 여포로 설정되어서, 여포 측에서는 진등이 처음부터 아군으로 있는 여포토벌전 시나리오 외에는 절대 등용이 불가능하다. 그나마도 초기 충성도가 낮으므로, 포상을 주지 않으면 바로 배신하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인 진규도 동일.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12와 동일하고, 전법은 4포인트를 소비해 아군의 공격력과 사기를 올리고 역경을 부여하는 역경지휘. 전법 포인트 대비 상당히 좋은 전법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도겸군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투에서 쓸 만한 장수다. 다만 특기가 생각보다 부실한 편. 전체적으로 특기는 상업 7, 순찰 5, 설파 6, 교섭 7, 언변 7, 견수 7이고 중신특성은 신중견수로 전수특기는 상업이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80, 무력 64, 지력 81, 정치 80, 매력 64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 상승했다. 개성은 붕벽, 봉살, 명성, 진흥, 문화, 주의는 명리, 정책은 시설개발 Lv 4, 진형은 안행, 방원, 충차, 투석, 전법은 연노, 철벽, 경파, 충차, 투석, 친애무장은 공융, 유비, 조욱, 진교, 화흠, 혐오무장은 손책, 여포다.
DLC로 등장한 성씨패란에서는 여남의 군주로 나오며 부하로는 진건#s-2.3, 진교#s-2.3, 진군#s-2.5.1, 진궁, 진규#s-1.4.3, 진기#s-1.1, 진도, 진란#s-2, 진림#s-5.1, 진무, 진수(오나라)[14] , 진수(승조)[15] , 진식#s-1.4, 진응#s-1.1, 진지, 진진, 진취#s-2.1, 진태#s-3.1, 진표, 진화, 진횡#s-2까지 총 21명을 두고 있다. 소속 도시의 재야 무장으로는 공도#s-5.1, 뇌박#s-2, 맹건#s-2, 풍해#s-2 총 4명이 있으며 옆 동네 수춘을 점령하면 창자, 초이#s-2.1, 풍씨#s-4.1 총 3명이 있는데 이들을 모두 등용하면 난이도가 급하락한다.
5.5.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서 NPC로 등장한다. 유비가 서주를 구원한 이후에 회의장에 있는데 이때 대화하면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한동안 모습을 내비치지 않다가 하비 전투 직전에 등장하여 여포의 부하들을 설득하라고 진언한다. 만약 여포의 부하들을 설득하지 않는다면 20턴 후에 성문이 열리며, 미리 진등을 하비성 내에 잠입시켰다고 조조가 언급한다.
5.6. 삼국전투기
바트 심슨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묘사해놓고서도 '''보기와는 다르게 무서운 놈'''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처세술이나 상황판단이 매우 빨라 진궁을 견제하고, 후에 여포를 통수치는 등 큰 활약을 보인다. 서주에 유비가 컴백할 때 그를 치려다가 빠른 두뇌전환으로 유비를 받아들이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게다가 관도대전이 발발하여 손책군이 조조의 뒤를 치려고 서주를 공격해왔을때 손책의 혈기왕성함을 꿰뚫어보고 암살에 성공, 퇴각하는 손책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둬 간단히 격퇴시킨다.
정군 전투 (1)편에서 아버지 진규와 함께 타이틀 컷을 차지한 것으로 선행 등장하며, 중간정리 편에서는 아버지 진규와 함께 열심히 여포에게 아부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본격적인 등장은 하구 전투 편부터이다. 하구 전투 편에서는 보드를 타며 등장해 아버지 진규에게 여포와 원술이 사돈을 맺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달하고, 진규가 이를 막으려 하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진규의 계획이 성공하여 결혼동맹이 파토나게 된 후 한윤을 허도로 압송해 보내기도 했다. 덧붙여 이때 조조를 만나서 따로 맹약을 맺기도 했다. 이후 조조가 여포에게 좌장군 관직을 수여했다는 소식을 여포에게 전달해 줬다.
하비 전투 편에서는 정욱에게 밀서를 받고 드디어 시작될 모양이라며 사악하게 웃는다. 그리고 이후 여포를 찾아가서 눈물을 보이며 유비의 밀서[16] 를 보여 주며 유비가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자기들이 조조(와 유비)와 손을 잡으라 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다며 여포에게 사죄한다.[17] 이후 당장에 유비를 치겠다며 분노한 여포를 진궁이 제지하려 하나 실패하고 여포가 유비를 치게 되자 고소하다는 듯 진궁을 바라보며 약올리는 표정을 짓는다.
