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1. 개요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붕괴하면서 갈리치아 지방에 있었던 국가이다.
11월 3일에 선포 되었으나, 원래는 11월 1일에 선포할 게획이였는데 폴란드 청산단의 보고로 11월 3일로 앞당겨 졌다.
2. 독립과 폴란드과의 갈등, 그리고 전쟁
공화국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한 직후, 리비우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났는데,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은 대부분 폴란드인들이였고, 그폴란드인들은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국민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몇주후, 리비우의 반항적인 폴란드인들은 폴란드 정부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11월 9일, 폴란드군은 유전을 기습침공하려 했으나, 우크라이나군 보다 우세하여, 일단 후퇴했다. 그 행동으로 교착상태로 인해, 폴란드인들은 통제권을 유지했고, 리비우와 폴란드를 연결하는 철도 주변의 좁은 영토를 얻었으며, 나머지 동쪽 갈리치아는 서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한편,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바로 서쪽에 있는 작은주 또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해체로 인해 독립을 선언했다.
렘코-루신 인민 공화국이였는데,
렘코-루신 인민 공화국은 동부 주변에 위치한 30여개의 마을의 연합체였다.
1918년 11월 4일 부터, 1919년 1월 23일 까지 존재한 공화국이였는데, 친우크라이나 성향을 가져,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과 연합할 계획이었으나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의 일환으로 폴란드 정부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1918년 12월 5일, 결국 렘코-루신 인민 공화국은 독립을 선언했다.
3. 멸망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과의 연합에 반대하고 대신 러시아와의 통일을 추구하는 러시아인들의 감정이 러시아 주민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결국 1918년 12월 1일에 우크라이나 서부와 우크라이나의 나머지 영토를 통합하기로 합의한 끝에, 1919년 1월 22일, 서우크라이나 정부는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과 공식적으로 통합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