이후 조조가 10만이 넘는 대군을 끌고 팽성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들은 여포가 살짝 쫄자 원술의 10만 대군을 물리쳤던 하구 전투 편의 일을 거론하며 여포를 안심시킨 뒤 임전태세를 갖추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고향으로 향하면서 여포와 헤어진다. 이후 설주에게 광릉의 군대의 상태를 물은 뒤, 최상의 상태라는 대답을 듣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도록 명한다. 이후 조조가 팽성을 넘는 순간 우리가 최전방에 서서 여포의 목을 따는 것이라고 덧붙인다.[18]
후내가 서황에게 맥없이 패배하고 항복하여 팽성이 너무나도 간단히 넘어가 버려 여포가 긴장하게 되고, 성렴을 먼저 보낸 뒤 여포 자신도 직접 나서려 하자 여포의 뒤에서 나타나면서 팽성을 직접 치는 건 너무 위험하다며 제지한다.[19] 동시에 팽성 바로 위의 소관을 칠 것을 건의한다. 소관도 이미 조조군이 선점한 상태였으나 거대수림지역인 소관은 밤이 되면 달빛 한 점 한 새어들어오는 완전한 암흑지대가 되기에 야습을 노린다면 탈환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 것. 성렴에게는 자신이 따로 말해 놓겠다고 말한 뒤 여포를 보낸다.[20]
그러나 이것은 진등의 페이크로, 성렴과 여포의 중간 다리 역할을 자처한 진등은 두 사람을 적절히 조종하여 서로 싸우게 만들어 여포군을 상당히 소모시키게 된다. 이후 여포가 서주성으로 돌아와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하자 진규와 함께 본색을 드러내며, 여포에게 화살세례를 날리며 쫓아내 버린다.
이후 하비성이 함락되고 여포 세력이 궤멸된 이후, 조조에게 복파장군직을 임명받는다. 어떻게 보면 진규, 진등 부자야말로 여포 세력 궤멸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으나 귀순한 지 얼마 안 된 진등에게 곧장 요직을 맡길 수는 없었기에 바로 서주자사 직함을 넘겨 주지는 않은 걸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서주의 실질적인 1인자라고 나름 고평가받기도 한다.
팽성 전투 편에서 재등장. 조조에게서 유비 암살 명령을 받은 차주가 진등을 불러서 의견을 묻자 길목에 복병을 배치하고 쓸어버리면 된다고 조언한다. 이후 차주가 작전에 실패하고 서주성으로 되돌아오려 하자, 상황 파악이 끝난 진등은 그대로 차주를 배신하여 성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았던 것으로 묘사된다. 차주가 죽은 이후에는 양 손에 깃발을 들고 유비를 열렬히 환영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광기 전투 편에서 재등장한다. 손책의 대군이 서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설주를 찾으며 크게 당황하지만, 설주가 손책이 선봉으로 나섰다고 보고하자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며 오히려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손책군의 대규모 군세를 보고 진등의 수하들 대부분[21] 이 손책군과 비교해 봤을 때 자신들은 너무나도 약하다며 성을 버리고 피난을 갈 것을 종용하지만, 진등은 오히려 자신들은 손책군과 비교해서 너무나도 약하기에 상대는 더 많은 허점을 내보일 것이고, 상대가 허점을 내보였을 때 그것을 찌를 수 있는 계획은 자기 머리 속에 있으니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부하들을 독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손책 공략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뒤 작전의 일환으로 광기성의 병사들에게 재갈을 물려 소리를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몸을 숨기게 해 광기성을 빈 성같이 고요하게 만들어 놓는다.[22] 이후 지나친 적막함에 수상함을 느낀 손책이 늘 그러했듯 혼자 정찰에 나서자, 미리 풀어 놨던 척후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손책의 위치를 보고받고, 손책이 특정 위치에 도달하자 설주를 보내 손책을 죽이게 한다.[23]
이후 설주가 손책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돌아오자 설주를 칭찬하였고, 손책이 부상을 당해서 어수선한 틈을 노려 손책군을 즈려밟아 주기로 정한 뒤 설주에게 밤이 되면 남문으로 돌아나가 적의 후방을 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이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어 손책군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손권이 지휘권을 주유에게 넘겨받으면서 혼란을 수습하고 퇴각하는 듯 싶었으나, 거기까지 예상하고 있던 진등이 미리 병사를 시켜 산기슭에 땔나무 묶음을 배치하고 거기에 불을 놓아 조조의 지원군이 온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다시금 손책군에 대혼란을 일으키고 2만 이상의 사상자를 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광기 전투 편 이후 쭉 등장이 없다가 강릉 전투 편에서 화타에게 수술을 받는 모습으로 1컷 등장. 작가에게 보너스 컷 넣는 거 까먹지 말라고 말하는 화타에게 수술하던 도중에 갑자기 뭐 하냐고 소리를 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후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5.7. 삼국
충신 이미지를 가진 진궁에 대비하여 간사한 이미지로 나온다. 아버지인 진규랑 둘이서 진궁 앞에서 진궁을 디스하면서 히죽거리는 장면이 압권. 한국 더빙판 성우는 최창석.
5.8. 화봉요원
원래 상인 출신으로 돈을 모아 관직을 산 것으로 나온다. 오랜 거래 상대인 사마의와는 친분도 깊고,서주가 조조에게 공격 당했을 때 요원화가 자신의 선의로 그를 도운 것도 있어 이후 사마 가문과 깊은 인연을 맺어 그들을 지원한다. 사마의의 측근인 가규가 조정에 출사한 것도, 진등이 뇌물을 여기저기 먹여준 덕.
5.9. 연희 시리즈
최신작인 진 연희영웅담에서 진규와 함께 추가. 자세한 것은 진등(연희 시리즈) 참조
[1] 향년 39세. 화타가 죽고 나서 사망했다.[2] 엄백호가 의지한 허소가 손책을 습격한 자객인 허소와 동일인물이란 의견도 있으나 명사인 성헌과 대호족인 엄백호가 의지할 정도로 세력가인 허소가 허공의 빈객이며 자객인 허소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은 낮다.[3] 손권이 직접 인솔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손권 세력의 군대.[4] 선행현장에 동성태수라 되어 있으나, 이는 오류로 보인다. 당시 동성이란 지명은 군이 아니고 현이었다.(임회군 동성현) 광릉 태수로 쭉 지내온 게 더 정확해 보인다.[5] 화타전과 진등전의 기록대로라면 진등의 출생한 해는 170년 ~ 172년, 사망한 해는 208년 ~ 211년 사이이다.[6] 중국의 지형 특성상 바다 생선회를 먹기보단 민물 생선회를 먹었을 확률이 높다. 민물 생선회는 바다 생선회보다 기생충 감염률이 높다.[7] 코에이의 삼국지 6에서는 이걸 말하려는 것인지 화타가 등장할 때 일정 확률로 '''"진등님의 위 속에는..."'''이라는 대사를 보여주기도 한다.[8] 또한 판본에 따라서는 장비가 '''차주의 일족을 몰살해 버린다'''.[9]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진등&진규 부자를 책망하여 서주의 백성들에게 불안감을 높여주긴 싫었고, 가뜩이나 관우가 하비성에서 농성하고 있었으므로 서주의 관리를 맡겼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쪽으로 해석한다면 조조가 예전에 저질렀던 서주 대학살과도 연관지을 수 있으니 서주 출신의 진등 & 진규 부자를 중용하여 서주 대학살 시즌 2는 없다고 안심시키기 위함일 것이다.[10] 결국 조조군에 몸담긴 하지만, 이건 사실 '''재벌급 재산 다 바쳐가며 오랫동안 살았던 고향까지 등지며 유비를 따른 미축, 미방 형제가 굉장히 이례적인 거다.''' 괜히 미축이 촉 개국 후 제갈량보다 높은 작위를 받고, 우번이 미방의 배신 사실을 못 믿었던 게 아니다. 거기다 여포를 뒤통수 친 이력을 생각하면 정말 유비에게 악감정이 있었다면 돌아온 유비에게 어떤 식으로든 훼방을 놓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그런 기록도 없다.[11] 중국 민간에서는 연의의 영향으로 유비가 선인이고 조조는 악한이다. [12] 특히 이문열은 자신의 평역 삼국지에서 진등이 조조에게 서주를 바친 장면의 직후에 그가 섬긴 주군들을 차례로 열거한 다음 가후, 맹달보다도 더한 변신의 명수라고 깠다.[13] 이는 진등의 사인인 간흡충을 의미하는 것이다.[14] 진무의 아들인 진수다.[15] 정사 삼국지 저자인 진수다.[16] 정욱이 조작한 날조. 이전 편에서 정욱이 보낸 2통의 편지 중 하나는 앞으로의 행동지침이었고 남은 하나가 이것이었다.[17] 이 와중에 눈에 침을 발라서 눈물인 척하는 장면도 연출한다.[18] 이 때 내레이션으로 '''이 녀석, 생긴 것과는 다르게 진짜 무서븐 넘'''이라고 서술되었다.[19] 바로 전 편에서 여포와 헤어졌었으나, 팽성 함락 소식을 듣고 광릉에서 즉각 군대를 이끌고 서주(하비)로 돌아왔다고 언급된다.[20] 이 때 어미에 ~둥이 붙는 말투를 썼다가 안 썼다가 해서 여포에게 어미붙이기가 일관성이 없다고 태클을 받기도 했다.[21] 진등의 수하들 상당수가 스프링필드 주민들로 패러디됐다.[22] 이 때 주유가 펜실바이아냐고 태클을 걸기도 하는데, 해당 컷에서 묘사되는 배경을 보면 사실 작가가 의도한 건 트란실바니아 쪽으로 추정된다.[23] 손책군은 손책의 배경과 카리스마, 능력에 의해 급결성된 세력이다. 따라서 연결 고리가 되는 손책만 무너지면 나머지는 알아서 무너질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손책은 손책군의 중심축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불안요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등이 처음부터 손책을 제거 대상으로 찍고 계획을 짠 것도 그것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